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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44화 (44/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44화

화면엔 류인의 심각한 얼굴이 나왔고, 곧바로 줄에 오징어가 딸려 나왔다.

[ 정체는 바로 오늘의 주인공! 바다의 공작, 무늬오징어! ]

류인이 직접 잡은 오징어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다른 멤버들의 얼굴이 짤막하게 스쳐 지나갔다.

- 오징어 보는 눈빛이 저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있는 거임?

- 잠깐 저 오징어가 부럽기까지

- 그 와중에 성해온 죽어가고 있는 거 아니지? 너무 창백한데 ㅁㅊ ㅋㅋㅋㅋㅋ

이제는 류인이 잡아 올린 오징어로 요리하는 장면이었다.

작가의 연출대로 오징어를 썰던 선원이 류인에게 칼과 도마를 넘겼다.

[ 엄청난 실력! 화들짝 놀란 선원들! ]

류인의 칼질과 그걸 놀라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선원들의 얼굴이 번갈아 나왔다.

- 와 칼질 폼 제대로다

- 당장 자컨 앞치마 가져와

- 요리 잘하는 애들도 손질은 어버버거리지 않나? 걍 프론데

- 손질하는데 애들 눈 질끈 감고 있는 거 X나 귀여워

참고로 저 때 정말 죽을 뻔했다.

맛있게 먹어달라는 요청 때문에 뱃멀미로 죽어가는 와중에도 꾸역꾸역 욱여넣었더니,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놈들도 다 제대로 얹혔었다.

잡념을 이어가던 내 두 눈에 경악이 물들기 시작했다.

“……!!”

당연히 편집될 거라고 생각했던, 아니, 편집이 되어야만 했던 끔찍한 장면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내가 양손에 쥔 오징어들에게 싸대기를 얻어맞는 장면이었다.

‘이 악랄한 방송국 놈들…….’

[ 찰싹! 찰싹! ]

심지어 오징어 놈들이 내 싸대기를 후려갈길 때마다 내 얼굴 옆에 저딴 자막까지 붙였다.

이럴 줄 알았다면 절대 먼저 찍겠다고 나서지 않았을 텐데.

“큽.”

가장 먼저 억눌린 웃음을 터뜨린 건 최승하였고, 다른 놈들도 얼굴 근육을 움찔거리고 있었다.

나는 상체를 빙글 돌려 놈들과 눈을 마주쳤다.

휙!

휙!

휙!

나와 눈이 마주친 놈들이 귀신이라도 마주친 듯 빠르게 시선을 피했다.

- 아 해온이 표정 현타 세게 맞은 거 같은데

- ㅅㅂㅋㅋㅋㅋㅋ눈동자에 안광이 사라지고 있는데요

- 성해온이라는 남자 때문에 진심으로 미칠 것 같음

- 이런 걸 보고 스타성이라고 하는구나

- 진심 ㅈㄴ 질투 난다 개그는 재능이라더니 성해온 진짜 뭐야? 왜 이렇게 혼자 웃긴 거임? 저 덤덤한 얼굴로?

[ WOW! 오징어들에게도 인기 만점! 오징어들아! 너네 오늘 땡잡았다~? ]

이런 자막과 동시에…….

내 얼굴을 사정없이 갈기고 있는 오징어들에게 수줍은 볼 터치까지 그려 넣는, 극악무도한 편집에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

“크큽, 아 죄, 죄송…… 죄, 죄송! 으흠!”

“그냥 웃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에서 대소가 터져 나왔다.

내 어깨를 두드리며 웃던 최승하가 고개를 들었다.

“아, 형 진짜 편집이~”

싱긋…….

“……!!”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는 내 낯짝을 정면으로 마주친 최승하가 그대로 굳었다.

……순식간에 고요해진 거실에서 프로그램은 끝이 났다.

- 애들 진짜 수고 많았네… 밤새 배 타는 거 진짜 장난 아닌데

- ㅈㄴ 웃겼다

- 당연히 재미는 있었지만 진짜 짜증 난다 좀 쉬게 해주지 애들 안색 안 좋은 거 티 났음

└ 맞아 얼굴 그냥 새하얗게 질렸던데 개빡침

- 근데 진짜 MH 제정신인가? 활동기에 무슨 배를 태워 진짜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옴

예상대로 팬들 사이에서도 부정적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컨텐츠라고 팬들이 다 좋아할 거라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특히 무례하거나 개고생시키는 게 눈에 보이면, 이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나도 팬들의 의견에 적극 동감하는 바이지만, 이왕 갔다 와버린 거 팬들도 재밌게 즐겨줬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다.

사진첩을 진지하게 보고 있자 류인이 다가와 물었다.

“음, 뭐 해?”

“우리 그날 배에서 찍은 셀카, 공계에 올리려고.”

“……이 형은 정말 다 계획이 있는 사람이구나.”

최승하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다행히 뱃멀미에 제대로 찌들기 전에 찍어서 얼굴들이 괜찮았다.

문제는 절반 이상이 흔들렸다는 것.

아이돌의 미덕상 4장을 가득 채워 올리고 싶었지만, 한두 장 겨우 건질락 말락이었다.

나름 열심히 찍는다고 찍었는데.

파도로 흔들리는 선체에선 무용지물이었군.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트윗을 올리자, 곧바로 반응이 따라왔다.

- 재밌었는데 너네 얼굴이 더 재밌었어

- 나 아직도 오징어에 싸대기 맞는 성해온이 자꾸 떠올라서 미칠 것 같아

- 걍 믿어지지가 않는다 저런 작업복을 입었는데도 잘생겼다니

- 이 프로그램 재방송 어떻게 봐요?ㅠㅠㅠ

- 수고했어 얘들아!

* * *

방송 모니터링을 마친 우리는 곧바로 사옥으로 향했다.

숙소에 있어봤자 심란하기만 해서, 약속된 회의 시간 이전에 연습이나 하고 있을 요량이었다.

멤버들의 안색이 아직도 그리 좋지는 못했다.

눈치가 없는 놈들이 아니니, 우리가 왜 섭외되었는지 정도는 대략 눈치챘겠지.

“……저희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으음, 우승은 무리겠지만 이미 결정된 거 열심히 해봐요! 약간 두근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최승하를 힐끗 바라봤다.

‘분위기 살리려 애쓰는군.’

실제로 이 프로그램, 팬 투표 비중이 높아서 우리는 우승을 기대할 위치가 아니다.

“어제까지 심각한 얼굴로 돌아다니던 게 누구였더라.”

류인이 최승하의 어깨를 툭 치며 장난조로 받아쳤다.

“그러니까, 오늘부터요. 피할 수도 없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요?”

“좋은 생각이네. 열심히 해보자.”

“오, 옳은 말씀이십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 임하겠습니다!”

“……저도, 열심히 할게요.”

“얼른 연습이나 해요. 그게 제일 급해요.”

음, 생각보다 훈훈한 분위기가 조성되는군.

* * *

연습을 시작한 지 두 시간쯤 지났을까, 정재진이 연습실 문을 두드렸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아직 약속 시간 전이었다.

“소식 전달해 드리러 왔습니다.”

“아 저희가 회의실로 가려고 했는데.”

“뭘요. 어차피 전달드릴 사항이 아직 많은 것도 아니라서 제가 왔습니다. 연습하시는 데 방해되기도 싫고요.”

정재진이 곧바로 품에 있는 서류 뭉치를 한 부씩 나눠주기 시작했다.

“일단 제가 정리를 좀 해 왔는데…… 읽어보시겠어요?”

받은 서류 속엔 프로그램 출연진들과 회사 측에서 준비해야 할 기본적인 것들이 적혀 있었다.

“……쟁쟁하네요.”

가장 먼저 서류를 넘겨 본 내가 중얼거리자, 다른 멤버들도 빠르게 서류를 넘겼다.

“음.”

“……와아.”

“아…….”

여기저기서 걱정 섞인 탄식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는 해탈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출연진을 확인하자마자 눈에 띌 정도로 얼굴이 차게 식었던 신유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문을 박차고 나간 것이다.

“……?”

갑작스러운 상황에 멤버들이 당황스러워하며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지금은 혼자 있게 두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때 최승하가 방긋 웃으며 멤버들을 만류했다.

다른 놈들도 가타부타 말을 붙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빌어먹을,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겠군.

기억이 없다는 건 정말 최악이다.

“대리님, 잠깐 따로 할 말이 있어서 이야기를 조금 나눌 수 있을까요?”

내 말에 정재진이 곧장 고개를 주억거렸다.

* * *

복도 쪽으로 나오자, 정재진이 사람 좋은 얼굴을 하며 운을 뗐다.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나는 고개를 숙인 채 가식적인 얼굴을 만들어냈다.

“아, 집중을 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서…….”

사방을 힐끔거리며 안절부절못하는 척을 하자, 어쩐지 감동받은 얼굴의 정재진이 입을 열었다.

“……걱정, 아, 유하 씨가 걱정되시는군요! 이럴 게 아니라 당장 쫓아가 보시는 게 어떨런-!”

“예. 감사합니다.”

* * *

자신의 말허리를 자르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인영을 바라보며 정재진은 눈을 반짝였다.

‘어떻게 저렇게 완벽한 리더 상이……!’

본인의 생각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려먹었다는 걸 알 리 없는 정재진은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이 그룹은 정말 사이가 좋구나!”

하긴, 리더부터가 저렇게 멤버들을 살피는데 사이가 나쁠 수가 있나?

정재진은 흐뭇한 얼굴로 등을 돌렸다.

“나도 열심히 해야지!”

* * *

끼이이-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문을 열자, 웅크려 있는 인영이 보였다.

‘아주 멀리도 가셨군.’

안 그래도 음울함의 극치를 달리는 놈이 어둡고 눅눅한 계단에 앉아 있으니 다가가는 것이 망설여질 정도였다.

털썩!

하지만 그런 것에 굴할 내가 아니지.

옆에 내가 주저앉자 신유하가 파들짝 몸을 떨었다.

‘얼굴도 안 보여주는군.’

계속해서 정적이 흘렀다.

오긴 왔는데, 할 말이 아무것도 없는 탓이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혀를 찹니다!]

그도 그럴 게, 난 신유하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

나는 음울한 등짝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녀석과 친해지는 것은 내 목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로,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것이다.

본성은 착하다 못해 말랑해 보이는 놈인데, 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이렇게 됐는지 알 수 없군.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상대방과 가까워지고 싶은 것이냐 묻습니다!]

나는 허공에 뜬 메시지를 보며 고개를 얕게 끄덕였다.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그렇지?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시스템과 협상을 시도합니다!]

‘……협상? 무슨?’

이해가 잘되지 않는 메시지에 고개를 까딱이는 순간, 청아한 띠링! 소리와 함께 창이 생겨났다.

깜짝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나의 마음을 받아줄래?]

상대방에게 진심을 전해보세요!

그럼 조금 가까워질지도? (*^^*)

타깃 – 신유하

시동어 – 사랑해

성공 시 ▶ 깜짝 선물 증정

미친 새끼들아.

진심으로 할 말이 싹 달아나 버렸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흐뭇해합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ES] ◀

[NO]

‘……퀘스트?’

심지어 이건 미션과 달리 실패 페널티도 없다.

아무런 후환 없이 거절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제정신인 이상, 이딴 걸 할 리가 없잖아.

“사랑해.”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뒷목을 부여잡습니다!]

거절하기엔 너무 쉬운 퀘스트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신유하가 상체를 벌떡 일으키더니 얼빠진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딱 봐도 정신 나갔냐는 얼굴이었다.

나는 뻔뻔한 낯짝으로 말을 이었다.

“리더로서, 멤버들을 사랑하는 건 당연한 거지.”

“……?”

시동어도 말했는데, 왜 아무것도 안 오는 거지.

불현듯, 뇌리에 하나의 가정이 스쳤다.

“X발, 설마.”

진짜 정신 나간 놈들이.

“내가 방금 뭐라고 했지?”

“……무, 슨.”

나는 넋이 반쯤 나간 신유하의 어깨를 붙잡고 탈탈 털었다.

“방금 내가 뭐라고 했냐고.”

안색이 새파래진 신유하가 우물쭈물 입을 뗐다.

“……서, 설, 설마라고.”

“그 전에!”

“…….”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놈을 매섭게 부라리자, 눈을 질끈 감은 신유하가 어버버거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사, 사, 사…… 사랑해!”

축하합니다! 퀘스트 클리어!

성공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의 감사 인사를 기다립니다!]

때릴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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