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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45화 (45/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45화

견딜 수 없을 만큼 싸늘한 정적이 신유하와 나를 감쌌다.

“…….”

신유하의 낯짝이 창백하다 못해 파랗게 질려 있었다.

“미안하다.”

양심이란 게 존재한다면 사과하지 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나는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말을 이었다.

“……분위기 좀 풀어보려고 친 장난인데.”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의 하찮은 변명을 비웃습니다!]

신유하가 대답 대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이 녀석이 왜 이런 반응인지 대충 짐작되는 바가 있긴 하다.

결과적으로 볼 때 온라인상에 떠돌던 출연진 관련 찌라시는 전부 일치했다.

아마 방송국 관계자나, 그와 연이 있는 사람이 흘린 거겠지.

거기서 1번으로 설명되었던 그룹이 속한 대형 기획사 말이다.

그거 신유하 전 기획사다.

데뷔에 임박한 대형 기획사 연습생들의 신상이 털리는 건 흔한 일이기에,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해당 그룹 멤버들의 나이가 신유하와 얼추 비슷하니, 깊게는 몰라도 같이 연습했던 놈들이 대부분 그 그룹으로 데뷔했겠지.

“음.”

일단 무슨 일이 있었던 건 확실하다.

나는 눈치를 살피다가 운을 뗐다.

“무슨 일이 있는 거야?”

“…….”

“내가 도움 줄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줄게.”

“…….”

“말 안 할 거야?”

“…….”

3연타로 모조리 씹혀 버렸다.

이봐, 내가 이렇게 계속 무시당하고도 말 걸어줄 만큼 한가한 사람은 아니라고.

나는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간다.”

끄덕!

지금껏 내가 옆에서 무어라 떠들어도 무시하던 녀석이 엄청난 반응 속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가 없군.’

털썩!

내가 다시 계단에 앉아버리자, 옆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마음이 바뀌었어.”

“…….”

그렇게 약 10번 정도 추가로 건넨 말들까지 모두 씹고 나서야 신유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무래도 나와 있을 바엔 차라리 연습실에 가는 게 나을 거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하핫! 유하야 쉴래? 아니면 뭐 먹을래? 내가 몰래 편의점 가서~”

최승하가 헤실 웃으며 신유하에게 말을 붙였다.

“……아니.”

신유하는 짧게 답하고는 연습실 구석탱이에 자리를 잡고 쭈그려 앉았다.

사아아아-

뭐, 이런 효과음이 들리는 것만 같이 연습실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일단 연습이나 할까.”

내가 말을 꺼내자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거울 앞으로 모였다.

곧바로 시작된 연습은 현재 진행형으로 죽 쑤고 있었다.

바로 뒤에서 신유하가 암담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니까.

멤버들도 계속 저 녀석을 신경 쓰느라 박자를 놓치기 일쑤였다.

‘이거 뭐라고 말을 해야겠는데.’

‘좋게 타일러서 먼저 숙소에 가 있으라고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유하 형, 신경 쓰이니까 계속 그러고 있으실 거면 숙소에 가 계시는 편이 낫겠는데요.”

한수현의 진실의 입이 열려 버린 것이다.

맞는 말이긴 하다만, 지나치게 솔직했다고 할 수 있겠다.

“아, 아니, 그, 음! 그러니까!”

최승하는 어떻게든 분위기를 수습하려 애썼으나, 수습이 될 리 없었다.

“……내일부턴, 열심히 할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은 신유하가 옷가지를 챙겨 일어났다.

신유하가 나간 뒤, 한수현이 정적을 깼다.

“형들, 저희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유하 형은 나중에 연습 끼면 되는 거고, 저희는 연습해야죠.”

“음, 그래. 유하는 안무 빠르게 따니까, 오늘 하루는 쉬게 두자.”

류인이 말을 마치며 연습실 스피커를 조작했다.

“틀게.”

* * *

신유하는 그로부터 이틀간 모두의 걱정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룸메이트인 류인은 스스로 거실행을 자처하기까지 했다.

“……분위기가 심각해 보여서, 편하게 있으라고.”

“그렇다고 짐 바리바리 싸서 거실로 나오는 사람이 어딨답니까?!”

참고로 이건 차윤재 목소리다.

답답해서 살 수가 없다며 가슴을 주먹으로 다섯 번 정도 팡팡 친 차윤재가 말을 이었다.

“그럴수록 같이 있어야지요! 보십시오! 문까지 걸어 잠그지 않았습니까!”

“내가 그러라고 했거든.”

“형님이 그러셨단 말입니까?!”

류인이 머쓱하게 턱을 긁었다.

“음. 근데 밥까지 안 먹을 줄은 몰랐지…….”

하루 하고도 반나절 동안 방에 셀프로 감금되어 밥도 안 먹을 땐 정말이지 저러다 쓰러지는 거 아닌가 싶었다.

한 끼만 더 거부하면 끌고 나와서 입에 욱여넣자고 최승하와 이야기까지 끝낸 참이었다.

근데 기가 막히게 끌고 나오기 직전에 본인이 스스로 나오더라.

안 그래도 마른 얼굴이 안쓰러울 정도로 초췌해져 있었다.

방에서 나온 신유하는 곧바로 멤버들에게 사과를 건넸다.

그리고 한수현의 반응은.

“……? 뭐 그런 거 가지고 사과를 하세요. 다음부터는 컨디션 안 좋을 때는 그냥 들어가세요, 아야.”

싱긋…….

나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발로 앉아 있는 한수현의 옆구리를 찔렀다.

연습실에서 한수현이 한 말은 따지자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더 좋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었으니까.

역시 눈치가 빨라서 금세 내 뜻을 알아들은 모양인 한수현이 입을 열었다.

“상처받으셨으면 죄송해요. 다른 뜻은 없었어요.”

“아, 니야……! 안 받았어!”

두 놈 다, 생각보다 쿨하군.

사실 지금까지 봐온 한수현을 평가하자면…….

이 녀석의 말엔, 이면이 없다.

‘고맙다’라고 하면 정말 고마운 것이고.

‘죄송하다’라고 하면 정말 죄송한 것이다.

‘다른 뜻이 없었다’라고 하면 정말 다른 뜻이 없는 거고.

하여튼 신기한 놈이랄까.

나는 한수현에게서 신유하로 시선을 돌렸다.

“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건 확실한데…… 본인이 말할 생각이 없으니, 캐묻는 것도 예의가 아니겠지.

그리고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짐짓 흐린 눈으로 놈의 상태창을 살폈다.

기껏 38%로 낮춰놨던 그림자가…….

[신유하]

체력 C

정신력 D

비주얼 S-

노래 A-

춤 B+

※ 망돌의 그림자 수치 : 45%(*위험 2단계)

45%?

나는 옷 소매로 눈을 벅벅 비볐다.

……다시 보아도 수치는 그대로였다.

으득.

INT엔터의 RUSH.

아마 신유하가 데뷔했을 수도 있는 그룹.

모르긴 몰라도 저 소심한 놈이 잘못을 해봤자 얼마나 했겠는가.

러쉬인지 나발인지, 안 봐도 그 새끼들이 잘못했을 거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동료를 믿는 당신의 따스한 마음에 감동합니다!]

으드득!

생각하면 할수록 이가 갈렸다.

왜 신유하를 건드려서는, 내가 망돌 그림자를 수습하게 만드냔 말이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뒷목을 부여잡습니다!]

그 새끼들, 내가 가만 안 둔다.

* * *

당연하게도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활동은 중지되었다.

하지만 거의 한 달을 꽉 채웠기에, 갑작스러운 활동 중단을 팬들은 별 의심 없이 받아들인 듯했다.

- 반바지를 더 즐겼어야 했는데

- 공백기 짧았으면 좋겠다

- MH 일해라 계속 컨텐츠 만들어내라

- 돌아와 사녹 한 번만 더 갈래 마지막인 줄 알았더라면 연차를 내서라도 갔어야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야~ 얘들아 마지막으로 본 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반갑냐?”

“아, 아앗……. 쌤 놔주세요.”

“그러다가 최승하 목 졸려 죽겠어요.”

“어? 해온아. 지금 나한테 뭐라고 했어?”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마음껏 데리고 계시길…….”

“……배신자!”

경연 프로그램 특성상, 매 라운드 무대를 만들어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댄스 디렉터의 역할은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아주 크다.

그리고 그 역할을 구희승이 맡아주기로 했다.

사실 구희승 정도의 유명한 댄스 디렉터가 이 중요한 경연에서 우리를 맡아준다?

이것만 해도 우리 입장에선 무척이나 감지덕지라고 할 수 있다.

“어디, 안 본 사이에 일레, 아니, 해온이 실력이 어떻게 됐는지 좀 확인해 볼까?”

그래, 이 주둥아리만 빼면 정말 완벽할 텐데…….

“희승 쌤, 저희 10분만, 아니, 5분만 쉬어요.”

천하의 최승하가 먼저 타임을 외쳤다.

평소 같으면 ‘왜요. 뭐가 힘들어요? 계속해요’ 같은 말을 내뱉어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한수현조차 오늘은 힘든지 조용했다.

“그래. 옜다 3분 휴식! 다들 물 마시고 와.”

“3분? 3분? 이거 안 되겠다! 노동청에 신고해야!”

“하하, 우리 귀여운 승하는 이리 와볼까?”

구희승이 방긋 웃으며 손짓하자, 최승하가 새파래진 얼굴로 튀었다.

“죄송해요! 저 물 마시고 올게요!”

요즘 우리는 매일같이 구희승에게 트레이닝을 받고 있었다.

‘죽겠군.’

안 아픈 곳이 없을 정도로 온몸이 쑤신다.

참고로 아직 정확한 경연 주제도 안 나왔다.

지금은 무대를 대비하여 고난이도 테크닉들을 익히고 있었다.

[To The Top]

이 프로그램은, 완전한 퍼포먼스형 무대를 선보인다.

보는 이들이 감탄을 자아낼 만한 무대.

쉽게 설명하자면, 음. 돈과 인력을 박박 갈아 넣어 만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게다가 촬영에 접어들면, 각 무대를 준비할 기간이 2주 남짓으로 아주 촉박하다.

그때 연습실의 문이 열렸다.

드륵-

“아, 역시 오늘도 연습실에 계셨군요. 연락이 왔습니다.”

연습실 내의 모든 시선이 순식간에 집중됐다.

중요한 걸 죄다 잘라먹은 말임에도 모두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어서 말해달라는 눈빛들에 정재진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선공개 영상 분량을 먼저 촬영한다는데요. 아, 선공개 영상은 짤막하게 편집해서 첫 방송 전 유O브에 올린답니다.”

음, 이 정도야 예상했다.

아마 처음은 자기 PR 무대를 펼칠 거다.

시즌 1도 그랬고, 아무래도 이런 스타트가 여러 그룹들의 색을 시청자들에게 각인시키기에 가장 무난하니까.

게다가 각 그룹이 지켜보는 앞에서 기선 제압의 느낌으로 무대를 펼치니 자극적이기까지 하다.

“그럼 저희 무대 준비해 가면 되겠네요.”

내가 입을 열자 정재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도 그것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바로 문의드렸는데, 첫 녹화에선 무대 진행 안 한다고 합니다. 그냥 입장 컷과 멘트 컷만 뽑으려는 것 같더라고요.”

안 한다?

……아예 안 한다고?

그 Nnet이 그 자극적인 요소를 버린다라.

“흠.”

시즌1 때도 유O브에 선공개 영상은 올라왔다.

자기 PR 무대를 짤막하게 편집해 보여주며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느낌의 선공개 영상이었다.

예를 들어 A팀의 무대를 본 B팀의 인터뷰에 삐이이- 소리를 넣어 궁금증을 유발한다든가.

별거 아닌 실수를 극대화해 놓고 C팀에겐 무슨 일이?! 이런 식으로 어그로를 끈다든가 하는 식으로 첫 화 방영 전에 어그로를 끄는 거다.

그래서 당연히 우리도 틈틈이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녹화 때 무대를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대체 무슨 음험한 공작을 꾸리고 있는 거지.’

최승하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혹시 으음, 완전 예능 느낌 나는 거로 채우려는 것 아닐까요?”

이 녀석의 말도 가능성 없는 소리는 아니다.

나는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였다.

뭐, 꼭 시즌 1과 같은 노선을 밟아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뭔가 불길하단 말이지.

……그 Nnet이?

* * *

“……PD님, 정말 그렇게 가도 될까요?”

“서민정 작가님, 민정아. 넌 애가 그렇게 물러 터져서 이 험난한 방송국에서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그러니?”

서민정은 고개를 떨군 채 끄덕였다.

‘……PD가 까라면 까야지 뭐.’

이번 프로그램의 총괄 PD, 남희연.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차별을 받은 그녀였지만, 그런 것에 굴하지 않고 업무의 결과만으로 자신을 증명해 내 저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다.

그뿐이랴, 이 방송국의 핵심 프로그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두 개나 성공시킨 괴물 같은 사람.

이제 PD 중에서는 그녀에 비견될 인물이 없을 정도로 이 방송국에서 주축인 인물이 바로 여기 있는 남희연이다.

그래, 분명 존경할 만한 사람이다.

‘……약간 또라이라는 게 흠이지만.’

“PD님, 그래도 팬덤에서 말이 나오지 않을까요?”

서민정은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반기를 들었다.

라이트온.

미팅 땐 괜히 정들까 봐 일부러 차갑게 대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었다.

스윽-

프로그램 녹화가 지척으로 다가온 탓에 엄청난 다크서클을 매단 남희연 PD가 고개를 들더니 싱긋 웃었다.

‘……그냥 입 닫고 있을걸~’

라이트온이고 나발이고 서민정의 손이 축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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