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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46화 (46/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46화

몇 년을 봐왔지만 아직도 저 사람을 관통하는 듯한 눈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언뜻 뱀 같은 눈빛에 짐짓 몸이 움츠러든 서민정은 시선을 바닥으로 내다 꽂았다.

“민정아, 하하, 아이고, 민정아. 내가 라이트온을 여기에 왜 끼워줬을까~?”

“……화제성?”

“또?”

“……편집점?”

“또?”

“백, 백이 없다?”

“그래, 그거야. 기특하게 화제성도 있는 데다가 편집점을 우리 마음대로 잡아도 될 만큼 만만하지! 난 걔네 영상 보자마자 얘네다~ 싶더라니까?”

“저도 거기까진 동의해요. 솔직히 저희 시즌 1, 팬덤발로 시청률 살린 거지. 솔직히 재미없었잖아요.”

“맞아. 우리 고상하신 윗분들이 편집본 가지고 이거 빼라 저거 넣어라 아주 지랄 염~ 읍, 읍~”

“P, PD님! 여기 바, 바, 방송국이에요! 말 좀 가려 하세요!”

“하하하하! X같은 걸 X같다고 얘기도 못 하니? 아주 돈을 얼마나 받아드셨는지 눈에 훤하더라, 훤해. 우리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지 연예인들 재롱 잔치 프로그램이니?”

……다소 격하긴 하지만 남희연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물론 이미 데뷔한 연예인들끼리의 서바이벌인 만큼, 편집을 악랄하게 하는 건 불가능했다.

연습생들을 모아놓고 진행했던 서바이벌 은 ‘악마의 편집’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선동과 날조가 가능했다.

하지만 은 아니다.

그건 제작팀도 인지를 하고 있었기에 이상한 편집 따위 시도조차 안 했다.

‘그런데 시즌 1은 그 도를 넘어섰었지.’

남희연이 이렇게 이를 가는 것도 이해가 갔다.

악편이랄 것도 없는데, 윗선에서 자꾸 ‘이것 바꿔라!’, ‘저것 바꿔라!’ 오더가 내려오는 탓에 편집팀들은 야근은 기본이오, 스트레스성 탈모가 걱정될 만큼 골머리를 앓았으니까.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출연진들은 모두 1.5군에서 후달려도 2군급.

소속사 입김이 안 닿을 수가 없는 구조다.

아마 그 구조는 이번 시즌도 별반 다를 거 없을 거다.

“그래도 아마 이번엔 재밌을걸? 느낌이 와. 아주 재밌을 거라고.”

그런 구조에 질렸던 남희연 PD는 이번 시즌에 희생양을 넣었다.

만만하고, 또 만만한 라이트온.

‘……이거, 걔네만 불쌍하게 됐군.’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제작진 측이 사전에 공지한 첫 녹화 날이 밝아왔다.

새벽부터 샵에 들러서 꾸미고, 또 꾸미고, 장장 4시간을 스타일링에 쏟아부은 뒤 밴에 올라탔다.

나조차 기운이 빨려 나가 넋이 반쯤 나갔다.

요즘 잠을 통 못 잔 탓에 다크서클이 거무죽죽하게 내려와 있었는데, 지금은 때깔이 곱다 못해 광이 날 지경이었다.

샵 스태프들이 출연 소식을 전해 듣더니 눈에 불을 켜고 메이크업해 준 덕이겠지.

이 그룹의 무기는 첫 번째도 얼굴.

두 번째도 얼굴.

마지막으로도 얼굴이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질색합니다!]

인지도와 팬덤 규모, 뒤를 받쳐주는 소속사의 파워까지 모든 것에서 생선 뼈 발리듯이 발리는 우리는 내세울 게 얼굴뿐이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슬픈 사연에 눈가를 닦습니다!]

음악 방송을 돌면서 다른 아이돌들의 상태창으로 통계를 낸 결과.

라이트온의 스탯은 전체적으로 뛰어나다.

그중 가장 뛰어난 건 비주얼 스탯이지만, 실력에서도 절대 처지지 않는다.

‘오히려 높지.’

춤이나 노래 등등의 스탯도 상위권에 속하더라.

‘명훈이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어떻게 이런 놈들만 쏙쏙 골라서 계약서를 찍게 했는지 의문만 커졌다.

출발하기 무섭게 김민성이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얘들아~ 긴장돼? 긴장되겠지, 이거 내가 더 떨린다. 어떡하냐?”

쯧.

김민성에게 눈치가 있다면 지금 입을 다무는 게 맞다.

요즘 우리가 평균 4시간도 자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

“해온아. 리더로서 어때, 떨리지?”

착한 놈들이 말대답을 해주니까, 나한테까지 대답을 바라는 눈치였다.

나는 고민 없이 눈꺼풀을 내렸다.

이러려고 이어폰 낀 거지.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노래도 안 틀었으면서 자연스럽다고 감탄사를 내뱉습니다!]

내게서 말대답을 듣지 못한 매니저가 민망함을 감추려는 듯 계속해서 떠들었다.

“나같이 꼼꼼한 매니저가 어디 있냐? 너희 청심환도 챙기고!”

오늘은 무슨 무대를 하는 것도 아닌지라, 딱히 긴장되거나 하진 않는다.

하지만 S+ 정신력을 가진 내 기준으로 떨리지 않는다는 거지, 멤버들은 차에 타자마자 청심환 하나씩 먹었다.

눈을 돌려 뒤쪽을 바라보니 다들 안색이 창백하다 못해 푸르죽죽했다.

나는 시선을 거두고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나도 한숨 자볼까.’

사실 아직까지도 찝찝한 기분이 가시질 않는다.

분명 뭐가 있을 것 같은데.

이해성의 빅데이터상으로 Nnet이 얌전하게 참가자들 장기 자랑이나 시킬 것 같진 않단 말이지.

나도 종종 누나와 함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곤 했는데, 어떻게든 자극적인 소재를 뽑아내려 안달 내는 곳이 거기다.

물론 소속사 백이 튼튼한 다른 그룹은 이런 걱정 안 하겠지만.

우리는 MH라고.

무려 명훈이의 아이들.

MH는 배우들의 소속사로는 알아주지만, 가수 쪽은 영 답이 없다.

애초에 소속 가수가 라이트온뿐이기도 하고.

그리고 Nnet은 배우와는 연관이 없는 곳이다.

뭐, 끽해야 연말 시상식 때 상 주러 나오는 사람이 배우인 정도?

그러니 자극적인 편집점을 잡는다면 분명 타깃은 우리다.

아니, 우리일 수밖에 없다.

‘내가 제작진이었어도 라이트온을 고를 것 같거든.’

실컷 건드려도 리스크 따윈 없으니까.

“……들아! 다 왔다.”

매니저의 목소리에 눈이 떠졌다.

그새 잠이라도 든 모양.

피곤함에 절여진 눈이 뻑뻑했다.

‘먹을까.’

나는 심각한 얼굴로 아이템을 바라봤다.

[힐링 포션(B)]

체내에 쌓인 피로감이 사라집니다!

한 단계 올라가는 체력은 덤!

힐링 포션과 함께 힐링을 즐겨보세요!

▲ 7일 지속 후 자동 소멸

저번에 받아낸 거다.

그 정신 나간 사랑해 미션 말이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상처받은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메시지를 단칼에 무시한 나는 설명을 살폈다.

“음.”

지금도 죽을 것 같이 피곤하지만, 역시 이런 건 아껴두는 게 좋겠지.

“다 왔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 너희 먼저 들어가 있을래?”

딱 봐도 담배나 한 대 태우고 들어오려는 심산인가 보군.

멤버들을 챙겨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아, 라이트온 왔네요?”

“아, 저번에 뵀던-”

류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민정이 빠르게 대답했다.

“예, 미팅 때 뵀죠? 서민정입니다.”

그러고는 대기실까지 안내해 주겠다며 우리를 이끌었다.

척 봐도 가장 외진 곳에 위치한, 라이트온의 대기실.

“오늘 촬영은 들으셨죠? 무대 없이 간단하게 토크 느낌으로 갈 거고요.”

서민정은 대기실 문에 몸을 기댄 채 비스듬히 서더니, 전달 사항을 속사포로 늘어놓기 시작했다.

멤버들은 긴장감이 역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론 나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청하는 듯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아무렴, 제작진한테 밉보이면 안 되지.’

“다들 멘트 많이 쳐주셔야 하는 거 알죠? 방송 경력이 많이 없으시니 걱정되네. 오디오 비는 일 없게 최대한 많이 떠들고, 리액션은 크게, 할 수 있는 한 크게! 재밌을 땐 편히 웃고, 응? 다들 프로니까, 알죠?”

쯧, 웃기는 소리.

슬픈 표정, 안타까운 표정, 기쁜 표정 지으면 편집으로 이상하게 써먹을 거 다 안다.

예를 들어 다른 그룹이 실수를 할 때 라이트온 멤버의 웃는 얼굴을 집어넣는 식으로 말이다.

“녹화는 한 시간 뒤쯤부터 시작할 거고요. 마이크나 음향은 기다리시면 스태프가 와서 체크할 거니까, 음. 그냥 여기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이 사람, 계속 중요한 걸 안 알려준다.

나는 서민정을 바라보며 오른팔을 슬며시 들어 올렸다.

“무슨 질문 있어요? 그래, 물어볼 거 있으면 다들 지금 물어봐요. 녹화 직전엔 바쁘니까.”

나는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희 입장 순서는 어떻게 되나요?”

* * *

“……!!”

성해온의 맞은편에 선 서민정은 순간적으로 몸을 떨었다.

순간적으로 저 웃는 얼굴에 남희연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아, 아하. 입장 순서 말씀이죠?”

이런, 순간적으로 동요해버렸다.

서민정은 목을 가다듬었다.

이 눈빛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하기엔 양심이 조금, 아니, 많이 저렸다.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입장 순서는 라이트온이, 흠흠. ……마지막입니다. 저는 준비할 게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

말을 마친 서민정은 도망치듯 대기실 밖으로 나섰다.

“X발, 미안해 죽겠네.”

중얼거리듯 말을 읊조린 서민정이 머리칼을 탈탈 털며 길고 긴 복도를 걸었다.

* * *

그 시각, 나는 분노에 휩싸였다.

이 극악무도한 방송국 놈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출연진 중에서 가장 인지도 없는 망돌인 라이트온이 가장 마지막 순서?

“하하.”

나 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 소리가 터져 나와 버렸다.

‘마지막 등장이 왜? 그게 뭐가 나빠?’ 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이 바닥 돌아가는 판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소리 못 하겠지만 말이다.

……상상해 봐라.

A그룹! 와아아!

B그룹! 와아아아!

C그룹! 와아아아아!

D그룹! 와아아아아아!

E그룹! 와아아아아아아아!

대중들에게 확실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고, 인기까지 있는 그룹들이 연이어 등장한 뒤엔 편집으로 장난을 칠 거다.

아마 마지막 그룹이 앉게 될, 비어 있는 좌석을 비추고 긴장한 얼굴의 출연진들을 비춰주겠지…….

지끈!

상상만 해도 끔찍한 광경에 편두통이 몰려왔다.

아마 동시에 긴장감 넘치는 효과음까지 덧붙일 거다. 정말 잔인한 놈들이 아닐 수 없다.

자, 이제 시청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앞선 다섯 그룹이 모두 유명한 그룹이었다.

그럼 마지막, 대미를 장식할 그룹은 당연히 가장 유명한 놈들이 나올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음악 방송, 연말 시상식, 하다못해 예능에서도 마지막에 등장하는 건 가장 유명한 놈들이 아니던가?

이건 이 바닥의 암묵적인 룰이다.

근데 거기서 짜잔, 하고 라이트온이 등장한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두 눈을 질끈 감습니다!]

아마 스튜디오 내에 있는 그룹들도 ‘오! 오…….’ 이딴 리액션이나 눈치껏 던질 거라 감히 예상한다.

다른 그룹들도 우리가 나오는 걸 알고 있겠지만, 분명 표정 관리 못 하는 놈 있을 거다.

시청자들도 대다수는 어이없어할 게 틀림없다.

일명 ‘PD픽’이라며 조롱을 듣는 건 기본 옵션일 것이다.

거기에 한술 더 뜨자면, 혹시 스폰 문 거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올 확률도 있다.

‘애초에 라이트온이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거든.’

근데 첫 방송에서부터 ‘편애’의 느낌이 난다?

하하.

정말 재밌네.

재밌어.

나를 포함한 멤버들도 이 소식에 넋이 나간 상태다.

이놈들도 똑똑하니 아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눈치챘겠지.

“저희 큰일 난 겁니까?”

안색이 희게 질린 차윤재의 중얼거림에 한수현이 덤덤하게 답했다.

“당연하죠. 벌써 욕먹을 게 눈에 훤하네요. 솔직히 이럴 줄은 알았지만? 저흰 정말 쓰다 버릴 헌신짝쯤의 취급을 받고 있나 봅니다.”

분위기가 회생 불가 수준으로 우중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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