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49화
“너희는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국내 3대 기획사 중 하나인 BK Entertainment의 수장, 백준영이 얼핏 들으면 소름이 끼칠 만큼 낮은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회사에 발생한 손해가 얼마나 큰지.”
나른하게 앉아 있는 그와 달리 잔뜩 굳은 채 일렬로 서 있는 트웰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겁다 못해 언뜻 공포스러운 분위기에서 리더인 도진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비록 남은 멤버들은 마약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지만, 엇나가는 멤버들을 바로잡지 못한 것도 본인들의 잘못이기에.
아니, 따지자면 리더인 내 책임이겠지.
“습, 후우-”
대표는 전자 담배의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무거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곧 있을 녹화에서 곡 하나씩 적으라고 할 거다.”
도진은 고개를 들고 말을 꺼냈다.
“그럼 저희 제일 대표곡인-!”
“멍청한 소리. 그건 나중 무대에 써야 하니 킵해두고 적당한 곡 적어다 내.”
의미심장한 말에 그게 무슨 의미냐 묻고 싶어도, 젖은 솜처럼 무거운 분위기에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또 한 차례 연기를 내뿜은 대표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친해지길 바래>라고 했나, 쯧. 별 시답잖기는. 그걸 할 거다. 거기서 라이트온을 골라.”
“예? 라, 라이트온이요?”
백준영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내가 들어보니 그 그룹 이번에 발매한 곡이 아주 괜찮아. 너희 색에도 딱이다. 게다가 그놈들은 내세울 만한 곡이 그것밖에 없으니 재고 따질 것도 없이 그걸 써 내겠지.”
“저 대표님, 그게 무슨…….”
도진의 질문은 끝을 맺지 못했다.
“그 곡, 너네가 하게 될 테니까. 잔말 말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해. 알아들었으면 피곤하니 나가보고.”
그제야 모든 게 이해됐다.
대표님이 뒤에서 손을 쓰신 거구나.
자신들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틀림없다.
불공정한 뒷거래가 오갔다는 것이 못 견디게 수치스러웠으나, 그 감정이 절박함으로 바뀌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번 기회를 어떻게든 잘 이용해서 이미지를 회복하고, 대표님의 신임까지 얻어내야 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 * *
여섯 그룹의 매칭이 모두 끝나자 곧바로 진행자가 마이크를 들었다.
“자아! 이렇게 <친해지길 바래>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출연진들에게서 커다란 호응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박수 소리가 멎어 들기 무섭게 진행자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번 시즌에는 전과 다른 색다름을 부여합니다!”
진행자의 알 수 없는 멘트에 모든 이들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깃들기 시작했다.
“<친해지길 바래>로 모든 팀이 짝을 이루는 데에 성공했는데요!”
긴장이 감도는 스튜디오 속에서 진행자가 마이크를 고쳐 잡고 목소리를 키웠다.
“<친해지길 바래>의 첫 번째 프로젝트!”
주변에서 ‘프로젝트?’, ‘무슨 프로젝트?’와 같은 웅성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게, 시즌 1에서는 매칭된 팀끼리 한 번 노닥거리는 걸 보여준 걸 제외하고는 뭐가 없었거든.
그 순간, 씨익 웃은 진행자가 공간이 가득 찰 만큼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곡 트레이드!”
사아아아-
출연진들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새파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라이트온 멤버들의 얼굴도 백짓장처럼 희게 질렸다.
쓸 만한 곡이라고는 뿐인데, 멤버들은 내가 당연히 그 곡을 적어 냈다고 생각할 테니까.
자고로 이런 프로그램에서 한번 공연한 곡은 두 번 사용하지 못한다.
이후에 있을 라운드에서 본인들의 곡으로 공연을 펼치라고 하면 꼼짝없이 X같은 으라차차를 해야 한다는 걸 멤버들이 모를 리 없었다.
“그럼 이제, 각 팀이 적어둔 이 노래를! 공개하겠습니다!”
MC를 맡은 하진이 손에 든 종이를 하나씩 펼치기 시작했다.
“스피디! !”
“블랙 보이즈! <중독>!”
“트웰브! !”
“러쉬! <숨>!”
“올타임! !”
트웰브를 제외하면 다들 그룹의 대표곡으로 꼽힐 만한 곡을 적어냈다.
그렇다고 트웰브가 이상한 곡을 냈다는 건 아니다. 도 흔치 않은 분위기로 꽤 히트 쳤던 곡이니까.
“마지막으로, 라이트온!”
웃는 얼굴로 종이를 펴던 진행자의 얼굴이 일순간 일그러졌다.
이 바닥에서 십 년을 넘게 구른 인간답게 금방 그 당혹스러움은 지워졌지만.
그리고 우리의 차례가 가까워질 때마다 트웰브 멤버들의 얼굴이 굳어갔다.
아마 긴장되겠지, 빌어먹을 놈들.
아직까지도 나만 눈치챈 것 같지만 말이다.
종이 안에 써진 글자를 보고 입을 달싹거리던 진행자가 말을 이었다.
“……!”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의 선견지명에 감탄사를 내뱉으며 300G를 후원합니다!]
진행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스튜디오 내에 있는 모든 이가 얼빠진 얼굴로 입을 닫았다.
물론 가장 넋 나간 얼굴의 주인공은 라이트온 멤버들이었다.
사아아아-
이 거대한 세트장에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속에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트웰브의 표정이 안 좋아진 수준이 아니라 거의 썩어들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저 새끼들, 뒷돈 찔러 넣었다.
아까부터 묘하게 작위적인 행동이 영 미심쩍었는데, 트레이드 과정을 사전에 미리 알고 있었다면 모든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어지간히 이미지 개선이 급했나 보지?
그렇다고 우리에게는 단 하나뿐인 괜찮은 곡, 아니, 좋은 곡을 훔쳐 가려 하다니.
다른 그룹은 곡 하나 뺏긴대도 좋은 곡들이 차고 넘친다지만, 라이트온은 아니라는 걸 알면서.
도리 운운하는 게 웃긴 바닥이지만, 괘씸한 건 어쩔 수 없다.
옆에서 최승하는 눈을 반짝이며 몸을 들썩거리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캐묻고 싶은 얼굴이었다.
카메라를 피해 최승하의 등을 찌름과 동시에 정색을 유지했다.
‘여기서 삐끗했다가는, 어떤 악편을 맞을지 모르는 일이라고.’
다행히 눈치 빠른 놈이라 금세 얼굴을 바꿨다.
표면적으로 트웰브는 기꺼이 망돌과 친해지려는 선의를 내비쳤다가 으라차차라는 엿을 먹어버린 걸로 나올 테니까.
우리도 ‘……이런, 젠장! 예상하지 못했는데!’와 같은 반응을 내비쳐야 한다.
한껏 당황스러운 얼굴을 걸치고 일부러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 클락션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쪽도 모종의 뒷거래가 있었을까 조금 의심했는데, 정말 아무것도 몰랐나 보군.’
뒤에서 멤버들이 클락션에게 엄지 척을 날리고 얼싸안고 아주 난리브루스였다.
심지어 클락션은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손가락 하트를, 하아…….
정말 적응 안 되는 인간이다.
“자, 이제 이번 프로그램의 점수 합산 방식을 공개하겠습니다!”
진행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광판이 화려한 타이포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아, 예상은 했지만 우리 정말 승산 없겠군.
* * *
그렇게 첫 녹화가 끝났다.
녹화 전 대기실에서 봤던 선한 얼굴은 집어치우기로 했는지, 트웰브가 우릴 매섭게 노려보고 갔지만.
……뭐, 알 반가?
그러게 누가 뒷돈 찔러 넣으래.
이건 업보다.
그리고 방송국을 나와 차에 타자마자 질문 폭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시끄러워.”
평소엔 이쯤 하면 성해온의 서슬 퍼런 기세에 나가떨어지는데, 오늘은 어림도 없었다.
“형! 정체가! 정체가! 대체! 뭐예요!”
최승하가 내 어깨를 쥐고 펄럭펄럭 흔들었다.
“……미리 알고 계셨어요?”
한수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의심이 어느 정도 확신으로 바뀐 건 제작진으로부터 곡을 적어 내라는 쪽지를 받았을 때부터지만, 그때도 100% 확신은 아니었다.
“만약 트레이드가 아니었다면 어, 어쩌시려고 그랬답니까? 상의도 없이!”
너는 그 움찔거리는 입꼬리부터 정돈하고 말할 필요가 있다.
입으로는 나무라지만, 속으론 좋은지 차윤재가 이내 얼굴에 웃음기를 머금더니 고개를 휙 돌렸다.
“내가 전부터 말했잖아. 해온 형은 뭔가 비밀이 있다고. 정체가 내가 보기엔…….”
최승하가 흐음, 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
“……Nnet의 아들?”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류인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동조했다.
“하하, 그럴 가능성도 있겠는데.”
“그리고 오늘 그거 방송하는 날인 거 알죠! 연기의 신!”
아 그게 오늘이었나.
“형 연기하는 부분도 나오겠죠?”
신난 최승하가 뒷좌석에서 계속 종알거렸다.
신유하, 한 놈만 빼고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녹화 내내 유심히 살핀 결과 저 녀석이 데뷔할 뻔한 그룹, 러쉬와의 관계는 좋지 못한 게 맞다.
RUSH, 이번 프로그램 출연진들 중에 가장 큰 팬덤을 보유한 그룹.
우리보다 몇 개월 일찍 데뷔한 녀석들이다.
국내 3대 소속사, VX, BK, INT.
그중 INT에서 내놓은 남성 아이돌 그룹이 RUSH다.
대형 소속사답게 빵빵한 자본력과 푸쉬로 순식간에 1.5군급으로 올라선 놈들.
하지만 아까 상태창을 둘러봤을 때, 신유하보다 더 나은 놈이 없었다.
‘……흠.’
실력으로 방출된 게 아니라면, 필히 무언가 사정이 있을 터.
맘 같아서는 대놓고 물어보고 싶지만, 신유하 성격에 그렇게 굴면 더 움츠러들게 뻔했다.
“얘들아, 오늘은 푸욱! 쉬어! 오늘 아주 수고했어!”
매니저가 숙소 앞에 차를 멈춰 세우며 호탕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트레이드한 곡, 을 사용한 무대를 준비해야 하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휴식 시간을 갖기로 했다.
쉴 땐 쉬어줘야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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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되겠지.”
누가 봐도 <연기의 신> 세트장인 배경에서 멤버들과 찍은 사진 4장과 함께 업로드 버튼을 눌렀다.
‘이제 씻고 누워야지.’
이게 대체 얼마 만의 휴식인지.
녹화가 끝나고 돌아오니 거의 저녁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이 시간에 숙소에 들어온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요즘은 계속 트레이닝, 또 트레이닝의 반복이었으니까.
몸이 남아나질 않았던 활동기가 끝나자마자 프로그램에 섭외된 탓에 죽을 맛이다.
회사에서도 의 화제성을 익히 알고 있으니, 최대한 지원해 주는 분위기였다.
안무 트레이너로 구희승을 붙여주질 않나, 저번 주부턴 보컬 트레이닝도 전문적으로 받고 있었다.
“형님, 저 다 씻었습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방문을 연 차윤재가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며 말했다.
30평대의 숙소, 샤워가 가능한 욕실은 2개뿐이었고 6명이 차례대로 씻어야 했다.
나 역시 다음 멤버를 위해 빠르게 씻고 나온 뒤 침대에 걸터앉아 스마트폰을 들었다.
예상대로 팬들은 해당 세트장이 <연기의 신> 세트장임을 빠르게 눈치챈 듯하다.
- 얼굴 레전드 극락
- 4장 가득 채워 올리는 아이돌 예의 있다
- 요즘 하는 배우 프로그램 거기 아님?
└ 맞는 것 같은데?
- (사진) (사진) 연기의 신 세트장 맞음! KBC 오후 8시 30분!
- ㅇㅇ절대로 본방사수 해줄게
└ 근데 여기 패널 분량 거의 먼지잖아 ㅋ
└ ㅅㅂ당연이 괜찬지 1분만 나와도 본다 (저 안 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