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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50화 (50/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50화

<연기의 신> 패널 분량이 먼지 수준인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가끔 분량을 준다 해도 아주 짤막하게 주기 때문에 나 역시 별생각이 없었다.

임현교 배우와 함께 연기를 하긴 했지만, 편집될 가능성이 절반은 넘는다고 생각 중이다.

“…….”

그나저나, 이거 심각하게 재미가 없다.

이미 다 봤던 참가자들인 데다가 우리 분량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아예 편집 과정에서 잘렸을지도.

이걸 보고 있을 바엔 그냥 잠이나 자 두는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

방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최승하가 내 옷자락을 잡았다.

“와! 형, 이제 형 나오는 것 같은데요!”

진행자의 물음에 내가 번쩍 손을 드는 장면이 나왔다.

저 때를 생각하니 매니저의 머리를 프라이팬으로 가격하고 싶은 충동이 일기 시작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을 부추기며 자신은 골드가 많다고 어필합니다!]

헛소리.

……가 아닌가?

“형 지금 무슨 생각 해요? 얼굴이 무서운데?”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생각을 되뇌이며 화면을 보던 내 동공이 커지기 시작했다.

아, 설마.

……이걸 쓴다고?

순간적으로 피가 차게 식는 기분이었다.

[ 성해온) 아, 아니요. 저, 저 지금 지, 진짜 기, 긴장되는, 덷, 데요. ]

특성 때문에 정신 나간 놈처럼 말을 더듬는 게 그대로 방송에 나오기 시작했다.

‘……편집될 줄 알았는데.’

- 제발 나 두 눈 질끈 감음 tlqkf 왜 라이트온에게 이런 시련을

- 도저히 못 보겠어서 채널 돌림

……예상대로 팬들의 반응이 강렬했다.

아이돌의 연기란, 높은 확률로 흑역사 생성의 다이렉트 루트이기에 팬들도 잔뜩 긴장하고 있을 거다.

아직까지 밀러스로 추정되는 익명의 계정이 라이트온을 패고 있으니, 여기서 까딱 잘못했다가는…….

흑역사가 담긴 영상 클립과 함께 써방은커녕, 오히려 해시태그에 라이트온과 관련된 모든 단어를 집어넣어 신명 나게 조롱할 미래가 불 보듯 뻔했다.

둥, 둥, 둥-

이윽고 큰 북을 울리는 소리와 같은 긴장감 넘치는 BGM이 깔리기 시작하더니, 조명이 모두 암전됐다.

어둑했던 세트장에는 어느새 둘을 집중적으로 포커싱하는 하얀 조명이 내려와 있었다.

여전히 이런 내 모습을 보는 건 영 어색해서 SNS를 켜보니 팬들도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 엥? 에? 엥? 표정 미쳤는데 해온이

- 당장 연기의 신 트세요 연기한다!!! ㅅㅂ!!!

- 긴급 긴급 긴급 KBC KBC

- 떨다가 연기 시작되니까 표정 싹 변하는 거 ㅁㅊ 존나 치인다

- 얘들아 어때 나 아직 오글거려서 못 트는 중

화면 속 대사를 치자, 바로 옆에서 호들갑이 들려왔다.

“어떡해! 형! 다시 봐도 소름이, 천만 배우, 읍읍-”

놀리는 거 다 안다.

손을 들어 최승하의 입을 대충 틀어막은 나는 화면에 집중했다.

음, 임현교 배우의 다시 봐도 대단하다.

일순간에 상황에 몰입하고, 마치 정말 왕이 된 듯이 연기하는 걸 넘어서서 정말 왕이 있다면 저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키는 연기다.

하긴, 저 정도니까 정상 자리를 찍은 거겠지.

제대로 된 연기가 시작되자 팬들의 반응도 거세졌다.

- 성해온 천재임? 말이 안 나옴 잠깐만 말도 안 돼

- 다른 애들도 다 놀라서 눈 동그래짐 와 ㅋㅋㅋㅋㅋㅋ 미친 개뽕찬다

- 아니 왜 이렇게 연기 잘 해?!?!?

- 진짜 이 정도면 미친 배우급아닌가? 아이돌 수준이 아닌데요

- 목소리 완급 조절 미침;

- 이게 현장에서 바로 애드립으로 치는 대사면 진짜 천재감 아님?

└ 사전에 대본 줬겠짘ㅋㅋㅋㅋㅋㅋ

……대본이라.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정말.

정말로 좋았을 텐데…….

그럼 쓸데없는 특성을 구매하지도 않았을 거고, 난데없이 툭툭 발동되는 정신 나간 특성 때문에 U라이브에서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을 거다.

빌어먹을 특성, 지금은 자동적으로 소멸되었지만 밀리어스 팬덤과 라이트온 팬덤의 기 싸움은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이란 말이다.

“와아아, 또 팔에 소름 돋았어. 형 눈빛 진짜 대박이에요. 혹시 대배우의 아들?”

최승하가 내 옆에서 소매를 걷더니 팔뚝을 내 눈앞에서 붕붕 흔들었다.

‘……이번에는 대배우의 아들이냐.’

- 울 아기 블루베리 천사는 연기 천재입니다

- 감탄밖에 안 나온다 목소리 덜덜 떨렸다가 갑자기 진지해지는 거 와 ㅅㅂ

- 곧 뭐 찍는 거 아님? 제발 웹드만은 안 돼

클라이맥스에 다다를수록, <연기의 신>에 참가한 일반인 배우 지망생들의 놀란 얼굴이 오버랩되며 더욱더 자극적인 편집이 이어졌다.

그럴수록 내 얼굴도 굳어갔다.

실시간으로 X됐다는 느낌이 밀려들어 왔다.

……무슨 배역이라도 들어오면 어떡하지.

그건 심각하게 곤란하다.

심지어 화면 속 나는 이제 눈물까지 흘려대기 시작했다.

당장 과거로 돌아가서 내 멱살을 잡고 적당히 하라고 고함이라도 치고 싶었다.

- 미친 미친 미친 미친 미친

- 와 씹 소름돋음 진짜 우는 거야? 즉석 연긴데? 감정선 미쳤어

- 성해온 연기 드르륵 탁…… 드르륵 탁……

내 눈물이 흐르기 무섭게 심사 위원들의 놀란 얼굴들이 이어졌다.

‘망했다’라는 생각 외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내 표정이 어지간히 썩어들어 갔는지 차윤재가 속닥였다.

“형님, 혹시 또 빈혈이……? 아,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내가 고개를 가로젓자, 녀석이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작게 말을 이었다.

“아! 그럼 그냥 쑥스러우셨나 봅니다!”

……그거 아니다.

- 울어? 울어? 아니, 울어? 울어? 내 마음이 찢어져 우는 얼굴 미쳤나 봐 당장 박물관에 전시해야함 올해의 연기상 해온이 주자 제가 진짜 얼굴에 감탄하는 게 아니라 연기가 진짜 미쳤… [더보기]

└ 여기 오타쿠 새끼 숨 못 쉬어요 119 119

- 이게 뭐야 잠깐만 나 연기 천재를 봤어요

- 아니 ㅅㅂ 이런 거 볼 때마다 진짜 난 미치도록 궁금하다 김명훈은 전생에 어떤 사주였고 이번 생엔 어떤 팔자일까? 어떻게 주제에 이런 애들을 모았을까 ㅅㅂ

어느새 클라이맥스에 다다른 극, 마지막 대사를 입에 담고 있었다.

- 전하!!!! 저 얼굴이 거짓을 논하는 얼굴입니까??!! 얼굴을 보세요!!! 진실을 고하고 있습니다!!

- 왕 멘탈 ㅆㅅㅌㅊ 아님? 나였으면 냅다 어어~ 그래 내가 착각했구나 집에 들어가 봐라ㅋ! 할 듯 어떻게 저 얼굴을 보고 안 믿음?

- 얼굴이 신빙성 있고 개연성 있고 다 하는데

- 어떻게 너무 처연하고 멋있고 끝내주고 개 멋있는 후기 말하고 싶은데 내 어휘력의 한계는 ‘와! 짱이다!’가 끝임… 이런 내가 통탄스럽다…

└ 미친놈아 ㅅㅂㅋㅋㅋㅋㅋㅋ

마지막 대사가 끝나자, 카메라가 정적이 흐르는 무대를 담았다.

탁!

조명이 환히 켜짐과 동시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 성해온 내가 낳을걸

- 왜 내가 뿌듯한 거임? 연기는 해온이가 했는데?

- 왜 쳐다보세요? 제가 얼굴 맛집, 팬사랑 맛집, 실력 맛집, 연기 맛집 라이트온 팬 같나요?

- 진짜 탈아이돌 실력 아님? 맨날 눈 찌르고 싶은 연기만 보다가 이거 보니까 그냥 어이없음

그 뒤로는 얼빠진 얼굴의 참가자들, 그리고 패널석을 천천히 잡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는 심사 위원석.

이 업계에선 난다 긴다 하는 심사 위원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특히 임현교 배우는 몹시 흥미로운 얼굴로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라이트온 멤버들은.

“푸흡, 하, 하하하하! 형님 얼굴이-”

그도 그럴 게 카메라에 잡힌 최승하가 한껏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에.

“아~ 아니~ 그럼 저기서 안 놀라고 배기냐고? 그러는 너도 입 벌리고 있으면서?”

최승하의 반격에 차윤재가 중얼거렸다.

“……입은! 길어지는 녹화가 지, 지루해서 벌어진 겁니다!”

미끼를 물어버렸군.

최승하가 또 한 건 잡았다는 듯이 내 옆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형, 들었어요? 윤재가 형 연기 지루했다는데요.”

동참해 줄까.

나는 데친 시금치같은 낯짝을 하고 고개를 떨궜다.

“……그렇구나.”

그러자 녀석이 몹시도 안절부절못하며 말을 이었다.

“혀, 형님의 연기가 지루한 게 아니라! 노, 녹화가 지루했던 겁니다!”

“그럼 내 연기는?”

“…….”

입을 꾹 닫아버린 놈을 보며 나는 다시금 고개를 떨궜다.

“……역시 지루했구나.”

“…….”

역시 이놈과는 아직 어색하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지금까지 놀려먹었으면서 무슨 소리냐고 고개를 갸웃합니다!]

사실 라이트온 멤버들 중에서 내게 친한 척을 하는 건 최승하뿐, 나머지는 전부 비즈니스적 느낌이 강하다.

음. 사람 자체는 싫지만 리더니까 말 들어준다, 정도?

요새 차윤재도 내게 곧잘 형님이라 부르며 다가오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어려워하는 게 눈에 보인다.

사실 최승하도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지.

그때 차윤재가 벌떡 일어났다.

“……혀, 형님 정말 머, 멋있었습니다! 지, 진심으로……!”

화르륵!

귀끝까지 붉어진 녀석이 곧장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멋있는 나랑 이거 더 봐야지, 어딜 들어가.”

……쾅!

거세게 닫히는 문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저 녀석, 반응이 재밌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그렇게 구니 친해질 수가 없는 거라며 손가락질을 합니다!]

“근데 형 윤재 말대로 진짜 멋있었어요~ 하핫, 반할 뻔했지 뭐야!”

“나도 놀랐어. 해온아, 넌 당장 연기해도 되겠던데.”

류인의 말에, 신유하가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맞아요……!”

갑작스레 형성된 분위기에 내가 눈을 껌뻑이고 있을 무렵, 한수현이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냥 잘하는 수준이 아니던데요. 연기를 병행해도 문제없겠어요.”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이 훈훈한 동료애를 좋아합니다.]

“…….”

미안하지만, 나는 친구가 없었다.

이 미묘하게 따뜻해진 분위기 속에서 뭐라 답을 해야 좋을지, 영 모르겠다는 뜻이다.

“연기는 할 생각 없어. 그룹 활동이 더 중요하니까.”

별생각 없이 꺼낸 말에, 멤버들의 눈이 커다래지기 시작했다.

“……!”

설마, 감동이라도 받은 건가.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황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 것 같은 상황에 감탄합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흐뭇한 얼굴로 상황을 지켜봅니다!]

“형! 설마, 지금…….”

최승하가 손으로 입을 텁, 막았다.

“개인 활동보다 우리가 더 소중하다는 말을 돌려 한 거에요?!”

“아니니까 얼굴 치워.”

내 대답에 아랑곳하지 않은 최승하가 내 어깨를 붙잡고 탈탈 털기 시작했다.

“으하하, 부끄러워하기는!”

싱긋…….

“입.”

“넵! 미안합니다!”

나는 대충 상황을 정리한 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

미안하지만 이 몽글몽글한 분위기는 취향이 아니라서 말이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의 사회성을 의심하며 대노합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살폈다.

……그리고 내 생각보다 이 프로그램의 파급력이 대단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연기 서바이벌 프로그램 나와서 씹어 먹은 패널]

(영상)

오늘자 연기의 신인데 진짜 개미쳤더라

가끔 연예인들 연기 시킬때마다 말잇못이었는데 진짜 놀라움 그 자체

찾아보니까 소속사가 MH(서유현있는 소속사)더라

전문적으로 액팅 트레이닝 받았나?

배우 소속사라 그런지 다른 애들 얼굴도 다 배우급으로 잘생겼더라

나만 놀랐으면 ㅈㅅ

- 나도 ㅈㄴ놀랐음 아이돌인 게 안 믿김

- 서유현 있는 곳임? 아 거기 알겠다 걔네가 아이돌도 하는구나

└ 아이돌은 근데 개망함

- 와 팬 아닌데 영상 5번 넘게 봄 호흡이랑 감정선, 표정까지 걍 미쳤다는 소리밖에 안 나오는데?

다음 날, 커뮤니티 등지에 올라온 여러 글을 보며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X됐다.’

이렇게 반응이 좋으면 곤란하다.

그냥 큰 반응 없이 지나가는 게 베스튼데.

벌써 명훈이가 헤벌쭉해져서 ‘역시 내 선구안은 틀리지 않았다’며 광대를 씰룩거리는 게 눈에 선했다.

어제 방송이 끝나자마자 다급하게 정재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라도 대표님이 연기 프로그램 관련으로 무언가 운을 떼면 아이돌 활동에 집중하고 싶다는 내 의견을 전해달라는 내용을 담아서.

설상가상, 주 연령층이 다양한 <연기의 신> 프로그램 특성상 킬링 타임용 기삿거리가 쏟아지고 있었다.

내 이런 마음을 알 리 없는 팬들은 합심해서 기사에 하트와…….

- 어린 총각이 연기 실력이 엄청납디다.

- 한참을 정~~신 없이 봤네여~~ ^^* 승승장구~ 하시길… ^^*

- 언젠가.재밌는.드라마에.나오길.기대.하고.있겠읍니다.

스쳐 지나가면 정말 중년층이 단 것 같은 댓글.

‘……팬분들이 달아주셨군.’

질끈!

답도 없는 암담한 현실에 나는 눈을 거세게 감았다.

이러다가 연기 쪽으로 섭외라도 들어온다면, 남은 건 멸망 루트뿐이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나로서는 X된 거지만, 프로그램 출연 전에 인지도가 조금이라도 높아졌다는 게 중요하겠지.

나는 이 상황을 최대한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경연 준비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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