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51화 (51/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51화

“하하하, 재밌단 말이지? 재밌어, 아주 재밌어.”

저 인간 또 저러네.

의 작가, 서민정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PD님은 지금 웃음이 나오세요? 이 상황에?”

“성해온 이 새끼, 내가 보기엔 난놈이야. 아니, 거기서 눈치를 챈 건가?”

“그럴 리가 없잖아요. 사전에 미리 말한 건…….”

“그래. 사전에 그걸 알고 있던 건 트웰브뿐인데, 큭큭. 나는 웃음 참느라 힘들었잖니.”

“지금 위에서 압박이 장난 아닌데 뭐가 그렇게 즐거우세요.”

서민정이 우는 소리를 내자 남희연이 의자를 빙글 돌렸다.

“우리는 줄 거 다 줬는데 뭐 어때?”

어깨를 들썩인 남희연이 짐짓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한테 어쩌라는 건지. 하여간 백준영, 그 재수 없는 늙은이~”

“하아……. PD님! 여기 듣는 귀 많아요! 조심 좀 하세요!”

자신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 모양인지, 남희연은 연신 손가락을 까딱이며 중얼거렸다.

“성해온, 성해온, 흐음. 성해온이라.”

서민정은 불길함에 휩싸였다.

‘저 진또배기, 왜 저러는 거지?’

……또 뭐에 꽂힌 거야?

진정한 또라이.

줄여서 진또, 우리는 그녀를 진또배기라고 부른다.

……물론 뒤에서만.

Nnet에서 남희연의 성깔, 아. 아니, 성격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한번 꽂히는 게 있으면 윗선의 압박이고 뭐고 기어코 저지르는 인물.

자신이 보기에 이 사람은 방송국에서 잘려도 하하하! 웃으며 미련 없이 나갈 사람이다.

아니면 잘린 김에 사장 눈앞에서 가운뎃손가락을 올려 버릴지도 모르지.

그 정도로 예측 불가의 인물이지만, 그럼에도 이런 굵직한 프로그램들을 맡을 수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실력!

그러니까 더 미치고 팔짝 뛰겠는 거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권력을 쥔 또라이라고 했던가?

……그 말이 맞다.

“PD님 지금 이상한 생각 하고 계시는 거죠!”

자신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그녀는 동문서답을 하고 있었다.

“성해온, 그 자식. 아무리 봐도 눈치 깐 것 같더라니까? 하하하! 역시 재밌어.”

그렇게 말하는 남희연의 손엔 영상이 재생되고 있는 태블릿 PC가 올려져 있었다.

“그거 어제 방송한 <연기의 신> 맞죠? 꽤 화제던데요.”

모름지기 이 바닥에서 출연진들의 동향과 화제 체크는 기본적인 것, 당연하게도 제작진은 전부 꿰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응. 내가 촉이 조금 좋니?”

알다마다, 이 인간 촉 좋은 건 이 바닥 사람들 다 안다.

손대는 것마다 시청률 히트, 영 재미가 없다며 발 빼는 프로그램은 족족 패망.

“내 촉이, 이놈을 가르키고 있단 말이지? 으, 피곤하다.”

남희연은 앉은 자리에서 기지개를 켜더니,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화제성 용으로 한번 쓰고 버리긴 아까워도 너무 아까워.”

설마, 기획해 둔 틀을 바꾸자는 건가? 그것만은 안 된다.

자신도 이런 업계가 좋진 않다. 조작과 비리가 판을 치는 업계!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랫사람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까라면 까야지!

서민정은 진지한 어투로 말을 꺼냈다.

“PD님, 누누이 말하지만 저흰 사전에 기획해 놓은 대로 가야 합니다.”

“아아, 우리 든든~ 한 백 가진 러쉬랑 트웰브 잔뜩 밀어주고 라이트온은 욕받이로 쓰면서 자극적이게 편집하고, 시청률 챙기자는 기획 말이지?”

“……요, 욕받이라는 건 좀 과장이죠.”

“그게 욕받이가 아니면 뭐람?”

남희연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귀를 긁적거리며 말을 이었다.

“신유하 편집했던 거, 그거 살리자.”

“……네?”

뜬구름 잡는 소리에 서민정의 고개가 왼쪽으로 기울어졌다.

‘방금까지 라이트온 욕받이로 쓰기로 한 노선, 완전히 비틀고 싶다는 듯이 말하지 않았나?’

뭐,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화제성용으로 한번 쓰고 버리긴 아깝다는 뜻이 무엇이겠는가.

……근데 그걸, 살리자고?

“그건 초반부터 너무 어그로라 버리기로 했잖아요. ……그리고 PD님, 방금까지 라이트온 안타까워하고 계신 거 아니었어요?”

“민정아, 민정아. 내 신세도 버거운데 내가 누굴 안타까워해? 그리고 나한테 다~ 생각이 있는 거라고~?”

서민정은 두통으로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하아, 지금 제가 편집팀 가서 그거 살리자고 전달할게요.”

“그래, 그래.”

“……대신에! 저희 사전에 정한 큰 틀은 벗어날 생각 마세요. 아무리 PD님이어도 안 될 건 안 돼요.”

자신을 바라보는 진또배기는 대답 대신 빙그레 미소 지었다.

서민정은 회의실을 나가며 뒷목을 부여잡았다.

“으윽…….”

저 인간 또 내 말에 대답 안 했지!

* * *

연습실에 둘러앉은 우리는 2시간째 같은 노래의 뮤직비디오와 무대 영상을 돌려보고 있었다.

TwelvE의 미니 2집 타이틀곡.

“다들 편곡 방향이나, 무대에 관한 아이디어 있으면 말해.”

“……으음, 으으음.”

눈을 질끈 감은 최승하가 얼굴을 찌푸리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하핫, 생각나는 게 하나도 없네요.”

결론이 그거냐.

“아직까지 명확하게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없습니다…….”

“……저도.”

“나도 밤새 생각해 봤는데 마땅한 게, 음.”

차윤재에 이어 신유하, 류인까지 고개를 내저었다.

눈을 굴려 한수현 쪽을 바라봤으나,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 고민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이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는 정말 순도 100%의 몽환적인 분위기의 곡이거든.

여느 노래가 그렇듯, 이것도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문제가 있다면 이 노래 속 연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거겠지.

- 끝이 보이지 않는 감각 속 널 찾아 헤매

- 시간이 됐으니 눈을 감고 너를 그려

- 이건 깨어나고 싶지 않은 Dream Dream Dream

- 단 하나에 의해 무너지고 창조되는 나의 세계

대충 가사만 봐도 느낌이 올 거다.

죽은 연인을 꿈과 허상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내용으로, 몽환적임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노래다.

멤버들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트웰브의 꿍꿍이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놈들이 굉장히 괘씸하다.

‘영악한 놈들.’

이 자식들은 트레이드할 걸 알고 있었으니 이 곡을 적어 냈을 테다.

‘지들이 안 한다, 이거지.’

자고로 경연 프로그램은 화려하고 웅장한 무대를 준비해야 한다.

몽환적인 분위기는 분명 매력 있지만, 퍼포먼스적으로 명확한 한계가 존재한다.

감탄사가 나올 정도의 무대를 연출하긴 힘드니까.

게다가 인지도도 없는 우리가 그 쟁쟁한 출연진들 사이에서 되지도 않는 몽환 컨셉 잡았다가는 보기 좋게 멸망할 게 뻔했다.

하지만 이건 노래라도 괜찮지, 그 새끼들은 지금쯤 X같은 으라차차나 붙잡고 골머리 썩이고 있겠지?

‘하하.’

상상만 해도 즐겁다.

지금쯤 이걸 어디서부터 뜯어고쳐야 하나 절망에 빠져 있겠지.

‘하하하.’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의 사악함에 고개를 내젓습니다!]

못된 건 그 새끼들이지, 쯧쯧.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에게 호감을 보입니다!]

그때 최승하가 입을 열었다.

“으음, 저 사실 어젯밤에 이 곡 들으며 생각한 게 있긴 한데요.”

모든 시선이 최승하에게 모이자, 녀석은 손을 파닥파닥 저으며 정말 별 이야기 아니라고 밑밥을 깔았다.

“뭐냐면, 아예 분위기를 경쾌하게 바꾸는 건 어떨까요?”

“어떤 식으로?”

“아직 그것까진 생각 안 해봤는데, 제목부터 Dream이니까 으으음, 사실 자세한 것까진 생각 못 했어요.”

그 순간, 의외의 인물이 입을 열었다.

“……마법, 같은 거 어떨까요? 몽환과도 잘 어우러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차윤재였다.

마법?

마법이라…….

고개를 들어올려 차윤재를 응시하자, 녀석이 곧바로 시선을 피했다.

“난 좋은 것 같은데?”

내 말을 필두로 멤버들의 긍정적인 답이 쏟아져 내렸다.

“승하랑 윤재가 아이디어가 좋네.”

“벼,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고…… 뭣보다 승하 형님이 먼저 운을 떼주셔서 저도 생각이 난 겁니다.”

류인의 칭찬에 얼굴이 벌게진 차윤재가 있는 힘껏 본인을 낮췄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참 자존감이 없단 말이지.

그러니까 망돌의 그림자가 그렇게 짙은 거 아니야.

“대단한 거 맞아. 아예 판타지적인 소재니까 몽환 베이스랑도 합이 좋을 거고, 무대도 재밌게 꾸밀 수 있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

별생각 없이 한 말인데, 공간에 서늘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설마, 또?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게 정확하다고 말합니다!]

차윤재의 동공이 팽글팽글 돌아갔다.

“혀, 형님이 제 칭찬을…… 호, 혹시 어딘가 좋지 않으십니까?”

당장 성해온을 관짝에 넣을 기세다만, 애석하게도 나는 죽을병에 걸리지 않았다.

대체 성해온은 어떤 인간이었기에, 좋은 말만 했다 하면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는지 정상적인 사고 회로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손을 내젓자, 차윤재가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입을 열었다.

“……정말 괜찮으셨습니까?”

“그래.”

곧바로 튀어나온 대답에 차윤재가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 예!”

나는 멤버들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아이디어나 더 생각해 보자. 촬영이 내일이니까.”

이런 류의 경연 프로그램은 무대 전에 ‘우리가 직접 아이디어를 낸 거다’를 온몸으로 말하는 영상을 넣곤 한다.

주로 아티스트의 연습실이나, 사옥의 회의실에 둘러앉아 ‘흐음, 우리 이번 무대 뭘로 꾸미면 좋을까?’, ‘이건 어때요?’, ‘그거 아주 좋은데~?’ 이런 티키타카를 찍는 거다.

그걸 내일 찍으러 오겠다고 오늘 아침에 통보가 왔다.

이걸 바쁜 제작진 앞에서 바로 생각해 낸다?

절대 불가능할 일이다.

미리 다 정해놓는 거지.

조금은, 아니, 조금 많이 작위적이지만 어쩌겠나.

* * *

“촬영은 여기서 하실 건가요?”

카메라를 쥐고 있는 남자가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이거 촬영하고 컨셉 바뀌시면 추가 촬영하긴 할 건데, 되도록, 아시죠?”

말에 담긴 뜻을 풀이해 보자면, 다시 촬영하는 게 굉장히 귀찮으니 말 바꾸지 말라는 거다.

과연 다른 팀에게도 이랬을까?

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촬영 시작 전, 나는 멤버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알지?”

“네. 친한 척!”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최승하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니, 잠깐만! 내가 왜 이거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거지? 저랑 이미 친한 거 아니에요? 서운하다! 서운해!”

“촬영 시작한다. 가자.”

“……또 말 돌린다 저 형!”

그때 프로그램 제작진이 입을 열었다.

“자아,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짝!

슬레이트 대신 본인의 손뼉을 친 제작진이 어서 시작하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역시 처음은 무대 영상을 다 함께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일단 볼까요?”

집중한 얼굴로 무대를 두어 번 보고 난 뒤, 우선 감탄한다.

상대방의 노래가 으라차차 같은 X망곡이어도 감탄사를 내뱉어야 한다.

상대 쪽 팬덤한테 미운털 박힐 일은 사전에 막는 게 좋으니까.

안타깝게도 방송이 나가면 라이트온은 라는 곡을 적어 냈다는 이유로 거센 비난을 받을 테지만-

그럼에도 욕을 조금이라도 덜 먹기 위한 발악이다.

스윽!

내가 눈짓을 보내자, 멤버들이 하나둘씩 사전에 정해놓은 멘트를 읊기 시작했다.

“……어, 노래가 너무 좋은데?”

류인의 말에 최승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으음~ 진짜 모르겠어요. 이걸 어떻게 재해석 해야 할지…….”

“저는 사실 이 노래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이것을 제가 하게되다니 굉장히 영광스러운……!”

“……마, 맞아요. 영광…….”

신유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한수현이 암담하다는 듯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하아, 원곡 자체가 너무 좋아서 어떻게 바꿔야 할지 솔직히 막막하네요.”

녀석들, 기특하게도 잘해주는군.

어젯밤,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처음엔 무조건 트웰브 칭찬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나불거린 보람이 있다.

나는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진 얼굴로 고개를 느릿하게 가로저었다.

“……이건, 트웰브 선배님들만이 소화할 수 있는 컨셉 아닌가?”

마치 이 컨셉은 감히 우리가 범접할 수 없다는 듯이.

트웰브 팬덤 여러분, 보고 계신가요?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의 가식에 미간을 찌푸립니다!]

나는 조금 더 절망적인 낯짝을 걸쳤다.

“……아무래도 우리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