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52화 (52/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52화

“프로듀서님!”

은 모든 무대에 편곡이 들어간다.

그래서 프로듀싱을 맡아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강찬혁이 선뜻 나서줬다지.

프로듀싱 강찬혁에 안무 구희승이라, 라인업은 대형 기획사 부럽지 않군.

“아, 해온 씨! 다른 멤버 분들도 오셨네요.”

멤버들과 한참 인사를 나눈 강찬혁이 뒷목을 긁적였다.

“이번에도 저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큰 프로그램에 제가 함께 가도 될지…….”

이 인간, 여전히 자존감이 낮다.

심지어 강찬혁이 작업한 라이트온의 앨범이 발매됨과 동시에 발 빠른 여러 기획사가 강찬혁에게 컨택을 했다고 들었다.

‘그런 걸로는 아직 강찬혁의 자신감을 끌어올릴 수 없는 건가.’

내가 무어라 입을 떼기도 전에 용수철처럼 튀어 나간 최승하가 강찬혁의 양어깨를 붙잡고 가공할 속도로 털기 시작했다.

탈탈탈!

강찬혁은 순식간에 탈수기 속 빨래처럼 홀쭉해지고 있었다.

“……무슨 소리세요! 저흰 프로듀서님이 승낙해 주셔서 너무 기뻤다고요!”

이봐, 프로듀서님 안색 창백해지셨다.

나는 슬그머니 최승하의 손을 강찬혁에게서 떼어냈다.

“마, 맞는 말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전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저도 윤재 말에 동의합니다. 오히려 저희가 감사하죠.”

류인의 말에 신유하가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맞아요. 오, 히려 가, 감사해야 될 건…….”

“저희죠. 잘 부탁드립니다. 프로듀서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한수현의 인사에 복잡미묘한 얼굴의 강찬혁이 숨을 들이켜며 손을 내밀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라이트온 여러분.”

훈훈한 분위기도 잠시, 곧장 회의가 시작됐다.

원래의 는 미디엄 템포의 딥한 R&B소울 장르를 기반으로 하는 곡으로, 그루비하고 신비로운 사운드가 가미되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는 곡이다.

우리는 이걸 퍼포먼스 무대용으로 적합하게끔 바꿀 거고.

“여기, 저희가 생각해놓은 컨셉입니다.”

프린팅해 온 종이를 건네자 강찬혁이 진지한 얼굴로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으음.”

그래도 며칠간 이 녀석들과 머리 맞대고 생각한 건데, 별로인 건가.

“좋네요! 정말 좋습니다! 다만 제안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들어보시겠어요?”

* * *

[Nnet ‘To The Top 2 : 별들의 전쟁’(이하 ‘To The Top’)이 새로운 시즌으로 돌아온다.

정상급 걸 그룹 대전으로 매 화 화제를 일으켰던 ‘To The Top’의 시즌2가 9월 중으로 방송될 예정이다.

To The Top은 콘텐츠 영향력 지수(CPI Powered by LACOI)에서 영향력 있는 프로그램 예능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앞서 화제성 분석 기관인 나이스데이터코퍼레이션에서도 비드라마 TV 화제성 부문 1위를 꿰차며 그야말로 화제성을 싹쓸이한 프로그램이다.

MC로는 하진이 출격한다. 출연진 라인업은…….]

“……어?”

토요일 점심, 느긋하게 침대에 누워 있던 곽덕배가 몸을 일으켰다.

“……어어?”

내가 요즘 눈이 침침한가.

하긴 요즘 일이 너무 많았지.

곽덕배는 눈가를 벅벅 문지른 뒤 기사 내용을 천천히 읊기 시작했다.

“러쉬, 트웰브, 블랙보이즈, 스피디, 올타임…….”

곽덕배는 라이트온을 사랑하면서도, 굉장히 객관화가 잘되어 있는 고인물이다.

, 이게 어떤 프로그램인가?

적어도 공중파 음악 방송 1위 여러 번, 음원 차트 최상위권은 당연히 찍어봤다는…….

1.5군급에서 2군급 아이돌들만 나오는 프로그램이 아닌가!

솔직히 별 재미는 없지만 나오는 아이돌들의 팬덤 덕에 꽤 시청률이 잘 나왔던 프로그램.

자신도 꾸준히 챙겨 봤던 프로그램이기에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런 의미로 위의 다섯 그룹은 충분히 나올 만한 그룹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문제가 있다면.

“……라이트온이 여길 왜?”

라이트온이 아무렴 저 위의 놈들보다 잘생겼고 아름답고 실력까지 좋다지만 현실은 아직 듣보다.

머릿속이 ‘왜?’, ‘어떻게?’로 가득 찼다.

우리 애들은 애초에 저기 낄 수 있는 체급이 아니다.

그녀의 뇌리에는 다섯 글자가 섬광처럼 내리꽂혔다.

“X됐다, X발.”

왜 우리 같은 힘없는 오타쿠들에게 이런 시련을?

라이트하게 덕질하는 사람은 오히려 공백기에 진행되는 프로그램 출연을 반길지도 모르겠으나…….

고인물 입장에선 전혀 아니다!

……안 나오는 게 낫단 말이다!

곽덕배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젠장, 벌써부터 두통이.”

이거 시즌 1 때도 국내 팬 투표는 기본이고, 글로벌 어쩌구 하면서 해외 팬 투표 비율도 크게 잡았었지 않나?

라이트온은 국내 팬도 한 줌인데, 해외 팬? 어림도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멸망 루트뿐이었다.

* * *

Nnet이 프로그램 시즌 2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았는데, 어떤 연예부 기자가 정보를 물어다가 홀라당 기사를 내버린 모양이다.

기사에 적혀 있던 여섯 그룹의 팬덤은 발칵 뒤집혔으며, 다른 팬덤까지 흥미로운 주제에 말을 얹으니 난리가 났다.

음, 개판이군.

나는 스크롤을 빠르게 내렸다.

- TTT 라인업에 왜 처음 보는 분이 섞여 있지

└ 우리 모르는 새에 뜨셨나 ㅎ

- 요즘 탐라에서 가끔 보긴 했는데 얘네가 이 정도였나

└ 전혀ㄴㄴ 요즘 좀 뜬 건 맞는데 TTT 나올 정돈 아니지

특히 라인업에 속한 그룹들의 팬덤은 라이트온의 존재에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 저거 기사 잘못 나온 거 아님? 공식 기사도 아니고 솔직히 말도 안 되잖어 애초에 뜬 애들 데려다가 화제성 돋우는 프로그램 아님?

└ 진짜 그런가?

└ 근데 지금 몇 시간이 지나도 기사 수정 안 됨 ㅋㅋㅋ

- 캐치프라이즈 별들의 전쟁 ㅇㅈㄹ 그거 떼라 ㅅㅂ 이게 무슨 별들의 전쟁? 불순물 섞였는뎁쇼

끝없이 쏟아지는 조롱 섞인 트윗에 라이트온 팬덤 분위기도 말이 아니었다.

밀리어스와의 사건 이후 생겼던 알계들이 아직까지 활동 중이었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흐르다 보니 이들도 지쳤는지 요즘은 잠잠했었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접한 계정주가 이때다 싶었는지 폭발적으로 트윗을 올리기 시작했다.

- 라이트온 진짜 주제 모르는 망돌ㅋㅋㅋ 주제에 저길 어떻게 나오지? Nnet이 감 떨어진 거임? 아니면 러쉬 트웰브 올타임 스피디 블랙보이즈 <- 얘네 급이 라이트온 급에 맞게 떨어진 거임? 아니면 혹시 라이트온 그 반반한 얼굴로 더러운 짓 했나? 스폰?

아주 140자를 야무지게 꾹꾹 눌러 담는군.

이 계정주, 누군지는 몰라도 머리 꽤나 쓴다.

첫 번째, 라이트온을 욕함과 동시에 타 출연진들을 한데 묶어 라이트온과 동급이 아니냐며 매도한다.

심지어 서치 방지, 즉 써방도 없이 말이다.

이런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존재 자체로도 팬들에게 자극이 되며, 동시에 큰 스트레스를 안긴다.

그런 상황에서 라이트온 같은 망돌과 동급이라며 내려치기를 당하는데, 얼마나 열받겠는가?

이해는 간다.

하지만 이들의 분노가 죄 없는 라이트온에게 향할 것이라는 사실이 문제였다.

두 번째, 이건 걱정했던 그대로 이뤄지는군. 바로 스폰 언급이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억측이지만, 이렇게 급도 안 맞는 우리가 출연하게 되었다는 ‘결과’로만 보자면 나름 그럴듯하다.

원래 유명한 것도 아니야, 소속사 백도 없어, 근데 어떻게 한 자릴 떡하니 차지했을까?

이런 의문점에 그럴듯한 논리가 될 수 있다는 소리다.

게다가 누군가가 확성기를 켜고 저렇게 스폰 의혹을 떠들어대는데, 그런 쪽으로 상상 안 해본 사람들까지 ‘진짜 얘네 뭐 있나?’ 싶을 거다.

물론 민감한 주제이니만큼 대놓고 언급하는 사람은 적을 거다.

자물쇠 걸린 계정이나, 직접적인 언급 없이 은연중에 불쾌함을 나타내겠지.

“음.”

나는 미간을 설핏 찡그렸다.

현재 여러 개의 라이트온 비난 계정이 트윗들을 스스로 인용하며 해시태그에 멤버 이름을 붙여 올리고 있었다.

라이트온만?

그럴 리가.

친절하게도 에 출연하는 여섯 그룹의 멤버 이름들을 모두 해시태그로 써 붙이고 있었다.

그것도 5분 간격으로.

모든 팬덤이 자신이 쓴 트윗을 보게 하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담긴 행동이었다.

SNS 해본 사람이면 이게 얼마나 아찔한 상황인지 체감될 거다.

나야 정신력 덕인지 아무리 욕을 먹고 조롱당해도 별생각이 들지 않는데, 아마 이 녀석들은 다를 거다.

괜찮은 척해도 불특정 다수에게 비난받고 괜찮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참고로 지금 실시간 트렌드는 이 장악했다.

대충 훑어봐도 라이트온을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SNS를 잘하지 않는 멤버들조차 이 상황을 어느 정도 눈치챌 수밖에 없었고, 연습실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됐다.

사실 내가 지켜본 멤버들은 현실적이어서, 반강제적인 출연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부터 이런 반응을 예상했을 거다.

‘음, 계정 신고부터 해볼까.’

이해성도 이런 구제 불능 계정이 등장하면, 싸우기보단 신고를 주로 택했던 것 같다.

그 기억 덕분에 어렵지 않게 계정 신고 접수를 마칠 수 있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연습이나 하자.”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최승하가 장난을 걸어왔다.

“형, 요즘 연습 열심히 한다니까~?”

평소와는 약간 다른 목소리.

이 녀석도 멘탈에 금 좀 갔나 본데.

애써 분위기를 풀려고 노력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연습에 열중하는 건 당연하다.

스폰이니 망돌이니, 그딴 건 내게 아무런 타격을 줄 수 없지만 뚝딱이라는 치욕스러운 별명이 붙는 꼴은 두고 볼 수 없으니까.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낄낄댑니다!]

* * *

“해성아! 내가 열받아서 제 명에 못 살겠다!”

이해성을 불러낸 곽덕배가 술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토요일 밤엔 사람 많다고 죽어도 안 나오는 게 왜 오늘 불렀나 했더니?”

“밀러스 중엔 왜 이렇게 제정신 아닌 것들이 많은 거냐……?”

둘은 밀리어스 덕질을 하면서 친해진 사이였기에 이 팬덤에 대해선 질리도록 잘 안다.

게다가 그룹 초창기부터 덕질을 하며,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어봤기 때문에 이런 주제엔 진절머리를 치는 편이다.

곽덕배에게 건네받은 화면의 스크롤을 내리던 이해성은 기가 찬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와아, 얘는 좀 심한데? 써방도 안 하고 이걸 계속 올리는 거야?”

곽덕배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우는 소리를 냈다.

“계정 신고해서 다섯 번은 폭파시켰는데 같은 닉네임으로 또 팠어 엉엉…… 걍 X발, 마트료시카야…….”

“누군진 몰라도 지독한 게 붙었구나. 그리고 이 계정들 말투 묘하게 비슷한 게 자아분열 하는 거 같은데…… 의현이 악개인가?”

악개, 악성 개인 팬의 줄임말이다.

‘이렇게까지 물고 늘어지는 거보면, 왠지 그럴 것 같단 말이지.’

심지어 팬덤 내에서도 의현은 유달리 악개가 많은 편이다.

이해성은 목소리를 낮춰 말을 이었다.

“근데 나도 라이트온 나온다는 기사 보고 놀라긴 했어. 음, 걔네가 화제성이 있긴 있었지? 요즘 슬슬 뜰 기미 보이고 있었잖아.”

“내가 진짜 이 알계만 빡치는 게 아니야. 러쉬랑 트웰브 팬 중에도 미친년 졸라 많, 으브븝.”

이해성은 웃으며 곽덕배의 입에 계란말이를 욱여넣었다.

“여기 홍대다. 온갖 오타쿠들 몰려 있는…….”

바야흐로 사이버 암투극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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