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53화 (53/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53화

사아아-

연습실의 공기가 싸늘하다 못해 거의 초상집 분위기였다.

벌써부터 악편당했거든.

오늘 Nnet이 에 관한 공식적인 기사를 냄과 동시에 공식 유O브 채널에 선공개 영상을 올렸다.

길이가 4분도 되지 않는, 짤막한 영상 말이다.

아직 선공개 영상이 올라오기엔 무척 이른데, 합의되지 않은 기사가 미리 새어 나가 버렸으니 입장이 난감해진 Nnet이 공식 기사와 함께 영상을 올린 모양이다.

선공개 영상부터 흥미를 끌어야 사람들이 1회에 대한 기대감을 품으니, 어느 정도 어그로를 끌 거라고는 예상했다.

‘근데 이렇게 작정하셨을 줄은.’

아주 정성스럽게도, 라이트온이 욕을 한 바가지 먹을 수 있게끔 구도를 마련해 놓으셨달까.

나는 복잡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사옥 옥상으로 향했다.

“음.”

설마 신유하와 러쉬의 관계를 두고 이런 장난질을 칠 줄은 몰랐지.

녀석이 INT소속이었다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당장 포털 사이트에 신유하 이름 석 자만 검색해도 RUSH 데뷔조였다는 말들이 떠돌고 있으니까.

INT는 대형 소속사인 만큼, 데뷔 전 연습생의 신분도 어느 정도 퍼지는 편이다.

아마 제작진들은 그 사실만 알고 별생각 없이 질문을 던졌으리라.

나야 신유하가 그 녀석들과 무슨 안 좋은 일이 있겠거니 눈치를 챘다지만, Nnet이 그것까지 알 리 없다.

그냥 질문을 던졌는데 신유하의 반응을 보고 ‘어라?’ 싶었겠지.

- 각 팀 리더 단독으로도 인터뷰 들어갈 거고, 거기 금발 친구도 인터뷰 들어갈게요.

저번 녹화에서 이런 말을 하기에, 신유하가 원체 유별나게 잘생긴 놈이니 예고편에서 얼굴로 주목이라도 끌어볼 셈인가 했다.

이럴 속셈이었을 줄은.

어쩐지 녹화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신유하가 유달리 축 처져 있다 했는데, 그런 이유였나.

나는 옥상에 있는 벤치에 앉아 선공개 영상을 처음부터 다시 재생했다.

처음은 평범했다.

캐치프레이즈가 들어간 웅장한 CG로 영상이 시작된다.

[ 하진) Top의 자리에 오를 단 하나의 별은 누구일지, 별들의 전쟁 To The Top!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

진행자의 오프닝 멘트를 필두로 자리에 앉아 있는 여섯 그룹이 차례로 등장한다.

아마 우리가 마지막에 입장하는 걸 안 넣은 걸 보니, 이건 본방용 어그로로 쓸 모양이다.

알차게도 벗겨먹는군.

뒤이어 각 팀 리더의 인터뷰가 나온다.

곡 트레이드에 대한 사실을 몰랐을 때, 종이에 곡을 적어 내며 한 인터뷰 말이다.

[ 성해온) 네. <삐이이->는 저희에게 큰 의미가 있는 곡이니까요. ]

내가 외쳤던 곡의 제목, 만 삐- 처리됐다.

그리고 이어지는 진행자의 멘트 부분, ‘곡 트레이드!’라고 외쳤던 부분을 의미심장한 BGM과 함께 삐- 처리를 했다.

그리고 비춰주는 여섯 그룹의 놀란 얼굴.

적어낸 곡을 갑자기 트레이드한다는데 다들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놀랐겠는가.

그런 면면들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아마 이 선공개 영상을 본 사람들은 왜 저렇게 놀라는지 궁금해서라도 1회를 챙겨볼 거다.

그래, 여기까진 정석대로의 훌륭한 어그로다.

문제는 그 뒤에 짤막하게 나온 사전 인터뷰다.

RUSH의 단체 인터뷰 때, 작가가 이렇게 묻는다.

[ 이 프로그램에 잘 아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

그러자 RUSH의 멤버 한 놈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연다.

[ 태오) 아~ 유하, 유하랑 친하죠. 같이 연습도 오래 했었고요. ]

화면은 곧바로 신유하의 단독 인터뷰로 넘어간다.

난데없이 단독 인터뷰에 끌려와서 어리둥절한 표정의 놈에게 작가는 RUSH에 관한 질문을 날린다.

그리고 신유하의 얼굴이 일순간에 굳어버린다.

자세히는 몰라도 그들 사이에 안 좋은 일이 있다는 건 확실하게 아는 내가 보기엔…….

“무서워하는 얼굴.”

하지만 그 짤막한 편집 속에, 신유하는 굳은 얼굴로 작가의 말에 대답을 하지 못한다.

[ 신유하) ……. ]

놈의 굳어버린 얼굴을 여러 각도에서 내보냄과 동시에 민망해하는 작가의 탄식 소리까지 덧붙이니, 마치 신유하가 러쉬를 대놓고 무시하는 것 같이 나왔다.

“아주 X같이도 편집해놨군.”

이번 프로그램 출연진 중에 팬덤의 크기와 화력이 가장 큰 곳을 꼽자면 당연히 RUSH다.

그런 그룹을 대놓고 무시하는 듯한 뉘앙스로 편집을 해놨으니, 저쪽 팬덤은 얼마나 열받겠는가.

안 그래도 라인업이 뜨고 난 뒤로 라이트온은 여기저기서 동네북처럼 얻어맞고 있었는데,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으로 욕을 먹기 시작했다.

- 와 얘네 진짜 나오는 거 맞네? 공식 기사도 떴고 선공개 영상에도 있음 (사진) (사진)

- 라이트온 진짜 ㅈㄴㅈㄴ비호감 ㅋㅋㅋㅋㅋㅋㅋㅋ 와 선공개 영상보고 기함함 진짜 너… 뭐… 돼…?의 표본 아님? 진짜 다른 그룹들한테 피해 주지 말고 하차해~~~

- 망돌 주제에 프로그램 꼈다고 기고만장해진 듯 ㅠ

특히 악편의 주인공, 신유하에 대한 조롱과 비방이 거셌다.

- 저딴 인성이니 방출되고 망돌로 데뷔했겠지 안 봐도 뻔하다 뻔해

- 러쉬 멤들만 불쌍하네 자기들 딴엔 큰맘 먹고 친하다고 언급한 걸 텐데, 신유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나 봄 ㅎ

음, 그만 보도록 하자.

연습실로 돌아가니 여전히 분위기가 무거웠다.

신유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는데, 슬쩍 보니 눈가가 벌겠다.

울었나 보군.

고요한 적막 속에 누군가 목소리를 냈다.

“……죄, 송합니다.”

신유하였다.

“……분명, 뒤에 같이 연습생 생활 해, 했었다고, 대답, ……했는데.”

음. 대답을 안 한 것도 아니었는데 편집을 그따구로 한 거였나.

하긴, 악편은 늘 그런 식이니 새로울 것도 없다.

“뭐가, 뭐가 미안해! 괜찮아!”

최승하가 안절부절못하며 신유하의 어깨를 서툴게 토닥이자 차윤재도 거들었다.

“맞습니다! 출연하면서 이 정도는 당연히 각오했습니다. 형님은 잘못 없습니다.”

“형, INT랑 트러블 있었던 거예요? 아님 거기 멤버들이랑? 저희한텐 말을 해주세요. 도울 수 있는 거라면 도울 테니까요.”

잠깐의 정적 끝에, 신유하의 입이 열렸다.

“……피해 안 가게, 할게.”

이미 끝난 일이라며 고개를 작게 내저은 신유하가, 이내 손을 다급하게 파닥였다.

“팀에, 피해갈 만한 일은, 정말 없었어요……!”

“그걸 걱정한 건 아니었는데요. 그럼, 뭐. 알겠어요.”

한수현은 ‘말하기 힘든 일도 있는 거니까’라고 중얼거리듯 덧붙이더니, 연습이나 해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위기가 나름대로 진정되고 있었고, 입을 연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신유하.”

순식간에 시선이 내게 모여들었다.

심지어 신유하는 내가 자신을 부르자마자, 몸을 흠칫 떨었다.

그리고 그 옆에 앉은 최승하는 고개를 도리질 치며 무음으로 입을 벙긋거렸다.

음, 무슨 말을 하는지 입 모양으로 유추하자면…….

지금 얘 멘탈 나갔으니까, 심한 말을 하지 말아라?

미안하지만 그런 얘길 꺼내려던 게 아니었다.

“세수하고 와라.”

조금은 뜬금없는 말에 최승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약간 놀란 얼굴의 신유하는 순순히 일어나 세수를 하고 왔다.

음, 이제 괜찮군.

“다들 이리로.”

눈치를 보던 멤버들이 슬그머니 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형, 왜요?”

찰칵!

차차차차차찰칵-!

“……?”

황당하다는 눈빛도 잠시, 와중에 다들 직업 정신이 투철한지 내가 카메라를 들이밀기 무섭게 만면에 미소를 걸치기 시작했다.

“신유하, 웃어라.”

신유하가 억지로 입꼬리를 당겼다.

차차차차차차차차찰칵!

휘몰아치는 플래시 소리에 손가락 하트를 날리던 차윤재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이가 없는지 벌떡 일어섰다.

“형님은 그렇게 심각하게 말 꺼내놓고, 정작 하자는 게, ……셀카입니까?!”

“어.”

빛의 속도로 나온 답변에 차윤재가 할 말을 잃었다는 듯 멍한 얼굴을 걸쳤다.

지금 이거보다 중요한 건 없다.

안 그래도 다양한 팬덤에게 다채롭게 얻어맞고 있었는데, 이 악편까지 더해졌다.

팬들은 지금쯤 위장이 사방으로 뒤틀리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거다.

이럴 때일수록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소통을 이어나가야 한다!

-라고 내 안의 오타쿠 자아가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슥, 스슥!

나는 빠른 속도로 갤러리를 넘기며 찍힌 사진들을 유심히 살폈다.

“신유하.”

내 부름에 녀석이 다시금 몸을 잘게 떨었다.

이렇게 나랑 눈 마주칠 때마다 놀라는 것도 귀찮겠다.

이거 원, 겁 많은 동물을 위협하는 상위 포식자 같지 않은가.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맞지 않냐며 고개를 기울입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협박에 큰 소질이 있는 건 맞다며 흐뭇해합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칭찬이 아니었다며 기함합니다!]

나는 흐릿한 낯짝으로 메시지를 무시한 뒤, 턱을 까딱였다.

“……세수 한 번 더 하고 와라.”

네 눈가가 아직도 붉어서, 이걸 올렸다가는 팬들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로 너덜너덜하게 찢길 것 같으니까.

“아니! 이 형은, 무슨 심각한 말 하나 했네!”

최승하의 어이없다는 외침에, 멤버들이 긍정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긴장했어.”

가슴께에 손을 올린 류인이 하하 웃었고, 신유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네, 네! 갔다, 올게요 ……!”

그렇게 최종적으로 선별된 사진들을 공식 계정에 올리자, 얼어붙어 있던 팬덤의 분위기가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 걍 임종할란다

- 천국 가는 꿀팁 알려 드립니다 라이트온 얼굴 보면 그게 천사들의 하모니지 별게 천국이겠냐고

- 맨날 단체 셀카 보면 성떤남자가 폰 잡고 있는데 너무 잘 찍음 진짜 셀카의 신 같아

- 이런 말 미안한데 진짜 시력이 올라가는 기분임 갑자기 스마트폰 해상도 좋아진 것 같고 그래

* * *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쪽도 사건이 터진 다음 날부터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편곡된 곡에 맞는 안무를 짜 온 구희승이 지옥의 트레이닝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근래 3일간, 우리는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만큼 혹독하게 굴려지고 있었다.

“지금 이대로면 안 돼.”

구희승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너희만의 무대를 만들어야 하잖아. 장담하건대 이대로 무대 올라가면 너넨.”

연습실에 대형을 맞춰 서 있던 멤버들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편집거리밖에 안 돼.”

돌직구긴 하다만, 맞는 말이다.

“특히 해온이 너, 자꾸 대형에서 튀는 거 너도 알고 있지?”

그 대상이 나인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굉장히 억울하다.

연습량으로 따지면 내가 상위에 속할 정도로 열심히 했는데.

실제로 지금 딱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체력 게이지는 바닥을 찍었으며, 온몸의 근육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에게 안타까운 눈빛을 보냅니다!]

영양가 없는 동정 따위 필요 없다.

고개를 들어보니 멤버들이 다 날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 새끼들이.

구희승이 웬일로 웃으며 내게 다가오더니 격려하듯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할 수 있단다. 내가 있잖니.”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옆에서 숨을 들이켜는 소리들이 들렸다.

……아무리 인성 파탄이어도, 여기서 싫은 소리 좀 들었다고 엎고 나갈 리 없다.

“너희가 이번에 낸 컨셉이 마법인 만큼, 무대에서 신비로운 느낌을 주고 싶어서 내가 동선도 무리하게 짜긴 했는데.”

구희승이 사악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네가 이 정도는 해야 그 사이에서 안 묻히지 않을까?”

쿠션이라고는 없는 말이지만, 틀린 말 하나 없다.

“내가 솔직히 말해볼까? 너희도 나쁘진 않거든? 정말 그래, 지금껏 트레이닝 제대로 못 받은 것치고 잘하는 편이야. 진심으로.”

“그런데, 이렇게는 안 돼. 이거 경쟁 프로그램이잖아. 너희 각오하고 나가는 거 맞지?”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구희승이 활짝 웃으며 노래를 틀었다.

“각오했다니 굿인데~ 그럼 인트로부터 다시 가자!”

……휴식 시간은?

분명 이 이야기 꺼내기 전에 휴식 시간을 준다고 했는데.

내 눈빛을 알아봤는지 구희승이 입을 열었다.

“너네 쉬고 싶어?”

10분만 쉬고 하시죠, 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10분-”

입이 열리기 무섭게 구희승이 말을 끊었지만.

“우리 해온이가 말 잘했다. 10분도 아까운데 무슨 휴식이야, 그치?”

미친 새끼…….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