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57화
“와아아아아아아아악-!”
무대를 마치자마자 인이어를 뚫고 함성이 들려왔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순간 멤버들과 눈을 마주쳤는데, 다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음.’
관객석에 꾸벅, 인사를 한 뒤 무대 아래로 내려왔는데도 함성이 귀를 메웠다.
나와 멤버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문 채 마이크를 제거하고, 복도를 걸었다.
그때 장비 관련 스태프으로 보이는 사람이 엄지를 치켜올려 보이더니 훌쩍 떠났다.
“수고하셨습니다! 라이트온, 오늘 무대 좋았어요.”
이 말이 신호탄이라도 된 듯, 꿀 먹은 것처럼 조용했던 멤버들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저희 실수, 실수 하나도 안 했습니다!”
류인이 차윤재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수고했어. 얘들아.”
“형들~ 동생들~ 유하도 수고했어요!”
“형도 수고하셨습니다.”
“어라? 수현이가 어쩐 일로 이렇게 고분고분하지? 여기 어디 카메라 있는 거 아니야?”
“말을…… 말을 맙시다.”
한수현이 질색하며 최승하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나도 한마디 얹으려던 참이었다.
주르륵-
말없이 걷던 신유하의 오른쪽 눈에서 액체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정말 감정 하나 담기지 않은 얼굴에서 말이다.
순간적으로 정적이 흘렀다.
[수식언을 공개하지 않은 한 성좌가 눈을 부릅뜹니다!]
이건 또 뭐야.
“유, 유하야! 왜 그래! 어떤, 아니, 무슨 일이야!”
“형님! 가, 갑자기, 다, 닦을 만한 것을 가져오겠습니다!”
신유하는 슥슥 눈가를 닦더니 입을 열었다.
“……먼지.”
방금 운 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덤덤한 얼굴과 목소리였다.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무어라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최승하가 웃으며 신유하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에잉, 해온 형한테 안 좋은 것만 배워 가지고!”
“뭐라고?”
분명 내 이름이 나왔던 것 같은데, 다른 생각을 좀 하느라 못 들었다.
내가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자 곧바로 최승하가 꼬리를 내렸다.
“미안합니다!”
“무슨 말 했는데?”
“형이 오늘 무대 너무 잘했다고요.”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저 말이 거짓이라 전합니다!]
그쯤은 나도 안다.
뭐, 시답잖은 말이나 했겠지.
대기실에 들어가서 땀을 닦고, 간단하게 단장을 한 뒤 소파에 앉았다.
왜냐, 다른 그룹의 무대를 보는 것도 리액션 컷으로 들어가거든.
지금 우리 앞엔 세 대의 카메라가 켜져 있었다.
우리 무대가 다섯 번째였는데, 앞서 네 번의 무대도 정말 리액션 열심히 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을 안쓰럽게 바라봅니다!]
헛소리.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어떻게 알았냐며 눈을 크게 뜹니다!]
쯧쯧…….
떠오른 메시지를 곧장 무시한 나는 옆에 착석한 멤버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타앗-!
허공에서 시선이 얽혀 들기 무섭게 나는 선량한 얼굴로 웃었다.
마지막까지 악편 각 안 나오게 잘하라는 뜻이었다.
안색이 희게 질린 놈들이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였다.
평소에 이 얼굴을 무서워하는 것 같아서, 최대한 착하게 웃기까지 했는데 왜 저런 얼굴들인 걸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친해지기는 글렀다며 혀를 찹니다!]
나는 멤버들에게 꾸준히 말해왔다.
리액션 컷을 촬영할 땐, 눈 동그랗게 뜨고 놀라워하는 표정, 아니면 심각하게 집중한 표정, 아니면 감동받은 표정.
이 셋 중의 하나로 지으라고.
괜히 방긋 웃었다가 이상하게 편집 당하면 상대 팀 공연을 비웃는 것처럼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이제 마지막 무대인 트웰브의 무대가 시작하려는 듯, 모니터 속에 MC가 등장했다.
“대망의 마지막 무대!”
남은 무대가 트웰브뿐이니, 함성이 어마어마했다.
여기 대기실까지 들릴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트웰브의 색다른 매력으로 선보이는, 라이트온의 입니다!”
라는 멘트가 나오자마자 함성이 귀신같이 사그라들었다.
민망할 정도였지만, 여기서의 표정 관리가 중요하다.
저 MC의 멘트와 동시에 대기실에 앉아 있는 우리의 얼굴을 내보낼 가능성이 크니까.
나는 두 손을 모으고 한순간도 놓칠 수 없다는 듯이 집중한 얼굴을 했다.
“…….”
그리고 무대는, 음.
역시 으라차차가 으라차차했다.
거의 갈아엎는 수준으로 편곡을 하긴 했다만, 그 구림이 쉽게 가실 구림이 아닌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형평성 문제로 100% 갈아엎는 건 불가능하니, 최대한으로 바꾼 것 같은데.
한마디로 무대에 돈은 많이 썼지만, 막상 이게 뭐지.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별로인 무대였다.
이거 참, 미안하군.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입 가리고 있는 손을 치워보라고 합니다!]
그건 곤란하다. 웃고 있거든.
물론 겉으로 보기엔 존경하는 선배님의 무대에 감동받아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 같겠지만 말이다.
* * *
마침내 여섯 무대가 모두 끝났다.
한 그룹당 여러 번 녹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단 한 번의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세트장 설치 시간 등등으로 인해 거의 6시간이 흘러 있었다.
입장이 오후 4시였는데, 모든 무대가 종료되고 시간을 보니 10시였다.
솔직히 대기 시간이 심각하게 길고 지루해서, 괜히 왔나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이쪽 라인부터 차례로 나가겠습니다~ 가만히 계세요~ 차례대로 나갈게요!”
곽덕배는 이 먹먹한 감정을 누른 채 얌전히 퇴장을 기다렸다.
나가는 길목에 스태프들이 아니나 다를까, 종이를 내밀었다.
비밀 유지 서약서였다.
“다들 스포 안 되는 거 아시죠? 이거 법적인 겁니다!”
사실 이런 거, 팬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집에 가자마자 바로 스포일러 섞인 후기글을 올릴 테지만 눈앞의 스태프는 열심히 말을 이었다.
“본방 기다리시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미리 스포일러 하지 말아주세요!”
망설임 없이 서약서에 본인의 이름을 슥슥 적어 넣은 곽덕배는 스튜디오를 빠져나오자마자 SNS를 켰다.
양심상 스포일러는 하지 않았다.
그저 눈물만 흘렸을 뿐.
- 라이트온이 찢었다… 무대도 찢고 나도 찢겼다… 나 아직도 심장이… 뛰어…
└ 덕배야 사람은 원래 심장이 뛰어
* * *
관객들의 퇴장이 끝난 뒤, 출연진들의 추가 촬영이 시작됐다.
처음 녹화 때처럼, 각 자리에 깃발이 꽂혀 있었고 우리는 자리에 착석했다.
MC가 모든 출연진을 훑어보더니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여섯 그룹의 멋진 무대, 잘 봤습니다!”
출연진들 사이에서 호응 소리가 터졌다.
순위 발표도 본방이 나간 이후 여러 성적을 집계해야 하는 거라, 오늘은 무대 끝나면 바로 해산일 줄 알았는데 아마 마지막 멘트까지 찍으려는 것 같다.
-라고 생각한 순간, MC가 입을 열었다.
“자! 다음 무대의 주제는 이후에 각 그룹에게 전해질 건데요!”
그거야 알고 있었다.
아마 내일쯤 각 소속사에 주제를 알려주겠지.
“그 무대! 즉, 2차 경연의 무대 순서를 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파앗-!
그와 동시에 파앗, 하는 효과음과 함께 점수 합산 방식이 전광판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저번에 말씀드렸다시피, 파이널 경연을 제외한 은!”
“국내 팬 점수 25%!”
“글로벌 팬 점수 25%!”
“각 무대의 영상 추천과 조회 수를 합산 낸 점수 25%!”
“나머지 25%는 바로!”
MC가 말을 끌자, 곧바로 출연진 석에서 여러 대답이 튀어나왔다.
“현장 평가단 점수!”
“팬분들이 주시는~”
“오늘도 투표하셨던 그! 스위치!”
대답이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MC가 말을 받았다.
“예! 맞습니다! 마지막 점수는 바로 현장 평가단 점수입니다! 원래라면 다음 경연 이전에 모든 점수를 발표할 텐데요!”
원래라면?
……또 뭐가 있는 건가.
“오늘 여러분의 소중한 팬분들이 투표하고 가신! 현장 평가단 점수를 공개합니다!”
출연진 석이 잔뜩 술렁였다.
……오늘, 그걸 공개한다고?
머릿속이 의문으로 가득 찼지만 카메라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돌아가고 있으니, 예의상 뒤를 돌아보며 멤버들에게 뭐라 놀라움을 전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그렇습니다! 이번 1차 경연의 현장 평가단 점수는 방금 집계가 끝났는데요. 여기서 가장 많은 득표를 차지한 팀에게 다음 경연의 무대 순서를 정할 수 있는 베네핏을 드립니다!”
출연진들은 술렁이다 못해 얼빠진 표정들이었다.
“자! 그럼 곧바로 공개하겠습니다! 아까 전, 현장에 참여했던 300명의 평가단에게-”
MC가 손에 스위치를 들고 흔들었다.
“이 투표 스위치를 드렸는데요. 6팀의 무대 중, 3팀을 뽑으셨습니다!”
3팀 씩이나? 이건 우리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팬들 앞에서만 공지했나 보군.
그 순간, 내 뇌리에 섬광처럼 어떤 가정이 스쳤다.
……음, 설마.
나는 고개를 가로로 털었다.
스멀 스멀…….
근거 있는 불안감이 조금씩 엄습하기 시작했다.
“자, 우선 3위부터 공개하겠습니다!”
1등과 6등은 마지막에 공개하려는 듯, MC가 긴장감을 조성했다.
전광판엔 1위부터 6위까지의 이미지가 정리되어 있었고, 칸 안엔 [?] 이런 식으로 물음표가 들어가 있었다.
“3위! 155표를 획득한, 블랙보이즈!”
“이어서 4위! 130표를 획득한 올타임!”
MC의 목소리와 동시에 해당 그룹명이 슈웅, 하는 큰 효과음과 함께 등수 옆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5위! 125표를 획득한 러쉬!”
이 발표가 나오자마자 X됐다는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들어 오기 시작했다.
……설마 했더니 역시나, 3표 중 2표는 견제표로 들어간 게 틀림없다.
한 표는 본인의 아이돌에게 투표하고, 나머지 두 표는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가장 만만한 놈들에게 투표한 거다.
러쉬는 출연자들 중 가장 팬이 많은 데다가 이번 무대도 꽤 훌륭했다.
그런고로 여러 팬덤에게 견제당하느라, 표를 받지 못한 거다.
멤버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6위일 줄 알고 쑥덕거리고 있었다.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성해온의 정신력 덕분에 식은땀은 무슨, 심장도 평온하게 뛰고 있지만 말이다.
“자! 아직 호명받지 못한 팀은 라이트온, 스피디, 트웰브입니다!”
“이어서, 2위를 발표하겠습니다! 181표를 얻은, 2위의 주인공은!”
라이트온, 라이트온.
나는 속으로 라이트온의 이름을 되뇌었다.
“스피디!”
빌어먹을.
결국 이 구도가 만들어지는군.
“과연 현장에 참여한 팬들의 마음을 훔쳐 버린, 대망의 1위는! 어떤 그룹이 차지했을지!”
그런 멘트 그만둬 주길 바란다.
안 그래도 오늘 녹화를 본 팬들이 트웰브의 눈물 나는 으라차차 경연 소식을 떠들어댈 텐데, 이것까지 나가게 된다면.
질끈!
나는 차라리 두 눈을 거세게 감는 것을 택했다.
카메라엔 대충 긴장을 못 이겨 눈 감고 기도하는 놈쯤으로 나오겠지.
‘제발 6등.’
‘6등.’
“무려! 202표를 차지한 1위 팀! 6위를 차지한 팀과 무려, 95표 차이입니다!”
……다들 우리가 어지간히 만만했나 보군.
탁! 탁! 타탁!
나는 빠르게 주판을 굴리기 시작했다.
나름대로의 긍정회로였다.
팬덤 간의 물밑 공방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우리 무대가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내가 봐도 우리의 이번 무대는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완성도가 좋았으니까, 충분히 그렇게 비칠 만도 하다.
트집 잡는 사람들도 딱히 무대로 딴지 걸 건덕지는 못 잡을 거다.
……아마도?
하하.
그 순간, 나와 눈을 마주친 MC가 입꼬리를 올렸다.
“1위, 라이트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