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64화
“안 해.”
“야~ 해온이 영상, 그거 나도 기사에 떠서 봤다! 엄청나던데?”
구희승의 말에 최승하가 숟가락을 얹었다.
“진짜 형이 아니면 누가 해요?”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누군가를 지목했다.
“한수현.”
“갑자기 수현이는 왜요? 하지만 수현이의 의견도 구해볼까! 어떠니!”
최승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답이 날아왔다.
“싫어요.”
나는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넌 연기에 재능이 있어.”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동료의 재능을 꽃피워 주려는 아름다운 현장에 감동하며 200골드를 후원합니다!]
“……!!”
스쳐 지나가는 말에 한수현이 지나치게 움찔했다. 뭐지?
내가 하기 싫어서 둘러댄 것도 있지만, 이 녀석은 확실히 연기에 재능이 있다.
평소엔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다니는 녀석이 팬들 앞에만 서면 아이돌 자아로 돌변하는 걸 목격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이 녀석이 팬들 앞에서 보이는 모습은 연기가 아니다.
‘그건 100% 진심인 것 같거든.’
이유는 모르겠다만, 한수현이 팬들에게 보내는 애정은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멤버들 중에 연기시킬 놈을 꼽으라면, 역시 이 녀석이다.
‘잘할 거라는 믿음이 간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겨우 그런 이유였냐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합니다!]
“형이 하세요. 연기는 형이 잘하잖아요.”
안 된다니까.
……나는 진짜 안 되는 이유가 있어, 인마.
리테이크도 안 되는 무대에서, 오타쿠 자아가 코피라도 흘리면 그건 멸망 루트다.
그런고로, 난 무조건 이 녀석에게 넘겨야 한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동료애와 거리가 먼 당신의 간사한 마음에 경악합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흐뭇한 얼굴로 미소 짓습니다.]
“우리 중에 카메라가 켜지면 가장 달라지는 사람이 누구지?”
내 말이 최승하가 방긋 웃으며 손을 들었다.
“그건 아무래도 형이, 으브브븝-”
나는 녀석의 입을 틀어막으며 싱긋 웃었다.
“뭐라고?”
“수현이! 수현이가 카메라 앞에서 관리를 잘하는 편이죠.”
슬슬 입을 털어볼까.
“너네 수현이가 성격이 귀엽다고 생각해?”
내 말에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건, 아닌…….”
신유하가 고개를 천천히 젓자, 차윤재가 못 들을 걸 들었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게 귀여운 거면 이 세상에 귀엽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어휴, 저한텐 귀엽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정반대긴 하죠?”
“수현이는 나이만 어리지. 정신연령은 우리 중에 제일 높을걸.”
최승하와 류인까지.
나는 흡족한 대답들에 고개를 끄덕였다.
스으으-
그러고는 스마트폰을 꺼내 무언가를 조용히 읽어내렸다.
“수현이는 왜 이렇게 아기 토끼일까? 정말 너무 귀엽다. 수현이에 관한 고찰 시작하면 2박 3일 동안 주절거리기 가능할 거 같은데.”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의 잔혹함에 혀를 내두릅니다!]
“미친놈아 수현이는 햄스터라고 했잖아. 저 귀여운 얼굴과 사랑스러운 행동을 보라고.”
“……큭, 아 잠깐만. 타임, 타임.”
갑작스러운 공개 처형에 최승하가 웃음을 참느라 고통스러운 얼굴로 바닥을 두드렸다.
다른 놈들도 별반 다를 건 없는지 고개를 돌린 채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다 됐고, 수현이는 병아리다. 조용히 해라.”
“아니? 수현이는 말티즈다. 너네 같은 놈들과 친구라니. 지나온 내 인생이 통탄스럽-”
아직 읽어야 할 트윗이 산더미인데, 나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벌떡!
눈을 크게 뜬 한수현이 그 자리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
엄청난 수치를 느끼고 있는지 귀가 타들어 갈 듯 붉었다.
“……그만 읽어요.”
나는 정색하며 대답했다.
“네가 뭔데 내 입을 막으려는, 읍읍.”
내 주둥아리를 두 손으로 틀어막은 한수현이 고개를 푹 숙였다.
“할게요. 하면 되잖아요!”
히죽…….
진작 그럴 것이지.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2회 본방송 날이 밝았다.
1회 끄트머리에 나왔던 예고편이 워낙 놀라웠기에 라이트온 팬덤은 조금 들떠 있었다.
- 벌써 두근거림 어떡해
- 오늘 드디어 애들 무대!!
- 사실 반쯤 해탈함 MH에 뭘 기대해… 그냥 최소한의 자본이라도 들여줬으면
물론 회사에 대한 강한 불신으로 미리 체념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매일 똑같이 연습실에서 굴려지던 우리는 숙소로 향하고 있다.
- 형들 가고 싶으면 가세요. 저는 조금만 더 연습하다 갈게요.
이런 말을 내뱉는 놈도 끌고 왔고 말이지.
방송이 시작하기 전, 아슬아슬하게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씻고 거실에 모였다.
“……무대 반응, 좋을까요?”
차윤재가 조용히 읊조렸다.
음, 악플을 봤나 보군.
그건 무대가 나오면 알게 될 거다.
연예계만큼 비리가 넘치는 바닥도 흔치 않지만-
실력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바닥도 흔치 않거든.
우리가 방송국의 계획대로 화제성용 욕받이가 될지, 반대로 판도를 뒤집는 키가 될지는 우리에게 달렸다.
웅장한 로고의 등장으로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MC의 간단한 멘트 후에 곧바로 4번째 무대의 주인공인 올타임이 등장했다.
이런 프로그램의 묘미 중 하나는, 무대 중간중간에 편집으로 들어가는 출연진들의 반응이다.
이를테면-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의 가증스러움에 미간을 좁힙니다!]
“해온 형 저 때 무슨 생각 했어요? 진짜 무대 보고 감동받은 거예요? 음, 아님 진짜 우리한테 시킨 것처럼 연긴가? ……어떻게 저렇게 감동받은 얼굴이지?”
“역시 형님은 배우를 하셨어야…….”
“……천직.”
방금 짧게 보였던 화면 속 내가 잔뜩 감명받은 얼굴로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저때 아마 ‘아 지루한데 눕고 싶다’ 이딴 생각이나 했었던 것 같은데.
올타임 무대는 생각보다 실망스러웠으니까.
저 다음 무대가 우리라 인트로만 보고 대기실에서 나갔던 것 같은데 저걸 편집으로 써주네.
나를 제외하고도 멤버들의 얼굴까지 써주는 걸 보면서 나는 찝찝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이런 프로그램에서 리액션을 재밌게 잘해주는 출연진은, 시청자들에게 호감으로 인식되는 편이다.
- 라이트온 리액션 부자 ㅋㅋㅋㅋㅋㅋㅋ
- 아니 성해온 혼자 몇 인분의 리액션을 하는 거임? 다른 애들도 리액션 필사적이라 눈물 남 하 ssibal 우리 애들 성공해야 해요
- 아;;; 대기실에서 저렇게 귀여워도 되는 거임?
지금 이런 반응처럼 말이다.
Nnet이 아니었다면 그저 ‘감사합니다~’ 했겠지만, 나는 이 구렁이 같은 놈들을 믿을 수 없었다.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올타임의 무대가 끝나고, 카메라는 자비 없이 팬석의 공개 처형을 시작했다.
물론 입장 전에 방송 출연 동의서를 쓰게 했겠지만.
MC의 멘트에 이어서, 카메라는 곧바로 우리의 무대를 비췄다.
계단 최상부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이 어두운 무대와 대비되어 생각보다 더 만족스럽게 나온다.
“잘 나왔네.”
“그러게.”
내가 꺼낸 말에 류인까지 동조하자, 차윤재가 고개를 푹 숙였다.
‘별걸 다 부끄러워하는군.’
화르륵!
어지간히 부끄러운지 귀까지 타들어 갈 듯 붉어져 있었다.
그때, 힐끔 차윤재를 흘긴 최승하가 얼굴에 해사한 미소를 띠었다.
“와! 윤재야 너 너무 잘생겼다~!”
“……형님!”
나와 류인의 칭찬엔 입을 다물고 있던 녀석이 최승하의 능글거림엔 진절머리를 쳤다.
“왜, 진짜 모든 걸 걸고 너무 멋진데~ 떨어질 때 표정!”
최승하가 카메라에 클로즈업으로 잡혔던 녀석의 표정을 따라 하자, 차윤재가 경악하며 놈의 등짝을 후렸다.
“형! 형! 봤어요? 윤재도 수현이랑 같이 사춘기-”
억울하다는 듯이 눈빛을 보내오는 최승하의 얼굴을 밀어낸 채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
시답잖은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찼기 때문이다.
류인과 차윤재의 인트로 퍼포먼스가 끝나고 단숨에 메인무대에 도착한 최승하가 로브를 벗어 카메라 쪽으로 던지는 부분이 기가 막히게 편집이 됐다.
“……허.”
헛웃음이 절로 터져나올 정도로.
무대 자체는 우리가 했지만, 이런 편집적인 재간을 부리는 건…….
‘프로그램 측에서 힘을 쓴 거다.’
대체 왜?
이런 편집은 러쉬나 트웰브 같은 놈들한테 해주기도 모자랄 텐데?
솔직히 말하자면 일부로라도 편집에 손을 대서 무대 퀄리티를 너프시킬 거라고 생각했다.
스르륵-
화면을 가득 채웠던 어두운 색의 로브가 흘러내리자, 무대에 있는 라이트온에게 초점이 잡혀 점차 선명해진다.
잠깐 SNS 반응을 살펴보니, 팬들도 기대 이상의 퀄리티에 놀라워하고 있었다.
- Tq tlqkf 연출이랑 편집 미미미쳤니?
- 초점 맞는 순간 개안함
- 성해온 보컬 지렸다 처음부터 무대 몰입감 확 높여주네
└ 222 진짜 목소리만으로도 그게 되네
└ 해온이 보컬은 진짜 알아줘야 함 뽕 찬다 ㅅㅂ
- 스포 말대로 러쉬랑 얘네 무대가 제일 쩌네 ㅋㅋㅋㅋ
아, 우리 의상은 금실 자수가 놓인 화이트로 통일이었는데 역시나 세 명 정도 반바지를 입혔다.
물론, 내가 이 녀석들 모르게 뒤에서 강력하게 주장한 의견이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질색합니다!]
- 라또반 (라이트온이 또 반바지했다)
- 미쳤나
- 지금 밥숟가락 든 채로 정지함
- 의상 너무 귀여운데? 진짜 마법 아카데미가 있다면 그런 학교 교복일 거 같음
“음.”
의외로 반응이 좋은 파트가 하나 더 있었다.
보컬라인인 나와 신유하의 고음 파트에 이어 손에서 꽃잎이 흐드러지는 파트.
‘생각보다 반응이 좋은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그다지 별 반응이 없을 줄 알았다.
- 고음 ㅈㄴ 깔끔하다 요즘 성해온한테 눈길이 감 팬들한테도 잘하고 반바지도 잘 입어주고 노래도 잘하고
└ 중간에 이상한 게 하나 꼈잖아 경찰 아저씨 이 새끼 잡아가세요
- 누누누누가 꽃인데?
- 와 미쳤다 둘이 와꾸 궁합 ㅆㅅㅌㅊ
- 아니 뭐야? 진짜 마법으로 꽃 피워낸 것 같아
- 과몰입 오타쿠 실려가기 직전
게다가 신경을 많이 썼던 무대 사용에서도 긍정적인 평이 이어졌다.
- 또 무대 전환? 와 쟤네는 무대를 얼마나 잘 쓰는 거임 쩐다 ㄹㅇ 칼 갈았네
- 큰 무대도 잘 쓰는데 조잡함이 하나도 없음 그냥 감탄만 나온다
이윽고, 무대는 엔딩으로 달려가며 새까맣게 암전된 무대 위 오로라가 쏟아지듯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마법’이라는 키워드에 어울리는 신비로운 분위기의 멜로디에 그것이 곁들여지자, 그 분위기가 대단했다.
“……음, 생각보다 더 멋지게 나오네.”
류인의 말에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대를 준비한 우리조차도 이렇게 완성된 무대는 처음 보는지라, 여기저기서 작은 감탄사가 끝이질 않았다.
괴랄하게 얽히고설킨 멤버들을 비추던 카메라 앵글의 구도는 갑작스레 위쪽으로 향한다.
무대에 거대한 자색의 마법진이 펼쳐진 것이다.
공중으로 향한 카메라는, 그 마법진을 완전하게 담아냈다.
“……!!”
동시에 내 눈도 커졌다.
천장에서 바닥으로 쏴지는 마법진인 만큼, 공중에서 찍어달라는 건 우리가 프로그램 측에 요청한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놀란 이유는, 정말 그것을 온전히, 아니 예상보다 훨씬 더 잘 담아줬기 때문에.
게다가 편집은 또 어떻고?
마법진이 느릿하게 돌아갈 때마다 화면이 작게 지직거린다.
그와 동시에 노이즈가 섞여들며 판타지스러운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심지어 이건, 미리 프로그램 측에 오더한 부분도 아니다.’
수많은 의문만 남은 채 무대는 끝이 났고, 반응은 그러니까.
……음, 난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