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66화
“크흠, 흠! 너희가 이렇게 잘해낼 줄 알았다!”
연습실에 오자마자 대표이사실로 끌려왔다.
대표는 왜인지 모르게 뿌듯한 얼굴로 말을 잇기 시작했다.
“이 김명훈이는 알고 있었다고! 흐흠.”
내키진 않지만, 뭐라 대답을 하려는 차에 멤버들이 먼저 선수를 쳤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음, 이 녀석들 사회성이 점점 쓸 만해진단 말이지.
“크흠! 너희가 이렇게 잘해주니, 내가 아까운 게 없어!”
아하.
나는 바로 비즈니스용 미소를 걸친 채 입을 열었다.
“이게 저희 공인가요? 멋진 무대와 그걸 연마할 좋은 연습실을 제공해 주신 대표님 덕이죠.”
이 인간은 지금 이 말이 듣고 싶은 게 확실하다.
의외일 정도로 명훈이는 무대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놀라울 정도로.
무대가 화제 되고 있는 건 화려하고 감탄이 절로 나오는 무대장치도 한몫했다.
그리고 그런 부가요소는 회사에서, 즉 명훈이 주머니에서 나오는 거고.
재수 없는 건 재수 없는 거고,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다.
명훈이는 내 말이 그리도 듣기 좋은지 연신 입꼬리를 꿈틀거리고 있었다.
다른 놈들도 눈치 빠르게 말을 보태기 시작했다.
“정말 저희 무대가 제일 멋지지 않았나요? 다른 기획사보다도 멋졌습니다.”
한수현이 이런 말을 하다니, 사회생활이란 거 정말 무섭다.
“크흐흠!”
“저희가 정했던 컨셉을 200% 살려주는 무대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크흠! 크흠!”
“대표님의 은덕에 가, 감사드리는 마음입니다! 더욱더 정진하겠습니다!”
“흐흥, 크흐흠!”
“……가, 감사합니다.”
“흐흐흠!”
아주 좋아죽는군.
“정말 힘이 났습니다! 대표님! 하핫, 저희 다음 경연도 열심히 할게요!”
“크허흠, 흐흠! 큼, 큼!”
명훈이의 어깨가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올라갔다.
“허허허! 이 녀석들 좀 보게! 크흠, 내가 젊었을 땐 말이야!”
……그렇게 1시간 20분 동안 설교당했다.
빌어먹을 명훈이…….
감사하다는 말은 취소다.
“하아…….”
나는 엘리베이터 벽에 상체를 기댔다.
다른 놈들도 기가 제대로 빨렸는지 공허한 얼굴이었다.
어떻게 혼자 그렇게 오래 떠들 수 있는 건지, 솔직히 놀라울 따름이다.
연습할 시간도 부족해서 잠까지 줄이는 와중에 역시 눈치라곤 없는 인간.
주머니에 넣어뒀던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보니 10시 34분이었다.
“점심 먹고 들어갈까.”
나는 방금 받아온 명훈이의 카드를 흔들었다.
- 크흐흠! 이걸로 점심 맛있는 거 사 먹어라! 아니, 아니다. 너희 식대가 얼마지?
명훈이의 다음 말을 눈치챈 내가 잔뜩 아련한 얼굴로 입을 열었었다.
- 아 저희 끼니당 팔천 원…….
- 힘내야 하는데, 그걸로 얻다 쓴다냐! 자! 이걸로 맛있는 거 마음껏 사 먹거라!
- 아아, 아닙니다. 대표님 저희가 이걸 어떻게…….
- 스읍! 어른이 줄 땐 받아야 하는 거야!
대충 이런 상황으로 카드를 받아 왔다.
비싼 거 먹어야지.
“날씨가 아직 덥네요~”
최승하가 티셔츠를 펄럭거리며 웃었다.
“음, 그러게. 시원한 거 먹을까?”
류인의 말에 다른 멤버들이 하나둘씩 반응을 보였다.
“오~ 좋죠!”
“냉면 어떠십니까!”
“좋지.”
“저도 괜찮아요.”
“뭐든 얼른 먹고 들어가서 연습이나 해요.”
“형님은 냉면 어떠신가요? 별로라면 다른 메뉴도 괜찮-”
차윤재의 말을 끊어먹은 나는 어느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혀, 형님 여긴……!”
따라 들어온 차윤재가 잔뜩 곤란한 낯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는 곧바로 점원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희 저기 룸으로 들어갈게요. 소갈비 음, 6인분…….”
“아니, 9인분에 물냉면 6개 부탁드립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윤재가 드디어 미쳤냐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냉면 먹자면서.”
아연해진 차윤재가 속닥거렸다.
“……그거랑 이거랑 같습니까! 아무리 대표님이 카드를 주셨대도 이, 이건, 아닙니다! 저번에 한우도 먹지 않았습니까……!”
이 자식들이 정말 뭘 모른다.
너네 명훈이 지갑이 얼마나 두툼한지 알기나 해?
이 정도는 간지럽지도 않을 거라고.
게다가 출연시킨답시고 우릴 이렇게 굴려대는데, 매 끼니를 소고기로 먹어도 모자라다.
쯧쯧.
고막이 아플 정도로 명훈이의 일대기를 들어줬는데 한 그릇에 만 원도 안 될 음식이나 먹으려고 한다니.
착하다 못해 바보 같은 녀석들.
나는 태연자약한 얼굴을 걸치고 입을 열었다.
“대표님이 너희랑 소고기 사 먹으랬어.”
물론 그런 적 없지만.
* * *
식사를 끝내고 우린 곧장 회사로 돌아왔다.
“형! 오늘 연습하는 거 좀 찍는댔죠?”
최승하의 말에 고개를 대충 끄덕이며 연습실 문을 열었다.
요즘은 시간이 날 때마다 비하인드에 들어갈 연습 영상들을 조금씩 찍고 있다.
나는 어저께 연습용으로 받은 가짜 피 캡슐을 손에 쥐었다.
“이거 찍자.”
내 말에 한수현이 가장 먼저 질색했다.
“그건 무대 전날에나 맞춰보면 될 것 같은데요. 그다지 중요한 것도 아니고요.”
이게 중요하지 않다니.
저 뭣도 모르는 녀석 같으니라고.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흥미진진하게 바라봅니다!]
양심이 조금 아프긴 하지만 어쩔 수 없나.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아픈 게 맞냐며 의심합니다!]
“비하인드 영상엔 이런 게 들어가야 해.”
팬분들은 이런 거 좋아하신다고.
하지만 본심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기에 논리적인 헛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런 피 캡슐, 얼마나 신기하시겠어.”
사실 이딴 캡슐 쪼가리 사실 안 궁금해하실 거다.
“그럼 그냥 설명만 드리면 되는 거 아니에요? 굳이…….”
한수현이 곧장 냉철하게 지적해 왔다.
쯧, 성가신 놈 같으니라고.
“희승 쌤이 그러셨지, 이 퍼포먼스를 팬분들이 좋아하실 거라고.”
나는 천연덕스럽게 구희승을 끌고 오면서 말을 이었다.
“무대에서 보신 걸 비하인드에서 한 번 더 보면 얼마나 좋으시겠어. 게다가 이거 농도가 있어서 잘 흐르게 각도 연습도 필요하다고.”
[……그런가?(B)]가 발동됩니다!
한수현이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로 캡슐을 낚아챘다.
“그럼 얼른 하고 단체 군무 부분 연습해요.”
“이건 너 말고.”
“……?”
나는 녀석의 손에서 캡슐을 뺏어 류인의 손에 올린 뒤, 바닥에서 충전 중이던 캠코더를 손에 들었다.
멤버들의 황당하다는 시선이 모이는 게 느껴졌으나, 당연하게도 무시했다.
“자, 얼른 찍자.”
* * *
2차 경연 무대가 이틀 남았다.
아직까지도 SNS에서는 우리의 무대가 꽤 화제 되고 있다.
Nnet이 올린 무대 영상의 조회 수가 200만 회를 넘어섰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멤버들도 힘든 여정 속에서 꽤 즐거워 보였는데…….
‘이놈들은 대체 뭐가 문제지?’
망돌의 그림자를 가진 세 녀석 말이다.
그나마 차윤재는 그림자가 빠른 속도로 옅어지고 있었다.
85%에서 68%로 크게 떨어진 후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62%라니.
아직 위험 3단계인 건 변함없지만, 이 녀석은 왜인지 크게 불안하진 않다.
문제는 바로 이놈이다.
‘상태창.’
신유하를 응시하며 상태창을 속으로 읊자, 녀석의 상태창이 둥실 떠올랐다.
[신유하]
체력 C
정신력 D
비주얼 S-
노래 A-
춤 B+
※ 망돌의 그림자 수치 : 60%(*위험 3단계)
녀석의 상태창을 훑어본 나는 미간을 좁혔다.
갖은 개고생으로 그림자를 옅어지게 만들어놨더니, 그걸 원상 복구하다 못해 더 높아진 참담한 형태에 나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게 다 러쉬, 그 개자식들 때문인 것 같단 말이지.
으드득.
절로 이가 갈렸다.
그 새끼들은 내가 조질 거다.
‘감히 내 고생거리를 얹어주다니.’
상태창을 보면 알겠지만 이 녀석도 성해온만큼이나 상태창의 격차가 크다.
정신력이 D급인 것을 보라.
정말 유리 멘탈, 아니, 유리를 갖다 붙여도 되나? 유리는 나름 튼튼하다.
설탕 코팅 멘탈이라고 정정하겠다.
내가 확인한 바로는 러쉬 놈들 중에 비주얼 등급이 가장 높은 놈이 A-였다.
게다가 신유하는 노래와 춤도 빠지지 않는, 멘탈 빼고는 사기적인 캐릭터라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녀석을 방출시킨 INT엔터가 머저리같이 느껴질 정도로.
인터넷 등지에 떠도는 정보들을 취합해 봤을 때, 신유하는 러쉬의 데뷔조 멤버였다.
데뷔가 거의 확정인 상태에서 모든 지망생들의 꿈이라는 기획사를, 제 발로 나간다?
‘……음.’
아예 연예인에 뜻이 없어졌다면 모를까, 이렇게 명훈이의 소속사에서 데뷔한 걸 보면 그것도 좀 말이 안 되는데.
신유하 이 녀석은 촬영 들어가면서 RUSH를 마주쳐서 그렇다 치자, 이 녀석은 뭐지?
나는 곁눈질로 한수현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요지부동 수준으로 그림자가 꿈쩍도 않고 있다.
말 그대로 1%도 안 내려갔다.
42%, 그대로다.
정상적인 망돌이라면, 이 정도 화제성을 이끌어냈으면 기뻐하며 그림자도 좀 옅어지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더니, 미궁에 빠진 기분이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낄낄댑니다.]
쓸데없는 스팸 메시지들도 다 없애고 싶고.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의 언행에 대노합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점점 불손해지는 당신의 태도를 흡족해합니다!]
벽에 기대고 앉아 짜게 식은 눈으로 상태창이나 둘러보고 있었는데 구석에서 몸을 풀던 류인이 입을 열었다.
“오늘이지? U라이브 하는 거.”
류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가 Nnet에서 촬영 올 예정이다. 그 곡 컨셉 정하는 장면 촬영 말이다.
참고로 무대는 이틀 남았다.
작위적임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연스러운 연기는 우리 몫이지만, 뭐 방송국 내부 일로 늦어졌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
방송에 나오는 촬영이니만큼, 간단한 메이크업을 받기로 했는데 그런 김에 U라이브를 켜기로 했다.
마침 팬분들께 알릴 것도 있고.
갑작스러운 천상천하 특성 발동으로 인해 난데없이 눈물 흘린 정신 나간 놈이 되고 나서는, U앱을 켜지 않았다.
안 그래도 때문에 팬들이 여간 스트레스받는 게 아닐 텐데, U라이브를 켜면 일부 밀리어스 악성 팬들이 몰려와 싸움에 기름을 부을 게 뻔하니까.
그래서 멤버들이 그렇게 자주 올려도 되냐고 할 정도로 SNS에 멤버들 사진만 올려대며 소통을 이어갔었다.
근데 이제 슬슬 때가 됐다.
시비를 부치던 팬들도 요즘은 시들해졌고, 뭣보다 우리도 이제 만들기로 했거든.
공식 팬클럽.
으로 인해 팬덤 유입이 급물살을 탄 이 시점이 적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