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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67화 (67/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67화

나는 바쁘게 촬영 준비를 하고 있는 제작진을 바라봤다.

저놈들, 사전에 이야기했던 시간보다 무려 2시간 가까이 연락도 없이 늦었다.

우리를 굉장히 물로 보는 태도였지만, 이미 익숙해져서 놀랍지도 않았다.

“다행히 염색 새로 하신 분 없으시네요~”

스태프가 우리를 아래위로 훑으며 작게 말했다.

“자, 그럼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짝!

슬레이트를 대신하는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자마자 입을 연 건 나였다.

“에스더블비 선배님의 , 먼저 볼까?”

가식적인 얼굴로 영상을 누르자 살색의 향연이 펼쳐졌다.

“와우, 섹시~ ……이걸 저희가 할 수 있을까요?”

적당히 예능감 넘치는 뉘앙스로 심각해진 얼굴의 최승하가 말을 잇자-

“저, 저희도 할 수 있습니다! 섹, 섹시!”

“할 수 있, ……습니다.”

차윤재와 신유하의 멘트 후, 한수현이 입을 열었다.

“……블랙보이즈 선배님들.”

촬영 직전, 스태프들이 지정해 준 몇 개의 대사가 있다.

‘블랙보이즈 선배님들~ 각오하세요!’라는 패기 넘치는 멘트를 주문받았는데, 이거 편집 조금만 들어가면 우리가 블랙보이즈 무시하는 것처럼 나올 수도 있다.

한수현이 뒷부분 대사를 끝내려는 듯 입을 열었다.

“각ㅇ-”

겨우 한 글자를 내뱉자마자 내가 말을 채갔지만 말이다.

“각 잡은 섹시, 저희도 도전해 볼 테니까! 저희 무대도 기대해 주세요!”

이 정도면 대충 섹시 아이콘인 선배님들을 존경하는 후배 그룹처럼 나오겠지.

스태프들도 딱히 악편 각을 잡으려고 시킨 게 아니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업계라는 게, 편집을 총괄하는 사람 손끝 하나로 이미지가 망가질 수 있다 보니 이런 건 조심해서 나쁠 거 없다.

아니, 애초에 이상하게 들어갈 것 같은 편집점은 제공조차 해주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음, 등이 따갑군.’

한수현이 자신의 말을 냅다 잘라먹은 나를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 * *

한껏 작위적인 촬영을 끝마치고, 우린 연습실에 모여 U앱을 켤 준비를 마쳤다.

“켤게?”

류인이 손가락을 화면에 가져다 댄 채로 우리를 바라봤다.

[ LIGHT ON ] ●라이브 시작

크흠! 크흠! 오늘은 중! 대! 발! 표! 가 있겠습니다!

꽤나 명훈이가 떠오르는 말투지만 최승하가 쓰니 나름 괜찮아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저희 잘 켜졌나요? 목소리 잘 들리세요?”

- 안녕

- 잘 들려 잘 들려!

- 저 오늘 생일이에요! 해온아! 생일 축하해 줘!

“와아, 생일 축하드려요.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중대 발표가 뭐야!!!!!

나는 라이브 입장 추이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전에 켰던 라이브에 비해 접속자 수가 배로 늘었다.’

* * *

같은 시각, 난데없이 울린 U앱 알림을 본 곽덕배는 심장이 덜컥 주저앉는 것을 느꼈다.

“주, 주주주중대 발표?”

뭐지? 혹시 새 앨범? 아니, TTT 촬영 중이니까 그건 아닐 텐데.

“……호, 혹시 팬미팅?”

“이 오타쿠 새끼 말 떠는 거 봐라…….”

절친한 인터넷 친구들과 함께 카페에서 케이팝 굴러가는 이야기나 하고 있던 곽덕배는 떨리는 손으로 이어폰을 꼈다.

“쟤 지금 우리랑 있는 걸 잊은 거냐? X나 자연스럽게 이어폰 꺼내 끼는 것 좀 봐.”

“놔둬……. 과몰입 오타쿠는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야.”

[ 여러분! 오랜만이에요! 오늘 엄청 많이 들어와 주시네요. 아~ 왜 이렇게 오랜만인 것 같지? 매일 켤 수도 없고! 매일 켜면 질리시겠죠? ]

친구들이 뭐라고 하던 화면에 집중한 곽덕배가 입을 틀어막았다.

‘제발 매일 켜줘…….’

너네 얼굴은 맨날 봐도 안 질리고 새롭단 말이야.

뒤이어 성해온이 수줍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 저희 무대 보셨나요? 누구보다 팬분들 맘에 드셨으면 좋겠어요. ]

흐음.

분명 데뷔 초엔 생긴 대로 시크한 느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팬 사랑이 지극해졌단 말이지.

앙큼한 녀석, 저 귀여운 성격을 1년 넘게 숨겨왔다니…….

“곽덕배, 저거 거의 울면서 댓글 쓴다…….”

“그 와중에 타자 빠른 것 좀 봐.”

타닥! 타닥! 탁 타다닥!

곽덕배는 친구들의 수군거림을 무시한 채 댓글창에 찬양 글을 도배하고 있었다.

유입이 늘긴 늘었는지, 댓글도 쉴 새 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예전엔 댓글 사라지는 속도가 정말 느렸는데, 지금은 애들이 읽기 힘들겠다 싶을 정도로 속도가 빨라졌다고나 할까.

- 너무 좋았어 진짜 최고 최고

- ㅠㅠㅠㅠㅠ

- 너희를 알아서 우리도 너무 행복해!

- 기절초풍이었어 얘들아

- (엄지 척 이모티콘) (하트 이모티콘)

- eng plz

그 덕에 악플도 빠르게 휩쓸리고 있었다.

‘그만큼 계속 올라온다는 것도 문제지만.’

- 못생겼다

- 얼굴 ㅆㅎㅌㅊ (토하는 이모티콘)

- 하차해 하차해 하차해 하차해

- 으 더러웡

이전엔 밀러스 정병들이 판을 쳤다면, 이제는 솔직히 밀리어스 팬인지, 러쉬 팬인지, 트웰브 팬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었다.

왜냐, 라이트온은 지금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동시에 동네북이기도 하니까!

곽덕배는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동네북 처지는 굉장히 서글펐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판도가 뒤바뀌었다.

움츠러들었던 것도 옛일!

‘……아마도!’

무대 직후엔 팬들의 기가 살아났기 때문에 이따위 악플은 간지러울 수준이었다.

너네가 아무리 짖어봤자 우리 애들은 잘생긴 주제에 무대도 잘한다고.

“뭐야? 쟤 갑자기 왜 혼자 웃어? 무섭게…….”

그때 곽덕배가 이어폰을 빼고 친구들을 바라봤다.

“어? 해성아, 뭐라고?”

“아냐, 아냐. 얼른 다시 봐. 쟤 이름이 신유, 뭐였는데, 걔 뭐라 말한다.”

팬들 사이에서도 말수 없는 걸로 유명한 신유하가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했다.

[ 무대 할 때 그…… 인이어를 끼는데, 응원 소리가 들렸어요. 정말 힘이 나고, 뭔가…… 기, 뻤습니다. ]

- 뭐야? 뒤에 조명 있어요? 후광 비치는데

- 유하 짱이야 최고야 사랑해

- 유하야 역겹다 ㅎㅎ

- 망돌 데뷔하더니 정신도 조졌누

곽덕배는 이를 바득 갈았다.

‘이런 정신 나간…….’

굴러가면서 봐도 이건 러쉬 정병이다.

다행히 댓글은 몇몇 멤버들만 보고 있어서 다행이지.

차윤재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곧바로 말을 이었다.

[ 유하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도 팬분들의 목소리가 들리니까 갑자기 더 힘이 나는 것 같고, 아니, 힘이 났습니다! 확실히 났습니다! ]

- 윤재야 진짜 멋졌어

- 연기 짱이었어 ㅠㅠㅜ 떨어질 때 안 무서웠어?

[ 윤재 떨어질 때 안 무서우셨냐는데? ]

용케 류인이 댓글을 읽자, 최승하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

[ 팬분들도 비하인드 보셨나요? 윤재가 얼마나 다리를 파들파들 떨던지! 하핫! 그래서 못하겠으면 편하게 말하라고 했는데, 우리 윤재가 얼마나 대단한 애냐면~ ]

‘하 미쳤나?’

화면 속 최승하는 차윤재를 무슨 애착 인형처럼 끌어안은 채로 머리칼을 쓰다듬고 있었다.

‘잘생긴 놈들이 훈훈한 짓까지 하니까 두 배로 훈훈하네…….’

질색하며 밀어낸 차윤재가 시뻘게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 그, 그만 놀리십시오! 정말 처음에만 무서워했고 다음부턴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

[ 알죠, 알죠. 윤재 정말 잘했어요. 그쵸? ]

류인의 말에 댓글창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 완전 끝내줬지 윤재가 짱이야

- 걱정했는데 역시 무서웠구나 ㅠㅠㅠ 무대도 좋지만 건강 챙겨 얘들아

[ 건강 꼭 챙길게요. 팬분들도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셔야 해요. ]

- 해온아 사랑해

- 할미는 건강 빼면 시체야…….

- 재수 없으

- 그래 봤자 라이트온 1등 못 함

- 애쓴다 망돌~

- 나는 말레이시아 팬입니다. 우리의 말을 할 줄 아십니까?

- 라이트온은 최고의 아이도루입니다

그때 성해온이 카메라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 저희 사실 팬분들께 깜짝 공지를 할 게 있는데요. ]

애초에 U라이브 제목이 ‘중대 발표’였기에 초반부터 댓글에 오늘 무슨 일이냐 묻는 말들이 많았는데, 지금에서야 화두를 내뱉은 것이기 때문에 댓글창이 빠르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 잠만 얼굴 공격 너무 너무인데 ㅅㅂ 너무 잘생김

- 뭐야!!!

- 깜빡이 켜고 들어와 주세요

- 뭔데 뭔데

- 너희 얼굴 보면 항상 깜짝 놀라는 게 우리 일인데 또 놀랄 게 있어…?

- 제발 알려줘 싹싹 빌게

[ 하핫! 왜 비세요? 팬분들은 절~ 대 어디 가서 빌지 마세요! 해달라는 거 다 해드릴 테니까요! ]

“……미친, 미친놈.”

곽덕배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최승하 이 좋은 의미로 미친놈…….

[ 맞아요. 팬분들은 절대 빌지 마세요. 필요하면 저희한테 말해주세요. 저희가 대신 빌게요. ]

‘성해온도 미친놈이네…….’

- 그래서 중대 발표가 뭐야 얘들아

- 빨리 알려주라 애탐 ㅠㅠㅠ

- 못생

- 라이트온 착한 줄 알았는데 내 심장 쫄깃하게 만드네

[ 아마 팬분들이 가장 많이 기다리셨을 건데요. ]

- 혹시 콘서트? 라기엔 곡이 없는데

- 다음 앨범 스포인가?

- 설마 설마 설마 설마? 내가 생각하는 건가?

화면 속 성해온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 아, 콘서트는 안타깝지만 아직. 으음. 뭐냐면, 저희 공식 팬클럽이 만들어진대요. 가장 먼저 소식 전해 드리고 싶어서 U앱 켠 거예요. ]

동시에 댓글창이 뒤집어졌다.

- ????????????

- 진짜???

- 와 ㅅㅂ드디어 ㅠㅠㅠㅠ

- 진짜 중대 발표였네ㅋㅋㅋㅋㅋ

- 나 지금 그냥 브레이크댄스 추고 있어 너무 좋아서

- 1빠로 가입해 줄게 ㅇㅇ

“야야, 곽덕배 왜 저래?”

곽덕배도 예외는 아니었다.

충격적인 소식에 입도 다물지 못한 채로 굳어버린 곽덕배는 생각에 잠겼다.

라이트온에 입덕한 지 어언 1년 반, 이 팬덤의 고인물들은 자연스럽게 한을 처먹을 수밖에 없었다.

정신 나간 데뷔곡!

정신 나간 공백기!

정신 나간 회사!

다른 팬덤이었다면 일찍이 회사 측에 항의를 하든가 했겠지만 멸망 트리플 악셀을 겪은 라이트온 고인물들은 그저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갑자기 공식이라니.

‘명훈이 미친 새끼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구나……!’

그때 류인이 입을 열었다.

[ 저희 공식 팬클럽 명 말인데요. ]

두근, 두근.

심장이 뛰는 게 느껴졌다.

그만큼 기다려 왔던 것이기 때문에.

곧이어 들려오는 한수현의 멘트에 곽덕배의 동공이 확장됐다.

[ 사실 저희가 정하려고 했는데, 그것보다 팬분들이 정해주신 이름을 쓰고 싶어서요. ]

- 수현아 ㅠㅠㅠㅠㅠㅠ

- 오늘부터 대가리 참기름처럼 쥐어짜 내볼게

- 우리 애들 팬사랑 어떡해요….

[ 맞아요! 팬분들이 좋은 게 저희도~ 좋으니까요! ]

“미쳤나, X발. 얘네 효자야.”

[ 소중한 팬덤명은 여러분과 같이 정하고 싶기도 했고요. ]

쾅!

난데없이 벽을 주먹으로 가격하는 곽덕배에 주변 친구들이 수군거렸다.

“뭐야? 걔네가 네 댓글 읽어줬어?”

“조용히 난리 치는 거 보니까 그런 거 아님?”

하지만 곽덕배에게 그런 말들이 들릴 리 없었다.

[ ……같이 고민해 주시겠어요? ]

“X발, 당연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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