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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71화 (71/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71화

강렬한 힙합 베이스의 기타 선율이 섞이며 분위기가 반전된다.

류인이 입은 포엣 셔츠에 어둑한 하늘과도 같은 조명이 스며들었는데, 그게 소름 돋을 정도로 잘 어우러졌다.

특유의 퇴폐적인 분위기와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난간에 걸터앉아 있던 류인이 자신의 손을 유심히 바라보며 노래를 시작했다.

- 달빛이 서린 밤

moon light its alright

매력적인 중저음 보이스로 읊듯이 시작되는 가사.

탓-!

난간에서 뛰어내린 류인이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중앙 무대로 향한다.

한수현이 위치한 무대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조명은 피처럼 검붉은색으로 뒤바뀌었다.

붉은 조명은 정육점에나 어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곽덕배의 편견이 실시간으로 부서지고 있었다.

‘……그냥 얼굴이 잘생기면 무지갯빛 조명을 쏴도 괜찮구나.’

갑작스레 진리를 깨달아버린 곽덕배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긴 다리만큼 넓은 보폭으로 중앙 무대에 손쉽게 도달한 동시에 암전됐던 중앙 무대에 스포트라이트가 내려왔다.

사제복을 입고 있는 한수현은 아직도 무릎을 꿇고 십자가를 손에 든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기도하고 있는 건가?’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뭐라 중얼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위태로운 분위기를 대변하듯, 조명이 간헐적으로 깜빡이며 긴장감을 더했다.

한수현 주위를 유려하게 맴돌며 매력적인 독무를 선보이던 류인이 별안간 한수현의 턱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곽덕배는 날아가려는 정신을 애써 붙잡았다.

한수현은 이제야 류인의 정체가 보인다는 듯이 내리감았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류인이 자세를 낮춰 큰 손으로 한수현의 턱을 붙잡고 뱀처럼 배회하며 다음 파트를 소화했다.

- 하나 되는 그 순간

Turn off the light

원곡에선 이 파트에, 에스더블비 멤버 전원이 상의를 끝까지 끌어 올려 복근을 자랑하며 몸을 꿀렁인다.

하지만 라이트온은, 그러니까 류인은, 미친.

‘하나 되는 그 순간’ 이 파트에서, 한수현의 목을 물었다.

뱀파이어가 떠오르는 의상을 입었을 때부터 어렴풋이 이런 장면을 기대하긴 했지만, 일반인도 아니고 사제의 목이라니.

설정 과다다.

오타쿠의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게 느껴졌다.

노래에 옅게 스며든 콰득, 소리와 함께 류인이 문 한수현의 목에서 진득한 피가 흘러내렸다.

300명의 오타쿠들도 놀란 듯 간헐적으로 숨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중 아마 제일 놀란 건 과몰입 오타쿠, 곽덕배다.

‘와…… X발.’

더 미치겠는 건 무려 목이 물릴 때 한수현의 왼쪽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는 거다.

인공 눈물인지 진짜 눈물인지 모를 일이지만, 정신 나간 천재 연출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

목을 무는 퍼포먼스와 동시에 조명은 꺼졌고, 다른 무대에 조명이 들어옴과 동시에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멜로디가 무대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곽덕배는 벅차오름으로 혼절 직전이었다.

사이드 무대엔 꽤 큰 사이즈의 피아노와 성해온이 있었다.

공간을 가득 메울 만큼 화려한 오케스트라 사운드 위에 사랑에 빠진 선율의 피아노 소리가 얹어지기 시작했다.

성해온은 웃는 얼굴로 노래를 부르며 피아노 건반을 두드렸다.

- Umm, 이런 기분 처음이야

중독될지도 모르겠는 Feeling

심지어 피아노, 저거 진짜 치는 것 같은데?

곽덕배는 손을 들어올려 팔을 슥슥, 쓰다듬었다.

엄청난 연출에 소름이 돋은 것이다.

방금 전, 류인과 한수현의 퍼포먼스가 워낙 강렬했던 탓에 이후가 심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고막을 가득 메울만큼 화려한 사운드들과 그 균형을 잡고 있는 성해온의 보컬은 곽덕배를 소름돋게 만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 발랄하고 달콤한 분위기의 음악을 연주하던 성해온이 연주를 멈추고 고음 파트를 소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 모든 감각들이 깨어나

새로운 느낌인걸

동시에 곽덕배는 입을 틀어막았다.

‘블루베리가 이렇게 천재여도 되는 건가? 연구소 끌려가는 거 아냐?’

과몰입 오타쿠답게 굉장한 주접을 무의식적으로 꺼낸 곽덕배가 멍한 얼굴로 시선을 고정했다.

‘성해온 얘는 진짜…….’

감탄만을 일으킨 성해온의 파트가 끝남과 동시에, 여러 개의 피아노 건반이 눌리며 발생한 굉음이 스튜디오 내에 울려 퍼진다.

그리고 다시금 중앙 무대, 사이드 무대에 있는 성해온을 제외한 멤버들이 군무를 시작한다.

잘 뻗은 팔다리를 200% 활용하는 일사불란한 군무에 곽덕배는 입이 열려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튀는 사람 하나 없이, 순식간에 바뀌는 대형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 난 원래 반짝이는 걸 좋아하거든

그래서 너여야만 해

원곡 특유의 끈적한 느낌은 온데간데없이, 신유하의 청아한 음색이 섞여든 파트는 감탄 그 자체였다.

유리구슬처럼 깨끗한 음색이면서도, 관능적인 멜로디와 어우러지니 마냥 순수하지도 않을 것 같은 묘한 분위기였다.

- 이 갈증을 풀어야만 해

어느새 무대에 합류한 성해온이 신유하의 고음을 넘겨받았다.

‘아니, 저 옷 너무 잘 어울리는데.’

성해온의 얼굴 자체가 약간 창백한 느낌이라, 저 착장이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게다가 멤버들이 움직일 때마다 아름답게 나풀거리는 실크 재질의 옷자락은 어떤가.

곽덕배는 아찔해지려는 정신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오늘 무대는 전체적으로 어둑한 느낌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무대에 환한 조명이 한 줄기 들어온다.

파앗-

그와 동시에 차윤재가 멤버들의 등을 밟고 올라타 빛을 향해 팔을 뻗는다.

- 갈증이 채워지지 않아

메마른 갈증을 채워줘

팔을 곧게 뻗었으나, 그의 손끝은 끝내 빛에 닿지 못한다. 믿기지 않는 천재 연출이었다.

‘……코어 힘 뭔데!’

일반인 같으면 벌써 상체가 넘어지고도 남았는데, 코어가 얼마나 단단한지 기울인 상체 그대로 팔을 뻗는 차윤재를 보며 곽덕배는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감상도 잠시, 엎드려 있던 최승하가 눈 깜짝할 새에 바닥을 쓸며 큰 동작으로 독무를 시작했다.

멜로디는 한층 더 거세졌으며 귀에 박히는 선율 악기 소리가 더해지기 시작했다.

‘……바이올린!’

안 그래도 웅장한 분위기인데, 바이올린 특유의 민첩성으로 화려한 기교까지 더해지자 분위기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 U-Umm, Umm, Ummm

붉은 조명이 아슬아슬하게 깜빡이며 최승하를 비췄다.

“……!!”

곽덕배는 시선을 빼앗겼다.

평소의 최승하와는 완전히 달랐다.

낮은 포복 자세로 눈만 치켜드니 소름 돋을 정도로 매서운 분위기였다.

평소 분위기를 알고 있는 곽덕배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짐승처럼 바닥을 기던 최승하의 손가락이 바닥을 긁음과 동시에 바이올린의 ‘끼익!’ 소리가 귀를 강타할 정도로 크게 섞였다.

쿵, 쿵.

시각과 청각 모두 흥분시킬 만큼 강렬한 자극에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뛰는 게 느껴졌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틈도 없이 한수현의 단독 파트가 찾아왔다.

- 하나 되는 그 순간

Turn off the light

초반부 류인이 했던 파트를 하니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그가 좀 전까지 사제복을 입고 있었어서?

아니, 아니다.

지금 한수현은 감정 자체가 없는 메마른 얼굴이었다.

살아 있는 게 아닌 것 같은……!

동시에 웅장했던 멜로디에서 오케스트라의 비중이 옅어지고 있었다.

점차 서정적인 느낌으로 변주되는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한, 느릿한 안무를 소화하며 성해온이 고음을 내질렀다.

- 더 깊게 갈망하고 탐해

들이켜도 한참 모자라

삑사리가 나도 그럴 만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높은 고음 파트.

……성해온은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소화하고 있었다.

심지어 안무를 위해 몸까지 움직이면서!

두근, 두근, 두근.

계속해서 휘몰아치는 무대에, 곽덕배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성해온의 파트가 끝남과 동시에, 무대를 비추던 조명들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

갑작스레 어두워진 공간에, 300명의 방청 인원이 모두 물음표를 띄우고 있을 무렵이었다.

곽덕배의 동공이 확장됐다.

“……!!”

소거되었던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클라이맥스에 도달했다는 듯이 화려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전의 마냥 웅장하고 화려한 느낌이 아닌, 듣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음률이었다.

휘몰아치는 오케스트라 사운드 속에서 모든 멤버들이 다시 한번 군무를 시작한다.

정말 군더더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군무였다.

몰아치던 클래시컬한 사운드가 점차 사그라들고, 멤버들 뒤에 있는 전광판이 켜짐과 동시에 모든 무대가 어둑해졌다.

‘……동화?’

대형 전광판엔, 그러니까 동화에나 나올 법한 그림체로 짤막한 애니메이션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배경음악은 새가 지저귀고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는 이상할 정도로 평화로운 멜로디.

그림 속 소년은 빛나는 신의 품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다.

‘와, 와아, 설마, 설마?’

그림 속 소년은 빛이 날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신을 상징하는 듯한 환한 빛 속으로 뛰어가며 영상은 끝이 났고, 동시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수현의 목소리였다.

동화 같았던 영상이 끝난 뒤, 검은색으로 뒤덮였던 전광판엔 어느새 거대한 보름달이 떠 있다.

어두운 무대 위, 보름달에서 흘러나오는 어슴푸레한 빛이 내려앉은 무대를 본 곽덕배는 경악했다.

그러니까, 지금 류인은 무대에 나른하게 앉아 있었고…… 그 뒤에 선 한수현은 류인의 목에 검은 천을 둘러 조이고 있었다.

감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무감정한 낯으로.

- 달빛이 서린 밤

Moon light its alright

그리고 더 경악스러운 건.

‘웃, 웃어?’

류인은 웃고 있었다.

완전하게 끊긴 멜로디와 함께 무대 아래에선 한 템포 늦게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악-!”

주체할 수 없는 흥분감에 곽덕배의 사고 회로가 정지되었다.

뱀파이어를 차용한 무대는 떠올리기도 귀찮을 만큼 많이 봤지만, 이렇게 여운을 남김과 동시에 소위 말하는 뽕을 채워주는 무대는 아주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곽덕배의 바로 옆, 라이트온 야광 스틱을 손에 든 블랙보이즈 팬 근돌은 멍하니 텅 빈 무대를 바라봤다.

‘이 새끼들, 미쳤나?’

사랑하면 과격해지는 특징이 있는 근돌은 내면의 욕과 다르게 열심히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녀의 최애 취향은 곤란할 정도로 항상 같았다.

근육남, 그런 근돌에게 블랙보이즈는 단비 같은 그룹이었다.

‘블보에 뼈를 묻어야 하는데……!’

평소 다른 친구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에겐 ‘호리호리한 놈들 무슨 매력으로 빠냐?’라고 말하던 근돌은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류인이나 최승하(이미 모든 멤버의 이름을 외우고 있다)는 체격이 크고 몸이 두껍긴 하다만, 요즘 사람들 취향에 맞는, 소위 말해 잔근육 느낌의 슬렌더 체형이다.

근육 빵빵남 외길을 걸어온 근돌에게 웬만한 남돌은 걸어 다니는 멸치쯤으로 보였는데, 라이트온은……!

휙! 휘익!

근돌은 고개를 거세게 저었다.

‘정신 차려. 내가 산 블랙보이즈 굿즈만 얼마어치지?’

집 가서 블랙보이즈 근육 영상을 보며 이 악귀를 물리쳐야지.

……물리칠 수 있겠지?

근돌은 아득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 * *

무대에서 내려온 멤버들이 숨을 몰아쉬었다.

이번 편곡은 군무 파트가 꽤 긴 데다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안무가 다수 포진되어 있었다.

땀방울을 매달고 거친 숨을 쉬고 있지만, 다들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하아, 오늘 팬분들 함성 정말 컸죠! 저번보다, 하, 더 큰 것 같은데!”

나는 최승하에게 물병을 건넸다. 숨이나 제대로 쉬고 말해라.

“감사, 합니다!”

우리가 마지막 무대였던 데다가, 오늘은 추가 촬영도 없기에 바로 퇴근이었다.

땀을 닦고, 퇴근 준비를 마친 뒤 밖으로 나서자 모여 있는 인원이 보였다.

‘퇴근길을 찍으시려고 모이셨군.’

건장한 남성들도 다수 포진해 있는 걸로 봐선 팬 이외에 데이터 팔이 용도로 기다리는 사람도 있는 모양.

아마 러쉬 같은 놈들은 데이터도 비싸게 팔릴걸.

‘우린 아니겠지만.’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하며 밖으로 나선 순간이었다.

차차차차차차착!

플래시 터지는 소리가 빠른 속도로 맞물려 들려왔다.

“……?”

나는 서둘러 주변을 살폈다.

우리밖에 없는데.

아, 그런 건가 보군.

멤버들은 아직 이런 관심이 어색한지 잔뜩 뚝딱거리며 걷고 있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왜 또 기분 나쁜 표정을 짓고 있냐고 묻습니다!]

히죽…….

손으로 입을 가린 나는, 서둘러 입매를 정돈했다.

지금 라이트온 주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거든.

“유하야악!!! 사랑해!!!”

앞줄에 서 있는 사람이 냅다 소리를 질렀다. 저 카메라 꽤 비싼 기종인데, 렌즈도 그렇고.

‘신유하 홈마인가?’

갑작스러운 사랑 고백에 신유하가 어버버거리며 허리를 꾸벅 숙였다.

나는 그런 신유하를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아주 카메라에 뒤통수만 나오겠군.

나는 신유하의 등을 잡아 끌어 허리를 툭툭 쳤다.

상체나 세우라는 뜻이었다.

이렇게 굽신대고 있으면 사진이 제대로 찍힐 리 없지.

“웃어.”

속삭이듯 귓속말을 건네자, 신유하가 몸을 파드득 떨더니 이내 고개를 들고 입꼬리를 조금씩 끌어 올렸다.

음, 역시 이 녀석들은 한참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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