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73화
체감상 인파가 모여드는 느낌이라 서둘러 역을 빠져나왔다.
“우리 나온 김에 뭐 먹고 들어갈까.”
류인의 말에 다들 무얼 먹을지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의외의 인물이 입을 열었다.
“……저, 근처에.”
굉장히 작은 목소리라 아무도 듣지 못한 듯 갸웃거렸고 최승하가 고개를 낮추며 되물었다.
“으응? 유하야, 뭐라고?”
“……근처에 아, 아는.”
평소 입 여는 일이 드문 신유하의 발언에 모든 시선이 녀석에게로 몰렸다.
“식당이 있는데……. 맛있고.”
안 그래도 작은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갔다.
혹시라도 민망할까 바로 고개를 끄덕였는데, 신유하가 손을 파닥거리며 말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그, 그냥 말 꺼내본 거라 아무 데나, ……정말, 아, 무 데나 가도, 괜, 찮-”
참고로 나는 이 녀석이 이렇게 말 빠르게 하는 거 처음 본다.
“맛있다는데 무조건 가야지~ 가자! 거기 이름이 뭐야?”
“맞습니다! 지금은 돌을 씹어 먹어도 맛있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그냥 배만 채우면 되는 거죠. 얼른 가요.”
신유하의 안색이 희끄무리하게 질렸다.
“……새, 생각해 보니, 다, 다른 사람 입엔 안 맞을 수도…….”
정말 소심하군…….
나는 신유하의 어깨를 두드렸다.
“가자. 애들 말대로 뭘 먹어도 맛있을 것 같네.”
김민성도 말을 얹었다.
“맞아~ 얘들아~ 매니저 형 배가 등에 달라붙겠다. 얼른 가자~”
붙든가 말든가.
쯧쯧…….
* * *
신유하가 데려온 불고기 백반집은 정말 역사와 가깝기도 했고, 뭣보다 맛있었다.
“와! 진짜 맛있는데?”
최승하가 가장 먼저 감탄사를 내뱉자-
“그러게. 맛있다.”
“맛있네요, 형.”
맛있다는 칭찬이 이어졌고, 정작 이 집을 소개한 장본인인 신유하는 테이블에 꿀이라도 발라놓은 듯 고개를 박고 있었다.
……저렇게까지 쑥스러울 일인가.
이 집은 연예계에서도 소문난 맛집인지, 벽면에 연예인 사인들도 널려 있었는데-
……음?
자세히 보니 대부분 INT 소속 연예인들이다.
아아, 여기 근처에 그 회사 사옥이 있었던가.
식사를 끝내고 계산할 무렵,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신유하에게 말을 걸었다.
“어머, 잘생긴 총각! 맞지?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와! 자주 오더니! 너무 안 와서 나는 걱정했네!”
“……아, 사정이.”
척 봐도 곤란해 보이는 녀석에게 도움을 주려던 찰나, 최승하가 먼저 선수를 쳤다.
“너무 맛있었어요. 사장님! 저희 나중에 또 올게요.”
“호호, 다음에 오면 서비스 팍팍 줄 테니까 꼭 와요~? 총각인 거 알았으면 진즉 서비스 줬을 텐데, 더 훤칠해져서 긴가민가했네! 머리카락도 이렇게 밝아지니까 딴사람 같아!”
“……감, 사합니다.”
식당에서 나와 숙소로 이동하는 길에 나는 SNS를 살폈다.
역시 후기 글이 올라와 있었다.
아까 들리던 카메라 소리, 역시 우리를 알아본 사람이었군.
- 라이트온 떠난 지 시간 좀 돼서 올립니다!
20분 전쯤에 여기 광고 앞에서 사진 찍고 갔어요~ (사진) (사진)
- 저도 오늘 보고 긴가민가했는데 역시 연예인이네요!
강남역에서 봤습니다~ 잘생기셔서 눈에 띄더라고요! (사진)
올린 사진은 멀찍이서 찍은 사진으로, 모자 밖으로 튀어나오는 머리칼이나 체형, 마스크 위로 보이는 얼굴 등으로 팬들은 이미 우리라고 확신한 모양이다.
후기는 순식간에 천 단위로 리트윗되며 퍼졌다.
- 와 나 강남역 지나갔는데 저 시간에???!?!!!
- 미친 나 회사 근처라고~~~ㅠㅠㅠㅠㅠ
- 공출목 소비 좀 하지 맙시다 목격담도 스토킹이랑 다를 게 없어요ㅋㅋ 뭐가 자랑이라고 사진까지…
- 애들 TTT 때문에 ㅈㄴ 바쁠 텐데 저거 보러 진짜 간 거임? 사진 흐릿하긴 한데 맞는 거 같음 ㅠㅠ
└ 심지어 어제가 무대 아니었나? 개피곤할 텐데
- 이런 아이돌이 어딨어 인류 문화재야 이거
- 근데 다 가렸는데도 온몸으로 연예인임을 뽐냄
일부 커뮤니티에도 관련 내용을 담은 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ㄹㅇㅌㅇ 단체로 광고 보러 갔대]
이래서 망돌 빠는 건가 싶음 ㄹㅇ 저렇게 단체로 보러 가다니
광고 건 팬들 개뿌듯할 듯
얘네 뭐 팬싸에서 수제 쿠키도 나눠줘서 저번에 실트 오르지 않음? 팬 사랑 개지극한 듯 좀 끌린다
- 개쩔긴 한다 저건 솔직히 인정해 줘야함ㅋㅋㅋㅋㅋ
- 쟤네 하는 거 보면 언제 갑자기 훅 뜰 듯 ㅇㅇ
- 네 다음 라이트온 빠순이!
- 라이트온 정도면 이제 망돌은 아니지 않나?
└ ㅇㅇ망돌은 아니지
└ 뭐래 망돌 맞음 빠순이들이나 알지ㅋㅋ 일반인이 걔네 아냐?
- 노림수 개티 나서 오히려 비호감ㅜ
- 노림수든 뭐든 다른 아이돌들도 제발 노림수 좀 써줬으면 좋겠는데 꼬인 애들 진짜 많네ㅋㅋㅋㅋ
└ 이런 노림수면 오히려 칭찬해 줘야 되는 거 아니누ㅋㅋㅋ 새삼 라이트온한테 정병 많이 붙었네
예상대로 긍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이제 슬슬 올려볼까.’
아까 연속 촬영 기능으로 찍어댔더니, 사진 고르는 것도 일이었다.
LIGHT ON ⓥ
오늘 팬분들이 걸어주신 광고 보고, 근처에 유하가 추천해 준 맛집(쌀밥 이모티콘)도 갔어요.
저희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트 이모티콘)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아이돌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 네 장의 셀카를 셀렉해 업로드했다.
내가 올린 트윗을 확인한 최승하가 작게 중얼거렸다.
“……저 형이 이모티콘을 두 개나?”
나는 고개를 돌려 뒷좌석에 앉은 최승하를 바라봤다.
“죄송합니다!”
“뭐라고 했는데?”
화면에 집중하느라 진짜 못 들었다.
“사랑한다고요.”
“헛소리.”
별 쓸데없는 이야기나 했나 보군.
시답잖은 이야기였다는 것을 확인한 뒤, 자세를 바로 했는데 등 뒤에서 최승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저는 정말 열심히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앗, 지금도 물론 열심히 하고 있지만! 더 열심히 해야겠다! 하는 생각!”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그럼 내일 희승 쌤한테 최승하 연습량 더 늘려달라고 말해야겠다.”
“……사람이 이렇게 잔인할 수가 없어!”
최승하의 옆에 앉아 있던 류인이 조용히 말을 얹었다.
“승하 지금…… 한 입으로 두말하는 건가?”
“아앗, 아앗……! 이 형들이 쌍으로!”
“저도 들었어요.”
“제 두 귀로 확실히 들었습니다!”
“……나도.”
한수현에 이어 차윤재, 마지막으로 신유하까지 증인을 자처하자 최승하가 배신감에 진득히 절여진 얼굴을 했다.
“수현이 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귀여워해 준 게 몇 년인데!”
“겨우 두 살 차이밖에 안 나면서 세상 다 산 사람처럼.”
“겨우 두 살 차이라니? 네가 태어났을 때 나는 이미 말을 하고 뛰어다니기까지 했다고~?”
“…….”
최승하에게 말려 버린 한수현이 입을 다무는 것으로 패배 선언을 하자, 최승하가 한수현의 머리칼을 잔뜩 흩뜨렸다.
“우리 귀여운 수현이~”
말했던가, 한수현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귀엽다는 소리라고.
백미러로 살피니 한수현이 이를 악물고 있었다.
최승하 나이가 저 녀석보다 어렸으면, 그 입 다물라는 욕을 듣고도 남았을 거다.
“다 왔다! 푹 쉬고, 내일 또 보자~”
매니저에게 적당히 인사한 뒤 엘리베이터에 올랐는데 차윤재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오늘 데리고 가주셔서 감사합니다! 형님 아니었으면 몰랐을 겁니다.”
……나한테 하는 소린가?
이런 훈훈한 분위기엔 면역이 없다.
“뭐라고? 못 들었는데.”
장난식으로 말하자 차윤재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휙 돌렸다.
“뭔가 오늘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을 받은 것 같네.”
류인까지 훈훈한 분위기를 만드는 말을 내뱉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다무는 걸 택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그래서야 친구를 사귈 수 있겠냐며 혀를 찹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오랜만에 맞는 말을 한다며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잠깐만, 아니! 이 형님이!”
차윤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참고로 꾸짖음의 대상은 류인이었다.
“……왜?”
“또 티셔츠 반대로 입고 나가셨습니다! 세상에 이러고 하루 종일 돌아다니셨단 말입니까!”
“……어, 진짜?”
“나는 이 형 언제 눈치챌까 했는데 진짜 못 채네!”
최승하가 낄낄대자 차윤재가 눈을 부라렸다.
“억!!”
돌연 등짝을 맞은 최승하가 억울하다는 듯이 눈망울을 반짝였다.
“형님은 알고 계셨으면서도 입을 다무셨습니까?! 대체 나이를 어디로 먹은 건지……!”
나는 시선을 슬금슬금 돌려 조금 전에 올린 트윗의 반응을 살폈다.
- 진짜 강남역 갔었나 봐 아나 덕계못 진짜
- 다 가렸는데도 개잘생긴 아우라 미쳤는데
└ 와꾸 1군 ㅇㅈ
- 내가 건 것도 아닌데 왜 감동받는 거임? ㅅㅂ 과몰입 멈춰
- 식당 어딘지도 알려줘……! (소리 없는 외침)
- 저거 뭔 계정에서 모금하던 그건가? 광고 건 사람들 지금쯤 울고 있겠는데ㅋㅋㅋ
* * *
정확하다.
“엉엉…….”
“너 진짜 우는 거 아니지?”
이해성의 말에 곽덕배가 우는 소리를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럴 리가 있어? 난 공과 사를 지킬 줄 아는 오타쿠라고.”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나왔습니다!”
카페 직원의 목소리에 벌떡 일어난 곽덕배가 쟁반을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해성아 나 한 대만 때려줄래?”
“응. 강도는? 1부터 10까지, 역시 10이 좋겠다. 이리 와봐.”
“잠깐만 왜 풀스윙할 것처럼 자세 잡는데? 안 맞을래!”
“……그래?”
“어어? 왜 아쉬워하지?”
“너 이 정도면 진짜 성덕이네. 돈도 꽤 많이 쓰지 않았나?”
“이해성 갑자기 말 돌리는 것 봐라.”
“뭐라고?”
“으응, 네 말이 맞다고.”
그렇다.
벅차오름을 감당하지 못한 곽덕배는 지하철 광고의 목적으로 모금 계정을 열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벅차오른 사람들이 여럿인지, 한 푼 두 푼 모인 모금 액수가 꽤 되었다.
강남역에 걸 정도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왕 거는 거, 최대한 많은 사람이 이 신이 내린 얼굴들을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사비를 크게 보태 진행한 것이었다.
“근데 확실히 얘네가 간절함이 있네. 다른 그룹은 뭐, 걸어줘도 하나하나 알아주긴 하나?”
“그렇지. 걔넨 어마어마하게 걸리잖아. 대충 세도 몇천에 억 단위로 걸리는 애들도 많지. 사실 생일 서포트부터 억 단위가 기본인데…….”
“그렇긴 해. 나도 광고 걸었다가 그대로 잊혀졌잖아. 알아달라고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씁쓸하긴 해…….”
애초에 밀리어스 정도의 그룹은 생일이 가까워질 때마다 대형 소형 사이즈 가릴 것 없이 역을 점령하는 수준으로 걸리는 건 기본이고, 몇천만 원을 호가하는 광고판을 팬 하나가 혼자 부담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로 광고까지 직접 걸음해서 인증샷 남겨주는 남자들 어때? 얼굴도 끝내주는데 인성까지 끝내주는 남성들이 있다? 같이 파자.”
이해성이 혀를 짧게 찼다.
“시도 때도 없이 영업을 해대는구나.”
“내가 진짜, 끝내주게 퍼먹여 줄게. 너는 그냥 누워만 있어. 내가 다 정리해서 손가락 까딱 안 하고 덕질 할 수 있게 VIP 풀코스로 마련해 놓을 테니까.”
곽덕배의 간절한 말에 이해성이 싱긋 웃었다.
“또 그렇게 안 들린다는 듯이 미소 짓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