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75화
스윽-
휙!
스으윽-
……휙!
내가 눈을 마주치려 들 때마다 신유하가 혼신의 힘을 다해 시선을 피했다.
굉장히 어이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야 예상했다.
오늘의 목표는 이 묵언수행자와 조금이라도 친해지는 것.
나는 밝게 웃었다.
“하하.”
“……!!”
왜 내가 웃을 때마다 안색이 창백해지는 거지?
일부러 눈도 계속 동그랗게 뜨고 있는데.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벌써부터 글렀다며 안타까워합니다!]
“……?”
뭐라는 거야.
나는 최대한 착한 얼굴을 걸친 채 비어있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방에 침대가 두 개 있다는 것일 테다.
1층은 킹사이즈 침대가 놓인 방도 있던데, 그런 방이었다면 신유하는 성해온과 잘 바엔 차라리 거실에서 자겠다며 베개랑 이불 챙겨서 나갔을 거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아주 정확하다며 놀라워합니다!]
……진짜였나.
방 배정을 마치고 거실로 모인 우리는 유닛에 관련된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오늘 밤까진 팀 내 유닛을 확정해서 제작진에게 넘겨달라는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저희 랩은 어떡하죠!”
최승하가 대놓고 정곡을 찌르자, 안 그래도 어두운 면면들이 더 침침해졌다.
숨 막히는 정적에 최승하가 벙글 웃으며 재차 물었다.
“혹시 랩 레슨 받아보신 분?”
“…….”
“아무도 없을걸요.”
“저도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접해본 적도 없어.”
“음, 그럼 우선 보컬이랑 댄스 유닛부터 결정해 볼까?”
류인이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연장자다운 처세법이었다.
“저어~는 어딜 가도 상관없어요!”
보컬과 댄스 모두 중간은 하는 최승하가 선택권을 넘겼다.
“저는 댄스 쪽으로…….”
나는 차윤재의 말에 고개를 위아래로 얕게 끄덕였다.
“류인이랑 윤재는 댄스 유닛 가야지.”
나는 구석탱이에 앉아 있는 신유하를 응시했다.
‘상태창.’
[신유하]
체력 C
정신력 D
비주얼 S-
노래 A-
춤 B+
※ 망돌의 그림자 수치 : 60%(*위험 3단계)
신유하는 굴지의 대형 기획사 출신답게 실력은 빠지는 게 없다.
멘탈 쪽이 개복치라는 것 빼면, 정말 어느 팀에 들어가도 눈에 띌 놈인 건 확실하다.
댄스 유닛은 류인과 차윤재가 있으니, 실력자가 필요한 건 보컬.
그리고 적임자는 신유하다.
나는 카메라를 의식하며 상냥한 목소리로 녀석을 바라봤다.
“유하야, 보컬 괜찮아?”
“……네.”
방에서 나오기 전에 카메라 앞에서 흠칫하기만 해보라고 조언해 준 덕분인지 나름 자연스러운 대답이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그건 협박이었다며 뒷목을 부여잡습니다!]
협박이라니, 사람을 뭘로 보고.
분명 낼 수 있는 목소리 중에 가장 착한 목소리로 조언한 거라고.
쯧쯧.
최승하가 멤버들을 둘러보며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럼 윤재랑 류인 형은 댄스 유닛 확정이고, 유하가 보컬 유닛이고, 으음. 그럼 저도 인원수 맞춰서 보컬 갈게요! 문제는, 랩이네요…….”
말해놓고 아차 싶었는지 최승하가 말을 이었다.
“아! 해온 형이랑 수현이 중에 랩 가라고 등 떠미는 거 아니에요! 그냥 제가 랩으로 갈까요? ……어, 음. 어떻게든 되지 않으려나? 하핫.”
“나도 랩으로 가도 돼. 해온이는 우리 팀 메인 보컬이니까 아무래도 보컬 유닛이…….”
류인의 말에 나는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랩은 내가 간다.”
“……!!”
[수식언을 공개하지 않은 한 성좌가 당신의 의협심에 감동합니다!]
“네에에에?!”
“예? 그, 그게 무슨!”
“아니, 해온아. 네가?”
경악으로 물든 눈동자들이 동시에 모여들었다.
“형, 혹시 랩 배운 적 있어요?”
한수현의 물음에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아니.”
“……그럼 무슨……?”
되묻고 싶은 게 아주 많아 보였으나, 한수현은 카메라를 의식하는지 스스로 말을 잘랐다.
래퍼는 노래를 못할 수도 있고, 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랩에 관한 베이스가 0에 수렴할 경우엔 말이 달라진다.
이럴 경우, 아주 높은 확률로 보컬에 소질이 있는 놈들이 랩을 괜찮게 한다.
이건 이해성의 오타쿠 빅데이터에 기반한 통계로, 꽤 믿을 만한 논리다.
랩에도 종류가 여러 가지 있는데, 보컬에 기반이 있는 놈들은 ‘싱잉 랩’.
즉, ‘멜로딕 랩’에 나름 두각을 나타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랩에 멜로디를 끼얹는 것이다.
요즘은 이런 랩이 대세기도 하고, 멜로디를 끼얹는다는 점에서 보컬 멤버가 유리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팀에서 보컬 능력치가 가장 좋은 건 놀랍게도 성해온이다.
[성해온]
체력 B-
정신력 S+
비주얼 B+
노래 A
춤 B-
특성
▶[K팝 망령의 눈(A)]
▶[……그런가?(B)]
진행 중인 미션
▶망돌의 그림자를 없애라!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보유 골드 2,800G
나는 떠오른 상태창을 무심한 눈으로 훑었다.
랩? 삐끗하기만 해도, 아니, 삐끗하지 않아도 조금만 이상하면 평생 영상 클립이 따라다니며 나를 괴롭힐 거다.
그뿐인가, 팬덤 싸움이 날 때마다 상대 쪽 팬덤에서 라이트온을 조롱하기 위한 영상으로도 자주 등장할 미래가 뻔히 보인다.
질끈!
생각만해도 끔찍했다.
호기롭게 랩에 도전했다가 실패한다? 이건 뚝딱이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한 흑역사다.
나도 랩 같은 거 취미도 없고, 해본 적도 없거니와 하기 싫다.
하지만 보컬 능력치는 내가 높고, 그다음으로 높은 신유하에게 떠넘기기엔…….
스으윽-
파르르!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신유하가 몸을 떨며 헐레벌떡 고개를 숙였다.
……분명 대차게 말아먹을 게 틀림없다.
‘정 안 되면 골드라도 털어서 뭐라도 사보지, 뭐.’
대충 이런 마음으로 나선 거였는데 어째 반응이 이상했다.
“……형!”
“괜히 나서지 않아도 돼. 뭣하면 내가 해도 괜찮고.”
“맞습니다! 저희를 생각해 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묘하게 감동받은 듯한 얼굴들이었다.
“차, 차라리 사정을 말씀드리면…….”
이어지는 차윤재의 말에, 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이 통할 리도 없고, Nnet 측에서도 우리 팀에 래퍼 없다는 거 당연히 알고 있을 거다.
아아, 참고로 우리 팀을 제외한 다섯 팀엔 다 래퍼가 있다.
한마디로 이건 처음부터 우리를 X되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담긴 기획이었다는 것이다.
멤버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해서 나를 뜯어말렸고, 그 순간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마주한 나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카메라 사각지대를 파악한 모양인지, 입가를 정확하게 가린 한수현이 입 모양만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충 해석하자면.
저 형이 생각 없이 나설 사람인가요. 응원의 박수나 건네면 되는 겁니다.
-라는 뜻으로 추정된다.
나는 감탄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한 명은 해야 할 거, 이런 우중충한 분위기보다는 응원해 주는 분위기가 낫거든.
역시, 한수현은 꽤 편하다.
나와 비슷한 점이 많거든.
이제 나까지 정해졌으니 남은 건 한수현이었다.
보컬 유닛 2명, 댄스 유닛 2명인 상황이라 사실 뭘 선택하든 괜찮긴 하다.
“으음~ 수현이는 어디 갈래?”
최승하의 물음에 한수현이 답했다.
“저는 아무 데나 괜찮아요. 제가 랩으로 가도 괜찮고요.”
“수현이 요즘 춤 엄청 좋아졌지 않나? 흐음, 댄스 쪽 어떠려나?”
최승하의 말을 곧바로 이은 건 나였다.
“우리 막내는 보컬이라고 생각하는데.”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우리 막내라는 호칭에 경악합니다!]
다른 멤버들도 경악스럽기는 마찬가지인지 표정 관리를 영 못 하고 있었다.
나는 카메라에 보이지 않을 각도로 입을 열어 입 모양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얼굴 펴라. 친한 척.”
메시지 전달을 마치고 환하게 웃으니, 녀석들이 입꼬리를 올려 웃음을 흘렸다.
“……하하하! 우리 막내 수현이. 그쵸. 수현이는 보컬도 아주 좋죠~”
“동, 동의합니다. 어딜 가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한수현은 잠시 고민하는 듯 미간을 찌푸리더니 작게 대답했다.
“그럼 보컬로 갈게요.”
음, 좋은 선택이다.
유닛이 정해지고, 컷을 어느 정도 따고 나니, 제작진들이 카메라를 수거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뒤에 야외에서 녹화 재개되니까, 그때까지 편히 쉬세요! 저흰 나가서 점검 좀 하겠습니다.”
끼이익- 쾅!
제작진의 퇴장과 함께 최승하가 펄쩍 뛰었다.
“형! 그놈의 친한 척! 우리 이 정도면 친해진 거 아니에요? 나만 형이랑 친하다고 생각해? 자꾸 이러면 진짜 서운해! 언제 친하다고 인정해 줄 거예요!”
나는 피식 웃었다.
“너 하는 거 봐서.”
“와아아, 진짜 너무하다!”
그때, 류인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수현아. 보컬 쪽 정말 괜찮아?”
아무래도 포지션이 애매한 한수현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휙! 휙! 휘익!
나는 빠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카메라는 전부 수거됐다.
편하게 말해도 된다는 뜻이다.
“바꾸고 싶으면 오늘 내에 말하면 되니까 천천히 생각해 봐.”
내 물음에, 한수현이 의문 섞인 얼굴로 나와 눈을 마주쳤다.
“전략적으로 저 보컬에 넣으신 거 아닌가요?”
상태창을 기반으로 말을 꺼낸 건 맞다만.
“류인 형이랑 윤재 형, 둘의 조합이 제가 끼는 것보단 승률이 높죠. 훌륭한 전략입니다.”
“음.”
한수현을 바라보며 속으로 상태창을 외치자 곧장 떠올랐다.
[한수현]
체력 B-
정신력 A+
비주얼 B+
노래 B+
춤 B
※ 망돌의 그림자 수치 : 42%(*위험 2단계)
나는 그저 노래 쪽이 한 단계 높아서 추천해 준 것일 뿐, 다른 뜻은 없다.
애초에 강제한다고 듣는 놈도 아니고.
좋게 빙빙 돌려 말하려다가 귀찮기도 하고, 한수현 성격에 믿지도 않을 것 같아서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그 논리면 내가 보컬에 가고, 널 랩 유닛으로 보내 버리지 않았을까?”
논리적으론 이게 맞다.
보컬 능력치가 가장 뛰어난 멤버가 난데, 정말 한수현을 버리는 말로 생각했으면 승산 없는 랩 유닛으로 차출했겠지.
가만히 앉아서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한수현이 입을 열었다.
“그러게요. 생각해 보니 제가 랩으로 가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지금이라도 바꾸시죠.”
화나 보이거나, 자존심 상해 보이는 얼굴도 아니었다.
정말 납득한 얼굴.
뭐 이런 녀석이 다 있나 싶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물었다.
“랩은 내가 한다. 네가 댄스로 가고 싶으면 상관없어. 바꿀래?”
“애초에 상관없다고 했잖아요. 진심이에요.”
자리에서 일어난 한수현은 자신의 방 쪽으로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다들 랩엔 베이스 없는 거, 애매한 포지션인 제가 랩 유닛으로 가는 게 더 승산 있는 전략일 텐데요. 아, 물론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아요, 그러니 편하게 생각해 주세요. 형은 영리한 사람이잖아요.”
그렇게 말하고는 방에 들어가 버렸다.
동시에 우리의 대화 내내 안절부절못하며 입을 달싹거리던 최승하와 차윤재가 한수현에게 들릴세라 음소거 형태로 호들갑을 떨었다.
“으아, 수현이 울고 있으면 어떡해요? 말이 너무 직구였어요!”
“근데 그런 것치고 상처받은 얼굴은 아니었습니다, 가 아니라!”
고개를 털어낸 차윤재가 말을 이었다.
“제가 룸메이트니 살피고 오겠습니다!”
염탐을 자처한 차윤재가 살금살금 방으로 향하더니 문을 열었다. 금세 닫아버렸지만.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나는 손을 휘적 흔들었다.
“다들 조금이라도 쉬어. 나 먼저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