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81화
“수고하셨습니다~”
숙박까지 시키기에 다음 날 촬영이 길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점심 전에 마무리됐다.
아침 촬영은 컨셉이 자고 일어난 컨셉인 만큼, 맨얼굴로 촬영하는 건가 싶었지만 기본적인 메이크업은 하게 해주더라.
오히려 맨얼굴 촬영이면 비주얼 스탯이 압도적인 라이트온이 더 돋보일 텐데, 조금 아쉽군.
“얘들아~ 고생했다~”
어느샌가 나타난 매니저가 캐리어를 밴에 실으며 멤버들에게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유하는 무슨 일 있니?”
신유하를 향한 질문에, 최승하가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무슨 일은요~ 피곤해서 그렇죠! 저희 얼른 숙소로 갈까요!”
조수석에 올라탄 나는 SNS와 각종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을 살폈다.
어젯밤엔 피로에 찌든 몸뚱어리 덕에 반응 확인도 못 하고 그만 기절하듯 잠들어 버렸다.
[라이트온 의외의 K-pop 박사]
(캡처 사진)
(캡처 사진)
아니 진짜로 좀 귀여움 ㅅㅂㅋㅋㅋㅋㅋ 나 점점 스며드는 것 같다
어떻게 이런 거 다 알고 있는 거지?
성해온 요즘 언급 많던데 그 이유를 좀 알 것 같음 ㅋㅋㅋㅋ 애가 ㅅㅂ 무슨 이 판에서 수십 년 구른 짬바가 있는 고수처럼 굴잖아
진짜 방송용으로 외웠다고 해도 이런 티엠아 줄줄 읊을 정도면 트웰브 영상 거의 다 봤을 텐데, 이건 인정해 줘야 함
나도 처음에 얘네 TTT 나온다고 했을 땐 좋게 안 보였는데 보면 볼수록 무대도 잘하고 뭣보다 얼굴이 ㅅㅂ 진짜 너무 잘생기지 않았냐?
내 주변 덕들도 지금 얘네한테 스며드는 애들 많더라 찾아보니까 얘네 팬 사랑도 지린다며…
TTT 끝나고 앨범 잘 나오면 뜰 거 같음
- 솔직히 동의함ㅋㅋㅋ 욕하던 애들도 이제 좀 잠잠해졌잖아
- 그래 봤자 망돌임
- 아 라이트온 바이럴 안 사요~~ 라이트온 빠들 전부터 개나대네 아닌 척하는 거 역겹다고ㅜ
└ 정병아 제발 모니터에서 벗어나서 현생을 살어
- ㄹㅇㅌㅇ 팬덤 커지고 있는 건 팩트 아님? 내 주변만 해도 걔네한테 스며든 사람 많음ㅋㅋㅋㅋㅋ
나는 스크롤을 빠르게 내렸다.
매일같이 늘어나고 있는 반응이 놀라울 정도였다.
- 라… 로 시작하는 네 글자 남성들 정말 매력 있는 듯…
└ 나랑 같이 라이트온 파자니까
- 케이팝에 진심인 남돌 호감이다
확실히 라이트온의 화제성이 커지고 있다.
무슨 키워드로 서치하든 간에 트윗이 줄지어 나오는 수준이었다.
트웰브 팬들도 내가 트웰브 멤버들의 TMI를 줄줄이 읊으며 팬이라고 한 것이 호감이었는지 나름 호의적인 분위기였다.
- 진짜 이 정도면 트윙클 아님? ㅋㅋㅋㅋ 진짜 애들 팬인가 봐
- 동종업계 아이도루도 홀려 버리는 트웰브의 매력
- 갑자기 ㄹㅇㅌㅇ 조금 호감 됨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거지.
나는 곧바로 서치창에 내 서치 방지용 이름을 검색했다.
수많은 버전이 있지만, 현재 가장 주로 쓰이는 건 ‘온’을 뒤집으면 나오는 ‘궁’이라는 글자더라.
- 해궁이 ㅈㄴ 꼴 보기 싫어 죽겠음 탈퇴해
- 딱 봐도 해궁이가 이미지 메이킹 조지게 하는 건데 이걸 믿는 애들과 같은 팬덤이라는 게 부끄럽도다
- 해1궁이 진짜 비호감 레전드야 이렇게 꼴 보기 싫을 수가
- 딱 봐도 멘트 준비해 온 건데 그걸 믿고 빨아주는 애들 심리 상태가 궁금함 설마 진짜 남돌이 저런 걸 다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 아니지? ㅋㅋㅋㅋ
<친해지길 바래>에서 트웰브를 선택한 장본인이기 다름 아닌 나기 때문에, 트웰브의 팬덤은 애초에 나를 가장 싫어했다.
저쪽 팬덤에게 욕을 10개 먹는다면, 그중에 5개는 내가 먹는 정도?
S+ 정신력의 영향도 있겠지만 원래 내 성격부터가 사람들의 호의를 쉽게 믿지 않는 터라, 이런 걸로는 상처받지 않는다.
마냥 좋은 반응만 쏟아지는 것보다, 오히려 이런 부정적인 반응도 있어야 안심이 된다고나 할까.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좋아하면 그게 몰래카메라지, 현실은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나는 팬덤의 반응도 살폈다.
어제 방송분이 끝나고 예고편으로 나머지 세 팀의 무대가 잠깐 스쳐 지나갔는데, 그걸로 난리가 났었던 모양이다.
우리 쪽은 군무 파트가 예고로 나갔는데, 눈 깜짝하면 사라져 있을 정도로 짤막한 분량이었어서 컨셉을 알아채신 것도 놀라울 정도다.
나는 피곤에 찌든 얼굴로 스크롤을 내렸다.
보이는 반응들이 대부분 긍정적인 느낌이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내려두고, 눈을 감았다.
자도 자도 피곤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놈의 체력.
* * *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세수를 한 뒤 거실로 나갔는데 신유하를 제외한 나머지 놈들이 모여 앉아 작은 목소리로 논쟁 중이었다.
“……으음, 어떡하죠?”
“일단 오늘은 쉬어도 괜찮은 스케줄이니까 그냥 두는 게 나으려나.”
“저희 그래도 연습 가기로 했으니까, 연습은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제 생각은 수현이와 조금 다릅니다! 지금 유하 형님은 쉬게 두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밴 안에서 휴식 없이 곧바로 연습실에 가기로 의견을 모았기 때문에 이런 토론이 벌어진 것이다.
척 봐도 신유하의 안색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류인 형 말대로, 오늘은 빠져도 되는 트레이닝이니까 유하는 두고 갈까요?”
최승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한수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형들, 준비 끝났으면 나오세요.”
그리고 나는 몸을 일으키며 대가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흐음…….’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또 무슨 대견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고 묻습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질색합니다!]
* * *
사옥에 거의 당도했을 때, 멤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잠깐 대리님이 조금 보자시는데.”
“대리님……? 아아! 정재진 대리님 말씀하시는 겁니까?”
차윤재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가끔 전달 사항 있으면 이렇게 연락하시더라고. 리더라 그런가. 뵙고 올 테니까 먼저 연습들 해.”
때마침 밴의 속도가 서서히 느려지더니, 이내 정차했다.
기지개를 켜며 밖으로 나가는 멤버들의 뒤를 따르다가 갈라섰다.
“난 걸어갈게.”
연습실은 층고가 높지만, 정재진이 있는 기획팀 사무실은 계단으로 충분히 오갈 만한 위치라서, 멤버들은 납득된 얼굴이었다.
“으음? 형, 그냥 타고 가요!”
거절의 의미로 손을 대충 휘적이며 계단에 오른 나는 1층과 2층 사이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계단 난간에 몸을 기댄 나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스르륵-
엘리베이터가 닫히는 소리가 들려오자마자 망설임 없이 아래로 내려간 나는 택시 하나를 잡는 데 성공했다.
택시에 올라탄 나는 창틀에 머리를 기댔다.
‘껌딱지 같은 놈들…….’
지금도 이렇게 핑계를 대지 않았으면, 어떻게든 달라붙었을 게 뻔하다.
이전엔 그나마 눈깔 시퍼렇게 뜨고 째려보면 다들 슬금슬금 피했는데, 요즘은 몇 놈들에게 내성이 생겼는지 그 효과가 미비해졌다.
사실 어제의 분위기상, 신유하와 같이 있었어도 본전은 무슨 말 한마디 못 건넸을 게 뻔하다.
최승하의 말마따나, 그런 상황일 땐 편하게 울 수라도 있게 혼자 두는 게 낫긴 하다만…….
‘역시 열받는다.’
성인 세 명이 결국 킹사이즈 침대에 꾸역꾸역 누웠단 말이다!
내 편한 싱글 침대를 두고!
쯧쯧…….
이내 택시가 멈춰 섰고, 나는 빠른 걸음으로 숙소에 들어갔다.
신유하의 방문 앞에 당도한 나는 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흠.”
그래, 일단 착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보자.
“유하야, 잠깐 나와볼래?”
방금 내가 들어도 조금 상냥하지 않았나?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그보다는 조금 협박 조였다고 전해줍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다시 한번 목을 가다듬었다.
“유하야.”
하지만 문 너머에선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똑똑!
주먹으로 문을 두어 번 두드렸는데도 반응이 없다.
나는 귀를 문 가까이 댔다. 뭐야, 정말 아무 소리가 안 들리는데.
혹시 기절이라도 한 거 아니야?
깡마른 놈이 밥도 거르고 스트레스로 골골대는데, 충분히 가능성 있는 가정이었다.
“신유하.”
나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걱정돼서 그러는데, 대답 없으면 문 강제로 열게.”
문은 뭘로 열어야 하지?
공구함 좀 뒤적거려 볼까,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미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괜찮아요.”
다행히 기절한 건 아니었나 보군.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 후드집업과 마스크를 하나씩 챙겼다.
그리고 신유하의 방문을 다시 한번 두드렸다.
“저기.”
“…….”
“대답 안 하면 하루 종일 여기서 말 걸 거야.”
음, 역시 그냥 문을 따버릴까?
어차피 성해온 인성에 문 한번 따도 ‘이 정신 나간 놈!’ 하고 말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고 있을 때쯤,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만, 아니, 몇 시간만 이렇게 혼자 있을게요. 저녁엔 나갈, 테니까…….”
미안하지만 그건 곤란하다.
네 그림자와 내 목숨은 무척이나 가깝게 연결되어 있단 말이다.
나는 목소리를 더욱더 착하고 상냥하게 가다듬었다.
“걱정돼서 그래. 얼굴 한 번만 보여주면 나도 연습 갈게.”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오만상을 찌푸립니다!]
“…….”
흠, 역시 쉽지 않은 상대다.
나는 신뢰의 목소리를 걸쳤다.
“안 열어주면 진짜 여기서 하루 종일 있을 건데, 그냥 한 번 열어주고 편히 쉬는 게 더 낫지 않나?”
“…….”
“나 같으면 한 번 열어주고 내보내겠다.”
띠링!
[……그런가?(B)]가 발동됩니다!
오호라.
이게 나왔다는 것은 신유하도 나름대로 설득당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나는 한 번 더 목소리를 냈다.
“얼굴만 보면 갈게. 약속이야.”
침묵이 이어져서 글렀나, 싶었는데 발소리가 작게 들렸다.
……음.
이 녀석 지금 문 앞에서 고민하고 있다.
발소리가 문 앞에서 멈췄거든.
“정말 얼굴만 보고 갈게.”
“…….”
망설이던 신유하가 나를 빠르게 내보내기로 결심했는지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달칵!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5㎝정도?
얼굴은커녕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문을 살짝 연 신유하가 나와 3초 정도 눈이 마주치자마자 다시 문을 닫았다.
아니, 닫으려 했다.
“……위, 위험하게 뭐, ……뭐 하는!”
이럴 줄 알고 문이 열리자마자 손을 집어넣었거든.
“음, 아픈데.”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 아프다.
손가락에 열기가 쏠리며 욱신거림이 느껴졌다.
괜히 넣었나.
“다, 당연히 아, 아프죠! 어떻게, 너무 아프겠다…… 죄, 죄송해요. 빨리 치료를…….”
새파랗게 질린 신유하가 문고리에서 손을 놓은 순간-
타악-!
안으로 팔을 뻗어 신유하의 팔목을 낚아채는 데에 성공한 나는 싱긋 웃었다.
드디어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