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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85화 (85/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85화

라이트온이 INT를 떠났을 무렵, 몇몇의 러쉬 멤버들이 연습실에 모여 앉았다.

“야 걔 고개도 못 들고 다니는 거 봤냐?”

태오가 돌연 고개를 푹 숙이며 누군가를 흉내 냈다.

“아 이 미친 새끼, 진짜 웃기네.”

다온이 그를 보며 같이 낄낄대자, 태오가 더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취하며 조롱했다.

“웃긴 건 신유하지. 나는 진짜 걔만 생각하면 웃기다니까. 막, 이 지랄로 다니잖아. 그런다고 사람들이 못 알아볼 것 같나. 큭큭. 아, 웃겨서 눈물 나.”

태오가 눈가에 고인 눈물을 훔치며 말하자, 다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피식 웃었다.

명백한 혐오의 눈빛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여기서 연습을 얼마나 했는데, 그 새끼가.”

“여기 떠나서 데뷔한다는 게 그 라이트온~ 진짜 나는 유하가 웃겨 죽겠다. 저번에 그 바비큐흐흡, 그때도 혹시 우리가 지 멤버들한테 뭐라고 아가리 털까 봐 얼굴 새하얘진 채로 따라오는 거 다들 봤지? 모자란 새끼, 진짜.”

그때 옆에 앉아 있던 희찬이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이미 끝난 일 가지고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이태오, 심술도 적당히 부려. 우리 이제 연습생 아니고 데뷔한 아이돌이야.”

희찬의 말에 태오가 잠시 흠칫하더니, 고개를 빙글 돌리며 웃었다.

“아~ 이 형 또 이러네. 형 요즘 말로 뭐라더라, 선비 같아요. 내가 그 새끼 욕도 못 해?”

“정도가 심하잖아. 애초에 나는 유하가 그때…….”

“오케이, 오케이. 알겠으니까 그만해요~ 이 형은 같은 멤버를 감싸주진 않을망정 유하를 감싸주네?”

“아니, 너는 무슨 말을, 싸우자는 게 아니잖아.”

“넵! 제가 잘못했으니까 이제 이 이야긴 그만하죠~?”

“……그래. 그만하자.”

그때, 연습실 문이 벌컥 열리고 케이가 들어왔다.

“Oops, 분위기 왜 이래요?”

희찬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

“라이트온은 잘 배웅했어, 케이?”

“응~ 인사하고 왔어!”

“네가 급이 있지~ 무슨 걔넬 배웅씩이나 해야 하냐? 하여튼 사람 좋아한다니까.”

태오의 비꼼이 담긴 말에 케이가 벙글 웃었다.

“Yes, 나는 사람 좋아해~”

그런 케이를 위아래로 훑은 태오가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그나저나, 아까 듣기론 랩 유닛은 벌써 정했다던데 케이. 내 말대로 한 거 맞지?”

태오의 질문에 케이가 입을 헙 다물었다.

“…….”

“……설마, 아니지? 어려운 거 아니었잖아.”

태오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 * *

“……자요?”

자려고 누웠는데 최승하가 말을 걸어왔다. 이걸로 세 번짼가?

귀찮으니 무시를 택하고 눈을 감고 있었는데, 녀석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안 자는 것 같은데…….”

“왜.”

단답으로 내뱉자 침대에 누워 있던 최승하가 다급하게 상체를 일으켰다.

“와아…… 진짜 안 자네, 이 형? 무시했던 거였어!”

“본론.”

할 말만 어서 하라는 내 말에 잠시 입을 꾹 다물었던 녀석이 말문을 열었다.

“음. 저 사과를 하고 싶어서요.”

“누구한테.”

“누구긴 누구예요, 형이죠.”

“……?”

“있잖아요, 저는 형을 좋아해요.”

“……갑자기?”

“질색하지 말고요! 들어보세요.”

베개를 감싸 안은 최승하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실, 으음. 형이 예전엔 좀 그랬잖아요? 사실 이렇게 달라진 것도 놀라울 정도로.”

“그래.”

“그래서 제가 형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걸 사과하고 싶었어요.”

나는 곧장 고갤 저었다.

이 몸의 전적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구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혹시 화났어요? 제가 무릎이라도 꿇을까요!”

“네 무릎 꿇은 걸 어따 써먹어? 필요 없어.”

진심으로 한 말인데, 최승하는 계속 어떻게 사과하면 받아줄 거냐 난리를 피워댔다.

음, 이참에 신유하 이야기 좀 꺼내볼까.

나는 곧바로 피곤에 쩔어 있던 눈을 사납게 부라렸다.

“잠깐만, 이거 생각해 보니 화나는 것 같기도 한데.”

“제가 어떻게 하면 용서해 주실래요!”

“궁금한 거 대답해 줘.”

내 말에 최승하가 곧바로 큼지막한 보폭으로 다가와 침대 끄트머리에 앉았다.

“정말 그거면 괜찮아요? 빨리 물어보세요!”

“무슨 일이었는지 너는 알지?”

창문 밖의 어슴푸레한 빛줄기가 순간적으로 최승하의 얼굴을 비췄다.

“신유하.”

덧붙인 짤막한 말에, 최승하가 뒤통수를 헤집었다.

“으으음, 못 믿으실 수도 있겠지만…… 저도 유하에 대해서는 그닥 잘 알지 못해요. 걔 성격이 털어놓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저는 대강 눈치만 챘을 뿐이죠.”

상체를 바로 한 최승하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제가 눈치챈 걸, 형이 눈치 못 챘을 리 없고요.”

딱히 거짓말로는 안 보이는군.

“하핫.”

짧게 웃은 최승하가 내 이불 속으로 꾸물꾸물 들어왔다.

“다른 궁금한 건 없어요? 다 알려 드릴게요! 원래 친해지는 것의 시작은 서로를 궁금해하는 거죠~”

“그다지 궁금한 게 없는데.”

“너무한 거 아니에요?! 나는 형을 사랑하는데! 형은 나한테 관심이 없고! 서럽다! 서러워!”

퍼버버버벅!

“어딜 들러붙어. 네 침대로 가.”

“악! 이 형, 진심으로 나 미네! 잠깐만요. 이거 떨어져요. 떨어져요!”

“떨어지라고 미는 건데.”

“진짜 서러워 죽겠다…….”

* * *

“형~ 케이 보고 싶었어요?”

‘그럴 리가 있나.’

나는 활짝 웃으며 케이의 옆에 나란히 섰다.

“당연하지.”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의 가식에 찬사를 보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눈앞에 카메라가 몇 대인가.

오늘은 유닛 경연 무대 준비를 하는 과정으로 나오게 될 부분을 촬영하는 날이다.

내가 원하던 멜로딕 힙합 분위기로 가는 만큼, 노래는 INT 측에서 만드는 걸로 이 녀석과 사전에 합의했다.

물론 프로듀싱 과정에서 내 컨펌을 받는 조건으로.

‘100% 맡길 수야 없지. 뭘 믿고.’

케이와 나는 INT 사옥 지하에 위치한 프로듀싱 룸으로 향하고 있었다.

‘……녹음실이 대체 몇 개야.’

척 봐도 고급형으로 추정되는 녹음 부스가 여러 개였다. 우린 저런 거 하나도 없는데.

명훈이의 아이들이라는 신세가 갑자기 비참해질 거 같으니 그만 보도록 하자.

정면만 보고 걷다 보니 프로듀싱 장비가 즐비해 있는 곳에 당도할 수 있었다.

INT는 보유하고 있는 전속 프로듀서들도 여럿인 데다가 소속 아티스트도 프로듀싱에 참여하곤 하니 규모가 대단했다.

“여기예요. 형!”

방음 처리가 되어 있는 두터운 문을 연 케이가 손을 파닥거렸다.

“여기가 제가 쓰는 공간~”

뭐라고?

이 녀석 설마, 랩만 하는 게 아니고 스스로 프로듀싱을 하는 건가?

이해성의 기억에 없는 부분이라 간과해 버렸다. 빌어먹을.

웬만한 정보는 다 있으니 방심해 버린 거다.

나는 당혹스러움을 감추고, 눈을 크게 뜬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와아, 여기가? 대단한데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케이가 손가락을 좌우로 까딱였다.

“으응?! 존댓말 No No.”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조금 어색하네.”

아무리 내가 나이가 더 많고 데뷔일도 몇 달 차이라지만, 러쉬는 엄연히 선배 그룹이다.

케이가 먼저 말 편하게 하라고 닦달한 거지만, 괜히 편집 이상하게 되면 반말을 찍찍하는 내가 싸가지 없다라는 식으로 여론이 형성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부분은 확실히 편집에서 안 잘릴 것 같으니까 일부러 존댓말 한 번 했다.

괜한 시비 방지용으로.

케이는 내가 말을 편하게 하는 게 마음에 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멘트를 쳤다.

“저희 이번 노래! 정한 거~ 멜로딕 힙합~”

“응. 멜로딕 힙합곡으로 정했지.”

그리고 이어지는 케이의 말에 나는 X됐음을 느꼈다.

“곡은 제가 만들어보려는데, 어때요? 케이 할 줄 알아!”

이 새끼, 역시 프로듀싱을 할 줄 아는 놈이었나.

뜻밖의 변수에 머리가 빠르게 돌아감과 동시에, 나는 머릿속으로 정신없이 주판알을 튕겼다.

멜로딕 랩 경연은 솔직히 나름 승산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성해온의 보이스는 꽤 특이한 편인 데다가 보컬 스탯이 높은 만큼 평타 이상은 칠 거라고 확신하니까.

뭣보다 케이, 이 녀석 보컬 스탯이 나보다 두 단계나 낮다.

잘하면 내가 이길 수 있는 싸움이라고 생각했는데, 프로듀싱을 이 녀석이 해버린다면 말이 달라진다.

‘심사 위원들도 이걸 참고를 안 할 수 없을 테니까.’

편집도 온갖 서사를 이놈 쪽에 몰아줌과 동시에 내 쪽의 승률이 미친 듯이 깎여 버릴 거다.

곡 만든 녀석에게 가산점이 부여되는 건 뻔하고, 내 실력이 더 나았다 하더라도 이 빌어먹을 가산점 때문에 승패가 뒤바뀌겠지.

……혹시 운 좋게 이긴대도 러쉬 팬들한테 패일걸.

아찔한 상상에 나는 몸을 잘게 떨었다.

‘이건 그 어떤 루트를 상상해 봐도 최악이다.’

나는 만면에 미소를 장착한 채 상냥한 얼굴로 물었다.

“음. 회사에서 만들어주는 게 아니고?”

“Yes~ 도움은 받을 거지만, 케이가 만들어보고 싶어! 어때? 형, 안 될까? 나 잘해! 칭찬도 받았어!”

케이가 내 허락을 구하고 싶다는 올망졸망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7개월 만에 데뷔한 게 납득되는 실력이었는데, 거기에다가 프로듀싱 능력까지 있었다니.

‘INT가 허겁지겁 데뷔 조에 끼운 이유가 있었군.’

마음 같아서는 ‘넌 못 믿겠으니 입 닫고 회사한테 맡겨’라고 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카메라만 없었어도 빙빙 돌려 거절했을 텐데.

이놈이 프로듀싱하는 줄 알았으면, 절대 INT 쪽에 프로듀싱 권한 안 넘겼다.

어떻게든 반반 갈랐지.

맨날 웃기만 하는 게 덜떨어진 놈인 줄 알았는데, 설마 그걸 계산하고 여기서 이야기를 꺼낸 건가?

나는 입안의 여린 살을 작게 깨물었다.

아니, 이건 과한 짐작이다.

금세 차분해진 나는 주변을 조용히 둘러봤다.

여기서 케이의 프로듀싱에 대해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기색을 내는 순간 편집으로 조져질 확률, 100%? 아니, 200%다.

게다가 러쉬 같은 대형 팬덤을 보유한 그룹에게, 우리 같은 망돌이 감히 그런 말을?

……이건 애초에 거절이 불가능한 제안이다.

유닛 무대 정돈 져도 괜찮지 않겠느냐,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테지만 전혀 아니다.

1위가 거머쥘 베네핏도 분명 탐나지만, 그 전에 여기서 이겨야 신유하의 그림자가 진정될 거라는 확신이 있다.

자세한 사연은 녀석의 우중충함의 근원지는 이곳, INT와 RUSH다.

양 그룹 간의 1:1 대결 구도에서 져버린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도 싫다.

“우선 네가 만드는 곡, 나는 좋아.”

내 말이 끝나자마자 이 녀석의 동공에 이채가 돌았다.

벌떡 일어난 놈이 주먹을 불끈 쥐며 결연한 목소리를 냈다.

“형! 나 꼭 잘 만들게요! 케이 자신 있어!”

그런 케이를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는 표정을 한 뒤, 나는 입을 열었다.

“나도 제안 하나 해도 될까?”

그냥 곡 분위기나 이런 것에 의견을 낼 거라고 생각하는지 케이가 헤진 노트 하나를 꺼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Of course~ 다 말해보세요!”

“나도 프로듀싱에 참여하고 싶어.”

“……W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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