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88화 (88/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88화

“형~ 형~”

쯧.

시끄럽다.

하지만 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붕붕 흔들었다.

“해온 형~ 보고 싶었어~ 형도 케이 보고 싶었어~?”

그럴 리가 있겠냐, 라고 즉답하고 싶지만 앞에 깔린 카메라들을 힐끗 바라본 나는 눈을 곱게 접어 웃었다.

“당연하지.”

내 온화한 말투에 멤버들이 파드득 놀라는 실루엣이 대충 보였다.

‘카메라 있는데 표정 관리를 영 못하는군.’

곧장 상체를 빙글 돌린 나는 멤버들을 조용히 바라봤다.

싱긋…….

곱게 미소 짓자, 멤버들의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이내 정신을 번뜩 차렸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저쪽의 리더인 태오가 카메라를 다분히 의식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식사 아직 안 하셨죠?”

“네. 급하게 오느라…….”

지금 이 대화는 모두 대본이다.

RUSH의 소속사인 INT Enter, 여기 밥이 맛있다는 건 SNS 하는 사람이면 모두 알 정도로 유명하다.

방송 분량 확보가 목적인지, INT에게 설설 기는 게 목적인지는 몰라도 프로그램 측에서 정말 이 부분을 찍고 싶어 하더라.

‘저번 촬영 때 한 번에 찍으면 어디가 덧나나.’

뭐, 추가적으로 다른 촬영도 하고 싶다니 할 말은 없다만.

그런 이유로 우리는 이 사옥 지하에 위치한 식당가에 도착했다.

“와아~ 엄청나네요.”

최승하의 첫 멘트를 필두로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여기서 매번 식사라니, 사 먹을 필요가 없겠는걸요.”

내 멘트에 러쉬 놈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긍정했다.

“맞아요~ 사 먹는 것보다 맛있으니까요~”

그때 앞에 있는 작가가 스케치북을 높이 올렸다.

[라이트온 좀 더 리액션 크게 해주세요!]

아아, 망돌이 1티어 소속사에 와서 두 눈 휘둥그레지는 걸 뽑고 싶은 모양이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눈을 크게 떴다.

“정말 부럽습니다……!”

마치 일평생 깡촌에서 반딧불이 말고는 빛 구경도 못 해본 자연인이 화려한 도시에 발을 내디딘 것처럼 말이다.

굉장히 현타가 오는 일이었으나 애써 긍정회로를 돌렸다.

이런 게 또 동정심을 이끌어낼지도 모르지…….

누군가를 안쓰러워하다 보면, 그 마음이 애정이 되는 건 한순간이기 때문에.

물론 이 명제엔 얼굴이 잘생겨야 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다른 멤버들도 작가의 지시를 신경 쓰는지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정말 이게 급식, 헙. 아!”

차윤재가 아차 싶었는지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마, 말실수를…….”

본인의 말실수가 부끄러운지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음, 역시 아기 고양이다운 행보…….

짜악-

‘정신 나간 생각 그만둬, 이해성.’

내가 웃는 얼굴로 뺨을 후려치자 이 광경을 처음 보는 러쉬의 놀란 시선이 모여들었다.

“잠깐 벌, 음. 먼지가 달라붙어서요.”

……평소처럼 벌레가 붙었다고 둘러댈 뻔했다.

생각해 보니 여긴 식당가고 벌레라는 단어를 꺼냈다면 아마도 ‘저 새끼 남 회사 와서 밥 얻어먹는 주제에 꼽 주네’와 같은 소리를 들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저희 형은 얼굴이 간지러우면 안 긁고 이렇게 손바닥으로 치더라고요.”

이미 이런 광경을 몇 번 본 적이 있는 최승하가 웃으며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화제를 자연스럽게 넘겼다.

역시 이 녀석, 눈치가 보통 빠른 게 아니다.

“아~ Make up 지워질까 봐 그러는 거구나! 케이도 가끔 그래!”

케이가 갑자기 샵 누나가 메이크업했을 때 가려운 피부를 긁으면 화낸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헤헤 웃었다.

옆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는 태오의 눈빛이 보이지도 않는지, 내게 찰싹 붙어 헤실거리는 게 역시 귀찮다.

“자아, 이제 식사하실까요? 오늘은 저희가 풀코스로 대접하겠습니다!”

작가의 스케치북을 읽은 태오가 주문대로 우리를 이끌었다.

“…….”

무려 한식, 양식, 일식, 중식, 샐러드 중에 선택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은박지에 둘둘 싸인 김밥이나 먹는데 이놈들은 회사 잘 만나서 호강하는군.

음식을 주문하고 받아 든 내 눈이 더 커졌다.

웬만한 식당 비주얼보다 더했다.

나는 한식을 택했는데, 정갈하게 디스플레이되어 나오는 게 어디 한정식집에라도 온 것 같았다.

소불고기가 올려진 미니 철판 하며, 각종 쌈 채소와 가지런하게 담긴 반찬과 젓갈까지.

다른 놈들도 놀라긴 했는지 내색하고 있진 않지만 얼굴에 부러움이 스치는 게 여실히 보였다.

……불쌍한 놈들.

얼굴과 능력치로 따지면 3대 소속사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돈데, 어쩌다가 명훈이의 마수에 홀려서 계약서를 찍었을까.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털어내고 정면을 바라봤다.

지금 꼴은 긴 테이블에 러쉬와 라이트온이 마주 보고 앉은 꼴이었는데, 하필 내 맞은편이 태오였다.

“잘 먹겠습니다. 맛있어 보여요.”

“그럼요~ 한 그릇 더 드셔도 됩니다~”

방긋 웃으며 말한 태오가 힐끗 주변을 둘러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맛 괜찮-”

‘……!’

저 새끼가.

나는 곧장 음식을 입에 욱여넣고 태오의 말을 끊어먹었다.

“와아, 정말 맛있는데요? 매일 이렇게 드신다니 부럽습니다.”

참고로 이놈 시선은 신유하에게로 향해 있었다.

아마 내가 말을 끊어먹지 않았으면 ‘오랜만에 온 회사 밥 맛있냐’와 비슷한 뉘앙스의 질문을 했겠지.

신유하는 아마 대답하지 못했을 거다.

지금도 파리한 안색으로 얼굴을 아래로 고정한 채 박은 채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데.

만약 내가 흐름을 끊어먹지 않았다면, 모든 게 카메라에 녹화되었을 테고 이 먹잇감을 빌어먹을 방송국이 놓쳤을 리 없다.

아마 그걸 예상하고 꺼낸 말이겠지. 생각보다 더 영악한 놈이다.

‘……한시도 긴장을 늦춰선 안 되겠군.’

* * *

“Sweets~”

케이가 흥얼거리며 진열된 디저트를 살폈다.

여긴 무슨 놈의 회사가, 디저트 카페까지 있어?

외부인의 출입이 가능한 1층 바깥에 있는 걸 보면, 주 타깃층은 팬들인 듯하다.

INT 소속 연예인들을 모티브로 한 디저트가 하나씩 있었는데, 유닛에 속한 멤버의 디저트를 먹어달라는 작가의 지시가 있었다.

그런 관계로 나는 케이의 컵케이크를 손에 쥐고 있었다.

주로 모에화되는 동물이 강아지인지, 강아지 귀 모양 초콜릿이 장식되어 있었다.

“오우우~ 케이 먹지 마세요~”

진짜 지랄한다.

나는 굳을 뻔한 표정을 빠르게 갈무리하고 웃으며 컵케이크를 흔들었다.

“하하, 케이. 이거 강아지 맞죠?”

“Yes~”

그렇게 말하고는 상체를 내게 가까이 붙인 케이가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근데 이거 맛없어.”

그거야 알고 있다.

팬들 대상으로 장사하는 것 중에 퀄리티 챙긴 게 얼마나 될까, 거의 찾기 힘들다.

나는 포크로 컵케이크를 크게 퍼 올려 그대로 입에 넣었다.

슬쩍 본 가격과는 도저히 매칭되지 않는 맛대가리였다.

‘정말 사진 찍기용이로군.’

외관은 퍽 귀여운 게, 팬들이 한 번쯤은 사 먹을 것 같은 비주얼이었다.

퍼석한 빵 하며, 냉동실과 실온을 몇 번이나 거쳤을지 상상도 안 되는 느끼한 크림.

컵케이크를 입에 넣는 순간 작가가 스케치북을 흔들었다.

[리액션 크게 해주세요!]

하루 종일 이러고 있는 꼴을 보아하니, 프로그램 자체가 INT 눈치를 보며 설설 기고 있는 걸로 추정된다.

INT 사옥 홍보용 투어도 아니고, 계속 이런 걸 찍어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쯧.’

나는 입안에 든 컵케이크를 삼킨 뒤 활짝 웃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방송 생활은-

“이거 맛있네요.”

……쉽지 않다.

둘러보니 다른 멤버들도 색은 다르지만 맛은 최악일 컵케이크를 방긋 웃는 얼굴로 입에 집어넣고 있었다.

테이블이 달라서 제대로 이야기가 들리진 않지만, 최승하가 엄지를 올리고 있는 걸로 봐선 저 녀석들도 꽤 애를 쓰고 있겠구나 싶었다.

컵케이크를 거의 다 비워냈을 때, 제작진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유닛별로 무대 준비하는 컷을 좀 더 따고 싶은데, 지금 가능할까요?”

* * *

사실 어제 자로 곡이 완성되어서, 더 이상 손볼 게 없다.

나는 케이를 힐끔 바라보았다.

나였다면 카메라 없을 땐 절대 혼자 독박을 쓰지 않을 텐데, 이 녀석은 안 그래도 너무 한 게 없는 것 같았다며 신나게 작업을 끝마쳤다.

그러니 이 프로듀싱룸에도 올 이유가 없었는데, 걸음한 건 당연히 제작진의 요구 때문이다.

곡의 프로듀싱 과정을 추가로 찍고 싶다던데.

나는 케이를 바라보며 웃었다.

“우선, 들어볼까?”

“Okay~”

바로 기계를 조작한 케이가 노래를 재생했다.

“Oh my gosh, 우리 노래 너무 좋아!”

인트로가 나오자마자 눈을 빛내며 감탄사를 내뱉은 케이가 눈을 감고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저런 제스처가 멋있어 보이는 건가.’

따라서 살포시 눈을 감은 나도 흘러나오는 멜로디에 집중했다.

지금은 특성이 끝났지만, 천상천하 특성이 적용되었던 그 순간의 느낌은 잊기 힘들 만큼 강렬하다.

정말 내가 이 분야의 전문가를 넘어서서 최고의 권위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내주니까.

프로듀싱은 접해본 적도 없는 나인데, 온갖 지식들이 머릿속을 헤집어놓는 건 기본, 수많은 음표들이 머릿속에서 춤을 추는 기분이 느껴지더라.

그 순간, 무언가가 번뜩였다.

‘……음.’

특성은 이미 소멸되었는데도 남아 있는 약간의 감각이 무언가를 가르켰다.

“케이.”

나는 옆에 앉은 녀석을 부르며 기계에 손을 올렸다.

48시간 동안 잠도 안 자고 매달린 기억 탓에, 능숙하진 않지만 대충 뭐가 뭔지 정도는 안다.

“여기서 이걸 이렇게.”

중얼거리며 즉석에서 비트를 약간 바꾼 나는 다시금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이렇게 가는 건 어때?”

* * *

커뮤니티에서는 한창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번에 TTT 유닛 무대임]

이미 알 사람은 다 알 텐데 바로 3차 경연 넘어가는 거 아니고 유닛 같은 거 한대ㅇㅇ

왜 3차 경연 녹화 참여 공지 안 뜨는지 의문스러워하던 팬들 있던데 사유는 유닛 무대임

ㄹㅅ - ㄹㅇㅌㅇ

ㅂㄹㅂㅇㅈ - ㅅㅍㄷ

ㅇㅌㅇ - ㅌㅇㅂ

곡은 당연히 모르고 이렇게래

안 믿는 사람 있을까 봐 인증도 첨부함

INT 사옥에서 촬영하는 ㄹㅅ랑 ㄹㅇㅌㅇ

(사진)

(사진)

- 와 이래서 안 뜨는 거였구나 ㅅㅂ 계속 기다렸는데

- 갑자기 유닛…?

- 내 돌 또 쟤네랑 엮이네 지겹다

- 오 궁금했는데 ㄱㅅ 이래서였구나 재밌겠다ㅋㅋㅋ

- 위에 댓글 능지 실화냐? 딱 봐도 사생발 정본데 좋단다 ㅂㅅ들

- 사생 소비 좀 작작해 진짜 백해무익함

└ 니는 공출목 사진 갤러리에 하나도 없어? 소비 한 번도 안 했어?

└ ㅇㅇ소비 더러워서 안 함

└ 근데 회사도 눈감아주는 사생을 니가 뭔데 지랄이야? 아주 정의의 빠순이 납시셨어 에궁 무서워라ㅜ

└ 응~ 범죄자 눈막귀막 ㅅㄱ 평생 그렇게 살어~

나는 스크롤을 빠르게 내렸다.

‘음.’

이런 논란은 항상 끊이질 않는 모양이다.

중요한 건 이 글이 올라오고 난 뒤로, 러쉬 팬덤의 한탄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계속 라이트온과 계속해서 엮이는 형태가 어지간히 싫은 모양이다.

나는 스마트폰을 머리맡에 내려두고 눈을 감았다.

시간은 벌써 새벽 두 시, 연습을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되더라.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지.’

유닛 무대가 고작 몇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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