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93화 (93/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93화

펄럭! 펄럭! 펄럭!

카메라가 꺼지기 무섭게 최승하가 내 어깨를 붙잡고 이리저리 흔들기 시작했다.

이미 기력 따윈 없어진 지 오래라 안광을 잃은 눈으로 가만히 펄럭임을 당하고 있으니, 최승하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형 뭐 하는 사람이에요? 저번에 프로듀싱 그냥 조금 배운 거라면서!”

“조금 배운 거 맞아.”

차윤재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속닥였다.

“아까 저 친구가 형님이 더 많이 참여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잘못 들은 거겠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윤재와 최승하가 동시에 뒷목을 잡았다.

스으윽-

나는 시선을 저 너머로 돌리며 계속해서 질문을 해대는 놈들을 무시했다.

이렇게 굴어도 아무도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게 성해온 인성의 최대 장점이었다.

마지막을 장식한 유닛 C는 올타임과 트웰브.

댄스 유닛 쪽이 막상막하였고, 랩은 올타임, 보컬은 트웰브가 조금 더 나았던 것 같다.

마지막 무대까지 끝난 뒤, 최종적인 점수 합산에 시간이 필요하다며 잠깐의 촬영 딜레이가 진행됐다.

“흠.”

나는 바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심사진들을 바라보며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뒷돈 받아먹은 사람이 없다는 전제하에, ……꽤 승산이 있다.

“출연진분들은 잠깐 대기실로 이동해 주세요~”

대기실로 향하는 길목에서도 생각을 이어갔다.

유닛에 참여한 인원이 많든 적든, 그걸로 페널티는 없다고 한 걸로 미루어볼 때 아마 점수 산정 방식은 개인이 아닌 그룹에게 점수를 매기는 식일 테다.

그런 의미로 미안한 이야기지만 유닛 B, 스피디와 블랙보이즈는 견제 대상도 아니었다.

그들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대진 운이 좋지 않았다.

‘상성이 전혀 맞지 않았어.’

유닛 무대라면 어쨌든 두 그룹이 같은 무대를 준비해야 하는데, 중간에서 억지로 맞추려고 하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니었다.

아마 가장 낮은 점수는 이 유닛일 거다.

“음.”

그리고 유닛 C, 올타임과 트웰브는 나름 괜찮았다.

하지만 경쟁 상대로는 모르겠다.

두 그룹 모두 인원이 적지 않은데, 합이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고로 내 생각은 이렇다.

‘러쉬 아니면 우리겠는데.’

대기실에 들어와 의자에 착석하자마자 귀찮은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형! 말 좀 해봐요! 아니, 우리는 그쪽 연습실 근처에도 못 가게 하더니! 사람이 아주 음흉해~ 이 대단한 걸 숨기고!”

최승하의 말에 류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나도 보면서 깜짝 놀랐어.”

휙! 휙!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로 돌리며 어딘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카메라를 탐색했다.

‘없군.’

오늘은 대기실 촬영이 없으니 카메라 설치가 안 된 건 당연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순전히 운이야. 다시는 프로듀싱할 생각 없어. 노파심에 말하는데, 이 말 더 이상은 꺼내지 말아줬으면 한다. 카메라 앞에서든, 회사에서든.”

프로듀싱은 어디까지나 천상천하 특성 때문이었고, 이건 진작에 소멸되었다.

방송에 나가면 반짝 화제가 되겠지만, 어디까지나 그런 화제는 금방 식게 마련이다.

“형은~ 은근 사람이 부끄러움이 많다니까요?”

멤버들이 하나둘씩 움찔대기 시작했다.

성해온에게 이렇게 굴 수 있는 최승하가 놀라운 모양이었다.

최승하는 뒤에 위치한 소파에 털썩 주저앉더니 헤실 눈을 접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장난이고 당연히 형이 싫다면 아무 말도 안 하죠~ 근데 이번 무대 정말 좋았어요. 수고했어요, 형.”

최승하가 운을 떼자, 차윤재가 고개를 격렬하게 흔들었다.

“맞습니다! 정말 훌륭했습니다! 제가 똑똑히 봤는데 심사진 선생님들의 눈길이 형님께 더 많이 갔습니다!”

“내가 보기에도 그랬어.”

한수현은 소파 끄트머리에 앉아서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최승하가 웃으며 어깨에 팔을 턱 걸치자 기계적으로 입이 열렸다.

“저도 저번에 그렇게 말한 게 민망할 정도였네요. 랩 나가겠다고 하신 이유가 있구나 싶었습니다.”

속사포로 내뱉고 다시 입을 다문 녀석을 바라보며 최승하가 미소 짓자 한수현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말해서 죄송했어요.”

그 시각, 나는 갑자기 몰아치는 훈훈한 분위기에 고통받고 있었다.

……이 새끼들 뭘 잘못 먹었나?

잠깐만, 설마…….

뇌리에 어떠한 가정이 섬광처럼 스쳤다.

“…….”

나는 놈들의 면면을 빠르게 훑었다.

“아.”

……드디어 납득이 간다.

아까부터 소름이 돋을 만큼 묘한 기류와 은근히 짜증 나는 저 얼굴들.

이 자식들 나를 안타까워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예측해 보건대, 내가 프로듀싱 실력을 지금껏 감추고 있었던 데다가 다시 할 생각 없으니 이 주제로 떠들지 말라 못까지 박았으니…….

멤버들의 입장에선 성해온의 놀라운 인성과 별개로 자존감이 땅굴을 뚫고 내핵까지 들어간 걸로 보이는 거다.

이놈들은 상태창이고 특성이고, 그런 걸 알 리 없으니까.

“…….”

더 돌겠는 건…… 이 상황을 자연스럽게 넘길 대사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프로듀싱 잘하는 건 알지만, 이딴 거 귀찮아서 더 이상 하기 싫다.’

내가 생각해도 나르시시즘에 흠뻑 취한 미친놈 같다. 기각.

‘그 꼴 보기 싫은 눈빛들 치워라.’

성해온 인성에서 나올 법한 대사지만, 이딴 걸 했다가는 기껏 쌓아 올린 약간의 친밀함조차 사라질 거다. 기각.

‘다들 분위기가 왜 이래? ……난 괜찮아.’

청춘 만화 주인공도 아니고, 이딴 말을 제정신으로 할 수 있을 리 없다.

……게다가 이 멘트는 뭔가 분위기를 더 묘하게 만들어 버릴 것 같다. 기각.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동료애를 끈끈하게 만들어줄 감동적인 장면을 기대합니다!]

정신 나갔군.

* * *

어둑한 무대에 웅장한 효과음과 스포트라이트가 깔렸다.

그 중심에 선 MC의 박진감 넘치는 목소리로 촬영이 재개됐다.

“별들의 전쟁, To The Top! 여섯 그룹이 펼친 유닛 무대가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공간을 가득 메울 만큼 커다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심사 위원 3분, 특별 심사 위원 10분, 총 13명의 심사단이 매겨주신 점수의 합산이 방금 끝났습니다!”

슈우우-

긴장으로 굳은 출연진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게 목적인지, 여러 대의 카메라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 이후로는 심사단들의 짧은 소감이 이어졌다.

대부분 멋진 분들의 훌륭한 무대를 봐서 즐거웠다, 이런 뉘앙스였다.

‘대본이군.’

방송의 재미를 위해 평가대에 올려놓긴 했지만, 아티스트로 취급해 주는 멘트였다

이럴 때일수록 얼굴 클로즈업된 게 교차편집 될 가능성이 크니, 나는 경청하는 척 고개를 끄덕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음.’

신유하는 여전히 음울한 얼굴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이 녀석의 심정이 짐작 가는지라, 웬만하면 놔두고 싶다만…….

이런 스탠스를 유지하면 이상한 편집 들어갈 확률이 커진다.

그렇게 되면 힘들어지는 건 당연히 이 녀석이고.

나는 시선을 심사진 쪽으로 고정한 채, 옆에 앉은 신유하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얼굴 들고, 웃는 것까진 안 해도 되니까, 끄덕이기만 해.”

“……네.”

내 말을 들은 신유하는 옅게 웃더니, 바닥에 떨어뜨려 놨던 시선을 정면으로 끌어올렸다.

나는 그런 신유하를 조용히 바라봤다.

녀석의 상태창을 볼 기회는 수도 없이 많았으나, 아직까지도 살피지 못했다.

오늘 촬영이 시작되기 전, 이 녀석의 그림자 수치는 73%였다.

‘꾸준히 내려갔었지.’

하지만 오늘 사건이 있었으니 분명 큰 폭으로 올랐을 것이다.

‘……뭐, 어때.’

어차피 처음부터 이 목숨에 미련이 없지 않았는가.

지금이라면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니, 사실은 진작에 확인했어야 했던 거다.

신유하 쪽으로 시선을 돌린 나는 속으로 상태창을 되뇌였다.

[신유하]

체력 C

정신력 D

비주얼 S-

노래 A-

춤 B+

※ 망돌의 그림자 수치 : 80%(*위험 4단계)

떠오른 상태창을 눈에 담은 순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역겨운 기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신유하가 무대에서 절었을 때부터, ……사실 예상했다. 아니, 확신했다.

이번 미션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는 걸.

그럼에도 나는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다.

언젠가 미션에 실패해서 죽임을 당한대도 미련 없이 사라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미션의 성공 조건은 신유하의 그림자를 70% 이하로 내리는 것.

그리고 남은 기간은 10일 남짓.

‘아니지, 며칠이 남았든, 이건 실패다.’

신유하의 그림자가 1%만 더 올라도 미션은 실패로 끝나니까.

빠르게 계산을 마친 나는 생각에 잠겼다.

랜덤 페널티라…….

내게 벌어진 비현실적인 일들이 가리키는 것은 단 하나, 얘네를 1군으로 만드는 것.

적어도 난 필요한 장기말일 테니 죽이진 않을 거다.

그 순간, 하나의 의문이 스쳤다.

그냥 쓸모없는 날 죽이고 이 몸에 새로운 영혼 하나 넣어서 똑같은 걸 시키면 되는 것 아닌가.

정말 내가 필요한 게 맞을까, 하는 의문 말이다.

“형.”

“……형! 뭐해요, 멘트!”

최승하의 목소리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아.”

각 그룹 리더에게 짤막한 인터뷰를 시켰던 모양이다.

MC가 언짢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누가 누구한테 훈계질이었는지.’

새삼 방금 신유하가 악편이라도 당할까 옆에서 지껄이던 내가 같잖게 느껴졌다.

나는 마이크를 들고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존경하는 러쉬 선배님과…….”

평소에는 잘만 떠오르던 멘트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자욱한 안개가 낀 듯한 머리에서 할 말을 쥐어짜 냈다.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힘겹게 지어낸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게 느껴졌다.

……이 감정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역겹다.

미친놈처럼 웃음이라도 터질 것만 같아서 눈을 데굴 굴려 멤버들을 응시했다.

‘이놈들이랑 몇 달 살아보니까, 이 몸이 네 것 같기라도 해?’

‘미련이라도 생겼어?’

‘대체 언제부터?’

‘……그래서, 살고 싶어?’

스스로에게 건넨 자조적인 물음들의 답은 의외로 빠르게 도출됐다.

즐거움과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마다, 나는 그것을 부정해 왔다.

언젠가 죽어버려도, 나는 아무런 미련이 없을 거라고.

나는 나 자신을 꾸준히 속여왔던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괴로울 테니까.’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나는 불안함에 잠식되기보다 스스로 속이기를 택한 것이다.

인정하니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나는 살아남고 싶으며, 현재는 죽을지도 모르는 페널티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머리를 차갑게 식혀보자.

내가 아무리 노력한대도, 10일 만에 신유하의 그림자를 10%나 내릴 수 있을 리 없다.

이 녀석의 내면의 문제를 해결할 만한 특성은 적어도 내가 가진 골드로 해결할 수 없으니까.

‘상점에서 봤던 심리 관련 특성이 4,000골드였던가.’

내게 닥친 상황을 X같아 하면서도, 막막해지니 빌어먹을 특성들이나 생각하고 있는 꼴이 정말이지 같잖았다.

이미 한 번 죽기까지 했으면서, 이딴 페널티가 뭐가 무섭다고 이러는지.

그 순간, 눈앞에 메시지들이 연달아 떠올랐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골드 대여를 제안합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황합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절대 이뤄질 수 없는 거래라고 이야기합니다!]

[……시스템의 간섭이 일어납니다!]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떠올랐던 메시지들이 지지직거리며 사라지는 순간, 마찬가지로 잔뜩 깨져 있는 창이 생겨났다.

[■■, ‘새로■을 ■구■■ ■험■’가 3,■00G■ 대■합■다!]

[받■시■■니까?]

[Y■S]◀

[■O]

나는 떠오른 창을 바라보며 눈을 껌뻑였다.

‘3,000골드?’

이거면 신유하에게 적용시킬 심리 관련 특성을 구매할 수 있다.

평소 같았으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이득과 손실을 면밀히 따졌을 테지만, 지금은 사고 회로가 무언가에 가로막혀 버린 기분이었다.

지지직!

게다가 이 창, 무언가에게 제지를 받고 있는 것처럼 글자가 잔뜩 깨지면서 흐릿해지고 있었다.

조금만 지체하면 창 자체가 사라질 것처럼 말이다.

애초에…….

지금 내가 고민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인가?

답은 ‘아니’다.

눈짓으로 선택지를 누름과 동시에, 나는 내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아.”

입에서 미끈거리는 게 울컥하고 쏟아져 나왔거든.

반사적으로 올린 손이 젖어 드는 게 느껴졌다.

서서히 시선을 내리자, 새빨간 액체로 범벅이 된 오른손이 시야에 들어왔다.

무언가 생각이란 걸 하기도 전에 눈앞이 흐려진다.

제대로 잡히지 않는 초점이 흐려졌다, 선명해졌다를 쉴 새 없이 반복한다.

삐이이-

이명 소리가 귀에서 울려 퍼진다.

“……세요!”

“……리!”

옆에서 뭐라 떠드는 것 같기도 한데, 제대로 들리지 않아 답답하다.

흐릿한 시야에 담긴 세트장이 서서히 기울어진다.

툭-

시야가 완전히 암전됐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조용히 미소 짓습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