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94화
“……!!”
“……형! 형!”
“쳐다보지만 말고 얼른 앰뷸런스 불러요!”
촬영장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촬영 잠시 중단합니다!”
몇 분이나 되었을까, 구급대원들이 도착해 이송을 시작했다.
성해온의 꼴은 무척이나 심각했는데, 피를 한 움큼 토해낸 덕에 하얀 옷이 불그죽죽하게 물들어 있었다.
“자, 잠깐, 잠깐만……!”
손을 덜덜 떨며 본인의 외투를 벗은 차윤재가 들것에 눕혀져 있는 성해온의 얼굴에 외투를 올렸다.
적어도 이 사람은 이런 꼴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할 것 같아서.
“…….”
차윤재의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수현도 자켓을 벗어 성해온의 상체에 얹었다.
구급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성해온을 스튜디오 밖으로 이송했다.
앰뷸런스에 보호자 신분으로 올라타려는 차윤재의 손목을 잡은 건 의현이었다.
“후배님은 촬영 마무리하셔야죠.”
“……!!”
그 상황에서 차윤재는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 저렇게 쓰러졌는데도…… 방송을 해야 하나?
할 수 있나?
머릿속에 오만 가지 생각이 밀려들어 왔지만, 뭐라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입을 제대로 떼지도 못하고 있을 때, 이미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는 앰뷸런스가 보였다.
“……아.”
* * *
그 시각, SNS에도 그 소식은 전해졌다.
오늘 유닛 무대 녹화에는 관객 동원을 일절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에 출연할 체급이 되는 아이돌이라면, 비공개 스케줄을 따라다니는 팬들이 있게 마련.
- 뭐야? 오늘 TTT 촬영에서 누구 실려 나갔다는데?
└ 엥? 찐?? 누구???
- 진짜 쓰러졌대? 출연진이?
└ ㅇㅇ
└ 그냥 어그로 아님?
[오늘 자 TTT 촬영장에서 멤버 하나 실려 나감]
(사진)
(사진)
사진 보면 알겠지만, 얼굴 덮여 있어서 누군진 아무도 모름
팔 축 늘어져 있는 거 보면 아예 기절한 것 같은데
옷 보면 스태프는 아닌 것 같지? 진짜 미쳤나 봐 대체 무슨 일인지 감도 안 옴
사진까지 첨부된 커뮤니티 글이 올라오자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해당 커뮤니티 사진과 글 내용 캡처가 담긴 트윗이 순식간에 천 단위를 넘어 만 단위로 알티를 탔다.
하필 오늘 진행되었던 녹화는 비공개 유닛 무대.
의상으로도 유추가 불가능했기에 모든 팬덤이 뒤집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 머리카락 삐져나온 거 보면 흑발인 거 빼고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아요
- 이게… 무슨 일임?
- 빨리 공식 입장 밝히라고 진짜 불안하고 눈물 나서 일상생활이 안 된다고
- 이런 행태는 뿌리부터 뽑아야 함. 아이돌들 몸 갈아서 돈 버는 엔터계 하루 이틀인가? 진절머리 난다. 얼마나 굴려댔길래 사람이 쓰러져?
-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게 진짜 무기력해지는구나
- 듣기로는 뭐 장비가 떨어져서 다쳤다는데 찐임?
- 무대 장비가 떨어졌다고? 이거 진짜면 어떻게 책임질래 Nnet ㅋㅋ
동시에 루머도 일파만파 퍼지기 시작했다.
[이거 나만 이렇게 보임?]
자켓으로 가려서 제대로 안 나왔는데 여기 확대해 보면 피범벅인 거 나만 보이냐?
(사진)
진짜 무대에서 장비 사고 난 거 아니야? 이 정도 출혈이면?
진짜 미쳤네 프로그램 폐지해
- 돌았네
- 저 정도로 피 흘렸으면 목숨 위험한 수준 아니야?
└ 지나가던 전공자인데 사실 출혈 양도 중요하지만 어디에서 출혈이 발생했는지가 중요해……ㅠ
- 내가 너무 화나는 건 이 지경인데도 방송국이고 소속사고 짜 맞춘 듯 조용하다는 거임 Nnet도 떳떳하면 입장문 쓸 수 있는 거 아냐? ㅋㅋ 아 진짜 열 받아서 미치겠네
- 아 진짜 일이 손에 하나도 안 잡힌다 무슨 일이야 이게 대체
이미 SNS는 이 주제로 가득 차 있었다.
실시간 트렌드도 점령했는데, 그중에는 ‘#ToTheTop_폐지해’와 같은 해시태그 총공도 이어지고 있었다.
[이거 ㄹㅅ같은데 ㄹㅅ아님?]
살펴보니까 여기 바지에 달린 반다나랑 이런 디테일이 여기 사진에 찍힌 케이랑 비슷함
케이는 물론 머리 색 다르고 옷 색도 다른데, 맞춰 입은 옷 느낌임
비교 사진 놓고 간다. 반박 시 네 말이 옳음
(사진) (사진)
- 어떡해… 흑발인 거면 아…
- 옷만으로 단정 짓는 건 좀 오바인 듯 오늘 유닛이라는 카더라 있었잖아 오히려 케이랑 무대 한 타 그룹 멤일 가능성이 더 크지
- 지금 INT 전화 안 받는 거죠? 지금 계속 연결이 안 되는데
└ 저도 계속 인트에 전화 중인데 안 받네요ㅋㅋ…
└ 지금 팩스 총공 시작됐어요 여기 팩스 총공 가이드 떴습니다 (링크)
- 팩스 총공 효과 좋네 INT 드디어 전화 받았습니다. 일단 우리 애들은 아니라고 합니다
- 그럼 대체 누구임?
* * *
“이따가 자랑해야지.”
눈에 띄지 않는 사복을 입은 학생이 무음 카메라로 빈 세트장을 찍었다.
부모님이 현직 PD, 소위 말하는 빽으로 비공개 녹화에 들어올 수 있었던 학생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다잡았다.
밀리어스의 오랜 팬인 학생은 녹화에 지장을 주면 안 된다는 부모의 말을 떠올리며, 구석에 서서 특별 심사단 석에 앉은 의현을 멍하니 바라봤다.
‘진짜 잘생겼어!’
아무리 빽이 있어도 밀리어스를 만나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 심사단에 밀리어스 멤버가 섭외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를 조르고 졸라 이곳에 올 수 있었다.
의현! 무려 자신의 최애!
계속해서 의현의 용안을 눈에 담고 있을 무렵, 학생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뭐, 뭐, 뭐야?”
동시에 촬영 현장도 난리가 났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다.
쿵쿵쿵!
갑작스러운 상황에 학생의 심장이 폭발할 듯 박동했다.
성해온이 실려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촬영은 재개됐다.
“……와.”
사람이 그렇게 실려 나갔는데, 곧바로 촬영을 하네.
학생은 눈살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같은 그룹인 라이트온의 안색이 창백했다.
그들은 녹화에 집중도 하지 못한 채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하긴 얼마나 놀랐겠어.’
멀리서 지켜본 자신의 심장도 여전히 떨리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의현 오빠는 왜 안 오지?’
의현이 자리에 돌아오지 않았는데, 녹화가 계속 이어졌다.
“흠…… 간 건가?”
애초에 학생이 이 녹화장에 온 목적은 의현뿐이었다.
금세 흥미를 잃은 학생이 스마트폰을 켰다.
이내 학생의 눈이 동그래졌다.
‘벌써 이렇게 퍼졌다고?’
심지어 죄다 헛다리였다.
‘아주 흑발인 멤버는 다 언급되네.’
온갖 팬덤이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타닥 타닥!
학생은 가벼운 마음으로 커뮤니티에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곧 있으면 퍼질 텐데, 뭐.’
게다가 SNS가 뒤집혔는데, 알려주면 좋은 거 아닌가?
[오늘 사고 아님]
장비 사고 아니고 그냥 갑자기 본인이 쓰러짐
쓰러진 사람은 ㄹㅇㅌㅇ ㅅㅎㅇ
옷 ㄹㅅ ㅋㅇ랑 비슷하다고 말 많던데 둘이 유닛 무대 해서 그런 거ㅇㅇ
- 이거 찐이에요?
└ 겠냐?
- 미친 어그로 새끼가 다 있네… 이런 거 가지고 장난치면 좋은가 인증도 없이 나대지 좀 마
- 별 ㅂㅅ 다 보겠네 진짜 한심하다 이렇게 살고 싶은가? 나였으면 한강에서 뛰어내림~
“에이씨.”
사실을 알려주면 고마워해야지!
학생은 글의 수정 버튼을 누르고, 오늘 찍은 무대 세트 사진을 첨부하며 자신의 신분은 프로그램의 스태프라고 덧붙였다.
인증 사진을 첨부하기 무섭게 반응이 수십 개, 아니, 수백 개가 달리기 시작했다.
“응?”
새로고침을 한번 할 때마다, 추천 수와 댓글 수가 수십 개씩 올라갔다.
“어?”
관심을 받을 건 알았으나, 이렇게까지 몰릴 줄은…….
- 이런 거 스태프가 올려도 됨? ㅋㅋ Nnet에 민원 넣음
- 고소당하고 싶어서 작정을 했나 보네 겁도 없음
- 이야 ㄷㄷ 진짜 스태프라고? 어마어마하다
- PDF 땀 루머든 찐이든 방송국이랑 소속사 공식 입장도 안 나왔는데 일개 스태프가 나대는 꼴이 참 재밌다
“……?”
민원? 고소?
순간적으로 학생의 손이 벌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내가 나쁜 마음으로 올린 것도 아닌데……!’
잔뜩 겁을 먹은 학생은 곧바로 게시글의 삭제를 눌렀다.
딱, 딱, 딱-
학생이 불안정한 얼굴로 손톱을 튕겼다.
‘이게 진짜 고소가 되나? 민원 넣으면 찾을 수도 있나? PDF 막 그런 거 땄다는 댓글도 있던데…….’
* * *
최승하는 창백하게 누워 있는 성해온을 훑었다.
멤버들과 녹화가 끝나자마자 달려온 건데, 생각보다 더…….
드르륵-
모두의 시선이 문으로 모여들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다가오기도 전에 차윤재가 목소리를 떨며 말을 이었다.
“저, 무, 무슨, 아니, 어디가, 문제인 겁니까.”
손에 들린 차트지를 넘기며 입을 달싹이던 의사가 이내 말문을 열었다.
“……정밀 검사 결과, 특별한 이상은 없습니다.”
사아아아-
순간적으로 서늘한 정적이 감돌았다.
최승하가 웃음기 없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럴 리가요. 검사 다시 해주세요.”
“맞, 맞습니다. 이상이 없으면, 아니, 애초에 피를 그렇게 흘렸는데 이상이 없을 수가……!”
“정말 괜찮다면 왜 안 깨어나는 건데요?”
차윤재와 한수현이 차례차례 말을 잇자, 류인이 입을 열었다.
“검사가 잘못되었을 확률은-”
류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 의사는 진지한 얼굴로 안경을 치켜올렸다.
“각혈 후 쓰러지셨다기에, 관련된 정밀 검사를 모두 실시했습니다. 아직 결과가 안 나온 것도 있지만, 그건 증상과는 별 관련이 없는 검사인지라…… 현재로선 정말 특별한 이상이 없습니다.”
의사가 말을 이었다.
“검사 결과, 각혈 시에 쓸린 듯한 내상은 발견되었으나, 저조차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이상이 없습니다. 피로가 심각하게 누적되어 있다는 것만 빼면요. 지금 이 수액도 피로한 몸에 도움을 주는 종류입니다. 약간의 진통제가 섞였지만요.”
“……그, 럼 왜 의, 의식이.”
신유하의 중얼거림에 의사가 시선을 돌려 성해온을 바라봤다.
“지금 깊은 수면 상태로 추정됩니다. 피로도가 이렇게 쌓였을 정도면 이렇게 기절하듯 잠든 것도 무리는 아니죠. 충분히 있을 법한 일입니다. 각혈 증세는 저도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했지만…… 지금은 일단 지켜보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의사는 곧장 병실을 나섰고, 최승하는 희게 질린 멤버들을 훑었다.
본인의 안색도 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대체…….’
최승하는 미간을 설핏 찌푸리며 마른 얼굴을 한 손으로 쓸어내렸다.
드르륵-
“……!!”
또 한 번 병실의 문이 열렸고, 들어온 건 매니저였다.
“얘들아, 지금 밖에 기자랑 팬들 깔렸다. 너희 얼른 일어나. 더 혼잡해지기 전에 얼른 빠져나가야 해.”
* * *
깜빡.
깜빡.
묘한 곳에 홀로 떨어진 성해온은 눈을 느릿하게 껌뻑였다.
“음.”
……여기가 어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