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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96화 (96/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96화

약간은 앳되어 보이는 신유하와 이태오가 연습실에 걸어들어왔다.

신유하에게 팔을 걸친 이태오가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30분! 30분 만에 끝낼 테니까 조오오금만 기다려 주세요! 유하 님!”

“응. 기다릴 테니까 천천히 연습해.”

“역시 마음이 넓은 우리 유하 님~”

장난스럽게 구는 태오에 신유하가 맑게 웃었다.

그리고 나는 그 광경을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 녀석이 저렇게 웃는다고?’

“유하야, 나 이 부분 모르겠는데?”

“……아, 그거! 으음, 이, 이렇게였나?”

신유하는 작게 중얼거리며 방금 태오가 소화했던 동작을 따라했다.

“어, ……으음.”

잘 풀리지 않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린 신유하가 말을 이었다.

“역시 잘 안되네. 사실 나보단 태오, 네가 안무를 더 잘 따니까……! 지금도 나보단 네 쪽이 더 맞는 것 같아. 내일 같이 트레이너 선생님께 여쭤보자.”

“아니야. 내가 보기엔 네가 맞는 것 같아. 역시 우리 에이스~”

태오의 말에 신유하가 귀를 긁적였다.

“무, 무슨 에이스야…….”

조금 소심하긴 하지만, 딱 그 나이대 애 같았다.

지금의 신유하와 비교하면 아예 다른 사람 같을 정도다.

내가 놀라워하는 사이, 신유하는 잠시 물을 마시고 오겠다며 연습실을 나섰다.

드르륵-!

그리고 방실방실 웃고 있던 태오는 연습실 문이 닫히자마자, 표정을 싹 지워낸 채 중얼거렸다.

“아, 재수 없네.”

음, 상당히 또라이 같았다.

이 새끼 어렸을 때부터 인성이 이 모양이었군.

신유하가 들어옴과 동시에 태오는 다시 얼굴에 웃음기를 걸쳤다.

동시에 내 시야도 일그러졌다.

* * *

눈을 감았다 뜨니 다른 공간이었다.

“흠.”

월말 평가라도 하는 건가.

INT 소속 연습생들로 추정되는 인파가 북적북적했다.

나는 평가가 이루어지는 홀 밖 복도에 서 있었는데, INT 전속 프로듀서로 추정되는 남자가 신유하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세상에, 유하는 작곡에도 소질이 있구나. 다음 월말 평가에서는 자작곡을 만들어보는 게 어떨까. 내가 도와줄게.”

신유하는 작은 수첩 같은 걸 들고 있었는데, 상기된 얼굴의 남자가 녀석의 머리칼을 잔뜩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기특한 녀석, 꼭 찾아와. 내가 대표님께도 말씀드려 놓을게. 아마 허락해 주실 거야.”

갑작스레 받은 칭찬이 어색한지 신유하는 고개를 숙인 채로 끄덕였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훈훈한 광경이었다.

이 새끼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러니까 저기 저 기둥 뒤에, 이태오가 소름 돋는 눈으로 이 광경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이쯤 되니 신유하가 불쌍할 지경이었다.

어쩌다 저딴 정신 나간 새끼한테 걸려서는…….

생각할 틈도 없이 시야가 뒤바뀌었다.

* * *

“유하야, 너 다음 월평에선 자작곡 한다며?”

“어? 그걸 어떻게 알았어?”

조금 당황한 낯의 신유하가 되묻자, 태오가 미소 지었다.

“다 소식통이 있지~ 이거 데뷔하면 네가 우리 곡도 만들어주는 거 아니야?”

신유하는 고개를 도리질 쳤다.

“……그럴, 그럴 실력은 안 돼.”

말은 저렇게 하면서도 귀 끝이 붉어지는 게 내심 기뻐 보였다.

“혹시 나도 들어봐도 돼? 네가 만든 곡, 궁금하다.”

그럴 정도는 아니라며 연거푸 거절하는 신유하를 끈질길 정도로 설득한 태오가 이어폰 한쪽을 건네받았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이어폰을 귀에서 빼낸 태오가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유하야. 나는 네 제일 친한 친구잖아.”

뜬금없는 말에 신유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으응, 그렇지……?”

“친한 친구니까, 정말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이거 안 하는 게 좋겠다.”

“이, 이걸 하지 말라고? ……왜?”

“너 이거 진짜 솔직히 별로야. 너 어차피 데뷔조 확정 아니야? 이런 거 했다가는 망신만 당할걸.”

“……프로듀서님은 괘, 괜찮다고 하셨-”

신유하의 말을 자른 태오는 뭐 그런 당연한 걸 묻냐는 듯, 기가 찬 얼굴로 혀를 튕겼다.

“야. 그거야 이미 데뷔 탕탕, 결정 난 애한테 어떻게 안 좋은 말을 하겠어? 우리가 지금에야 을이지만, 데뷔해서 뜨면 갑인데? 그 프로듀서는 너한테 미리 잘 보이려고 그러는 거야.”

“…….”

“너 이거 나였으니까 말해주는 거야, 나 아니었음 어쩔 뻔했어? 하여튼 세상 물정 모르는 우리 순해 빠진 신유하.”

음울한 얼굴로 고개를 바닥에 내리꽂은 신유하를 바라보는 이태오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그러면서도 어깨에 팔을 올리고 위로하듯 토닥이는 꼴이 역겨웠다.

“넌 진짜 나 없으면 어쩌려고 그러냐. 이렇게 맹해서는.”

“그, 그렇게 별로야? 열심히 만들었는데…….”

“내가 허튼 말 하겠어? 너 이거 해봤자 마이너스야. 마이너스. 아무리 초보라고 해도 이건 아니다. 혹시 회사나 다른 애들한테도 들려줬어?”

“……아니, 아직.”

태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천운이다. 천운. 너 이런 거 불렀다가 괜히 응? 그러지 말고 그냥 안전한 거 해. 내가 진짜 널 아끼니까 하는 말이야. 너는 가만히 있어도 데뷔조인데 왜 굳이 이런 걸 해? 만약 해도 이건 아니야. 조금 더 배워서 선보이는 게 나을 것 같아. 기분 나쁜 거 아니지?”

아, 역시나 이 새끼였다.

신유하를 그렇게 만든 놈.

지독한 가스라이팅에 내 미간이 다 찌푸려졌다.

사실 이걸 보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태오, 사이코패스 같은 놈이지만 오히려 머리를 영악하게 잘 굴리는 것 같은데.

왜 신유하를 그렇게 내몰았을까?

뇌가 어느 정도 돌아간다면, 솔로가 아닌 그룹 활동에서 신유하 같은 존재가 가져다줄 이득을 계산했을 텐데?

본인의 열등감으로 이 귀한 올라운더 포지션을 발로 찬다는 건, 글쎄. 내 상식으론 이해되지 않는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물음표와 함께 시야가 어그러졌다.

* * *

이번엔 이태오 시점이었다.

이 녀석, 회의실 문 근처에 서서 숨을 죽이고 있다.

‘무슨 일이지?’

이태오의 얼굴이 서서히 썩어 문드러져 가는 게 굉장히 흥미로워서 가까이 발걸음을 옮겼다.

놈에게 가까워지자,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스윽-

조금 열린 문틈 사이로 내부를 살피니 4명의 실무진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오. 흥미로운데.’

나는 들려오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거 들었어요? 북미 오디션에서 이번에 무슨, 천재 같은 애가 뽑혔다는 거.”

“아~ 들었죠. 대표님이 직접 픽했다면서요. 바로 프리패스로 데뷔조 꽂을 거라던데.”

“지금 그것 때문에 난리예요. 지금 데뷔조 얼추 정해진 거 알죠?”

“……아, 설마 지금 준비 중인 데뷔조에 그 친구 넣는대요? 다음 그룹이 아니라?”

“그렇다는 것 같은데요. 다음 그룹은 빨라도 3년은 뒤에 나올 텐데, 대표님이 무조건 그 친구는 이번에 데뷔시킨다고 마음먹으신 것 같더라고요.”

“그럼 혹시…….”

“6인 체제엔 변함이 없을 것 같더라고요. 이렇게 되면 지금 내부에서 정해진 데뷔조에서 한 명 컷되는 거죠, 뭐.”

“그럼 음, 정해졌어요?”

“……듣기론 그 오디션 출신은 랩 포지션이라, 보컬 중의 한 명이지 않을까 하는데 아직까진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예요.”

아, 이제야 알겠다.

나는 눈을 굴려 태오를 흘겼다.

이 새끼, 본인이 방출될 걸 눈치챘구나.

누군가가 제 발로 나가지 않는 이상, 쫓겨날 건 본인이라는 걸 알았던 거야.

또 시야가 흐려졌다.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저 새끼 얼굴 우그러지는 거, 한 번이라도 더 봤어야 하는데.’

* * *

선명해진 시야에 들어오는 건, 나도 아는 얼굴들이었다.

미래에 러쉬로 데뷔할 놈들이었다.

‘이렇게 몰려다니는 걸 보니, 이 시점에선 데뷔조가 얼추 정해진 게 맞는 모양이군.’

케이와 태오를 제외한 러쉬의 멤버 4명이 둘러앉아 떠들기 시작했다.

“요즘 유하 형 좀 이상하지 않아요? 사람이 좀 우울해 보이고.”

“회사에서도 걔만 이뻐죽으려고 하는데 자기가 힘들 게 뭐가 있냐?”

“그냥 배가 부른 거지 뭐. 그런 것도 컨셉 아니겠어?”

다온의 말에 여기저기서 조롱 섞인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신유하는 아무래도 연습생 때부터 특출난 실력으로 견제를 받아온 것 같지.

‘차라리 친한 척 엉겨 붙는 게 자기들한테 이득이 될 텐데.’

이렇게 모여 앉아서 데뷔할 멤버 뒷담화나 풀고 있다니, 이놈들 수준도 뻔했다.

그때, 잠자코 앉아 있던 희찬이 입을 열었다.

“유하 없는 자리에서 이런 말은 좀 그렇다. 다른 얘기 하자.”

사아아-

순식간에 분위기가 냉각되었다.

희찬이란 놈이 나이가 가장 많아서 그런지 딱히 대드는 놈들은 없었다. 그냥 입만 삐죽일 뿐.

드르륵-!

그때, 연습실 문이 열리고 재수 없는 낯짝이 들어왔다.

“……얘들아. 혹시 하얀색 봉투 못 봤어?”

안색이 백지장처럼 희게 질린 태오였다.

보지 못했다고 고개를 도리질 치는 놈들의 옆에 주저앉은 태오가 눈물까지 몇 방울 흘리며 입을 열었다.

“분명 연습실에 뒀는데, 뒀는데, 아. 미치겠네.”

나는 태오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이 새끼, 전공 잘못 잡았다. 연기로 갔어야 할 놈이다.

“뭘 잃어버렸는데요?”

다온의 물음에 태오가 눈물 젖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반년 치 월세……. 부모님이 보내주신 거, 흑. 분명 연습실에 뒀는데.”

연장자답게 희찬이 태오의 어깨를 두드렸다.

“우리 같이 찾아볼까?”

“……제가 이미 다 찾아봤어요.”

울먹거리는 목소리의 태오가 횡설수설하며 말을 이었다.

“흑, 아……. 진짜 의심하는 거 아닌데, 오늘 연습실 쓴 게 여기 이 인원뿐이니까…… 진짜, 진짜로 의심하는 게 아니고……. 사, 사실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진짜 미안한데 캐비닛, ……캐비닛 한 번만 봐도 돼요?”

갑작스러운 눈물 바람에 연습실 안에 있는 놈들이 잔뜩 당황하며 손을 저었다.

“아 당연히 그 상황이면 그럴 수 있죠. 반년 치 월세면 그게 얼마야……. 형, 봐도 돼요.”

“제 캐비닛도 더럽지만 봐도 괜찮아요.”

“나도 괜찮아.”

그리고 그들은 캐비닛으로 향했다.

태오의 것을 포함한 다섯 개의 캐비닛을 살핀 뒤, 다온이 입을 열었다.

“형, 확인했어요? 연습실 청소하시는 분이나, 그런 분들이 그랬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은데.”

미친 듯이 캐비닛 안을 살피던 태오가 허탈한 듯 물러서더니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진짜 큰일 났다. 나 어떡하냐.”

그런 놈을 위로해 주던 희찬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회사에 말씀드리자. 연습실 외부에 CCTV는 몇 대 없지만, 구석구석 있으니 잘하면 찾을 수도 있어.”

그때 다온이 한 캐비닛을 두드렸다.

[신유하]

신유하의 이름이 쓰여 있는 캐비닛이었다.

“그럼 여기만 마지막으로 열어보고 가요. 신고하기 전에 우선 싹 확인은 해야죠.”

“아무리 그래도 주인도 없는데…….”

“유하 형 성격 알잖아요. 무조건 허락한다니까? 게다가 이거 좀 여는 게 뭐 대수라-”

끼익-

캐비닛의 문을 잡아당긴 다온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

다온이 꺼낸 건 흰색 봉투였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손으로 얼굴을 터업, 가린 태오의 옆에 서 있던 나는 헛웃음을 쳤다.

“하하.”

저 새끼, 웃고 있잖아.

금세 입매를 정돈한 태오가 마른 얼굴을 쓸어내리며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우리, 이거 묻자. 유하한테 티 내지마.”

예상대로 신유하에게 열등감을 보였던 러쉬의 몇 놈들이 이걸 없는 일로 하는 게 말이 되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자 태오가 괴로운 얼굴로 입술을 짓씹었다.

“같이 데뷔할 사이에 악감정 남기고 싶지 않아. 오늘 일은 못 본 걸로 해줘. ……내 부탁, 들어줄 수 있지?”

* * *

여긴 어디지.

INT 사옥이라기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나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무늬 없는 하얀 천장만이 시야에 들어왔다.

‘……병원?’

몽롱했던 두 눈에 초점이 맞춰진 순간, 막아놓은 댐의 강물이 범람하는 것처럼 통증이 한순간에 밀려들어 오기 시작했다.

“……!!”

“아.”

장기가 녹아드는 것처럼 숨쉬기가 힘들었다.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으, 윽.”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몸을 웅크렸다.

투두둑-!

몸에 꽂혀 있는 링거 바늘을 고정하던 테이프가 작은 소리를 내며 살에서 떨어졌다.

찢어진 살에서 피가 주륵, 흘렀으나 그 정도는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강렬한 고통이 이어졌다.

누가 내 몸에 대고 망치질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비명이라도 나올 것 같은 고통에 입술을 짓이기듯 씹었다.

비릿하고 미끌한 것이 터져 나와 입안을 감돌았다.

“……허억.”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가슴이, 아니, 폐가 전부 타버리는 느낌이었다.

침을 삼킬 때도 쓰라린 고통이 몰려왔다.

“하, 흑.”

그대로 또 한 번 의식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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