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100화 (100/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00화

“우리 얼른 회의 들어갈까요?”

최승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3차 경연의 주제는 이거다.

상대방 곡의 재해석.

쉽게 말해서 ‘이건 우리가 더 잘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같은 생각이 드는 노래를 골라 무대를 만드는 거다.

1차 경연은 트레이드, 2차 경연은 뽑기.

즉 두 경연 모두 강제성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주제는 온전히 선택을 할 수 있는 거다.

류인이 들려준 이야기를 들어보니, 유닛 경연 1위 베네핏으로 다른 팀에게 아예 노래를 지정해 줄 수도 있었으나 류인이 거절했다고.

‘잘한 선택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선택 사항, 우리가 굳이 다른 그룹에게 노래를 지정해 줘봤자 이득 없이 역풍만 맞을 뿐이다.

내가 원했던 3차 경연 주제는 자작곡 경연이었다.

하지만 판이 이렇게 짜인 이상 놀아나 줘야지.

나는 의견을 하나둘씩 내고 있는 멤버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난 러쉬 하고 싶은데.”

내 말에 우려의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너무 리스크가 클 것 같은데요.”

나는 한수현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곡은 대부분, 아니, 전부라고 해야 할까.

INT의 자본력과 감각이 들어갔기에 편곡을 한다 해도 그것보다 좋은 곡이 될 거라는 확신을 갖기 힘들 정도로 유려하다.

그리고 팬덤은 또 어떤가, 출연진 중에 가장 화력이 센 팬덤을 소유한 탓에 여론전으로 보자면 아주 불리하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그쪽 팬덤에게 조롱당할 미래가 훤하다는 의미다.

이건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니, 원곡자보다 못한다면 돌아오는 건 비웃음 뿐.

잠자코 듣고 있던 류인도 입을 열었다.

“우리랑 색이 어느 정도 맞는 건 러쉬, 올타임. 그리고 트웰브의 일부 곡들이지. ……블랙보이즈 쪽도 전혀 아니고, 스피디도 힙합 느낌이 강하니까.”

고개를 끄덕이니 류인이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는 네 의견도 나쁘지 않아. 근데 왜 러쉬야?”

“맞습니다. 사실 저는 올타임 선배님을 생각했습니다!”

나는 녀석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떤 곡을 하든 간에 프로듀서님께서 편곡 잘 해주실 거고, 좋은 아이디어 내면 무대는 멋지게 꾸며지겠지.”

이미 마음속에선 러쉬로 정해놨지만, 그래도 민주적으로 해결해야겠지.

하지만 선택지의 폭은 좁을수록 좋다.

“트웰브 곡은 1차 경연 때 했으니 제외하는 게 낫지 않을까. 팬분들도 새로운 모습을 보고 싶을 것 같은데.”

[……그런가?(B)]가 발동됩니다!

적당한 논리의 개소리로 선택지는 둘로 좁혀졌다.

러쉬, 그리고 올타임.

“근데 그렇게 따지면 저희 유닛 러쉬랑 했으니까, 새로운 모습을 추구하려면 올타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쓸데없이 예리하군…….

“음, 그것도 그렇긴 하지. 그럼 수현이, 너는 올타임 노래를 하고 싶은 거야? 생각해 둔 곡 있어?”

그때, 무어라 대답하라는 한수현 대신 차윤재가 입을 열었다.

“……저, 저는 러쉬 노래 좋습니다!”

음.

……분위기가?

방금까지 트웰브 이야기를 꺼낸 녀석이, 한수현이 올타임을 꺼내기 무섭게 말을 바꿨다.

나는 둘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혹시 싸운 거냐.”

둘 사이의 기류가 아주 묘했다.

평소엔 매일 아웅다웅해도, 막내 놈들끼리의 무언가가 있었는데.

지금 이건…….

“안 싸웠어요.”

“안 싸웠습니다!”

싸웠네.

완전 싸웠어.

둘을 제외한 다른 놈들도 눈치만 살피는 걸 보니 아마 내가 없을 때 싸웠던 모양이지.

하지만 지금 그게 중한 게 아니었다.

“그럼 내가 의견 하나만 내도 될까. 나는 러쉬, 음.”

꾸우우욱-!

내 말이 끝마쳐지기도 전에, 최승하가 내 허벅지를 눌렀다.

눈이 살짝 마주치니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건지 다 느껴졌다.

요컨대 멘탈이 깨진 신유하를 생각해서, 이왕이면 러쉬 말고 다른 그룹으로 생각해 보자는 것 같은데.

입 모양으로 러쉬 두 글자를 소곤거리자, 최승하가 고개를 위아래로 붕붕 끄덕였다.

내가 미소를 걸친 채 고개를 끄덕이자, 최승하가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는 듯 안도감으로 물든 얼굴을 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세상에 어떻게 믿어도 이 인간을 믿을 수 있냐며 경악합니다!]

[수식언을 공개하지 않은 한 성좌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는 여전히 만면에 미소를 걸친 채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나는 러쉬 데뷔 타이틀의 편곡 방향을 생각해 봤는데.”

내 입이 열리자마자 최승하가 경악하며 속삭였다.

“와, 이 형……!”

나는 옆에서 달라붙는 최승하를 꾹꾹 치우며 멤버들에게 시선을 보냈다.

“아 물론 강요가 아니라 들어만 보라는 거야.”

서둘러서 곡을 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세부적인 아이디어까지 있는 의견이 나왔다면?

결과는 당연히 그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이거 생각하느라 어제 거의 밤새웠다고.

생각해 둔 아이디어를 꺼내자, 멤버들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경청했다.

말을 끝마친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운을 뗐다.

“그럼 거수로 투표할까.”

우선 러쉬 노래로 가자는데 찬성하는 사람부터 손을 들었다.

척! 척!

가장 먼저 손을 든 건, 나 그리고 차윤재.

‘음, 글렀나.’

역시 더 강하게 의견을 냈어야 하는 건가.

답지 않게 상냥한 척 굴었던 게 패착인가.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두둥실 떠오르는 메시지를 익숙하게 무시하며 시선을 돌리는 와중에, 의외의 인물이 손을 들었다.

‘……한수현?’

이럴 거면 아까 올타임 이야기는 왜 꺼낸 거지.

하여튼 간에 저놈도 영 알 수가 없단 말이지.

한수현이 손을 들자, 그걸 본 차윤재가 씩씩대며 손을 내리려고 했다.

싱긋…….

나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몸을 파르르 떨며 다시 손을 들었지만 말이다.

‘어딜 의견 철회를 하려고.’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얼굴 하얘진 것 좀 보라며 차윤재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냅니다!]

“흠.”

난 눈을 굴렸다.

이렇게 되면 동점인데.

“그럼 이거 동점이네요~ 3:3? 음, 이렇게 되면 올타임 쪽도 한번 세부적으로 생각해 봐서 다시 회의하는 거 어떨까요?”

최승하가 생글 웃으며 판을 뒤집으려고 슬슬 밑밥을 깔고 있었다.

이 녀석은 러쉬 무대가 신유하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긴, 당장 며칠 전의 나였다면 최승하와 같은 생각이었을 거다.

러쉬보단 안전하게 올타임을 선택했을 거란 뜻이다.

하지만 신유하의 과거를 보고 온 이상, 나는 꼭 이 곡을 해야겠다.

그 순간이었다.

“……저는, 투표 참여 안 할게요. 그냥 정해진, 걸로 따라, 가겠습니다.”

“……!!”

멤버들의 놀라움 섞인 시선 속에, 나는 곧장 입을 열었다.

“그럼 올타임 무대 괜찮은 사람 손 들어볼까?”

당연하게도 2표였다.

* * *

“……하아, 죽겠다.”

서민정은 샷을 추가한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성해온이 쓰러진 게 SNS에 공개되면서 제작진 측도 뭇매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프로그램 측 공식 입장을 내기 직전에 성해온이 라이브로 해명을 해 줘서 오해는 당연히 풀렸다만.

‘이게 X발, 무슨 골머린지.’

재미로 넣은 변수가 이렇게 걷잡을 수 없이 통통 튈 거라곤 생각 못 했다.

지잉- 지잉-

서민정이 신경질적으로 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폰을 꺼냈다.

‘징글징글해라.’

편의 봐줬으면 됐지, 감 놔라 배 놔라 아주 요구 사항이 발에 채일 정도다.

유닛 무대에서 라이트온이 1위를 거머쥐자마자 몇 소속사의 물밑 항의가 쇄도했다.

심사 과정에 오류가 있었던 거 아니냐고 말이다.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속내는 왜 우리 애들 데려가 놓고 점수 후하게 안 준 거냐, 이거다.

‘그럼 잘하시든가요, X발.’

서민정은 스마트폰을 받친 손가락 중에 중지를 남기고 접었다.

이렇게라도 허공 엿이라도 날려야 분이 풀릴 것 같아서.

끊었던 담배가 절실하게 말리는 기분이었다.

지금 방송국 어딜 가나 라이트온 이야기였다.

프로그램 전용 회의실 문을 열자, 작가들이 나누는 담소가 들려왔다.

‘아, 또 걔네 얘기네.’

쇄도하는 항의에 질려 버린 서민정은 ‘라이트온’ 네 글자만 들어도 신경이 날카로워질 지경이었다.

“와 근데 그 친구들 진짜 방송을 아는 거 아니에요?”

“내 말이? 어떻게 그런 주제를 탁! 던지지? 심지어 그거 남 PD님이 재밌을 것 같다고 했던 경연 주제잖아.”

“응? 진짜?”

“전에 프로그램 반응 모니터링하시면서 중얼거리시던데. 노트에 적으시는 거 봤어.”

“……?”

의도치 않게 대화를 훔쳐 듣던 서민정은 뇌리에 스치는 불길함을 애써 털어냈다.

……에이, 설마?

목적지를 튼 서민정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아무렴, 우리 피디님이 아무리 망나니 같은 인간이어도 그랬을 리는 없지.

까치발로 여러 개의 편집실 내부를 살핀 서민정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어떤 문을 벌컥 열었다.

“PD님 꼴이 말이 아니시네요.”

“민정아 마침 잘 왔다. 이 늙은이 죽어가기 전에 얼른 커피 한잔.”

이 인간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아냐, 민정아 진정하자. 너는 사회인이잖아.

심지어 이 나이에 메인 작가 자리를 꿰찬 인재라고.

서민정은 심호흡했다.

“PD님.”

“커피…….”

“커피는, 하아. 사다 드릴게요. 근데 PD님 밥은 드셨어요?”

남희연이 고개를 털털 저었다.

“저 PD님, 혹시 라이트온한테 다음 경연 주제 말하라고 시킨 거 PD님이에요?”

남희연은 자신의 말에 동요는커녕 그저 안온했다.

‘역시 내 기우였어.’

서민정은 안심했다.

상식적으로 그게 진짜였으면, 이렇게 태연할 수가 없지.

“하하.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잊으세요. 커피 지금 사 올-”

“그걸 어떻게 알았지? ……쯧, 복도에 누가 있었나? 분명, 없었는데…….”

남희연은 정말 궁금하다는 얼굴로 누구에게 들은 거냐 물어왔다.

터억-!

서민정은 손에 들고 있던 아메리카노를 바닥에 떨궜다.

극한 분노로 쿵쾅대던 심장을 가라앉힌 서민정이 의자를 끌어 남희연의 옆에 앉았다.

“……그거 권력 남용이에요! 그쪽은 얼마나 어이없었을 거예요? 베네핏으로 다음 무대 주제 정하게 해준다고 해놓고!”

“오해야. 나는 그냥 의견 제시를 해줬을 뿐.”

……으윽!

서민정은 본인의 수명이 실시간으로 짧아지고 있는 기분을 느꼈다.

“하, 메인 PD가! 떡하니 주제를 정해주는데! 어떻게 그걸 거절해요? 대체 왜 그러셨냐고요.”

남희연은 어깨를 으쓱했다.

“너도 보면 알걸? 기다려 봐.”

“라이트온 좀 아끼시는 거 아니었어요? 이렇게 되면 라이트온만 욕먹을 텐데요.”

“욕? 욕이라니, 서 작가가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남희연이 고개를 뒤로 젖혀 뚜둑거리며 말을 이었다.

“나한텐 계획이 있다고. 라이트온한테 전혀 해가 되지 않을 계획이.”

“…….”

그렇게 말하는 남희연의 얼굴이 정말 진지해 보여서, 할 말이 싹 사라져 버렸다.

넋이 반쯤 나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난 서민정은 터덜터덜 복도를 걷다가 차오르는 안타까움에 허공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라이트온 너무 불쌍하다.

진짜, 진짜 불쌍하다.

‘앞으로 잘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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