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04화
“한 주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군.”
어제 6화, 즉 유닛 무대 방송이 나갔다.
2주에 걸쳐 방송되는 프로그램 특성상 유닛 B의 경연과 우리가 속한 유닛 A의 보컬 경연으로 끝이 났다.
슥슥-
나는 스크롤을 빠르게 내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나한테 보이는 게 이 정도면, 물밑에선 장난 아니겠는데.’
신유하의 실수 부분이 오늘 나올 거라는 건 알았으나, 이렇게 편집을 정성껏 했을 줄은 몰랐다.
아주 역사에 남을 희대의 실수를 한 것처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여주더라.
요 근래, 안 그래도 러쉬 팬덤과 라이트온 팬덤의 기 싸움은 한창 불타오르고 있었다.
러쉬 팬덤 쪽은 주로 ‘망돌’, ‘데뷔조에서 떨궈진 하자 있는 폐급’으로 공격했고.
라이트온 팬덤 쪽은 주로 ‘실력’, ‘아이돌은 얼굴이다’로 공격을 튕겨내고 있었다.
1차와 2차 경연을 모두 성공적으로 해낸 라이트온이기에, 팬들은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 난장판 분위기에, 프로그램이 대놓고 가스통을 던져준 것이다.
그 덕에 러쉬 팬덤은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 ㅈㄴ 웃겨 아 윾하가 왜 데뷔조에서 떨어졌는지 이해가 확 되네 ㅎㅎ
- ㅋㅋㅋㅋㅋㅋ아 배 아파 그들이 말하는 실력 좋은 아이돌~ 라이트온~ 피식 피식~ 네 네 네네네 알겠ㅅㅂ니다 (캡처 사진)
- 라2트온 빠들 갑자기 입 싹 다문 것 봐 할 말 없죠? 밑천 다 까발려졌죠?
- 어떻게 붙어도 러쉬랑 붙뉴ㅠㅠ 불쌍해라ㅠ (사실 하나도 안 불쌍함)
- 하 러쉬 보컬즈 개뽕찬다 어쩜 이렇게 음정 삑사리도 안 나고 실수도 안 하고… 사람이 실수도 안 하면 인간미가 없는데ㅜ 하긴 러쉬는 신이라서 인간미 없어도 됨
차라리 댄스 경연까지 보여주고 끝이 나든가, 아니면 적어도 예고편에서 라이트온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이 지경까진 안 갔을 거다.
편집으로 무슨 장난을 쳤는지, 예고편에서는 축축 처져 있는 얼굴의 멤버들만 나오더라.
‘표정 관리를 잘했는데도.’
그뿐만이 아니다.
보컬 유닛 무대 전에 공개된 짧은 영상에서 또 신유하가 이상한 놈으로 편집됐다.
프로그램 측에서 나와 케이의 프로듀싱 장면을 촬영했던 것처럼, 보컬 유닛 쪽도 촬영이 들어갔다.
그거야 알고 있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승하에게 물었을 때도.
- 걱정 마세요! 제가 유하한테 딱 붙어서 전담 마크 중입니다~
이렇게 전해 들어서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우리 쪽엔 들어오지 않은 인터뷰가 러쉬 쪽에만 들어갈 줄은 몰랐지.
제작진의 질문은 같이 동고동락했던 사이인데 왜 이렇게 어색하냐는 것이었다.
여기서 뇌가 제대로 박혔다면, 유하가 원래 카메라 앞에선 낯을 가린다느니 이런 뻔한 소리를 하면서 자연스레 넘어갈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태오, 이 빌어먹을 싸패 새끼가 또 일을 쳤다.
[ 태오) 으으음.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하하. 저흰 너무 반가운데……. ]
누가 봐도 사연이 있어 보인다.
심지어 약간 아련한 얼굴로 볼까지 긁적이니, 신유하가 천하의 개새끼라도 된 것 같더라.
게다가 저 인터뷰 뒤가 더 가관이었다.
러쉬 멤버들이 신유하에게 다가갔을 때, 은근슬쩍 자리를 피하는 놈을 교묘하게 편집해 놔서 누가 봐도 사이 X같아 보였다.
그리고 그 불화의 실책은 누가 봐도 신유하한테 있어 보였고.
- 신유하 꼴 보기 싫어 죽겠네
- 진짜 싸가지 없어 보임 ㅇㅇ 어떻게 저렇게 사람을 피하냐
- 열등감 같은 거 아님?ㅋㅋㅋㅋ 자기는 X소 망돌로 데뷔했는데 쟤넨 탄탄대로잖아ㅠ
└ ㅇㄱㄹㅇ
- 우리 윾하 실력도 처참한데 열등감까지 ㅆㅅㅌㅊ라서 어떡하누
- 신유하 실력 인성 얼굴 다 갖췄다고 나대던 라이트온 애미들 다 어디 감? 아무리 봐도 두 개는 못 갖춘 것 같은데ㅠ
“음.”
누나의 기억이나 정보 등이 나에게로 들어오면서 이해성이 덕질하면서 받아왔던, 숱한 스트레스까지 자세히 알게 되었다.
어차피 실력이 증명하는 판, 다음 주에 유닛 경연 마지막 방송이 나오고 나면 자연스럽게 전세는 뒤바뀔 테지.
그럼에도…….
‘……영 마음이 편치 않군.’
“거기서 뭐 하세요? 안 가시고.”
멀찍이 선 한수현이 짤막하게 말을 내뱉고는 곧장 등을 돌렸다.
“간다.”
멤버들도 아마 어제 들어간 악편을 알고 있을 거다.
다들 괜찮은 척하고 있지만 텐션이 평소보다 낮았다.
의외로 신유하는 평소보다 더 활기찬 모습이었는데…….
‘흠.’
일부러 괜찮은 척 하는 건지, 옅어진 그림자와 높아진 정신력의 영향인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전처럼 무너질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다.
잡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목적지에 당도했다.
“엄청 크네.”
“와아……. 저는 이런 데서 연습 처음 해봐요.”
류인과 차윤재가 내부를 둘러보며 작게 감탄했다.
오늘은 사측에서 체육관을 대관했다.
우리 여섯 명뿐이면 당연히 연습실에서 했겠지만, 이번 경연은 아니거든.
‘시간이 지나도 답이 없길래 돈 아까워서 모른 척하는 줄 알았더니.’
모른 척했어도 뭐, 이해는 했을 거다.
커지는 스케일만큼 화려해져야 할 무대 설비, 의상과 무대 효과 등등 전부 계산하면 어마어마한 자금이 필요할 테니까.
고작 4분짜리 무대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치고는 매우 과하지만, 이 무대들로 끌어올 유입을 생각한다면 아깝지 않은 투자다.
그만큼 의 화제성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으니까.
드르륵-
그때, 체육관의 문이 열리고 수수한 옷차림을 한 댄서팀이 들어왔다.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댄스팀의 리더로 보이는 분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
역시 누군가와 접촉하는 건 본능적으로 꺼려진다.
잠시 멈칫했던 손을 올려 마주 잡으려는 찰나, 류인이 인사를 가로채 댄서와 손을 짧게 맞잡았다.
“류인입니다. 저희도 잘 부탁드립니다.”
* * *
나는 멤버들을 불러 모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윤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선배 그룹을 존경하는 척! 겸손한 후배인 척!”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대체 어떤 걸 가르친 거냐며 경악을 감추지 못합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흐뭇한 얼굴로 100골드를 후원합니다!]
“좋다, 다음.”
“친한 척! 아니, 잠깐만.”
반사적으로 대답한 최승하가 또 어이없다는 얼굴이 되어서는, 이미 친한 거 아니냐고 펄쩍 뛰었다.
나는 그런 최승하를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완벽하다. 그리고 편집 각을 애초에 주지 말아야 해.”
우리가 러쉬 노래를 선택한 이상, 제작진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을 게 뻔했다.
실제로 우리에게 악편을 넣을 때마다 장작에 기름을 들이부은 것처럼 화제성이 거세졌으니, 그쪽도 최대한 우리를 이용하고 싶겠지.
우리만큼 뒤탈 없는 장작이 어딨겠는가.
“다들 표정 관리는 잘 알고 있겠지만, 카메라가 들어온 순간부터 긴장해야 해. 웃는 것도 조심해야 하고.”
그저 입꼬리를 당겨 웃은 건데도 편집 들어가면 마치 러쉬를 비웃는 것과 같은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다.
“이 표정을 디폴트로 한다.”
나는 곧장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빛에 올곧은 존경심을 담았다.
일명 교수님 앞 1열석 표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오오!”
차윤재가 눈을 반짝이며 표정을 따라 했다.
오늘은 프로그램 측에서 곡 정하기 회의 현장을 촬영하는 날이다.
아, 참고로 3차 경연은 겨우 4일 남았다.
아직도 메시지를 보내오는 케이를 통해 확인한 결과, 러쉬는 이미 저번 주에 촬영을 마쳤다지.
‘더럽게 늦게 오는군.’
매번 이렇게 무대를 코앞에 두고 작위적으로 연기하는 것도 힘들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그런 것치곤 굉장히 잘하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형 저 어때요?”
“정색하고 있는 눈과 다르게 입만 웃고 있다. 지금 그대로라면 아마 우리가 러쉬 곡을 선택함과 동시에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비웃는 것처럼 편집되겠지…….”
“……!!”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장 돗자리를 펴라며 닦달합니다!]
얼굴에 경악이 깃든 멤버들이 몸을 흠칫 떨었다.
그렇다.
이놈들도 Nnet의 특기인 악랄한 편집에 수차례 담가지다 보니 자연스레 그것에 경계를 갖기 시작한 것이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각자 연습실 벽면에 붙은 거울 앞에서 표정 연습을 하고 있는데, 성취도가 꽤 빨랐다.
‘이 정도면 괜찮군.’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이제 가자.”
……끄덕!
짐짓 결연한 얼굴로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인 놈들은, 촬영이 예정된 회의실로 발을 내디뎠다.
흡사 전쟁에 나가는 장수 같은 얼굴이었다.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던 제작진이 우리를 보고 반갑다는 얼굴을 했다.
“오랜만입니다. 오늘 촬영도 잘 부탁해요~”
“예. 잘 부탁드립니다.”
촬영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기다란 테이블을 두고 앉은 우리는 진지한 얼굴로 회의를 시작했다.
“다들 생각해 놓은 곡 있어?”
내 지령대로 다른 그룹들의 히트곡이 연달아서 터져 나왔다.
“저는 블랙보이즈 선배님-”
“올타임 선배님의-”
나는 눈을 빛내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그 노래도 진짜 명곡이지.”
교수님 앞 1열석의 얼굴로 손뼉까지 치며 리액션을 이어가니 슬금슬금 현타가 몰려왔다.
이제 슬슬 타이밍인가.
나는 눈치를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음, 갑자기 생각난 건데. 내가 이 노래 진짜 좋아하거든.”
촬영 직전 스태프가 시킨 대로 태블릿에서 뮤직 비디오를 재생했다.
“와아, 저도 이 노래 진짜 좋아해요! 아직도 플레이 리스트에 있어요. 진짜 맨날 듣는데!”
최승하 플레이 리스트엔 이런 거 없다.
“저는 이 멋진 곡을 저희가 소화해 낼 수 있을지 무척 걱정됩니다……!”
차윤재까지 멘트를 치자, 다른 멤버들도 정말 걱정된다는 듯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내가 봐도 훌륭한 연기였다.
‘기특하군…….’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이마를 짚으며 근묵자흑을 중얼거립니다!]
최종적으로 우리가 선택한 곡을 카메라에 대고 이야기하자마자, 관련된 질문이 쏟아졌다.
아, 참고로 곡은 10일 전쯤에 미리 프로그램 측에 전달했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이 새끼들은 이미 우릴 엿 먹일 질문지를 잔뜩 만들어 왔을 거란 소리다.
“출연진들 곡 중에서 러쉬의 곡을 고른 이유는 무엇인가요?”
“러쉬의 곡 중에서도 데뷔곡을 뽑은 건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가요?”
“러쉬와 함께 유닛 무대를 했던 소감은?”
그놈의 러쉬, 러쉬, 러쉬.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로 러쉬의 노래들을 좋아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던 것 같다.
다른 놈들도 눈치껏 잘 대응했고.
편집점을 잡을 만한 답변이 나오지 않으니 제작진들의 얼굴이 점점 굳어가는 게 보였는데, 또 그게 아주 볼만했다.
그리고 대망의 경연 날이 밝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