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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105화 (105/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05화

‘아침부터 재수가 없군…….’

대기실도 거의 끝과 끝으로 떨어져 있는데, 복도에서 가장 재수 없는 놈들과 마주쳤다.

심지어 이 새끼들, 길을 가로막고는 가만히 멈춰서 있다.

나는 눈을 곱게 접어 웃었다.

“선배님들, 오늘 무대 응원하겠습니다!”

직역하자면 너희랑 할 말 없으니 응원 들었으면 눈치껏 꺼지라는 뜻이었다.

“오늘 우리 곡 한다면서요~?”

처억!

파르르!

태오가 실실대며 신유하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 하기에, 나는 다급하게 신유하를 내 쪽으로 끌어당기며 팔을 둘렀다.

따지고 보면 원천 차단을 해준 것인데, 내 행동에 놀란 신유하가 몸을 크게 떠는 게 느껴졌다.

‘굉장히 어이없군.’

이쯤이면 성해온에게 적응할 때도 되지 않았나.

내가 대놓고 본인의 행동 노선을 막자, 기분이 상했는지 태오의 눈이 서늘해졌다.

눈빛이 휙휙 바뀌는 게 역시나 사이코패스다웠다.

내가 대답을 하려던 차에, 최승하가 빙글 웃으며 말했다.

“열심히 할 테니 기대해 주세요. 선배님!”

“음, 그래요~”

더 이상 시비 걸 건덕지가 없는지, 태오가 발걸음을 뗐다.

그대로 갈 길을 갔으면 좋으련만, 저놈의 주둥아리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병에 걸렸는지 태오가 몸을 빙글 돌렸다.

“유하야, 기대할게?”

태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옆에 있는 몇 놈들도 얼굴에 명백한 비웃음을 걸친 채로 말을 얹었다.

“그러게. 얼마나 잘할지 궁금하다, 야.”

“푸핫, 그러게? 혹시 이거 정한 것도 유하가 정했어요?”

러쉬의 한 멤버가 우리 쪽을 바라보며 이런 질문까지 날렸다.

음, 그건 내가 정했는데.

“What? 다들 무슨 이야기 하는 거야?”

와중에 케이는 혼자 어리둥절한 얼굴로 양쪽을 번갈아 봤다.

저 눈치 없는 놈도 느낄 정도로 분위기는 꽤 험악했다.

여기서 우리가 대신 화를 내버리면, 우리만 이상해진다.

저들이 대놓고 욕을 하면서 시비를 건 것도 아닌지라.

과거를 본 나야 신유하가 의 센터였다는 것도 알지만, 다른 멤버들은 그것까지 알 리 없었다.

‘역시 그냥 지나가는 게 좋겠는데.’

멤버들의 등을 두드리며 우린 갈 길 가자고 하려던 차에, 내 동공이 크게 확장되는 게 느껴졌다.

의외의 인물이, ……정말 예상도 못 했던 사람이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자고, ……했어.”

아니, 내가 하자고 했는데…….

“하, 네가?”

그, 내가 하자고…….

눈을 잔뜩 부라리고 있는 태오를 똑바로 마주한 신유하가 덤덤한 얼굴로 말을 끝마쳤다.

“……그리고, 잘할 거야.”

사아아-

나를 포함한 다른 놈들도 신유하가 저렇게 나올 거라곤 꿈에도 생각을 못 했던 터라 아주 짧은 정적이 흘렀다.

“음.”

나는 시선을 살짝 내려 녀석의 손을 살폈다.

역시나 안쓰럽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가 신유하의 손을 그러쥐었다.

그러고는 잔뜩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는 러쉬를 바라봤다.

역시나 멍청한 낯짝이 참 잘 어울리는군.

나는 활짝 웃으며 태오를 바라봤다.

“그럼 저흰 이만.”

우린 곧바로 대기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끼익, 쾅-!

대기실 문이 닫히기 무섭게 최승하가 신유하의 어깨를 쥐고 흔들었다.

“너 뭐야! 너 뭔데 이렇게 멋있어!”

아, 이 녀석들 전부 러쉬를 좋아하지 않는다.

누가 봐도 신유하를 골리는 게 티가 나는 데다가, 당사자가 직접 연습생 때 무슨 일이 있었다고 말을 꺼내기까지 했으니 감정이 비호감으로 통일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다른 녀석들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거들었다.

“맞습니다! 형님이 한마디 하실 때 제 속도, 시, 시원했습니다!”

“저도요.”

“나도 아주 통쾌했어. 잘했어. 유하야.”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동료애를 더 깊게 만들어줄 당신의 한마디를 기대합니다!]

“……대형 연습이나 하자.”

이런 훈훈한 분위기는 역시 체질에 안 맞는다.

* * *

“내가 해냄.”

곽덕배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번 3차 경연의 사전 녹화 경쟁률은 엄청났다.

야광 스틱을 받은 팬들이 얼마 없는 줄 알았더니, 꽤 있었던 모양이다.

이전의 유닛 무대는 팬덤의 참여가 불가능했던 데다가…….

생방송으로 진행될 파이널 경연을 제외하면 이번 3차 경연이 팬들이 참여할 수 있는 마지막 무대였기에 경쟁률이 배는 치열해졌다.

스윽-

곽덕배는 고개를 돌려 익숙한 얼굴의 팬을 바라봤다.

‘저 사람, 친해지고 싶다.’

1차 경연 때부터 계속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오프에서 본 적이 없는 얼굴이지만, 경연 녹화마다 참여하는 걸 보면 열정적인 팬인 것 같은데.

게다가 무대를 보며 스스로 이마를 치는 것도 그렇고, 어쩐지 자신과 잘 맞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홀로 내적 친밀감을 차근차근 쌓아왔던 곽덕배는, 오늘 근돌에게 SNS 맞팔로우를 제안할 참이었다.

“……저기.”

대기 줄을 서던 와중에, 조용히 말을 걸자 근돌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

곽덕배는 사람 좋은 얼굴을 하며 질문했다.

“누구 최애세요?”

이런 곳에서 팬들이 친목을 쌓는 것은 꽤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내향형 인간인가.’

으음, 괜히 나댔군.

어쩐지 미안해진 곽덕배는 뒷목을 긁었다.

그녀가 블랙보이즈 보러 왔다가 라이트온으로 갈아타 버렸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곽덕배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마무리 지을 요량으로 말을 이었다.

“오늘 무슨 무대 할지 기대되네요.”

“저, 저도요! 아, 그리고 저 최애는 류인이에요!”

뒤늦은 근돌의 답에 곽덕배는 손으로 입을 터업, 막았다.

“어쩐지! 뭔가 류인이 좋아하실 것 같은 관상이었어! 차애는 승하시죠!”

“……!!”

날카로운 예상에 근돌이 눈을 크게 떴다.

“……어, 그걸 어떻게!”

‘이 사람, 탄탄한 녀석들을 좋아하시는군.’

둘은 지루한 대기 시간 동안 라이트온에 대한 토론을 나눴다.

펄럭!

“이거 법적 효력 있는 겁니다! 스포하시면 법적 대응 합니다!”

동의서를 흔들며 팬들에게 엄포를 놓는 스태프를 보며 근돌이 혀를 찼다.

“쯧쯧, 저래봤자 할 놈들은 다 하는데 말이에요. 물론 저도 할 거예요. Nnet 좋은 일 시켜줄 생각 없음.”

……이 사람, 역시 뭔가 나랑 잘 맞는다!

“저 혹시, 저랑 맞팔하실래요……?!”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계정이 없어서…….”

블랙보이즈를 버리고 갈아탄 지 얼마 되지 않은 근돌은 정말 구독계를 제외하고는 라이트온 계정이 없었다.

‘이분은 내 인상이 별로인가 보다.’

계정 없다는 건 에둘러 거절하기 위한 거짓말이라 판단한 곽덕배가 멋쩍게 웃었다.

“오늘은 애들 몇 번째일까요……?”

근돌의 질문에 곽덕배가 곧바로 대답했다.

“글쎄요. 근데 왠지 감이 초반일 것 같아요!”

“허흑, 저도요. 심장 잡고 있어야겠다!”

* * *

“라이트온 음향 체크 한번 할게요! 잠깐만 더 대기해 주세요!”

경연의 무대 순서는, 이전 경연의 승자가 결정한다.

고로 3차 경연에서의 우리 순서는 1번이다.

2차 경연에서 압도적인 1위를 거머쥔 러쉬가 내가 선택했던 방식을 그대로 돌려줬거든.

- 아 이거 너무 어렵네요. 그럼 저희도 데뷔 연차순으로 가겠습니다~

이렇게 말했었던 것 같다.

……이번에도 5번째 무대를 어부지리로 얻은 클락션은 계속 싱글벙글하더라.

첫 번째 순서, 긴장이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정신력 탓에 크게 떨리거나 하진 않는다.

이놈들은 조금 다른 것 같다만.

“저, 저, 청심환을 보신 분 있으십니까? 아까 분명 봤는데……!”

차윤재가 긴장한 얼굴로 가방을 뒤적거렸다.

“어. 윤재야 여기.”

“……! 아, 감사합니다!”

류인에게 목을 꾸벅 숙인 차윤재가 청심환을 꿀꺽 삼켰다.

“나, 나도…….”

신유하가 차윤재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나를 제외하고는 다들 아침에 청심환 한 알씩 먹었지만, 이 두 놈은 지금 무려 세 알째다.

청심환 많이 먹는다고 죽진 않겠지만, 이렇게 많이 먹어도 괜찮은 걸까.

심각한 의문이 스쳤다.

나는 청심환이 든 가방을 차윤재의 손에서 뺏었다.

“리허설대로만 하면 돼.”

“……!!”

내 말에 놀라운 시선들이 모였다.

“형, 지금! 격려해 준 거예요? 지이인짜?”

“…….”

발언을 취소하고 싶어졌지만 남은 사회성을 쭉쭉 짜내서 대답했다.

“그래. 우리 연습도 열심히 했잖아.”

“열심히 한 수준이 아니라 거의, 죽기 직전이었죠……!”

“마, 맞습니다! 장난이 아니라 정말 죽을 뻔했습니다!”

이번 무대는 어려운 안무가 많은 관계로, 요 몇 주간 5시간 이상 자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래, 오늘 무대 끝나면 하루 종일 잠만 자자.”

내 말에 차윤재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무조건입니다!”

그 순간, 대기실 문이 열렸다.

“라이트온 스탠바이할게요.”

백스테이지에 선 우리는 무대가 완전히 세팅될 때까지 기다렸다.

녹화가 시작되기 전, MC의 아이스 브레이킹 용도의 멘트가 시작됐다.

“이야아~ 여러분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기분입니다! 오늘 무대도 즐길 준비 되셨나요?”

곧바로 팬들의 우렁찬 대답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누구 응원하러 오셨어요?”

괴상한 소리와 함께 여섯 그룹명이 겹쳐서 들려왔다.

그걸 백스테이지에서 고스란히 듣던 최승하가 소곤거렸다.

“방금 라이트온도 되게 크게 들리지 않았어요?”

“들렸습니다!”

“……응.”

“들렸어요.”

“그러게, 확실히 들었어.”

긴장으로 점철되었던 얼굴들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응원의 힘이라는 게 대단하긴 하군.

‘……음.’

속이 조금 울렁거렸다.

‘뭘 보고 이렇게 큰 애정을 주시는 걸까.’

이렇다 할 대가도 없는데 말이다.

“여섯 그룹 팬덤 중에 누가 가장 목소리가 활기찬지 보고 싶었는데, 무승부네요. 하하.”

레크리에이션 강사에 버금가는 MC의 멘트 뒤로, 시작된다는 사인이 울렸다.

카메라가 켜졌다는 신호와 함께, 웅장한 효과음이 깔렸고 스태프가 지금 무대로 올라가라는 손짓을 보냈다.

아직은 어두컴컴한 무대 위에서, 멤버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찾았다.

‘무조건 해낸다.’

* * *

“별들의 전쟁! To The Top, 을 재해석한 라이트온의 무대,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곽덕배는 첫 번째 무대의 주인공이 호명되자마자 근돌과 눈빛을 교환했다.

‘……미쳤나 봐!’

러쉬의 헤븐이라면 이미 유명한 곡이다.

게다가 본인도 무척이나 좋아하는 곡, 어떻게 편곡하든 평타는 칠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두통이 몰려왔다.

‘이런, X발.’

정신 나간 러쉬 팬들이 지랄해 댈 게 벌써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 호기롭게 우리 애들 노래 골랐다가 보기 좋게 처발린 느그트온

- 어디 건드릴 게 없어서 갓러쉬의 띵곡을 건드리누

- 근데 진짜 나 민망해서 못 보겠어 ㅋㅋㅋ 너무 비교됨~

아마 이 지랄로 비꼬아댈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제발, 제발 명훈이가 돈 좀 많이 썼길!’

이렇게 된 이상 최소한의 가오라도 지켜야 한다……!

MC가 퇴장하고 암전된 무대에 실루엣이 보이자 팬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악!”

팬들과 함께 함성을 지르던 곽덕배의 심장은, 곧이어 들려오는 소리에 주체할 수 없이 뛰기 시작한다.

아직 어둠만이 내려앉은, 고요한 무대에 청아한 대금 소리가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설마 전통 컨셉?’

터업!

곽덕배는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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