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06화
대금 연주 소리가 스튜디오를 가득 메웠다.
청아한 음색에 매료된 순간, 멜로디가 섞이기 시작했다.
느릿한 템포의 멜로디에 가야금 소리가 곁들여지고, 계곡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까지 섞이니 귀가 황홀해질 지경이었다.
타앗-!
그와 동시에 어둑했던 무대에 어슴푸레한 조명이 들어왔고, 중앙 무대의 인영을 마주한 곽덕배는 눈을 껌뻑였다.
‘실화인가?’
무대에 반쯤 눕듯이 앉아 있는 성해온이 수묵화가 그려진 부채를 살랑였다.
‘X발, 처음부터 성해온이라니. 이건 너무 했지.’
곽덕배의 심장에 무리였다.
무대 바닥으로는 하얀 안개까지 자욱하게 깔리고 있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의상은 전통적인 한복을 무대 식으로 디자인한 느낌이었는데, 시스루 원단이 섞여 하늘하늘한 느낌이 나는, ……사실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사 같다는 생각 외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의상 너무 예쁘다……!’
몰려오는 카타르시스에 숨을 제대로 쉬기가 힘들었다.
눈을 휘어 접어 씨익 웃은 성해온이 부채를 타악, 소리 나게 접으며 특유의 독특한 음색으로 도입부를 열었다.
- 풍악을 울려라
성해온의 짤막한 파트와 동시에 국악기들의 합주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통 악기 특유의 경쾌하고도 웅장한, 공간을 가득 채우는 느낌.
“……!!”
연회를 준비하는 궁의 풍경이 그려지는 착각이 일 정도로 벅차고도 황홀한 소리에 곽덕배는 눈을 크게 떴다.
합주에 흠뻑 빠져 있을 무렵, 무대 양옆에서 신비롭고도 고아한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메인 무대로 모이기 시작했다.
하얗고 긴 천을 마치 선녀의 옷자락처럼 팔에 두른 무용수들이 일제히 한국 무용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붉게 물든 치맛자락과 하얀 천이 공중에 나풀거리는 모습이 가히 절경이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 곽덕배는 숨도 쉴 수 없었다.
‘……명훈이 노망났나 봐!’
물론 칭찬이었다.
지금 저 무대는 누가 봐도 돈 냄새가 나다 못해 철철 흐르거든.
원곡과는 전혀 다른, 완벽한 라이트온만의 오리지널 인트로였다.
러쉬의 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선율이 주가 되는 노래였다.
‘거기에 몽환이 한 티스푼 정도 들어간 노래지.’
지금 이 노래도 너무 좋지만, 지금은 거의 라이트온이 창조한 노래와 다를 바 없어서 걱정됐다.
하지만 쓰잘데기없는 걱정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무용수들의 짤막한 안무가 끝나자, 마치 연회가 종료되었다는 듯 모든 멜로디가 뮤트된 것이다!
어두워진 무대와 함께 찾아온 정적에 팬덤석에서도 웅성거림이 커졌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휘이익-!
휘파람 소리와 함께 노래가 재개되며, 중앙 무대에 스포트라이트가 들어왔다.
바닥에 깔려 있는 자욱한 안개 위에 서 있는 건, 여섯 멤버였다.
퍽! 퍼버벅!
엄청난 분위기에 어우러지는 천상계의 비주얼에 곽덕배는 스스로의 이마를 내려쳤다.
섞여들었던 국악기 중, 아련함을 자아내는 해금 소리만이 남아 원곡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흉내 낸다.
약간 느릿한 미디엄 템포에 원곡의 건반 사운드가 미약하게 깔려 있었다.
- Hu wee woo hu-hui
신유하를 중심으로 선 V자 대형.
중앙에 선 신유하가 허밍하듯 휘파람 소리를 내자, 부채꼴로 퍼져 있던 멤버들이 허공으로 팔을 들었다.
널찍한 폭의 소맷자락이 동시에 흩날리니, 그것만으로도 아름다울 지경이었다.
띵, 디리링-
가야금의 소리가 섞여드는 순간, 신유하를 제외한 멤버들이 동시에 몸을 아래로 낮추더니 땅을 박차고 허공을 돌았다.
그들의 도포 자락이 공중에 가볍게 휘날릴 때마다 곽덕배의 이성도 조금씩 휘발되어 가고 있었다.
- 함께라면 어디든 그곳이 Heaven, 천국일 테니
곽덕배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도입부 가사를 소화하는 신유하의 얼굴이 그냥 천상계였기 때문이다.
실시간으로 시력이 올라가고 있었다.
- Hu wee woo hu-hui
성해온이 허밍 소리를 내며 파트를 이어받았다.
‘목소리 미쳤는데.’
곽덕배의 심장이, 성해온의 파트때마다 과하게 뛰었다.
‘성해온 얼굴 미친 거 아니야?’
……왜, 왜 더 잘생겨진 것 같지?
원래도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잘생겼었다만, 뭔가 더…….
- 내가 있는 곳으로 널 초대할게 Heaven
곱게 펄럭이는 옷자락과 함께, 은은한 미소를 띠며 파트를 소화하는 성해온이 주는 대미지는 강력했다!
그 결과로, 여기 이 오타쿠.
곽덕배가 경악하고 있었다.
‘이 천재 블루베리는 못하는 게 뭐야?’
진심으로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성해온의 파트가 끝나기 무섭게 멜로디에 국악기의 소리가 조금 더 섞이기 시작했다.
가야금에 이어 대금 소리까지 더해지니, 절제된 화려함이 청각을 자극했다.
타앗-!
그 순간, 오른쪽 사이드 무대에 옅은 조명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앞엔…….
‘외줄?’
두꺼운 줄이 꽤 높은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이내 곽덕배는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카메라 사각지대인 무대 장치 위에 올라가 있던 류인과 차윤재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외줄에 발을 내디뎠기 때문이다.
왼쪽엔 차윤재, 오른쪽엔 류인.
사실 외줄타기 하면 남사당패 같은 이미지만 떠올랐는데, 전혀!
기품있고 꼿꼿한 모양새로 수묵화가 그려진 부채를 살랑이며 줄 위를 걸으니, 우아하기 그지없었다.
바닥에선 여전히 안개가 넘실거리니, 분위기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코어가, X발. 얼마나 좋은 거야.’
사람이 양쪽에서 올라타 있는데, 흔들리기는커녕 줄은 잔잔하게 일렁일 뿐이었다.
어느새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만큼 거리가 좁혀지자, 전광판에 커다란 보름달이 떠올랐다.
옅은 조명뿐이라 어둑했던 무대에, 달빛이 더해지니 임팩트가 어마어마했다.
머리에 피가 쏠려서 쓰러지기 직전인 곽덕배가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았다.
- Hu wee woo hu-hui
아까 전 보컬 라인의 것과는 다른, 류인의 낮은 휘파람 소리가 마치 경고하듯 일렁였다.
그 앞에 선 차윤재가 파트를 소화했다.
- 환상처럼 다가왔다 사라져
I don’t know what to do
훅!
그리고 순식간에 둘의 인영이 동시에 마법처럼 사라졌다.
“……!”
곽덕배는 숨 쉬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몸을 빳빳하게 굳힌 채 입을 벌렸다.
‘돌았나.’
허공에 위치한 줄에 올라서 있던 둘이 동시에 아래로 낙하한 것인데, 안개가 짙게 깔려 있어 인영이 보이지 않았다.
‘흑흑 X발…….’
감격으로 벅차올라 소리가 터져 나오기 직전이었다.
멜로디는 클라이막스로 다다르기 시작했고, 메인 무대에 밝은 스포트라이트가 들어옴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감탄 소리가 들려왔다.
……무대에는 복사나무가, 그러니까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던 것이다!
분명 가품이겠지만, 오타쿠의 눈이 돌아가기엔 충분했다.
‘돌았나?’
곽덕배는 이제야 이 무대가 원곡에서 말하는 ‘천국’을 ‘무릉도원’으로 재해석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오타쿠 실격, 곽덕배 벌점 1점.’
곽덕배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이 정신 나간 천재 컨셉에 찬사를 보냈다.
흐드러지게 핀 복사꽃 나무 아래 선 멤버들은 군무를 시작했다.
- Heaven, Heaven, Heaven (Hu wee woo hu-hui)
성해온의 독특한 음색이 드러나는 파트와 어우러져, 정말 황홀경이었다.
넋이 나갈 정도의 풍경이었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노래 자체가 변주되고 있었다.
건반 사운드가 깔려 있었다지만, 국악기의 비중이 월등했던 멜로디에 원곡의 바이올린 선율이 더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화려한 기교를 날카롭게 뽐내는 현악기 바이올린과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현악기들 특유의 부드럽고 온화한 음률이 조화롭게 뒤섞였다.
- 환상처럼 드리워지는 Heaven
계속해서 이어지는 성해온의 보컬, 멤버들은 하나같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다니는 고난이도 테크닉의 안무를 선보였다.
체공 시간도 긴 데다가, 도포 자락이 선을 그리며 휘날리니 그것만으로도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것에 시선을 빼앗겼을 때, 무대의 양옆으로 무용수들이 다시금 등장했다.
멤버들의 뒤에 선 그들이 연속적인 턴을 선보였다.
붉은 치맛자락과 하얀 천이 아름답게 조화롭게 흩날렸다.
멤버들만으로도 눈이 돌아갈 것 같은 화려한 안무였는데, 무용수들까지 추가되니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화려함에 넋을 놓고 있던 순간이었다.
촤라락-!
천장에서 하얀 천이 내려와 메인 무대를 가렸다.
물음표를 띄우고 있을 무렵, 하늘하늘한 천 사이로 기다란 손가락이 나왔다.
……천을 걷고 나온 것은, 신유하였다.
심지어 무대에는 분홍빛 꽃잎, 그러니까 복사꽃잎이 흩날리고 있었다.
- 영원토록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을 기억해
고음의 파트를 애초부터 자신의 것인 양 손쉽게 소화한 신유하가 몸을 빙글 돌려 등을 보였다.
어서 따라오지 않고 뭐하냐는 듯, 고개를 반쯤 휙 돌린 신유하가 카메라를 마주 보며 사르르 웃었다.
- 널 초대할게 Heaven
슈우욱-!
신유하의 파트와 동시에 무대를 모조리 가렸던 천이 빠르게 위로 걷혔다.
그리고 보이는 놀라운 광경에 곽덕배는 숨을 참았다.
천으로 가려져 있던 무대 안쪽으로는…….
복사꽃이 만개한, 커다란 나무 아래에 멤버들이 걸터앉아 모여 있던 것이다!
‘돌았냐고…….’
특히 나무 아래에서 나른하게 앉아있는 성해온은, 오프닝과 맞물려 엄청난 시각적인 충격을 줬다.
퍼버버벅!
스스로의 이마를 연타한 곽덕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얼굴들을 보니, 여긴 무릉도원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또 한 번 변주되는 곡 분위기에 곽덕배는 다시 한번 숨을 참았다.
점차 작아지는 악기의 소리에,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와 바람에 나풀거리는 풀 소리 등이 크게 섞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 Hu wee woo hu-hui
멤버들의 사이로 걸어 들어간 신유하의 담백한 휘파람 소리와 함께 무대가 마무리되었다.
강렬한 여운을 주는 무대에, 몇 초간 정적이 흘렀다.
“……와아아아아아악!!!”
무대가 끝이 났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 관객석에서는 한 박자 늦게 환호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만큼 사람들의 이목을 모두 집중시킨 무대였다.
몇 분 동안 무대에 홀린 기분이었다.
곽덕배는 차오르는 덕심을 주체하지 못했다.
‘헤븐, 라이트온한테 양도 완료.’
장담하건대, 뒤에 러쉬가 무슨 무대를 하든 간에 이건 못 따라잡을 것 같다.
물론 팬덤 많은 걔네가 승부에선 이기기야 하겠지만, 여론 말이야.
곽덕배는 자꾸만 꿈틀거리는 입꼬리를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 * *
마이크에 소리가 들어갈세라, 입을 다문 채로 숨을 골랐다.
전체적으로 몸을 크게 쓰는, 무용에 가까운…… 정신 나간 퍼포먼스 연속이었다.
게다가 고난도의 보컬 파트까지 계속해서 이어져서, 사실상 신유하와 나의 더블 센터 무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결과로, 나는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뒈질 것 같군.’
여기서 열받는 건 체력 스탯이 높은 놈들이다.
이 자식들은 숨만 거칠게 몰아쉴 뿐, 나처럼 죽기 직전의 상태는 아닌 것 같단 말이지.
백스테이지로 내려오자마자, 차윤재가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여기 물 좀 드십시오! 그나저나, 오늘 해온 형님 보컬 정말 좋았습니다! 유하 형님도요!”
“맞아요. 리허설 때보다 좋았어요. 형들, 수고하셨습니다.”
“그나저나 해온 형, 괜찮아요? 몸이요.”
최승하의 물음에, 나는 혀를 끌끌 찼다.
“몇 번을 묻는 거냐. 괜찮다니까.”
쓰러진 이후로, 이놈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내 건강 상태를 체크한다.
“걱정되니까 그렇죠.”
“맞습니다! 걱, 걱정됩니다! 이럴 게 아니라 대기실로 가서 쉬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형님, 많이 힘들어 보이십니다!”
체력이 후달리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 나는 스태프에게 스스로 제거한 음향 장비를 건넸다.
“여기, 감사합니다.”
“아, 제거하셨네요. 감사합니다!”
꾸벅 목례를 한 뒤 등을 돌렸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뭐가 이렇게 조용하지?’
무대의 여운에 힘든 것도 잊었는지, 신나서 종알거리던 놈들이 일순간 조용해진 것이다.
휙!
나는 대기실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춘 채 상체를 빙글 돌렸다.
“……?”
그리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신유하의 두 눈에서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눈물이 줄줄줄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기척도, 소리도 없이 폭포처럼 흐르는 눈물이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혀, 형님! 왜, 아니, 무, 무슨 일이 있으신! 티, 티슈를 가져오겠습니다!”
순식간에 아연해진 얼굴의 차윤재가 튀어 나갔고, 다른 멤버들은 신유하의 곁을 맴돌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놈들이 달라붙어서 위로를 하든 말든,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상태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