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110화 (110/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10화

“돌았나 봐.”

덕질을 같이하던 친구들이 슬렌더한 몸에 붙은 잔근육을 찬양할 때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는데.

댄스 퍼포먼스 무대를 본 뒤, 흐뭇해진 얼굴의 근돌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구독계에 접속했다.

블랙보이즈 홈마 생활만 어언 4년, 근돌은 웬만한 오프라인 행사에서 각종 팬덤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이 새끼들은 진짜 싸가지가 없어…….”

INT 아이돌을 덕질하는 덕후들 말이다.

이것들은 그룹을 막론하고 재수가 없다는 게 근돌의 결론이다.

‘데뷔부터 떠서 그런가.’

INT는 남돌의 명가라고 불릴 정도로 내는 족족 성공을 거머쥐는데, 이전 세대 선배 그룹에 비하면 러쉬의 성적은 아쉬운 편이다.

‘팬덤 크기에 비해 성적이 좀 안 나오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가 팬들의 방어기제도 더 거센 느낌?

근돌은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랩 퍼포먼스 팀의 준비 과정을 보여주려는 듯, 화면엔 큰 사옥 건물이 재등장했다.

덕후들 사이에선 알음알음 유명한 INT 특제 X노맛 컵케이크를 먹으러 간 두 팀이 웃는 낯으로 그것을 베어 먹었다.

‘저거 레전드로 맛없는데.’

근돌은 모니터 속 케이를 바라봤다.

“흠.”

특유의 밝은 에너지가 있어서 본인의 친구들을 몇 명 앗아간 놈인데, 실력 하나는 좋더라.

과거 글로벌 오디션 영상이 풀리면서 INT에 드디어 랩 제대로 하는 래퍼가 나왔다며 데뷔 전부터 화제가 되기도 했었지.

성해온이 노래를 끝내주게 잘 부르는 거야, 본인도 잘 안다.

하지만 랩은 분야가 다르지 않나.

‘이건 질 수밖에 없지.’

-라는 생각을 하며 간식으로 준비해 둔 카라멜 러스크를 입에 넣은 근돌의 눈이 삽시간에 커졌다.

화면 속 성해온이 자신도 프로듀싱에 참여하겠다 선언했기 때문이다.

“……?”

성해온이 프로듀싱을 할 줄 알았던가?

어느 영상에도 그런 말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나저나 이런 프로듀싱이나 랩, 중간은 가야 할 텐데.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바로 흑역사 생성이지, 뭐.’

그리고 이어지는 영상에 근돌은 기함하는 얼굴로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운다.

‘……! 뭐야?’

화면 속 성해온이 거의 신들린 듯 기계를 만지작거리며 곡의 베이스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뭔데?’

입안에 넣은 러스크를 씹지도 못한 채로 근돌은 시선을 빼앗겼다.

당황한 건 본인만이 아닌지, SNS도 시끌벅적했다.

- 해온이 뭐야? 작곡까지 할 줄 아는 거야? 와 이게 진정한 힘숨찐이다

- 케이도 넋 나간 얼굴로 쳐다본다ㅋㅋㅋㅋ 많이 놀랐지? 우리도 놀랐어…

- 뭐뭐뭐야? 성해온 신임?

- 성 리더 못하는 게 뭔데?!?!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기에 반응은 더욱더 도드라졌다.

[ 케이) Oh my goodness! 형, 뭐야? 왜 이렇게 잘해? ]

놀라움이 가득 담긴 케이의 물음에 성해온은, 세상 수줍어하는 얼굴로 공을 돌리기까지 했다.

- 저렇게 냉하게 생겨서 성격은 순둥이야 아 치인다 ㅅㅂ

- ㅈㄴ 칭찬 받으니까 부끄러워하는 것 봐ㅠ 앓다 죽을 해온이

연습 과정은 둘이서 간단한 제스처를 정하는 부분만 나왔다.

랩 실력은 무대에서 확인하라는 듯이 말이다.

……꿀꺽!

근돌은 긴장감에 휩싸였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승패가 정해져 있을 거라는 생각에 긴장조차 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저 프로듀싱 실력을 보아하니 무언가 더 있을 것만 같다는 기대감이 근돌을 자극했다.

* * *

“형, 진짜 멋있어요!”

최승하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벙글 웃었다.

“곡도 형이 거의 다 한 거 아니에요?”

“편집이 잘된 거다.”

“아니요.”

딱 잘라 말을 꺼낸 한수현이 말을 이었다.

“대기실에서 케이라는 분이 말하는 거 보니까, 형이 프로듀싱도 많이 참여한 것 같던데요. 형이 잘한 거 맞아요.”

“…….”

적응 안 되는 분위기에 내가 입을 다물자, 멤버 녀석들이 곧바로 고개를 주억거리기 시작했다.

“수현이, 말이 맞아요……! 정말, 대단하신.”

“맞습니다! 전 지금 다시 보는 건데도, 여기 보이십니까? 닭살이 돋았습니다!”

“윤재도? 나도! 하핫, 형! 저희 팔 좀 봐요! 닭살 돋았어!”

“나도 보면 볼수록 놀랍다. 해온이는 진짜 못하는 게 없는 것 같아.”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안면근육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이 동료애를 좋아합니다!]

곡으로 놓고 보면 내가 꽤 많은 부분을 제작한 건 맞다.

하지만 편집이 잘돼도 너무 잘됐는데.

‘……조금 말이 안 되지 않나?’

BK, 그러니까 트웰브의 소속사는 프로그램에 뒷돈을 찔렀다면…….

INT, 러쉬의 소속사는 프로그램 측에서 오히려 빌빌 기는 느낌이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오히려 케이의 활약을 죽이고 내 활약을 조명하는 편집이 들어간다고?

“흠.”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이제 시작합니다!”

차윤재가 기대감으로 점철된 얼굴을 하고는, 리모컨을 연타하듯이 눌러 사운드를 키웠다.

음.

내 눈으로 보려니 뭔가 민망해서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반응이나 확인해 볼까.’

- 하이틴 ㅅㅂ 아주 나를 죽여라 죽여

- 뭐야? 뭐야? 뭐야? 뭐야? 성해온 뭐야? 하나님이랑 독대하고 옴 방금

- 노래 너무 좋음 미쳤나 봐 진짜 고막 살살 녹는다

- 성해온 목소리는 진짜 인정임 솔직히 ㅋㅋㅋㅋ

빠르게 올라오는 반응들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와중에 류인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 정말 좋다.”

“…….”

이봐, 이렇게 훈훈한 분위기 만들지 말라고.

이런건 카메라 앞에서나 하란 말이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의 사회성을 안타까워합니다!]

“맞, 아요. ……목소리, 좋아요.”

이어진 목소리에 나는 상체를 휙 돌렸다.

나와 시선이 부딪힌 신유하가 잠시 눈을 크게 뜨더니, 곧바로 고개를 훅 떨궈 버렸다.

하여튼 간에, 소심한 놈.

스윽-

나는 짐짓 심각한 얼굴로 몸을 제자리로 돌려놨다.

‘음.’

기분이 묘한데.

뮤트된 사운드 속에서 입으로 시곗바늘 소리를 내는 파트였는데, 최승하가 감탄 섞인 질문을 했다.

“앗, 여기! 심사 위원분도 칭찬해 주셨지만, 저는 이 부분이 너무 좋아요. 이것도 형이 생각해 낸 거예요?”

나는 물음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은 채, 눈을 크게 떴다.

……불길함이 강렬하게 몰려왔기 때문이다.

‘무슨, X발. 편집을 이렇게 잘해줬지?’

저 부분을 두 번이나 더 반복하며, 구원의 씨익 웃는 얼굴과 출연진들의 얼빠진 클로즈업을 보여주는 것에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INT와 붙은 유닛 대결인지라, 결과는 우리의 우승이었다지만 편집만은 러쉬에게 몰아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편집은, ……누가 봐도 내 위주였다.

모골이 절로 송연해졌다.

“역시 형님이 잘하긴 하신 모양입니다! 실제로 볼 때도 감탄했지만, 편집된 걸 보니 또 새로운……!”

그 와중에 차윤재는 모니터 속으로 들어갈 기세로 눈을 반짝였다.

“…….”

내 파트 이후론 빠른 템포로 곡이 변주되며 케이의 래핑이 들어가는데, 타격감 있는 비트에 쫄깃하게 들어간 케이의 래핑은 솔직히 꽤 멋져서 괜히 넣어줬나 싶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굉장히 잘한 선택이었다.

- 지 보컬이라고 ㅅㅂㅋㅋㅋ 싱잉 랩쪽으로 노선 틀어버린 거 개 어이없고 ㅈㄴ 짜증 남 케이는 무슨 죄? 왜 우리가 양보해야 함? 지가 랩으로 지원했으면서?

- 아~~~ ㅁㅊ 꼴 보기 싫다 니는 보컬 쪽으로 가라고~~ 왜 랩으로 와서 지랄이냐고ㅋㅋ

“음.”

멜로딕 랩도 랩의 장르인 데다가, 보컬로 승부했다기엔 랩 송에 가까운 템포였다.

하지만 러쉬 팬덤 쪽은 그렇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는지, 저런 식의 공격적인 반응이 이어졌는데 케이의 휘몰아치는 래핑 파트 이후엔 확 줄어들었다.

‘파트도 길게 빼줬으니 더 이상 왈가왈부하기엔 눈치가 보이겠지.’

노래가 끊기기 무섭게 심사 위원들의 얼굴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면서 ‘이분들도 이렇게 감동받았습니다’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가장 먼저 마이크를 들었던 자이의 칭찬과 동시에 내 얼굴이 비쳤다.

- 땀 닦는 것도 저렇게 잘생겨도 되는 거임?

- 해온이가 심사 위원들도 홀렸다

- 목소리가 진짜 보석 같다 어쩜 저렇지

- 나 진짜 소름이 쫙 돋음 음정 미쳤어

- 쟤 성해온 랩멤 아니라고? 와 진짜 거하게 치임 방금;;

- 멜로딕 랩 진짜 신의 한 수다 말도 안 됨 그저 감탄만 나옴

나는 집중한 얼굴로 심사평을 살폈다.

역시나 케이가 작업 비율이 7:3이라고 떠들었던 건 편집에서 잘려 나갔다.

‘아마 INT에서 압력을 줬겠지.’

애초에 나올 거라 생각조차 안 했어서, 놀랍지도 않았다.

구원은 우리 둘이 이 곡을 만들었다는 것에 극찬을 하며, 본인이 긴장해야겠다는 둥 찬사를 이어나간다.

당연하게도 현재 라이트온 팬덤은 기세가 등등해졌다.

- 왜 쳐다보세요? 제가 개천재그룹 라이트온의 팬 같으시나요?

- 랩 유닛은 진짜 흑역사 생성일까 봐 가자미눈 뜨고 봤는데 해온이 인트로 시작하자마자 눈알 튀어나올 뻔함 ㄹㅇ로

- 성해온 진짜 밸런스 붕괴다 이 정도면 신도 잘못 창조했다고 재판장 끌려간다고 ㅋㅋ 아 ㅋㅋ 못하는 게 없다고 ㅋㅋ

- 9.One 저분 진짜 유명한 사람이잖아 프로듀싱 하는 사람들한텐 롤 모델로 꼽히는 사람 아닌가? 그래서 그런지 해온이 눈 반짝이는 것 봐ㅋㅋㅋ

……프로듀싱 하는 사람이라.

사실은 아니지만, 좋아하시니 넘어가자.

[ 9.One) -이 무대에선 제가 보기에 두 분 다 멋진 래퍼였거든요.]

“……!!”

꼭 나왔으면 했던 부분인데, 다행히 잘리지 않았다.

케이에게 래핑 파트를 몰아줬다지만, 보컬 멤버인 내가 멜로딕 랩으로 참여했던 건 사실이기에 까딱하면 트집 잡힐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니, 확실히 잡혔겠지.’

하지만 여기서 심사 위원이 직접 둘 다 멋진 래퍼라고 못을 박았다.

이제 설사 논란이 생긴다 해도, 그걸 튕겨낼 튼튼한 방패가 생긴 셈이다.

* * *

“PD님, 웃음이 나오세요? 지금?”

서민정은 아연실색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 인간은 어딘가 돌아버린 게 틀림 없다.

“대체 며칠 밤을 새우신 거예요?”

“음, 3일?”

“PD님 그러다가 단명하세요!”

걱정이 담긴 말에 남희연이 히죽 웃었다.

“뭔가 그러길 바라는 것 같기도 하고…….”

서민정은 흠칫 몸을 떨었다.

“그, 그럴 리가 없잖아요!”

한숨을 깊게 내쉰 서민정이 남희연을 응시했다.

“저는 진짜 PD님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모르겠어요. 이번에 INT에서 압력 엄청 들어오고 있는 거, 하아…… 아무리 PD님이 히트 친 프로그램도 많다지만, 아시잖아요. 저 윗선은 그런 지나간 것보다 당장의 이득이 중요해요.”

“으음~”

“솔직히 말하자면 PD님 앞날을 스스로 막고 계신 거예요. ……까놓고 말해서 승패를 가른 전문가 평가, 그건 이미 라이트온이 이긴 거 어쩔 수 없다지만 편집이, 편집이!”

언성을 높였던 서민정이 숨을 크게 들이쉬며 목소리를 낮췄다.

“……INT에서 요청 들어온 거 다 묵살하셨잖아요.”

그렇다.

남희연은, 윗선의 오더를 쌩까고 라이트온에게 좋은 편집을 몰아준 것이다.

서민정은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러다가, PD님 프로그램 다음 시즌에 총괄 바뀔 수도 있어요. PD님이 일궈놓은 프로그램, 다른 PD가 홀라당 가져갈 수도 있다고요. 왜 자꾸 눈 밖에 나는 행동을 자처하세요?”

테이블에 엎어진 채 눈을 껌뻑이며 서민정의 말을 잠자코 듣던 남희연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민정아.”

“네?”

“많이 컸다?”

서민정은 실시간으로 본인의 혈압이 수직 상승하는 걸 느꼈다.

미친, 미친 인간……!

“근데, 민정아.”

“……?”

“나는 재밌는 게 좋아…….”

시체와 다를 바 없는 안색의 남희연이 히죽 웃었다.

툭!

그리고 그대로 테이블에 머리를 박더니…… 잠들었다.

……서민정은 뒷목을 부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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