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19화
“……이태오.”
“너지? 네가 그랬지? 이 상황이 설명이 안 되는데, 너밖에 안 떠올라. 나한테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고 X발 새끼야!”
“……관심 없어.”
짐짓 서늘한 목소리의 신유하가 선명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제는, 네가 뭘 하든, 하나도 안 궁금해.”
“하, 뭐, 뭐라고?”
“……그러니까, 네 발로 조용히 나가.”
“이 미친 새끼가 진짜-!”
분노를 이기지 못한 태오가 주먹을 들었다.
자신을 막고 있는 이들을 칠 요량이었는지 주먹은 허공을 가르며 류인의 얼굴 쪽으로 향했는데, 류인이 그것을 가볍게 피해냈다.
그리고 다시 문이 열린 건 그 순간이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미친 건 너겠지, 야 인마!”
고막이 아릴 정도의 호통 소리.
“……형.”
제대로 열받은 것 같은 러쉬의 매니저가 분통을 터뜨렸다.
“너 이 새, 하아. 지금 이게 무슨 소동이야!”
태오는 정말 순식간에 끌려 나갔다.
솔직히 어느 정도 급이 되면 매니저를 깔보는 게 아티스트라고 하지만, 러쉬는 아직 신인급이라 매니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저 매니저는, 러쉬의 매니저들 중에서도 좀 높아 보이고?
아마 치프 매니저쯤 되어 보였다.
우리에게 하던 폭언을 차마 저 남자 앞에서도 할 수는 없던 모양인지, 입을 꾹 다물고 눈만 부라리며 나가더라.
정말이지 강약약강의 표본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알고 때맞춰 온 거지.’
그 물음의 답은 금방 얻어낼 수 있었다.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놈을 차에 태워 돌려보냈는지, 러쉬의 매니저는 창백한 얼굴로 우리의 대기실의 문을 두드렸기 때문이다.
문이 열리자마자, 매니저는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우리보다 나이도 훨씬 많은 사람이 대신 사과를 하니, 이쪽도 당황해서 손을 휘저었다.
매니저는 오늘 태오가 여기 온 것은 돌발 행동이었으며, 전부 본인의 관리 소홀로 벌어진 일임을 계속해서 언급하며 사과했다.
‘대형답게 매니저도 체계가 제대로 잡혀 있군.’
어디서 말이 나오지 않게끔, 전부 본인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그리고 남자는 신유하 쪽으로도 목을 숙였다.
“유하야, 일 커지기 전에 연락해 줘서 고맙다.”
“……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심려를 끼쳐 드린 점, 죄송합니다.”
매니저가 나간 뒤, 대기실엔 한차례 머쓱한 정적이 휘몰아쳤다.
“기, 긴장이 풀렸습니다! 오늘은 청심환을 더 안 먹어도 될 듯합니다!”
분위기를 풀 목적인지, 차윤재가 말문을 열었으나 분위기를 더 묘하게 만들 뿐이었다.
“하핫~ 저 사람이 좀, 이렇게 됐나본데?”
손가락을 허공에서 빙글 돌린 최승하가 하하하, 웃었다.
‘저 녀석도 당황했군.’
바로 그때였다.
우물거리던 신유하가 무언가 결심했는지, 고개를 든 것이다.
“덕분에…… 하고, 싶은 말을 했어.”
귀가 벌게진 녀석이 말을 이었다.
“고마워, 가 아니라! 고맙, 습니다……!”
멤버들의 동공이 확장됨과 동시에, 분위기가 단숨에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망설임 없이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분위기가 어떻든 간에, 마지막 방송 끝나고 계정에 올릴 셀카는 찍어둬야지…….
무대 끝나고 찍으면 땀범벅일 테니, 최대한 뽀송하고 얼굴 상태 좋을 때 남겨둬야 한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의 한결같은 마음을 좋아합니다!]
찰칵! 차차차찰칵! 찰칵-!
“신유하.”
“……네, 네!”
“웃어라.”
내 말에, 신유하가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이, 이렇게……?”
“잘하는군.”
“……! 네!”
뭐지?
나는 신유하를 흘겨봤다.
묘하게 상기되어 있는 것이, 설마…….
……저 녀석, 겨우 ‘잘하는군’이라는 네 글자짜리 칭찬에 뿌듯해하고 있는 건가.
[성좌, ‘황금의 신’이 아해의 안목이 이럴 리 없다며 절규합니다!]
하염없이 대기하다 보니, 어느덧 생방송 1시간 전이었다.
그리고 아까 전, 청심환을 더 이상 먹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호언장담한 차윤재가 오들오들 떨었다.
“……저 아무래도 청심환을 먹어야겠습니다!”
“윤재야, 너 세 개나 먹었어. 이제 그만 먹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류인의 말에 최승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내가 먹을게!”
곧바로 청심환을 삼킨 녀석이 방긋 웃었다.
“으으……! 형님!”
“하핫, 긴장 안 해도 돼. 윤재야! 네가 언제 실수한 적 있어?”
차윤재의 어깨를 팡팡 두드린 최승하가 실없게 웃었다.
“음, 우리 마지막으로 점검해 볼까.”
류인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대기실에 붙은 작은 거울을 보며, 마지막으로 안무를 점검했다.
좁은 공간인지라 제대로 된 안무는 불가능했지만, 복잡한 동선 등을 상기하는 용으론 나쁘지 않았다.
사실 이 녀석들이 이렇게 긴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생방송인데다가, 첫 번째 순서라니.
그래, 우린 파이널에서도 첫 번째 무대다.
파이널 무대 순서는, 이전과 동일하게 3차 경연의 승자가 결정했다.
승자는 이변 없이 러쉬였지만, 누가 우승했어도 우리의 순서는 첫 번째로 정해졌을 거라고 확신한다.
러쉬의 을 재해석했던 3차 경연 무대는 폭발적인 조회 수와 관심을 받았으나, 그뿐이었다.
여전히 국내와 해외 투표수에서 처참하게 밀렸기에 1위를 기대하긴 힘들었다.
‘그래도 3위 정도면 아주 선방이었지.’
동영상 점수에 더불어 현장 투표에서 호응을 얻은 덕이었다.
그때, 작은 노크 소리와 함께 대기실의 문이 열렸다.
“라이트온 스탠바이해 주세요!”
문이 닫히자마자 류인이 작게 웃으며 멤버들의 사기를 복돋웠다.
“얘들아, 우리 마지막까지 열심히 해보자.”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의문만이 가득하다.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입을 다물고 있지만, 아무리 봐도 저쪽이 리더감 아닌가.
연장자라서 대우해 줬다기엔, 류인과 성해온은 동갑이다.
“흠.”
뭐, 지금 활동하는 데 리더라는 직함이 여간 편리한 게 아닌지라 불만은 없다만…… 궁금하긴 하단 말이지.
* * *
생방송이 진행될 스튜디오에 발을 내딛자, 멤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 무대가 더 커진 것 같습니다!”
“와아, 그러게? 스케일이 대단하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동원하는 관객이 없어서 그런지, 무대를 넓힌 모양이다.
게다가 무대의 양쪽으로 다른 그룹들의 자리가 존재한다.
유닛 때와 동일하게, 모든 출연진이 보는 앞에서 경연하는 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걱정되는 건 아무래도 저 녀석.
“……!!”
곁눈질로 잠시 바라본 것임에도 허공에서 시선이 부딪혔다.
[성좌, ‘황금의 신’이 흐뭇해합니다!]
신유하가 내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닥였다.
“흠.”
나는 피식 웃으며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이제 괜찮다, 라.’
* * *
“잠깐만, 나 심장이 너무 빨리 뛰는데.”
곽덕배의 익숙한 주접을 귓등으로 흘린 이해성이 닭다리를 들어 뜯었다.
오늘은 이해성의 집에서 함께 파이널 무대를 시청키로 했기 때문이다.
“아직 10분도 더 남았는데, 뭐. 그리고 1위 기대는 안 한다며.”
“당연한 소리잖아, 라이트온은 이제 한 줌에서 세 줌 정도 된 참이라고.”
착!
둘은 맥주캔을 부딪쳤다.
“이제 시작하려나 보다.”
“어흐흑흑. 오늘은 또 X발, 얼마나 잘생겼을까.”
“……말을 말자.”
의 로고와 함께 웅장한 BGM이 깔리기 시작했다.
“잠깐만, 심장이……! 으읍.”
또 난리를 치려는 곽덕배의 입에 치킨을 욱여넣은 이해성이 모니터를 응시했다.
케이블방송답게 광고가 끊이지 않았다.
‘광고도 어지간히 많이 받았군.’
올타임이 모델인 음료 광고라든가, 러쉬가 모델인 교복 광고 등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 걔 광고 잘렸네? 원래 저 파트 태오 단독이었는데.”
CF에서 태오가 아예 증발한 듯 사라졌다.
이해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곽덕배가 극대노하며 젓가락을 허공으로 들었다.
“그럴 만도 하지! 그 재수 없는 놈! 으븝, 븝!”
곽덕배의 입에 다시 치킨을 욱여넣은 이해성은 흐음, 소리를 내며 말했다.
“라이트온은 순서 몇 번째려나?”
무언가 말하고 싶다는 듯 입에 든 음식을 빠르게 씹어 넘긴 곽덕배가 대답했다.
“당연히 첫 번째일걸. 에휴, X발.”
한숨을 쉬던 곽덕배가 말을 이었다.
“근데 저기, 해성아.”
“번들거리는 눈빛 치워라.”
“문자 투표, 해줄 거지?”
“그래. 당연히 해준다.”
* * *
“Top의 자리에 오를 단 하나의 별은 누구일지, 별들의 전쟁! To The Top!”
생방송으로 송출되는 무대라서 그런지, MC도 조금은 긴장한 기색이었다.
사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랬다.
나는 시선을 돌려 주변을 훑었다.
모든 출연진의 얼굴이 긴장감으로 물들어 있었고, 무대 아래 스태프들의 얼굴에도 초조함이 일렁이고 있었다.
하기야, 생방송에서 실수라도 나면 끝이니까.
어마어마한 성량의 MC가 말을 이었다.
“숨 가쁘게 달려온 여섯 팀은 오늘 이 자리에서 파이널 무대를 선보이게 됩니다.”
“파이널의 점수 합산 방식은 간단합니다!”
“첫 무대의 주인공과 함께 공개될 번호로, 투표해 주시면 됩니다! 1인당 1번의 투표만 인정됩니다!”
MC가 해외 거주자는 어플을 사용해 투표가 가능하다는 설명을 이었다.
그런 설명을 잠자코 듣던 나는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음, 정말 가망이라고는 없군.’
해외 어플 투표 40%, 국내 문자 투표 60%.
글로벌 팬 투표 비중을 저렇게 높게 하다니, 반발이 세겠는데.
우리는 유닛 경연 우승으로 파이널 점수에 약간의 가산점이 붙겠지만, 아무래도 이 간극은 좁히기 힘들 거다.
국내에선 조금 유입이 있는 듯하나, 아직 해외는 황무지거든.
애초에 기대도 안 했기에 실망할 것도 없었다.
‘우리가 바라는 건 이 무대로 인한 유입이지, 당장의 우승이 아니거든.’
스윽-
나는 눈을 돌려 러쉬가 앉아 있는 맞은편을 바라봤다.
다들 애써 웃고 있지만, 글쎄.
아마 저놈들은 낼 수 있는 기량을 전부 보여주진 못할 테다.
그 녀석이 빠지고 A부터 Z까지 전부 뜯어고쳤을 테니, 아마 멘탈이 털려도 제대로 털렸을걸.
MC의 멘트가 끝나기 무섭게 스태프가 우리에게 손짓했다.
“지금 어, 그 사전에 찍어놓은 영상 송출되고 있거든요? 그동안 얼른 스탠바이해 주세요!”
우리는 다급하게 의상을 챙겨입고 백스테이지에서 긴장 섞인 숨을 뱉었다.
“첫 번째 타자는 몇 번을 해봐도 떨린다니까요~”
최승하가 말린 나물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는 차윤재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시시덕 웃었다.
“형님은 떨리지 않으십니까……?”
“응? 나도 당연히 떨리지. 하지만 말랑한 윤재가 있어서 안 떨릴지도?”
최승하가 차윤재를 끌어안자, 차윤재가 질색팔색하며 녀석을 밀어냈다.
이 난장판이 익숙하다는 듯 허허 웃는 류인까지.
나는 멤버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떨지 말고 그냥 재밌게 하자. 내가 말했잖아.”
“예! 해온 형님 말씀대로, 어차피 1등은 못 하니까요!”
모두가 우승을 원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특성상 행복과는 거리가 먼 말인데, 어쩐지 부담감을 떨쳐낸 얼굴이 된 차윤재가 스륵 입꼬리를 올렸다.
“우리 열심히 했으니까.”
류인이 후련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해온이 네 말대로, 즐기자.”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순간.
눈앞의 스태프가 속삭이듯 말했다.
“30초 후에 무대 시작합니다.”
그러더니 자신의 손가락을 접어가며 우리에게 신호를 준다.
5.
4.
3.
2.
1.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