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21화
같은 시각, 라이트온 팬덤은 그야말로 뒤집어졌다.
- 나 기절했다가 방금 일어남
- 성해온 미친놈아 진짜 너 뭐야 너 뭐야 너 뭐야
- 하나님이랑 하이파이브하고 왔어요
- 를 반역자 뭐 이런 걸로 재해석한 거임? 진짜 웅장하게 뽕 찬다
- 진짜로 침 흘리면서 봄 입이 안 다물어져서;;
- 검무 뭔데 검무 뭔데 검무 뭔데 뭔데 뭔데 뭔데 당장 비하인드 영상 줘 안 그러면 물음표 살인마가 되어버릴지도 모름
- 마지막 성리더 진짜 돌았나 센터로 마무리 와 벅차오름
- 오타쿠 스위치 on 폭주 모드 on 발광 모드 on
팬덤에 속하지 않은 이들까지 말을 얹으며 언급량은 배로 뛰었다.
- 와 첫 무대부터 스케일 미쳤네 ㅋㅋㅋㅋㅋ 카감도 무빙 돌았는디
- 진짜 어마어마하다 얘네 중소 아님?
└ ㄴㄴ 얘네 배우 소속산데 돈 많을걸
- 근데 진짜 퀄리티 ㅅㅌㅊ다 투더탑 은근 재밌어서 계속 챙겨 봤는데 얘네 무대 꾸준히 잘하네
- 이거 전반적인 무대 디렉팅한 사람은 진짜 변태 새끼인 듯… 오타쿠들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재능이 있음… 누굴까…
“내 말이.”
곽덕배는 공감의 의미로 해당 트윗에 하트를 눌렀다.
모든 무대의 디렉팅은 거의 성해온이 책임졌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곽덕배가 황망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 실력이면 곧 대형으로 이적하시겠지? 제발 잠깐 정신이 나가셔서 MH에 남아주셨으면.”
“근데 얘네 무대 진짜 잘하더라. 연출까지 다 좋았어. 자기들 노래라서 그런가? 진짜 더 뭔가 훅 와닿는 그런 게 있던데.”
이해성은 흠, 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무대나 연출이나 조금 내 취향이야. 뭐 오타쿠들 취향이 거기서 거기라지만.”
이어지는 작은 감탄에 곽덕배가 눈을 빛냈다.
“……해성아!”
이해성은 곧바로 눈을 접어 웃으며 곽덕배의 얼굴을 치웠다.
곽덕배는 정말 황당하다는 얼굴로 반문했다.
“해온이 얼굴을 지척에서 봐놓고! 어떻게 입덕을 안 하지?”
“내 스타일이 아니야.”
* * *
땀을 닦고, 수정 메이크업까지 마친 우리는 다시 촬영장 위로 올랐다.
이미 다음 무대가 진행되고 있었다.
‘저 팀도 돈 꽤나 썼군.’
대충 봐도 댄서가 스무 명은 가뿐히 넘어 보였다.
스피디는 인원수 자체가 소박하니 댄서로 스케일을 키우려는 모양.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대에 슬슬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계속 밤을 새우다시피 했던 터라, 체력이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나는 눈을 부릅뜨며 허벅지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
이제야 잠이 좀 깨는군.
“……형! 이제 무대 곧 시작해요!”
최승하의 속닥거림에 몸을 잘게 떨며 눈을 떴다.
연습과 각종 무대 디렉팅까지 신경 쓰느라 통 잠을 자지 못했더니, 의식도 하지 못한 사이에 까무룩 졸아버린 모양이다.
“…….”
모든 조명이 꺼진 무대 준비 시간이라 카메라에 찍혔을 리는 없다만…… 굉장히 민망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행히 몇 그룹의 멤버들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민망한 꼴을 보인 게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며 나는 다음 무대를 눈에 담았다.
블랙보이즈의 강렬한 퍼포먼스가 돋보이는 무대였다.
‘……!!’
내 얼굴에 약간의 충격이 스쳤다.
저놈들, 단체로 상의를 찢었다.
출연진석 여기저기서 놀라움이 섞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작정했군.’
확실히 퍼포먼스용으로는 눈길을 사로잡았다.
“……와 다들 복근이.”
“그러게. 엄청나시네.”
최승하의 중얼거림에 류인이 빠르게 반응했다.
나는 무대가 끝나자마자, 멤버들을 돌아보며 작게 물었다.
“저런 근육 갖고 싶어?”
“음, 멋있긴 하죠?”
최승하가 가장 먼저 대답했고, 뒤이어 류인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도 저런 근육,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차윤재까지.
나는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메라 여러 대가 시퍼렇게 우릴 찍고 있는데, 여기서 뭐라 말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숙소에 가자마자 저 헛된 생각을 고쳐놔야겠군…….’
벌크업 병에 걸리면 답도 없기 때문에, 이런 건 재빠르게 퇴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팬은 과도한 벌크업을 선호하지 않기도 하고.
최승하나 류인같이 슬렌더한 체형에 붙은 근육을 선호하는 사람은 굉장히 많지만, 저렇게 우락부락한 근육형 몸은 취향이 갈리는 게 사실이다.
블랙보이즈와 같이 극강의 남성미를 뽐내는 그룹이 아니고서야, 저런 엄청난 근육은 다양한 컨셉을 소화해야 할 아이돌에게 적합하지 않다.
스윽-
나는 발등에 불이라도 떨어진 듯 새 무대를 세팅하는 스태프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음.”
무대 한번 화려하군.
구조물이 몇 갠지 파악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보는 내가 다 아슬아슬했다.
다행히 사전 편집 영상이 송출되는 동안 세팅이 마무리된 무대 위에, 러쉬가 대열을 맞췄다.
러쉬가 선택한 곡은 그들의 두 번째 앨범 타이틀곡.
무덤덤한 얼굴로 무대를 보던 내 미간이 순간적으로 찌푸려졌다.
“……?”
저쪽은 사랑 노래를 킹스메이커 분위기로 재해석했다.
우리의 무대와 굉장히 분위기가 흡사했다는 뜻이다.
우리는 ‘반역’ 저쪽은 ‘킹스메이커’.
심지어 무대 곳곳의 디테일이 우리 무대와 유사하다.
게다가 우리는 파이널 무대 주제를 굉장히 빠르게 정한 편이었고.
물론, 착각일 수도 있지만 석연치 않군.
심증과 별개로, 화가 나거나 하진 않는다.
‘별로거든.’
척 봐도 완성도가 높지 못한 무대였다.
태오의 빈자리를 메꾸지 못한 건지, 아니면 논란으로 인한 심적인 문제인지 기본적인 박자부터 묘하게 엇나가고 있었고, 컨셉조차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컨셉츄얼한 무대는 주인공들이 얼마나 소화를 잘하는지가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저렇게 어색하게 굴면, 보는 사람이 민망해질 수밖에 없고.
“흠.”
나는 히죽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정돈했다.
이렇게 굴어주면 나야 고맙지.
* * *
“뭐야? 라이트온 무대랑 비슷하네.”
근돌이 고개를 옆으로 갸웃거렸다.
사실 프로그램 자체가 ‘별들의 전쟁, Top의 자리에 앉을 자는 누구인가!’와 같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기에, ‘왕좌’라는 키워드를 사용하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의문을 가진 포인트는 여러 디테일이었다.
샹들리에를 사용한 무대, 저게 흔한가?
“흐음.”
샹들리에를 제외하고도 뭔가 비스무리한 게 여럿이었다.
비슷함은 느끼지만, 무엇 하나 ‘표절!’ 소리가 나올 정도로 똑같은 건 없었다.
‘절묘하네.’
근돌은 이런 상황에 흥미를 느끼며 서치를 시작했다.
역시 이런 생각을 한 게 한둘이 아닌 듯했다.
어떤 이들은 라이트온이 러쉬를 따라 한 것 아니냐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고, 어떤 이들은 따라 했으면 러쉬가 따라 한 거 아니겠냐며 빈정댔다.
하지만 이 판 특성상, 이럴 땐 목소리 큰 놈들이 이기는 법이지.
‘아마 러쉬 쪽이 여론전에선 우세할걸.’
슥, 스슥!
근돌은 빠르게 스크롤을 내렸다.
전체적인 반응이 근돌의 예상과는 달랐다.
“오?”
- 시작과 끝이 다 왕좌 관련이네 뭔가 멋지다
- 근데 ㄹㅇㅌㅇ이 더 찰떡임ㅋㅋㅋ ㄹㅅ는 뭔가 부족함
└ 2222 연습 덜한 느낌
- 나는 개인적으로 처음 한 애들이 젤 쩔었던 것 같음 그 후론 밍밍
“평소 같았으면 그 팬덤이 난리를 쳤을 텐데.”
태오의 시한 폭탄급 논란으로 러쉬 팬덤 자체의 분위기가 뒤숭숭했기에, 이들의 입김이 거의 스며들지 못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팬덤을 제외하고도, 당연히 러쉬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사실 이런 구도에서 유사성이 발견됐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X소가 대형의 아이디어를 빼돌렸다고 생각하게 된다.
INT 정도 되는 남부러울 것 없는 대형 소속사의 후광을 업고 상승가도를 달려온 엘리트 롤 그룹이 뭐가 아쉬워서 아이디어를 도둑질한단 말인가.
근돌은 계속해서 반응을 살폈다.
……분명 이들도 두 무대에서 유사성을 느꼈다.
하지만 누군가를 비난하긴커녕, 오히려 둘을 비교하고 있었다.
‘심지어 거기서 러쉬는 되레 내려치기를 당하고 있고?’
- 난 쟤네 팬도 아닌데 왜 이렇게 계속 응원하게 되냐ㅋㅋㅋ
- 라이트온은 진짜 뜰 것 같긴 함 컨셉츄얼한 게 저렇게 잘 어울리는 건 거의 아이돌로서의 축복 아니냐
└ 22 뭔가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쟤네 얼굴이… 많은 도움을 주는 듯… 얼굴이 개연성임… 오글거리는 느낌이 들 새도 없음…
- 열심히 하는 게 진짜 보기 좋음 연차 쌓이면 어떻게 될지 또 모르지만ㅋㅋㅋ 지금은 진짜 보기 좋음
그러니까, 이 상황을 정리해 보자면 그렇게 된 거다.
프로그램 초장부터 존재 자체로 욕받이 롤을 도맡았던 라이트온.
하지만 1차 경연 때부터 의외의 실력으로 훌륭한 무대를 선보였다.
그렇다고 욕받이 역할을 벗어난 건 아니었다.
오히려 타 팬덤의 견제까지 늘었으니, 안타깝게도 여기저기서 욕이란 욕은 다 먹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던 와중, ‘전문가’들의 평가로만 이뤄지는 무대에서 당당하게 1위를 거머쥔다.
특정한 팬덤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 서사만으로도 알게 모르게 이들을 응원하게 된 거다.
게다가 대중들이 탄탄대로를 걸어온 엘리트만큼이나 좋아하는 건 노력하는 천재.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극찬하는 실력인 데다가 얼굴까지 받쳐주니 그 후론 우후죽순 상승세였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러쉬와 겹친 컨셉임에도, ‘그냥 우연’으로 치부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누가 봐도 러쉬 무대는 조금 부족했기에 오히려 라이트온의 무대가 재평가되고 있었다.
좋은 방향으로 말이다.
근돌은 몇 분 전, 상의를 찢은 블랙보이즈에 잠시 심장이 두근거렸던 것을 반성하며 라이트온을 눈에 담았다.
어느덧 여섯 팀의 무대가 모두 끝났고, 투표 마감 카운트가 시작됐다.
두근! 두근!
어차피 라이트온이 우승할 가능성도 없는데, 근돌의 심장이 괜스레 뛰었다.
‘……4등 정도는 기대해 봐도 되지 않나?’
이내 근돌은 고개를 저으며 작게 혼잣말을 읊조렸다.
“사실 4등도 좀 희망 회로지, 꼴등만 아니었음 좋겠다. 4등 아니면 5등!”
경연마다 라이트온이 우세했던 동영상 점수 같은 항목이 파이널엔 포함되지 않으니, 3등까진 양심적으로 바랄 수 없었다.
결과 발표를 앞두고, 모니터 속 MC는 박진감 넘치는 목소리로 멘트를 시작했다.
근돌은 눈을 가늘게 뜨고 TV 안에 빨려 들어갈 기세로 두 눈과 귀를 집중했다.
집계가 완료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며, MC가 긴장감을 조성했다.
화면엔 출연진들의 긴장한 얼굴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효과음이 깔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결과가 적혀 있는 큐시트를 손에 든 MC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하진) 결과는……! ]
“결과는?”
[ 하진) 중간 광고 후에 공개됩니다! ]
“미친 새끼들 진짜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