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28화
사아아-
숨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역시 이럴 때는…….
“회사에서 챙겨주셨어.”
회사 팔아먹기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눈을 질끈 감습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의 추진력에 흐뭇한 미소를 짓습니다!]
“전달하는 걸 잊었네.”
대충 수영장 있는 걸 미리 말해줬어야 하는데 정신이 없어서 잊어버렸다.
-라는 뉘앙스로 중얼거리며 래쉬가드를 놈들의 손에 척척 쥐어줬다.
척! 척! 척!
“입어라.”
멤버들은 어느샌가 본인들 손에 들려진 래쉬가드와 수상용 반바지를 멍하니 내려다봤다.
“회사에서……?”
류인이 래쉬가드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럼 나는 이만.”
이미 환복을 끝낸 나는 상체에 후드집업 하나를 걸치고 자리를 피했다.
이내 텐트 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흠.”
아무리 나여도 거짓말은 양심에 찔린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그런 것치고 굉장히 자연스러웠다고 말합니다!]
* * *
각자 외투를 입은 뒤 수영장으로 향했다.
오늘 촬영은 당연하게도 100% 셀프가 아니다.
카메라를 맡아주는 스태프들과 조명, 음향을 담당해 주는 스태프들까지.
총 8명의 스태프가 수영장 근처에서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나는 눈을 데굴 굴렸다.
‘…….’
이거 조금.
민망한가?
처음 보는 사람들이 저러고 있으니 굉장히 머쓱했다.
“형 여기서 혼자 뭐 해요~?”
다가온 최승하가 어깨에 팔을 텁 걸쳤다.
스윽!
“이 형 카메라 없다고 바로 팔 치우는 것 봐!”
“그런 건 카메라 켜지면 해.”
친해 보이게…….
“전 카메라 꺼졌을 때도 형이랑 이러고 싶은데요! 우리 사이에!”
“우리 사이가 무슨 사인데.”
“으음, 사랑하는 사이~?”
스윽…….
“와아, 시선 돌리는 것 봐! 이건 상처지!”
최승하가 경악하고 있을 무렵, 흐릿한 얼굴의 한수현이 내 옆에 서서 작게 말했다.
“형, 빨리 촬영 들어가시죠.”
하지만 그보다 조금 더 흐릿한 낯짝의 나는 수영장으로 다가가 심장 부분에 물을 뿌렸다.
촤악!
“……흐.”
입에서 나오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내 안색이 실시간으로 새하얘졌다.
아깐 다른 놈들이 옆에 있어서 당황한 티를 안냈다지만 무척이나 어이없다.
왜냐면, 오늘 이 수영장 물은 찬물이 아니라 미온수였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자식들…….’
찬물만 들이부어 놓고 사기 친 거 아니야?
진지한 의심이었다.
현재 날씨가 물놀이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
휴식과도 같은 자체 컨텐츠에서 벌칙 같은 찬물 입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촬영지 측에 미온수 요청을 해보자고 주장했다.
정재진에게 듣기를, 온수 목적으로 돈도 추가했다지.
오늘 날씨가 그리 추운 것도 아니고, 분명 우리 도착 직전에 채워준다고 했는데…….
‘이렇게 차가울 수가 있다고?’
물이 식기 전에 찍으려고 이놈들을 여기로 급하게 이끈 거였다.
그때, 저 멀리서 글램핑장의 관리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아이고! 이거 어떡합니까. 제가 착각해서, 온수를 부어야 하는데! 보시다시피 이게, 사이즈가 원체 커서 물을 빼고 다시 채우려면 한참 걸릴 텐데……!”
아연한 얼굴의 남자가 나를 힐끔힐끔 바라봤다.
……범인이 있었군.
“지금이라도 뜨거운 물 좀 추가해 주시겠어요…….”
“예! 예! 30분! 30분만 기다려 주세요!”
후다닥 달려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흐릿한 낯짝으로 바라본 나는 수영장 지척에 있는 바위에 주저앉았다.
20분 뒤, 글램핑장에 남아 있는 직원들이 부지런히 뜨거운 물을 추가했지만 커다란 수영장엔 턱도 없었다.
나는 아까 그 남자를 붙잡았다.
“이제 괜찮습니다. 촬영하겠습니다.”
“예? 몇, 몇 번만 더…….”
“시간이 애매해서요. 정말 괜찮습니다.”
직원들이 모두 빠지고 난 뒤, 우린 카메라 앞에서 방글 웃었다.
“와아~ 수영장~!”
최승하가 말문을 열자, 방금까지 나와 비슷한 흐릿한 낯짝을 걸치고 있었던 한수현이 생기 넘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들어가고 싶습니다!”
“얼마 만의 물놀인지 모르겠네.”
“바비큐가 더, 맛있을 것 같습니다……!”
“……재밌, 겠다!”
옆구리를 찔린 신유하까지 입을 열자, 나는 싱긋 웃었다.
“여기 물이 미온수예요.”
물론 온수가 들어간지도 모르겠는 미미한 온수지만.
미온수가 맞긴 하다.
“맞아요. 따뜻해요.”
한수현이 방글 웃으며 물을 본인의 몸에 뿌렸다.
정말 따뜻한 미온수라고 착각을 일으킬 정도의 태연자약한 모습이었다.
촬영이 시작되기 직전 멤버들에게 냉수인 티를 내면 안 된다고 여러번 말했지만 이렇게 연기를 잘해줄 줄은 몰랐다.
‘이 날씨에 냉수 입수면, 팬분들이 좋아하지 않으실 테니.’
그렇다고 수영장 전체를 포기하기엔 아쉬웠다.
‘후보군 중에 여길 선택한 이유가 이거였는데.’
나는 결연한 얼굴로 수영장에 가장 먼저 발을 내디뎠다.
이래 봬도 다른 놈들을 먼저 입수시킬 만큼 양심 없는 놈은 아니다.
[성좌, ‘황금의 신’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뜹니다!]
첨벙-!
순식간에 물이 가슴 아래까지 차올랐다.
나는 얼굴을 활짝 폈다.
“너네도 얼른 들어와.”
덜덜덜덜
수면 아래로 가려진 다리가 사정없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진짜 X나 차가웠다.
하필 직원이 온수를 까먹다니.
어떻게 뭐 하나 제대로 되는지, 망돌의 고난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와아아~”
웃으며 달려온 최승하가 단번에 입수했다.
첨벙-!
“어프.”
방심하고 있던 내 얼굴에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나는 젖은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촬영 팀이 넘겨준 물총에 물을 장전했다.
샤샤샤샥!
“아악! 형님! 왜 쏘십니까!”
나만 죽을 수는 없지…….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마음을 곱게 쓰라고 조언합니다!]
샤샤샥! 샤샥!
속마음과는 사뭇 다른 유쾌한 얼굴을 걸친 나는 사방을 향해 찬물이 담긴 물총을 쐈다.
“이익! 들어갑니다! 저도 물총 주십시오!”
스태프로부터 물총을 건네받은 차윤재가 이를 바득 갈며 입수했다.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찬물에 순간적으로 눈이 커졌으나, 이내 평정을 되찾은 차윤재가 사방을 향해 물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으븝.”
물론 가장 몰리고 있는 건 나였다.
“아니, 이건 반칙으븝.”
어느새 들어온 다른 놈들까지 나를 향해 집중 공격을 해대니 눈도 뜰 수 없었다.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으로 물이 새어 들어왔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재밌게 하라고 한 건 나였으나 이 정도로 예능적인 장면은 바라지 않았다.
게다가 수세에 몰리는 게 나인 건 더더욱.
나는 물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흠.”
어디 한번, 해보자는 거지.
첨벙-!
“……!!”
“뭐야! 이 형 잠수했어!”
놀란 최승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윽-
그 순간, 수면에서 튀어나온 건 내가 쥔 물총의 총구였다.
샤샤샷!
“……아니! 세상에 이 형님은 대체 뭐 하시는!”
“으, 저 눈에 들어갔어요.”
“와아~ 이렇게 하시겠다~?”
“……그, 그만!”
잠수한 채로 물총을 쏴대자,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승린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물 속에서 가부좌를 트고 앉아 있던 내 눈이 동그래졌다.
“……!!”
저 새끼 저거, 뭐야.
슈우우-
류인이 무표정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참고로 여긴 물 안이다.
물속이란 것도 잊은 내가 당황에 입을 뻐끔거리자, 물방울이 포르르 올라갔다.
순식간에 내 지척으로 다가온 류인이 미묘하게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그리고.
파앗-!
난 수면 위로 튀어올랐다.
비참한 건 내 자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 비참한 꼴을 설명하자면.
건져 올려졌다.
정말 말 그대로, ……번쩍 건져올려졌다.
샤샤샤샤샷!
물줄기가 사방에서 쏘아졌다.
물론 타격점은 오로지 나 하나였다.
“…….”
내 안광이 실시간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으하하하하!”
뭐가 그리도 웃긴지 최승하가 눈물까지 보였다.
웃든지 쏘든지 하나만 해라…….
“어프프.”
허공에 반쯤 들린 채로 머리를 연신 쓸어넘긴 나는 얼굴로 쏟아지는 물폭격을 받아내며 발뒤꿈치로 류인의 허벅지 부근을 내려쳤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비장한 눈으로 류인이 쥔 물총까지 낚아챘다.
“저 형님 물총을 두 개나……!!”
“누가 두 개뿐이라고 했지?”
“흐아아악!”
팔꿈치로 차윤재의 뒷목을 툭 친 나는 차윤재의 물총까지 뺏어들었다.
샤샤샤샤샤샤샥!
“저 형 미쳤나 봐브브븝.”
“……! 그, 그만!”
“해온아, 진정으븝.”
나는 전방에 있는 다섯 놈에게 미친 듯이 물을 쐈다.
나와 비슷한 꼴로 망신창이가 된 놈들을 보며 나는 만족스레 머리를 쓸어넘겼다.
‘이거 추운 줄도 모르겠…….’
타악-!
그 순간, 수영장 아래에 있던 촬영 스태프들과 눈이 마주쳤다.
“…….”
젠장, 촬영 중이라는 걸 망각해 버렸다.
조명 스태프 하나가 엄지를 치켜올리며 입 모양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재밌게 찍혔어요?
나는 애써 눈을 피하며 물총을 내려놨다.
‘애새끼도 아니고, 이런 거에 신났다니.’
현타가 진득하게 몰려왔다.
이제 촬영 분량도 뽑을 만큼 뽑은 것 같은데, 내려가자고 제안할 참이었다.
분명 그랬는데.
“어딜 가요?”
앞머리를 쓸어넘긴 한수현이 생글 웃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샤샤샤샥!
바야흐로 2차전의 시작이었다.
……물론 물줄기가 향하는 곳은 대부분 내 얼굴이었다.
* * *
“따, 따듯해졌습니다……!!”
넋이 반쯤 나간 듯한 차윤재가 텐트에 엎어졌다.
수영장 컷은 잠깐만 찍으려고 한 거지, 이렇게 본격적으로 놀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불태워 버렸다.
구비된 샤워 시설에서 씻고 난 뒤 옷까지 갈아입고 따뜻한 바닥에 엎어지니 금방이라도 졸음이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불면은 나의 힘, 활성화.’
[불면은 나의 힘(A)]이 활성화됩니다!
“……!”
순식간에 졸음이 사라지고 피로감이 조금 줄어들었다.
동태와 다를 바 없던 눈깔에 생기가 차올랐다는 게 느껴졌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텐트에 엎어져 있는 놈들을 돌아봤다.
“이제 바비큐 해야지.”
“형, 조금만 쉬고-”
나는 최승하의 말을 잘랐다.
“쉴 시간이 어딨어.”
“와아, 뭐지? 저 형 왜 갑자기 또렷해졌지? 방금까진 얼굴이 제일 흐릿했는데?”
피식…….
나는 늘어져 있는 놈들이 가소롭다는 낯짝을 걸쳤다.
“너희가 체력이 안 좋은 거겠지.”
내 말에 다른 녀석들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내가! 저 말을! 저 형한테 들을 줄은 몰랐는데! 게다가 저 표정, 지금 우릴 안타까워하고 있어? 저 형이? 맨날 연습실 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저 형이?!”
“오늘은 해온이가 체력이 좋은가 본데.”
“어, 억울합니다! 형님보단 체력이 좋습니다!”
나는 등을 돌려 텐트에서 나오면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숨길 수 없는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히죽…….
‘이래서 사람들이 템빨, 템빨 하는 건가.’
과금 유도로 악명이 자자한 게임에 빠졌던 이해성이 인생은 템빨이라고 중얼거릴 때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이제야 이해된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본인이 보상 산정에 힘을 썼다고 우쭐댑니다!]
스윽, 허공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리자 메시지가 갱신됐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인사치레는 됐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쩐지 열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