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129화 (129/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29화

“찌개는 내가 끓일게.”

커다란 테이블에 꺼내놓은 야채들을 손에 쥔 류인이 개수대 쪽으로 걸어갔다.

“그럼 저는 류인 형님 옆에서 설거지를 돕겠습니다!”

“그럼 저는 세팅~?”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하야, 너는 관리실 가서 숯 좀 가져올래?”

“……네!”

내 말에 곧장 고개를 끄덕인 신유하가 등을 돌렸다.

탁! 탁! 탁탁!

일정한 박자로 야채들이 썰려 나갔다.

“……찍는 거야?”

류인이 내 쪽을 힐끗 바라보며 물었다.

“……?”

“와, 당연한 걸 뭘 묻냐는 눈빛!”

테이블에 갖가지 것들을 세팅하던 최승하가 지나가며 말을 얹었다.

“어, 음. 그래. 당연한 거지…….”

대답도 안 했는데 홀로 납득한 듯한 류인이 다시금 칼질에 집중했다.

나는 구도를 요리조리 옮겨 다니며 조금 더 잘 나올 만한 구도를 찾아다녔다.

‘이쯤이군.’

2~3분 정도 셀프캠으로 촬영을 지속한 나는 캠코더의 녹화 버튼을 종료했다.

사실 카메라가 여러 대 돌아가고 있어서, 굳이 영상을 계속 찍을 필요는 없다.

‘스태프들이 담기 힘든 것들만 위주로.’

나는 텐트 바깥으로 발을 내디뎠다.

어느새 숯을 가져온 신유하가 척 봐도 곤란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뭐 해?”

다가가자, 신유하가 부탄가스와 연결된 토치를 들어 올렸다.

“……이걸 주셨는데, 어, 떻게 사용해야 할지.”

“아.”

원래 이런 건 보통 관리인들이 대신 해주는 일이지만, 사전에 논의를 해놨었다.

‘이런 걸로 버벅거리는 게 또 재미겠지.’

10분 뒤.

“형님! 제가 사람을 불러오겠습니다!”

“……기다려 봐.”

토치에서 불은 나오는데, 요령이 없는 건지 불이 제대로 붙지 않았다.

“바람이 너무 불어서 그런가.”

산간이라 그런지 바람이 세긴 셌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변명이라고 합니다!]

“…….”

분명 일부러 버벅거릴 작정이긴 했다만, 이렇게까지 안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양옆에 선 신유하와 차윤재가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셋이 애를 쓰고 있을 무렵, 한수현이 다가왔다.

“형들 여기서 뭐 해요?”

겨우 토치 하나에 세 명이 매달려서 낑낑대고 있는 걸 물끄러미 바라본 한수현이 내 손에 끼워져 있던 하얀색 목장갑을 뺏었다.

“줘봐요.”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토치질을 시작했다.

화르륵!

내가 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불길이 치솟았다.

불이 제대로 붙은 걸 확인한 한수현은 말없이 토치를 내려놓고 떠났다.

차라리 최승하처럼 놀리기라도 하면 모를까, 정말 아무 감정도 없이 해준 거라 더 수치스럽다.

저 어린 녀석이 단번에 해낸 걸 가지고 여태껏 낑낑댔다니.

“형님! 바, 바람이 지금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불이 잘 붙은 게 분명합니다!”

휘이잉!

그 순간,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다.

“마, 맞아요. 바람이 줄어, 들었…….”

이봐, 더 비참해지는 것 같으니 다들 그만해 주길 바란다.

그때, 냄비를 든 류인이 다가왔다.

“얘들아, 찌개랑 다 끓었는데 이제 슬슬 고기 구울까.”

주변을 둘러보니 세팅도 끝나 있었다.

“그럴까.”

나는 곧장 화로에 철판을 올리고 고기를 얹었다.

치이이-!

귀를 자극하는 소리와 함께 고기가 익어갔다.

“아, 형 이것도!”

주방에서 나온 최승하가 칼집 낸 소시지와 손질을 마친 새우, 버섯과 양파 같은 구이용 야채류를 내밀었다.

“같이 구워요!”

여분 집게를 꺼내 든 최승하가 웃으며 옆에 선 순간, 스태프 한 명이 다가왔다.

“인서트 좀 찍어도 될까요?”

최승하가 가져온 접시를 힐끔 응시한 스태프가 양해를 구하는 투로 말을 이었다.

“이건 저희가 플레이팅 좀 하면서 인서트 찍을게요. 그, 비주얼상. 예.”

나는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비켰다.

“마음대로 하셔도 괜찮습니다.”

스태프들이 고기를 뒤집고 새우를 익혀대며 인서트를 찍고 나니…….

“다 구워졌네요.”

나는 최승하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음식들은 완벽한 상태로 구워져 철판에 나란히 플레이팅까지 되어 있었다.

……과연 프로라는 건가.

그것을 접시에 옮겨 담은 뒤,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됐다.

마침 해도 떨어져 어둑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그 순간.

탁!

텐트 앞 천막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색색의 전구들에 불이 들어왔다.

“……와아!”

차윤재가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다른 멤버들도 고개를 휙휙 돌리며 눈을 빛냈다.

음식도 맛있고, 굉장히 여유로웠다.

거기에다가 서늘한 바람까지 불어오니 정말 힐링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흠.”

많이 먹을 자신이 있다는 건 정말이었는지 최승하가 쉴 새 없이 구워온 고기를 차윤재 입에 넣어줬다.

최승하 잘 먹는 거야 알고 있지만, 지금까지 봐온 결과 차윤재도 정말 잘 먹는다.

“형, 형님이나 드세-!”

차윤재가 손을 파닥거리자, 최승하가 웃었다.

“윤재야, 아~”

“으앗!”

볼이 부푼 차윤재가 음식을 급하게 씹어 삼키고는 벌떡 일어났다.

“이제 제가 굽겠습니다!”

“됐네요~”

생각보다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찌개도 맛있다.”

내가 류인이 끓인 찌개를 칭찬하자, 다른 녀석들도 기다렸다는 듯 동의했다.

“잠깐 카메라 충전 좀 하고 가겠습니다!”

스태프의 말과 동시에 한수현이 들이대는 최승하의 얼굴을 밀어냈다.

꾸우우욱-

최승하의 손엔 쌈이 애처롭게 매달려 있었다.

“저리 가요. 저 배불러요.”

“으응? 아까 윤재 쌈 싸줄 때 내가 수현이의 눈빛을 분명 봤는데!”

“잘못 본 거겠죠.”

“봤는데!”

“안경 맞추셔야 겠네요.”

“부끄러워하긴.”

“…….”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남은 건 대망의 그것이었다.

나는 멤버들을 카메라 사각지대로 몰았다.

“다들, 잘 알고 있겠지…….”

“……예, 예! 말 많이!”

차윤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친한 척이다.”

“아니! 이 형, 진짜 미치겠네! 우리 친하다니까요? 대체 언제 인정해 줄 거예요?”

“마, 맞습니다!”

“맞아…… 요! 저희, 친해요!”

왜인지 억울해 보이는 멤버들의 대답을 한 귀로 흘린 나는 손가락 하나를 치켜올렸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

“감동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다.

감동적인 분위기.

이게 무엇인가?

이걸 보는 팬들이 과몰입을 일으킬 수 있을 만한 분위기.

그런 분위기를 원한다.

사실 이전까지의 라이트온 인지도에서 굳이 감동 분위기 만들어봐야, 그냥 노잼 소리나 들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프로그램이 종영되자마자 화제성이 무섭게 치솟고 있다.

‘유입되는 팬도 그만큼 늘고 있고.’

이미 실력은 보여줬고, 팬들은 무대 영상 등을 보며 과몰입 스탯을 쌓고 있다.

거기서 감동적인 분위기가 추가된다면?

과몰입에 불을 지필 수 있다고 내 안의 오타쿠 자아가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타닥, 타닥!

타오르는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둘러앉으니 어색한 분위기가 휘몰아쳤다.

넋 놓고 모닥불을 보고 있으니 이해성이 봐왔던 아이돌들의 캠프파이어 영상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셀 수도 없이 많은 그룹들이 지나갔는데, 놀랍게도 열에 여덟쯤은 그룹 내에서 한 명 이상 눈물을 보였다.

그 대상이 부모님을 의미하든, 팬들 의미하든, 고생한 본인을 의미하든 간에 말이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여기선 한 놈이 눈물을 보이면 금상첨화란 뜻이겠지…….

스윽-

주변을 둘러보니 아직 스태프들은 카메라를 점검하고 있었다.

나는 상체를 멤버들 쪽으로 숙인 채 작게 속닥였다.

“혹시 울고 싶은 사람.”

“형님의 특기이지 않습니까!”

해맑은 답변에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 특기는 이제 버렸다. 다들 슬픈 생각을 해보도록 해.”

“이 형도 가만 보면 진짜 웃기는 사람이야. 특기가 스티커예요? 뗐다 붙였다 하게?”

“입.”

“넵!”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흠.”

역시 눈물 흘리는 건 무리인가.

40분 뒤, 나는 이게 전혀 무리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왜 수많은 아이돌들이 하나같이 이런 상황에서 눈물을 짜내는지 깨달아 버렸다는 뜻이다.

“흡.”

코를 훌쩍거린 차윤재가 말을 이었다.

“저는 정말, 저희가 한 팀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어두워진 하늘.

그리고 분위기 있게 타오르는 모닥불.

어쩌다가 나온 경연 프로그램 이야기까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지난 고생들이 스쳐 지나갔는지 차윤재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지더라…….

문제는 신유하까지 조용히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는 점이다.

“으아앙~ 얘들아 울지 마~”

최승하가 우는 소리를 내며 옆에 앉은 차윤재의 어깨를 두들겼다.

‘흠.’

이거 그림이 꽤 괜찮은데.

아주 화목해 보인다.

슥, 슥…….

나는 곧장 내 우측에 앉아 있는 신유하의 어깨를 살풋 토닥였다.

“……! 아.”

갑작스러운 터치에 놀랐는지, 신유하가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든 신유하가 작은 목소리로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저는, 형, 한테 많이, 감사해요.”

전방에 카메라 세 대가 이 훈훈한 광경을 잘 녹화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음이 이상하게 술렁인다.

분명 내가 바라던 그림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신유하와 눈을 마주쳤다.

거짓이 아니라는 것처럼, 신유하의 시선이 흔들림 없이 올곧았다.

타닥, 타닥.

불씨가 타오르는 소리와 함께 머리엔 물음표가 가득 찼다.

물론 프로그램 내내 도와준 건 꽤 많다지만, 따지고 보면 그건 순전히 나를 위해서였다.

게다가 툭 하면 말 좀 하라는 둥, 강압적으로 굴었는데.

[성좌, ‘황금의 신’이 그걸 알고 있었던 거냐며 화들짝 놀랍니다!]

나는 메시지를 흐릿한 눈으로 무시한 뒤 진지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역시 이 정도면 상냥했던 걸까?’

[성좌, ‘황금의 신’이 기겁하며 고개를 내젓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얼굴에 더한 의문이 깃들기 시작했다.

멤버들이 앞다투어 입을 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 맞습니다! 저도 형님이, 형님이 저희를 이끌어주셔서,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정말로요!”

“으하핫, 저도요! 형이 매번 노력하는 거, 저희 다 알고 있거든요.”

“애들 말이 맞아. 해온이가 많이 고생했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형 없었으면 힘들었을 거예요.”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동료애가 넘치는 훈훈한 분위기에 흡족해합니다!]

“……?”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른 녀석들은 그렇다치고 한수현까지?

‘……흠.’

한수현이 어렵사리 내보인 진심이라는 걸 알 리 없는 나는 드디어 해답을 찾아냈다.

‘여기 카메라 앞이었지.’

납득이 끝난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그게 아니라며 뒷목을 부여잡습니다!]

하지만 뭔가, 소란스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분명 이 몸에 처음 들어왔을 때만해도 이런 눈빛들은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음…….”

카메라 앞이니 나도 무언가 감동적인 말을 내뱉어야 한다.

나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도 운이 좋다고 생각해. 너흴 만난 게.”

어느 정도 진심이다.

널리고 널린 망돌 중에, 명훈이의 마수가 아니었으면 진즉에 성공했을 라이트온에 들어오다니.

물론 아직 한참 멀었지만, 얼굴과 실력까지 되는 녀석들을 만난 건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베스트는 빙의고 나발이고 하지 않는 거였겠지만.’

다른 망돌 리더로 빙의했다면, 그건 더 끔찍했다.

‘……나도 조금은, 재밌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을 내뱉고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마주한 멤버들의 얼굴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깃들어 있었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