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132화 (132/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32화

“형은 얼른 방에 들어가세요, 이거 끼고.”

덤덤한 얼굴의 한수현이 차윤재에게 자신의 이어폰을 건넸다.

“여, 연장자가 되어서 이렇게, 겁을 내면 안 되는데……!”

“……?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형이 지금보다 60살은 더 많대도 무서울 상황 맞는데요. 겁내도 돼요.”

“수현이 말이 맞아. 윤재야, 괜찮아.”

나도 류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들어가는 게 좋겠다.”

“……그, 그럼-”

무어라 대꾸를 하려던 차윤재의 얼굴이 굳었다.

삐, 삐비비삑! 삑!

이제 도어락까지 마구잡이로 누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으음, 어떡해야 할까요?”

어느새 다가온 최승하가 작게 물었다.

“흠.”

나는 즉시 매니저를 호출하고 상황을 지켜봤다.

삑! 삐비비빅! 삑!

안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성질이 났는지, 도어락의 키패드를 누르는 주기가 짧아지기 시작했다.

삐! 삐빅!

쾅!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겠는지 주먹으로 도어락을 치는 소리가 났고,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얘들아 앞에 모여 있어? 매니저 또 부를 거야? 왜 있는데 반응을 안 해?”

보통 몇 번 두드리다가 반응이 없으면 내려가곤 했는데, 오늘은 유독 심하군.

20분쯤 지났을까, 숙소 바깥에서 매니저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문 앞에서 뭐라 대치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아니, 잠잠해진 게 아니었다.

쾅!

“얘들아! 초심 찾아! 기고만장해지지 말고! 너네 이러다 훅 간다? 너네 좀 떴다고 이렇게 막 나가면 안 되는 거야! 아, 아저씨 손 떼라고요. 내가 내 발로 나간다고.”

문을 발로 차는 소리와 동시에 악을 쓰는 것에 가까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몇 분이 지나자 바깥은 조용해졌다.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입을 연 건 역시나 최승하였다.

“하핫, 으음. 음식 시켜 먹는 것도 오늘은 조금, 그럴 것 같네요. 제가 떡볶이 만들어 드릴게요! 마침 재료가 있으니!”

기특함과 별개로, 최승하의 요리 실력은…….

나는 녀석과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네가 자신 있다고 했던 요리가 뭐였지?”

“떡볶이랑 볶음밥이요!”

“흠.”

잠시 글램핑장에서 먹었던 볶음밥 맛을 떠올린 나는 흐릿한 낯짝으로 말을 이었다.

“라면이나 끓여 먹자…….”

최승하가 헤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으응? 저 한 번만 믿어보세요.”

“안 믿을래.”

“저도 안 믿을래요.”

“……나도.”

내 대답에 한수현과 신유하가 즉각 동의했다.

“와아, 다들 날 너무 못 믿네~ 내 숨겨진 요리 실력을 보여줘야 하는데!”

음, 그나저나…….

슥-

나는 곁눈질로 차윤재를 바라봤다.

입을 꾹 다문 채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러다가 팬들이라도 무서워하면 큰일인데.’

이 바닥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얻었다면,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방금 전 인물과도 같은, 사실상 범죄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문제는 그것에 심한 충격을 받고 팬 자체를 무서워하며 멀리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는 것이다.

“흠.”

그건 곤란한데.

그리고 의외로 신유하는 멀쩡했다.

차윤재가 덜덜 떠는 걸 보고, 신유하는 이미 안색이 파리해졌을 줄 았는데.

‘은근히 이상한 데서 멘탈이 세단 말이지.’

그저 우물쭈물하는 얼굴로 차윤재의 어깨를 작게 토닥일 뿐이었다.

“……형님은 무섭지 않으셨습니까?”

“……어, 응. 무섭, 긴한데, 익숙해서……?”

[성좌, ‘황금의 신’이 비통해합니다!]

아, 신유하 INT였지.

여러 소속사 중에서도 사생 관련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는 곳이 INT다.

거긴 데뷔 전 연습생 시절부터 이런 일을 겪는다고 들었는데, 신유하 정도 되는 놈이라면 꽤 시달렸을 거다.

‘이미 무뎌진 거겠지.’

[성좌, ‘황금의 신’이 아해의 안전을 보장하고 싶어 합니다!]

당연히, 나도 지금 당장 보안이 철저한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단 말이다.

‘그냥 내가 살 수도 없고.’

성해온의 통장 잔고를 생각하면 보안이 완벽한 아파트 한 채 정도야 살 수 있다.

하지만 멤버들과 소속사에게 할 말이 없다는 게 문제지.

아마 사측에서 조만간 숙소 이전에 관한 모션을 취할 테지만, 그게 당장 이번 달은 아닐 테다.

[성좌, ‘황금의 신’이 못마땅한 얼굴로 내려다봅니다!]

떠오른 메시지를 흐릿한 눈으로 무시하자, 띠링 소리가 연거푸 울렸다.

[성좌, ‘황금의 신’이 누구를 설득해야 하는 거냐 묻습니다.]

당연히 김명훈 대표이사겠지.

결정권자는 그 사람이다.

[성좌, ‘황금의 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고뇌합니다.]

[수식언을 공개하지 않은 한 성좌가 ‘황금의 신’의 생각을 비난합니다!]

나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성좌, ‘황금의 신’이 결심합니다.]

[성좌, ‘황금의 신’이 자신의 권능(權能)을 사용합니다!]

[ERROR ERROR ERROR ERROR!]

[성좌, ‘황금의 신’이 시스템을 위협합니다!]

[시스템이 울면서 시말서를 쓰러 갑니다!]

“……?”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상황에 나는 눈을 껌뻑였다.

……대체 무슨 권능을 사용한 건데?

* * *

이틀 뒤, 우린 갑작스럽게 회사로부터 호출을 받게 된다.

나는 납득되지 않는 광경에 조용히 눈을 굴렸다.

“……?”

평소라면 호탕하게 웃으며 우리를 앉혀놓고 본인 자랑을 늘어놔야 할 김명훈이.

추우욱…….

무말랭이처럼 쪼그라든 모양새로 소파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어서 앉거라.”

나는 의문이 깃든 얼굴로 우선 자리에 앉았다.

다른 녀석들도 당황스러운 건 매한가지인지 쭈뼛거리고 있었다.

푸석한 얼굴을 쓸어 넘긴 대표는 우리에게 간단한 안부 인사를 건네더니 미간을 설핏 찌푸렸다.

“내가, 내가 요즘 틈만 나면 악몽을 꾸지 뭐냐.”

“……예?”

분위기를 잡는 걸 보아하니 이게 본론인 것 같은데.

악몽?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전해 듣긴 했다. 요즘 숙소 앞이 극성이라고 말이다. 크흠. 최대한 빠르게 새 보금자리를 알아봐 줄 테니 걱정 말거라.”

헛기침을 이은 명훈이의 얼굴이 점점 흐려졌다.

“내가 원래 감이 좋긴 하다만, 크흠. 이번엔 아주 불길해…….”

“무엇이……?”

내가 고개를 기울이며 묻자, 안색이 침침해 보이는 그가 말을 이었다.

“너희가 위험해지는 꿈이다. 특히.”

스윽-

김명훈의 시선이 신유하에게 닿았다.

움찔, 몸을 떤 신유하가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깔았다.

“유하, 유하가 위험해지는 꿈 말이다.”

사아아-

동시에 내 안색도 흐려졌다.

‘한 게 이 짓이로군…….’

[성좌, ‘황금의 신’이 수줍어합니다!]

먼저 귀띔 좀 해주면 어디가 덧나는 걸까.

이건 뭐,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아득한 속내와는 다르게 진지한 얼굴을 걸친 나는 그의 말을 경청하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크흠. 자꾸 어떤 목소리가, 경고, ……경고를 하지 않느냐! 내 도통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란다.”

어쩐지 김명훈이 불쌍해 보이기 시작했다.

“예…….”

숙연한 얼굴로 대답하자, 내가 자신의 처지에 공감해 준다고 생각하는지 김명훈이 목소리를 높였다.

“역시 내 걱정을 해주는 건 너희들뿐이구나! 크흐흠. 내 자식들은 헛소리 좀 하지 말라며 닦달하던데.”

눈 밑에 다크서클이 만연한 김명훈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아! 대표님, 그, 그건 다 요즘 피로하셔서 그런 게 아닐-”

퍽!

“으윽.”

눈치 없이 대표에게 피곤함으로 그런 것일 테니 심려치 말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차윤재의 허벅지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난데없이 가격당한 차윤재가 큰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으나, 나는 그 눈길을 피했다.

그리고.

사라락-!

잔뜩 아련한 얼굴을 걸쳤다.

멤버들의 경악 어린 시선이 모여드는 게 느껴졌지만, 지금 이 기회를 알차게 써먹어야 한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명훈이의 정신이 한껏 유약해져 있을 때, 흔들어야 한단 말이다.

나는 물기 어린 촉촉한 눈을 만들고 고개를 들었다.

“대표님……!”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기겁합니다!]

“사실 저도 비슷한 꿈을 꿨답니다. 마치 경고하듯이…… 터를 옮기지 않으면 무슨 일이 날 것처럼요.”

“너, 너도 그랬단 말이냐! 혹시 네게도 이상한 목소리가 들렸느냐!”

“예. 제게도 들렸습니다. 그 때문에 요새 통 잠을 이루지 못했-”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명훈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것치곤 안색이 좋아 보이는데?”

쯧, 쓸데없이 예리하군…….

스으윽!

맞은편과 옆에 앉은 놈들에게 눈빛을 보내기 무섭게, 한수현을 필두로 멤버들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제가 보기에도 이유 있는 꿈인 게 확실합니다.”

“마, 마, 맞습니다! 해온 형님이 며칠 전부터 이상한 꿈을 꾼다고!”

“……자꾸 잠에서, 깨고.”

“으음, 어라? ……이거 진짜 섬찟한데요? 이 형 얘기만 들었을 땐 그냥 조금 무섭고 말았는데, 대표님까지 같은 꿈을 꾸다니. 이럴 수가 있나?”

“해온이가 요즘 잠을 못 자긴 했지…….”

나는 그런 멤버들을 빠르게 훑었다.

굉장히 기특하군…….

이제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척하면 척이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근묵자흑을 중얼거립니다.]

흐린 눈으로 메시지를 무시한 나는 곧장 눈을 내리깔았다.

“사실 정말 무서웠습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의 탁월한 연기력에 감탄합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200골드를 후원합니다!]

더욱더 가식적인 낯짝을 걸친 나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대표님도 같은 일을 겪으셨다니, 얼마나 무서우셨을지!”

“허어! 내 고민에 진심으로 공감해 주는 건 너밖에 없구나, 크흐흠.”

나는 시선을 올려 대표와 눈을 마주쳤다.

“제가 보기에, 이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대표님.”

“으응?”

“사실 저는 이런 류의 꿈을 자주 꾸는 편, 예지몽이라고 할까요. 예. 그런 것을 자주 봅니다만 이렇게 타인과 같은 것을 본 건 처음입니다.”

“무얼, 무얼 봤는데?!”

나는 다급하게 속으로 질문을 던졌다.

‘뭘 보여줬는데?’

[성좌, ‘황금의 신’이 말합니다! 검은 인영이 숙소로 들어와서!]

“……검은 인영이 숙소로 들어와서!”

“정, 정확하구나!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그다음, 그다음엔 어떻게 되느냐!”

‘……그 다음엔?’

[성좌, ‘황금의 신’이 말합니다! 무기를 든 그 인영이 아해를 인질로 잡고 위협한다!]

“……?”

대체 얼마나 막장을 보여준 거야.

어처구니가 없었으나, 황당해할 틈도 없었다.

눈앞에서 김명훈이 어서 대답해 보라는 듯 재촉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떠올리는 것도 두렵다는 듯, 아연실색한 낯짝을 걸친 채 입을 열었다.

“아해, 아니, 신유하를 인질로 잡고 저희, 저희를 위협합니다.”

“……!!”

입을 떠억 벌린 김명훈이 그 자리에서 굳었다.

휘이잉-

이런 효과음이 들리는 것만 같이, 아무도 입 밖으로 소릴 내지 않았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의 멤버들은 그저 나와 대표를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쩌억…….

벌려진 입을 아직도 다물지 못한 채 나를 응시하던 김명훈이 벌떡 일어났다.

“……김, 김 비서! 김 비서!”

“예, 대표님.”

“다, 다, 다, 당장! 당장! 당장 새 숙소를, 리, 리스트 올려놓은 거 재고 따질 필요 없이 계약해! 보, 보안이 훨씬 좋은 곳으로!”

“예? 대표님, 아직 매물이 마땅한 게 나오지 않아서 기다려야…….”

“우리가, 아니, 내가 돈이 없어? 돈이야 많지 않은가! 웃돈을 얹어서라도 구매해! 보안! 보안을 제일 중요시해서! 아이들의 안전이 중요하다네!”

스윽-

오른손을 들어 올려 입을 가린 나는 히죽 웃었다.

‘됐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