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35화
슈우우-
우리가 탄 밴이 고속도로를 지나고 있었다.
일전에, 나와 정재진이 단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전 대표가 행사 하나를 수락해 버렸다는 것 같지.
열받지만 다른 행사는 다 거절했다니 봐주도록 할까.
사실 명훈이가 정말 우리를 캐시카우로 취급했다면, 후려쳐진 단가고 뭐고 하루에 행사 두세 탕씩 보냈을 거다.
그리고 사실…….
조금 기대되기도 하고.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이제 부정기는 끝난 거냐며 휘파람을 붑니다!]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놀리는군.
금세 흐려진 낯짝을 창밖으로 돌린 나는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얼마 만이지.’
프로그램 이후로는 팬들과 만날 일이 없었으니 꽤 오랜만이다.
다른 멤버들도 비슷한 생각인지, 숙소에 있을 때보다 얼굴색이 확연히 밝아졌다.
“팬분들을 뵙는 건 정말 오랜만인듯합니다! 무척이나 설렙니다!”
“파이널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나도 그런 느낌이야. 어, 조금 설레는 것 같아.”
류인이 푸스스 웃자, 한수현이 작게 동의했다.
“……저도 팬분들 뵙고 싶었어요.”
“막내야, 형은? 형은?”
“……형은 매일 보잖아요.”
“푸하하, 그 말도 맞습니다! 저흰 매일 보는데 보고 싶을 리가 없습니다!”
무척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그걸 흐뭇하게 지켜보던 매니저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 오늘 고속도로가 막혀서 한 2시간 30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멀미는 안 나세요?”
아, 이 사람은 오늘부터 함께하기로 한 매니저다.
슥-
나는 운전대를 잡고 있는 이에게 시선을 보냈다.
참고로 임시 매니저들이 번갈아가며 우리를 담당했을 당시에 얼굴을 한 번 본 사람이다.
‘일을 굉장히 잘하는 것 같았지.’
게다가 MH의 매니저 중에서도 꽤 높은 위치의 사람 같았는데, 우리한테 붙여주다니.
뭐가 됐든, 이번엔 정상적인 사람이 붙은 것 같아 다행이다.
“아, 휴게소가 금방인데 들를까요? 바로 앞에 있는 여긴 사람이 많은 곳이라, 다음 휴게소로요.”
“아앗, 휴게소 좋아요! 저희 나가서 구경해도 될까요?”
최승하가 곧바로 생글 웃으며 호응하자, 잠시 고민하던 매니저가 고개를 살포시 저었다.
“혹시라도 사람이 몰리면 위험해요. 드시고 싶은 게 있으시면 제가 사다 드리겠습니다.”
오.
매니저의 정석 같은 대답이었지만, 최승하는 포기하지 않았다.
“으음~ 해온 형이 뭐 찍는다고 캠코더도 가져왔는데!”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몰래 챙겼는데, 어떻게 알았지.
심지어 사이즈도 컴팩트한 거라 가방 깊숙한 곳에 넣어놨는데.
“아, 리더님이 뭘 챙기셨나요?”
매니저의 물음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나는 사소한 일상을 조각조각 모아 브이로그를 만들어볼 작정이었다.
……얼마 전 인터넷으로 브이로그용 캠코더도 한 대 구매했고.
하지만 아직 혼자만의 생각이어서 회사에게는 물론, 멤버들에게도 말하지 않은 상태다.
곤란하군…….
심각할 정도로 할 말이 없다.
오늘 챙긴 것도 혹시 모르니 가져왔을 뿐이고.
스으윽-
나는 고개를 돌려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정재진 대리님이 주셨어. 쓸 만한 영상 모이면 브이로그 같은 걸 만들어봐도 괜찮지 않겠냐고 하시던데.”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뒷목을 부여잡습니다!]
“아하~ 정 대리님이 아이디어를 내셨군요!”
“예.”
“그분도 참 열정이 넘치시는 분입니다. 대단하신 분이에요.”
새로 온 매니저는 정재진을 아주 호감으로 봤는지 계속해서 칭찬을 이어갔고, 차윤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브이로그라니! 제 생각에 정재진 대리님은 정말 유능하신 분 같습니다!”
“그러게.”
“나도, 그렇게, 생각해……!”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감탄을 들으며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저 인간들이 당신의 칭찬을 하고 있다고 알려줍니다!]
“…….”
아무리 멀쩡한 직원이 있다지만, 그건 극소수.
MH는 아직 아이돌 산업 쪽으론 무지한 기획사임을 부정할 수 없으며, 체계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종종 개입할 일이 생기는데, 더 이상 주목받는 건 내 쪽에서 사양이다.
‘역시 정재진을 팔아먹길 잘했군.’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정재진을 안타까워합니다!]
* * *
“에, 에취!”
“……? 정 대리님 요즘 기침을 자주 하시네요?”
코를 작게 훌쩍인 정재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게요. 요즘 날이 쌀쌀해져서 그런가 봅니다.”
“하긴~ 아니면 누가 정 대리님 얘기하는 거 아니에요?”
“하하, 그럴 수도 있겠네요.”
* * *
정재진을 들먹이며 입을 턴 덕분인지, 매니저는 안전에 대한 우려를 표하면서도 우리를 내보내 줬다.
주말이지만 식사 시간이 아니라, 휴게소는 꽤 한적했다.
간만의 외출에 상기된 얼굴의 차윤재가 입을 열었다.
“형님! 어떤 걸 드시겠습니까? 제가 가서 형님 것까지 사 오겠습니다!”
신나하는 꼴이 영락없는 어린애군.
“같이 갈까.”
“예! 어, 저기 승하 형님은 언제 저기에!”
이미 본인 몫의 먹을거리를 주문했을 게 분명한 최승하가 스낵바 앞에서 긴 팔을 휘적였다.
지척으로 다가가자, 최승하가 방긋 웃었다.
“왔어요? 먹고 싶은 거 시키세요! 제가 살게요!”
척! 척! 척! 척!
이미 최승하의 앞엔 핫도그와 핫바 같은 것들이 가지런히 놓이고 있었다.
내가 하나만 먹으라고 할까 봐 먼저 선수를 친 게 틀림없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장 돗자리를 깔라 재촉합니다!]
나는 곧바로 최승하 앞에 있는 핫바를 들어 입에 넣었다.
“앗! 그건 하나뿐인 건데! 으음, 괜찮아요. 하나 더 시키면 되니까아아악. 형, 갑자기 정강이를 치는 게 어딨어요!”
“앞에 놓인 거나 먹어라.”
“……너무해!”
“상처받은 얼굴 해봤자-”
나는 최승하 앞에 놓인 핫도그 하나를 차윤재에게 건넸다.
“소용없다. 여기.”
“아! 감사합니다! 마침 이걸 먹고 싶었던 참입니다!”
4개 중, 순식간에 2개를 털려 버린 최승하가 우는 소리를 내며 무인 포스기에 카드를 꽂았다.
“괜찮아요. 왜냐, 새로 시키면 되니까!”
최승하가 스낵코너 직원분들을 향해서 사르륵 눈을 접어 웃었다.
계산을 하지 않아도 당장 음식을 내어줄 것같이 몸을 들썩이는 직원분과 눈이 마주친 나는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그와 동시에.
탁!
최승하의 카드를 빼앗은 나는 싱긋 웃으며 강탈했던 핫바를 입에 넣었다.
“승하가 미리 시켜준 덕에 빠르게 먹네.”
“으음~ 이거 사내 괴롭힘 아니에요?”
최승하가 조용히 중얼거리자, 핫도그를 우물우물 씹던 차윤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말은 조금 어폐가 있습니다! 형님이 아까 먼저 사준다고 말씀하셨으니까!”
차윤재가 기특한 소리를 하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니, 저 멀리서 다른 멤버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해온아.”
“늦게 왔네?”
내 말에 류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애들이랑 화장실 갔다 왔어. 매니저님이 위험하니까 혼자 다니지 말라고 하셔서.”
“음.”
나는 근무 태만의 표본 김민성에게선 찾아볼 수 없었던 정상적인 매니저의 사고에 고개를 끄덕이며 멤버들의 간식거리를 주문했다.
“해온아, 잘 먹을게.”
류인이 웃으며 핫바를 흔들자, 최승하가 눈을 빛냈다.
“와아, 해온 형이 사주는 거예요? 그럼 저는 저거, 저거.”
나와 차윤재 입으로 들어간 간식거리를 손으로 짚은 녀석을 바라본 나는 눈을 곱게 접어 웃었다.
“핫바랑 소시지 중에 뭘 더 먹고 싶어?”
“……? 으음, 핫바요.”
최승하 앞엔 핫바와 소시지가 놓여져 있었다.
그중에 소시지를 들어 올린 나는 순식간에 입에 욱여넣었다.
친절하게 소스까지 뿌려놨군.
“너는 그망머거라.”
“두 개 먹은 건 형이면서……! 입 터지려고 하는 것 봐!”
“저걱도 앙머그면 내가.”
스으윽-
핫바로 눈길을 돌리자 최승하가 경악하며 핫바를 손에 쥐었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그애서.”
“사랑한다고요~”
“꺼져…….”
“……왜 마지막 말만 이렇게 발음이 선명하지?”
“풉.”
옆에 서 있던 신유하가 언제 웃었냐는 듯 고개를 스으윽, 돌렸다.
“유하야! 지금 설마 나의 이 비참함을 보고 웃은 거야?! 4개를 시켰는데 이 핫바 하나만 남은 상황이, 친구의 슬픔이 재밌니!”
“…….”
펄럭! 펄럭! 펄럭!
“유하 토하겠다.”
안색이 파래진 신유하를 구출해낸 류인이 작게 웃었다.
신유하의 양어깨를 붙잡고 탈탈 털던 최승하가 상처받은 얼굴로 돌아섰다.
“정말 여기에 내 편은 아무도 없구나……!”
그걸 지켜보던 한수현이 작게 혀를 찼다.
“형, 그래봤자 카드 못 돌려받아요.”
“에이, 연기인 거 티 났어?”
“네.”
“수현아, 나 그거 한 입만.”
헤실 웃은 최승하가 한수현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그러세요.”
망설임 없이 핫도그를 내민 한수현의 낯빛이 점점 흐려졌다.
“와~ 압~”
완전한 모양이었던 핫도그가, 순식간에 1/3 크기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게 한입에 들어가요?”
한수현이 실종된 핫도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리자, 최승하가 상체를 휙 돌리더니 나와 눈을 마주쳤다.
작게 뒷걸음질 치는 나를 단숨에 따라잡은 녀석이 내 주머니 속에 있던 본인의 카드를 손쉽게 빼냈다.
“……!”
진작 뺄 수 있었던 거였냐.
“강탈 성공~”
눈을 반달로 휘어 접어 웃은 최승하가 말을 이었다.
“흐음, 수현이 울 것 같아서 하나 새로 사줘야겠어요.”
“……제가 언제 울어요. 그리고 안 먹어도 상관없어요. 어린애도 아니고.”
어느새 새로 나온 핫도그를 한수현에게 내민 최승하가 방긋 웃었다.
“자아! 우리 귀여운 막내 꺼~”
“……하아아아.”
* * *
근래, 라이트온 팬덤에서 소소한 화젯거리가 된 일이 있었다.
- 라이트온 떴다 존잘 홈 등장했다 보정 재질 미쳤음
- 아 이 보정 느낌 어디서 봤는데 누군지 알 것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하네
척 봐도 고수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사진 계정이 등장한 것이다.
가끔은 사진 계정 하나가 그 판에 큰 파급력을 가져다주기도 하기에, 팬들은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 ㅁㅊ 이 조합으로 트윈 홈이라니 좋아서 브레이킹 댄스 춥니다
심지어 흔치 않다는 트윈 홈.
트윈 홈은 개별 홈보다 굿즈 판매가 불리하기에, 홈마들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GK? 무슨 뜻일까.”
알파벳 두 개의 조합에 곽덕배는 고개를 갸웃했다.
프로필엔 ood Luc.
이렇게만 써 있을 뿐이었다.
“흠.”
잠시 고민하던 곽덕배는 금세 손가락을 튕겼다.
“아, Good Luck이구나!”
굿럭에서 첫 번째 글자와 마지막 글자인 GK를 뺀 게 프로필 속 ood Luc인 것이다.
“누군지 몰라도 간지충이시네…….”
물론 오해였지만, 곽덕배는 그렇게 생각하며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흑흑, X발. 주말에 출근해서 축제고 뭐고 가지도 못하는 내 인생이 레전드다…….”
* * *
한편, 사과축제 현장.
스스슥!
카메라 설정값을 재빠르게 조절한 GK가 자리에 조용히 착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