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36화
아직 많은 홈마가 존재하지 않는 라이트온 판에 혜성같이 나타난 GK의 정체는…….
“오늘 딱 달라붙는 거 입어줬으면 좋겠다.”
바로 근돌이었다.
블랙보이즈의 네임드 홈마였던 근돌은 얼마 전 올라온 라이트온의 자컨을 보고 심각하게 과몰입을 해버렸고, 결과는.
“……그래, 새 장비 산 거 활용하는 거지.
근돌은 조용히 중얼거리며 카메라를 세팅했다.
챠챠챠챡!
시범으로 컷을 찍어본 근돌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데이터를 확인했다.
“크.”
근돌은 카메라를 소중하게 무릎 위에 얹어둔 뒤,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뭐야, 반응이 꽤 좋네.”
얼마 전 구매한 데이터를 보정해서 홈에 올렸는데, 여러모로 반응이 좋았다.
사실 근돌이 처음 정했던 계정명은 MK였다.
Muscle King…….
근육 짱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줄여놓으니 묘하게 이 소속사 사장만 떠오른단 말이야.’
근돌의 머릿속에 김명훈 대표이사가 심히 아른거렸다.
그래서 같은 뜻의 GK로 바꿨다.
Geunyook King…….
프로필엔 대충 Good Luck에서 글자를 빼 온 것처럼 써놨더니, 근육 관련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전혀 없는 듯했다.
‘역시 난 천재가 아닐까?’
근돌은 홀로 감탄하며, 소란스러운 주위를 둘러봤다.
“여기 제가 먼저 짐 놨는데 왜 앉으세요?”
“……? 짐이 이거예요? 바닥에 떨어져 있잖아요.”
“일부러 떨어뜨리신 거예요?”
“아니라니까요? 그리고 애초에 자리 전세 내셨어요?”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팬들의 말싸움을 바라보던 근돌은 고개를 저었다.
라이트온은 요즘 분명한 상승세였다.
게다가 수많은 남돌의 공백기가 겹치자, 라이트온에 발을 담가보는 사람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어리지, 잘생겼지, 팬 사랑 지극한 것 같지.’
각종 요소를 충족해 낸 라이트온은 그들의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 축제는 프로그램 이후 첫 스케줄인 데다가, 교통편까지 좋아 지방임에도 팬들이 몰린 것이다.
* * *
축제장에 도착한 우리는 곧바로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대기하다가, 백스테이지로 이동했다.
“와, 오늘 조금 심장이 떨리는 것 같기도 하고~”
최승하의 말에 류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무대 하는 기분이야. 딱히 그런 것도 아닌데.”
“뭐, 뭔가! 경연이 아닌 무대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경쟁이 없는 무대……!”
차윤재의 말과 동시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제가 뭘 잘못 말한 겁니까?”
난데없이 조용해진 분위기에 차윤재가 조심스레 물어오자, 한수현이 고개를 저었다.
“공감돼서요.”
“……그, 그래?”
그 와중에 차윤재는 한수현이 본인의 의견에 동의해 준 것이 기꺼운지 입꼬리를 씰룩였다.
‘저 둘, 은근히 잘 맞는단 말이지.’
차윤재는 겨우 19살인 주제에 연장자다워야 한다는 생각이라도 있는지 행동은 저래도 한수현을 곧잘 챙긴다.
“자, 여기 물……!”
“감사합니다. 형도 드세요.”
이런 식으로 말이다.
나는 둘에게서 시선을 돌려 무대로 향하는 통로를 바라봤다.
‘많이 오셨으려나.’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아직 그럴 정도는 아니…….
“와아아아아아악!”
진행자가 다음 무대를 소개하는 소리와 함께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
나는 물음표를 띄운 채 무대 위로 발을 내디뎠다.
동시에 내 동공이 확장되는 게 느껴졌다.
‘……이만큼이나 오셨다고?’
나만 놀라운 게 아닌지, 다른 멤버들의 입이 조금씩 벌어졌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악!”
우리가 등장하자, 환호 소리는 더욱더 커졌다.
“오늘 저희가 선보일 곡은…….”
핸드 마이크를 잡은 내가 말문을 열자, 옆에서 불쑥 튀어나온 최승하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입니다!”
귀가 찢어질 것만 같은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보통 이런 지역 축제는 트로트 팬덤이 접수하는 경우가 많다.
‘이해성을 따라다니며 알게 됐지.’
트로트라는 장르의 팬덤은 상상보다 더 크고 단단하다.
‘행사마다 버스까지 대절해서 다니시지…….’
재력과 덕력의 콜라보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내 시야에 들어오는 건, 우리의 얼굴이 그려진 슬로건이나 야광 스틱을 들고있는 팬들이었다.
차윤재의 말대로다.
여태껏 등수가 매겨지는 무대를 준비하다가 이렇게 서니 기분이 묘하긴 하군.
곧이어 음악이 흘러나왔다.
* * *
“허어억, X발.”
근돌은 새된 비명을 지르며 카메라를 들었다.
그저 눈으로 감상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차차차차차착!
셔터를 눌러대면서도 근돌은 감격에 빠져들었다.
‘옷 개쩐다.’
전체적으로 제복 느낌이 나는 의상이었다.
무대 의상에 비하면 단촐한 편이지만, 오타쿠의 심장을 뛰게 하는 데엔 충분했다.
- 휘이익!
이 곡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 소리에 심장이 뛰었다.
하지만 고인물 홈마인 근돌은 입술을 꽉 깨물고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무대가 끝나 있었다.
‘그래도 꽤 잘 나왔다.’
바로 이전 무대에서 테스트 컷을 남발하며 설정값을 맞춰서 그런지, 결과물이 만족스러웠다.
무대 위의 멤버들은 숨을 고르며 곧바로 다른 무대를 준비했다.
‘그나저나, 할 만한 곡이 있나?’
착!차차차차차착!
근돌은 계속해서 셔터를 누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설마 는 아닐 테고, 할 곡이 있나으아아악 X발, 돌았어?’
안타깝게도 근돌의 생각은 이어지지 못했다.
생각지도 못한 멜로디가 귀를 강타했기 때문이다.
타이틀 곡이자, 앨범의 1번 트랙이었던 의 활동기엔 전혀 볼 생각도 하지 못했던 수록곡!
……앨범의 2번 트랙!
“이, 이, 이걸 한다고?”
근돌은 믿기지 않는 전주에 홀로 중얼거리며 눈을 부릅떴다.
보통 어느 정도 입지가 있으면, 음악방송 첫 주 타이틀 무대 전에 수록곡 무대를 넣어준다.
하지만 라이트온이 그 급이 되었겠는가!
지금이라면 몰라도, 당시엔 절대 불가능이었다.
그러므로 이건 정말 처음 보는 무대라는 뜻이다.
‘콘서트에서나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건, 이건, 영상으로 남겨야 한다!
근돌은 다급하게 카메라의 설정을 만져 녹화 버튼을 눌렀다.
데이터고 뭐고, 이 첫 무대를 영상으로 남기는 게 중요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캠셔틀 데려왔지!’
근돌은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가볍고 리드미컬한 베이스 위에 스킬풀한 건반 사운드가 매력적으로 얹어졌다.
처음 보는 대형이 세워졌고, 가장 센터에 서서 파트를 시작한 건, 이 그룹의 메인보컬이었다.
- A-ah A-ah
독특한 건반 사운드에 성해온의 보이스가 얹어지니 놀라울 정도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 Unfair, 아무리 봐도
이건 불공평한 Game
‘와, 목소리…….’
근돌은 속으로 감탄을 삼켰다.
……라이브가 저렇게 안정적일 수가 있나?
멜로디 자체가 독특하고 통통 튀는 건 음원을 질리도록 들었으니 당연히 알고 있었으나, 무대 구성이나 안무 자체가 상상했던 것보다 굉장히 파워풀하다.
‘……이건 무조건 콘서트다.’
콘서트 세트 리스트에 절대 안 빠질 것 같은 곡이라고 확신하며 근돌은 캠코더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손 떨면 안 돼……!’
무대 위 멤버들은 거의 날아다니고 있었다.
쉼 없이 연달아 하는 무대로 힘들 법도 한데, 그들의 얼굴은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대를 보는 이들까지 웃음 짓게 할 정도로.
‘……오길 잘했다.’
* * *
같은 시각, 라이트온 팬덤은 단체로 뒤집어졌다.
무대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 나 왜 안 갔냐고 아 아 아 아 아
- 와 tlqkf 제발 오늘 직캠 찍으신 분 있으시겠지
- 라이트온 안 되겠다 콘서트 해야겠다 질투나서 못 견디겠음 야수처럼 옷 뜯는 중
* * *
나는 무대 아래로 내려오자마자 물을 벌컥 들이켰다.
‘몸이 긴장했다.’
두 번째에 한 곡은, 처음 선보이는 것이라 아무래도 긴장했던 모양.
의 안무도 고난도지만, 도 만만치 않다.
심지어 모든 동작을 크게 쓰는 안무라 더 숨이 찬다.
폐부가 한계까지 커졌다가 작아지는 게 여실히 느껴질 정도로.
나는 몸에 둘린 음향 장비를 익숙하게 제거한 뒤, 스태프에게 건넸다.
“형님!”
마이크를 떼고 돌아온 차윤재가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재밌었습니다!”
“그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차윤재가 푸스스 웃었다.
약간 상기된 얼굴의 멤버들은 스태프가 건네준 물을 마셨다.
촬영을 준비할 당시, 누군가가 양심없이 를 가져갈 상황에 대비해서 안무를 준비했던 곡이다.
‘이 덕을 볼 줄이야.’
당시엔 욕을 짓씹으며 연습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구희승의 선견지명이었다.
‘이게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나 했어야겠지…….’
끔찍한 가정에 나는 고개를 휘휘저었다.
대표가 축제 섭외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을 당시, 그는 업체 측에서 요구한 2곡을 당연히 와 로 생각했다고.
하긴 그 곡을 최종적으로 컨펌한 게 대표일 텐데, 본인은 여전히 가 꽤 괜찮은 곡이라고 생각할 확률이 크다.
‘취향 참…….’
어느새 안색이 흐릿해진 나는 매니저의 인솔에 따라 바깥으로 나섰고, 당연하게도 인파가 몰려있었다.
퇴근길을 보러 온 팬들이었다.
차차차착! 착! 차차차착!
‘흠.’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플래시 세례 속, 나는 시선을 돌려 최승하와 류인을 응시했다.
‘이 둘만 집요하게 찍는 것 같은데.’
게다가 장비도 범상치 않다.
이해성을 따라다니며 장비에 대한 상식을 어느 정도 익혔는데, 저 정도면 엄청난 경력직이다.
“으음? 형 왜요?”
“해온아, 왜?”
“흠.”
나는 다시 시선을 바로 한 채 방긋 웃으며 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복화술에 가까운, 작은 목소리로 둘에게 속삭였다.
“저분, 너희 찍으신다.”
* * *
“……?”
근돌은 아리송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날, 쳐다본 건가…….’
꽤 망상병 환자 같은 발언이지만, 성해온과 눈이 제대로 마주쳤는데.
달칵!
프리뷰로 올릴 데이터를 확인하던 근돌이 흠, 소리를 냈다.
그나저나, 다급하게 올린 직캠의 프리뷰가 엄청난 속도로 퍼지고 있었다.
- GK 대협!! 믿고 있었습니다!!
- 유O브에 고화질 풀어주실 때까지 정권찌르기
- 4K 전체 풀캠이라니 벌써 심장이 뛴다
는 오늘이 첫 무대였던 만큼, 최차애의 동선을 알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풀캠으로 찍었다.
이게 레전드 직캠이 될 것이라는 미래를 알 리 없는 근돌은 아까 무심코 찍었던 성해온의 데이터를 넘겨봤다.
“잘 나오긴 엄청 잘 나왔네.”
성해온, 참 잘생기긴 했단 말이지.
초반에도 잘생겼다만, 뭔가 더 잘생겨진 것 같기도 하고.
“카메라 마사지, 뭐 그런 건가.”
‘인터넷 많이 하는 것 같아서 좀 그렇긴 한데.’
팬들의 니즈나 반응을 바로바로 캐치하는 것도 그렇고…….
“뭐랄까.”
지금도 반응 살펴보고 있을 것 같달까…….
* * *
정확하다.
다만 근돌이 모르는 게 있다면, 그에겐 목숨이 걸려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숙소에 들어온 성해온은 씹다 뱉은 껌과 다를 바 없는, 눅눅한 안색을 장착한 채 기력 없이 침대에 엎어졌다.
폭삭…….
이불의 솜이 꺼지는 소리와 함께 짤막한 정적이 흘렀다.
숙소로 돌아오는 밴에서 잠을 청하려 특성을 비활성화했는데, 그 여파인지 졸음이 미친 듯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 정적을 깬 건 시체와도 다를 바 없는, 잔뜩 갈라진 목소리였다.
“……하아아아.”
길게 한숨을 내쉰 나는 얼굴을 이불에 파묻은 채로 팔을 휘적거렸다.
스마트폰, 스마트폰…….
터업!
스마트폰이 드디어 손에 잡혔다.
‘이건 하고 자야지…….’
모니터링을 마친 나는 곧장 무거운 눈꺼풀을 감았다.
다음 날 무슨 일이 있을 줄도 모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