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137화 (137/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37화

‘내 팔자야…….’

나는 흐린 낯짝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사실대로 불자면, 저번에 의현과 맞닥뜨린 뒤 병원비를 입금하고 번호를 차단했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의문스러운 놈인 걸 둘째 치고, 원래 성해온을 잘 아는 것처럼 구는 게 불편하다.

……내가 꼭 이 몸을 뺏은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가.

한동안 잠잠하기에 역시 차단하길 잘했다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그러던 오늘 새벽, 처음 보는 번호로 이런 문자가 도착한 것이다.

[혹시 차단했어? 조금 서운한데.]

[말 놓는 거 싫어하지. 미안, 근데 정말 차단했어요?]

“쯧.”

왜 이렇게 나한텐 제정신 아닌 놈들만 꼬이는지 알 수 없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자네도 만만치 않으니 기죽지 말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진짜 열받는다.

장소가 적혀 있는 문자였는데, 고상하게 포장했지만 직역하자면 이거다.

‘내가 안 나오면 숙소로 친히 찾아와 주시겠다는 거지.’

숙소 앞에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데, 밀리어스 멤버 놈이 찾아온다?

얼마나 아득한 여론이 조성될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원래라면 오늘 숙소에서 하루 종일 누워 있을 참이었는데.

“……하아아아아.”

우거지상과 다를 바 없는 얼굴로 한숨을 길게 토해낸 나는 카페의 문을 열었다.

돈지랄을 하고 싶은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카페를 통으로 빌렸더라.

드르륵-

문을 열자, 드넓은 카페에 홀로 앉아 있는 인영이 보였다.

금빛에 가까울 정도로 밝은 밀색 머리칼, 아무래도 염색한 모양.

‘설마 컴백인가.’

밀리어스 정도의 체급을 자랑하는 그룹과 컴백이 겹치면 좋지 않은데.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의현이 나를 확인하자마자 손짓했다.

“왔어요? 앉아요. 아, 머리. 이건 투어 때문에.”

귀신같군.

“……예.”

자리에 앉기 무섭게 의현이 말을 이었다.

“컴백한다면서요.”

“그걸 어떻게.”

아직 소문이 날 단계는 아닐 텐데?

내 생각을 읽은 듯한 의현이 조용히 웃었다.

나는 그 낯짝을 살피며 결심했다.

‘과거 성해온과 무슨 사이였든 간에, 오늘은 꼭 온갖 정이 다 털리게 굴어주지.’

나는 몸을 의자에 삐딱하게 기댄 채, 안 그래도 싸가지 없어 보이는 눈깔을 더 부라렸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완벽하다며 감탄합니다!]

내 예의 없는 태도는 보이지 않는 것인지, 의현이 생긋 웃었다.

“새삼스럽네요. 이 바닥에서 정보야 돌고 도는 거 아니겠어요. 게다가 관심 있는 사람의 일이라면 더더욱.”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심드렁하게 앉아 있자, 놈이 눈을 곱게 접었다.

“저랑 이야기하기 싫어요?”

당연한 걸 묻는군…….

“으음, 이거 정말 서운한데.”

그렇게 말하며 코트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네모난 종이.

……명함?

자세히 보이지 않는 글자에 몸을 가까이 가져다 대자, 의현이 섭섭하다는 얼굴로 종이를 치웠다.

“서운하다고 했잖아요.”

역시 정신 나간 놈이 확실하다.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나를 훑듯 바라본 의현이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CF.”

“……!”

정신 나간 놈의 입에서 튀어나온 두 글자에 눈이 번뜩 뜨였다.

내면에서는 실시간으로 두 자아가 싸우고 있었다.

일단 이야기는 들어보자는 자아와 이 새끼 말은 들어선 안 된다는 자아가 격렬하게 부딪혔다.

그리고 승자는 후자였다.

“필요 없습니다.”

CF,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직 라이트온에게 들어오지 않은 것이라 무척이나 구미가 당긴다.

금전적인 면으로 당기는 게 아니라, 그룹의 이미지적인 면에서 말이다.

내 속내를 간파라도 하는 듯, 의현은 손에 턱을 괴더니 나를 조용히 응시하기 시작했다.

“남들은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건데.”

펄럭!

“진짜 필요 없어요?”

펄럭!

사정없이 귀가 펄럭거렸다.

차라리 듣지 말자.

‘CF는 언젠가 들어온다.’

솔직히 아깝긴 하다만, 여기서 말리면 안 된다.

나는 예의 없게 생긴 얼굴을 적극 활용하기로 마음먹고, 눈을 더 험악하게 떴다.

누군가 지금 내 낯짝을 본다면 대선배 앞에서 무슨 행태냐고 손가락질을 할 테지만, 정작 당사자는 내 태도가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전엔 미안해요.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서 그랬어요.”

“……?”

난데없이 사과를?

“있잖아요.”

“예.”

“이런 부탁, 황당할 거 아는데.”

의현이 답지 않게 입을 달싹였다.

“……음, 한 번만 웃어주면 안 될까요.”

사아아-

상상조차 못 했던 말에 내 눈이 동그래졌고, 공간에 정적이 휘몰아쳤다.

어떻게든 상황을 파악해 보려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맞은편에 앉은 의현이 작게 읊조렸다.

“……하하, 방금 말은 장난이에요. 잊어줘요.”

그러고는 평소와 같은,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사과는 진심이에요. 그리고 이거.”

슥-

의현이 내민 명함을 본 내 얼굴엔 놀라움이 물들었다.

“……!!”

가장 인지도 있는 교복 브랜드였다.

참고로 이 교복 브랜드는, 잘나간다는 아이돌들만 광고 모델로 쓴다는 것으로 아주 유명하다.

현재 라이트온에게 CF가 들어온대도 절대 이 급은 되지 않을 것이다.

“이성적인 사람이니까, 지금 고민되는 거죠? 내가 원하는 건 간단해요. 나랑 친구 해줘요. 가끔 밥 먹고, 얼굴 보고, 그런 친구요.”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몇 번 얼굴을 봐주고, 이 CF를 얻어내는 게 이득이다.

……대중들의 여론.

잘나가는 아이돌만 쓴다는 이 메이저한 CF를 우리가 하게 된다면, 대중들은 라이트온을 분명한 상승세.

즉, 라이징이라고 판단하게 된다.

‘객관적’인 지표라는 말이다.

하지만 내 속은 그렇지 않다.

정말 의현이 별다른 꿍꿍이 없이, 성해온을 좋게 생각하는 거래도 그렇다.

그건 그거대로 속이 불편해지니까.

남의 몸을 차지했다는 죄책감과 불안감, 이런 감정들은 정말이지 최악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 CF는…….

‘흠.’

저것만 찍고 쌩까는 건 어떨까.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의 양심을 지적합니다!]

당연히 장난이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거짓말 말라고 합니다!]

들켰군…….

심각한 얼굴로 명함을 바라보며 고뇌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지이이익-

짐짓 시무룩한 얼굴의 의현이 명함을 반으로 찢어버린 것이다.

“음, 분발할게요. 다음엔 더 좋아할 만한 걸 가져와야겠어.”

“…….”

고민하고 있었는데……!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뒷목을 부여잡습니다!]

나는 찢긴 명함으로 시선을 올렸다가, 이내 표정 관리를 위해 얼굴을 굳혔다.

……정신 차려야지.

나는 눈을 다시 불손하게 부라리며 입을 열었다.

“이런 걸로 그만 불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해온아.”

“말도 놓지 말아주셨으면 하고요.”

뭐, 둘이 이전에 무슨 사이였든 이 정도면 연을 끊고 싶어 한다는 걸 충분히 알아먹었을 거다.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그 순간, 의현이 뜨거운 커피가 담겨 있는 머그잔의 손잡이를 그러쥐었다.

‘설마 드라마에서나 나오던 그 장면?’

나온 지 조금 됐으니, 데일 정도로 뜨겁진 않겠지.

침을 꿀꺽 삼킨 나는 눈을 굴리며 입은 재킷을 움켜잡았다.

‘커피가 날아오면 바로 이걸 얼굴로 들어 올린다……!’

꽈아악-

재킷을 억세게 부여잡은 손이 민망할 정도로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기다려요. 이것만 마시고, 태워줄 테니까.”

“저도 발 있고, 알아서 갈 수 있습니다.”

내가 등을 돌리려던 순간이었다.

찰칵!

순식간에 팔을 들어 올려 자신과 내가 함께 나오는 셀카를 찍은 의현이 웃었다.

“오늘 즐거웠다고 SNS에 올려볼까 봐요.”

“…….”

순식간에 참회의 감정이 밀려들었다.

한수현이 매번 이런 기분이었을까…….

처억!

곧장 맞은편에 착석한 나는 입을 열었다.

“사진 먼저 삭제해 주세요.”

“다른 후배들은 나랑 말 한마디 섞고 싶어서 안달이던데, 후배님은 왜 이렇게 나를 싫어할까.”

“…….”

“그리고 아까 더 이상 부르지 말라고 했죠?”

“예.”

재빠르게 나온 내 대답에, 의현이 생긋 눈을 접어 웃었다.

“싫어요. 제가 왜요?”

미안하다, 한수현…….

순식간에 내 안광이 메말라갔다.

“누누이 말했잖아요. 도와주고 싶다고.”

“그러니까 왜요?”

“음, 말 안 할래요.”

“……?”

“말했잖아요. 내 생각을 많이 해줄수록, 나는 좋다고.”

별 또라이 같은…….

“자, 이제 갈까요? 그리고 그 눈빛은 아무리 저여도 조금 그렇네요. 제가 몹쓸 불한당도 아니고.”

샤샥…….

“음? 그건 왜.”

그걸 그새 보다니, 쓸데없이 눈만 좋군.

나는 혀를 짧게 차며 찢긴 명함을 주머니에 넣었다.

“쓰레기를 버리고 가시려고요?”

“아하하, 생각을 못 했네요. 고마워요.”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의 철면피에 찬사를 내뱉습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200골드를 후원합니다!]

* * *

“하아아아…….”

“뭘까?”

최승하의 진지한 물음에 차윤재가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모, 목소리 줄이십시오! 들리겠습니다!”

“하아아아아아…….”

살짝 열린 문틈으로 성해온의 한숨 소리가 연거푸 흘러나왔다.

거실에 모여 있던 멤버들은 죄다 의문스러운 얼굴로 문을 바라봤다.

“해온이 무슨 일 있었어?”

류인의 물음에 답한 건 한수현이었다.

“아침에 어디 나가는 것 같던데요.”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신유하가 짐짓 걱정스러운 눈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한편, 성해온은 찢긴 명함을 침대에 올려놓은 채 머리를 헝크러뜨렸다.

거절한 게 옳다는 생각은 아직도 변치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광고를 내 발로 찬 건…….

“하아아아아…….”

나는 손으로 메마른 얼굴을 쓸어내렸다.

도와주고 싶으면 밝히지 말고 익명으로 도와주든가.

서서히 그라데이션 분노가 일었다.

그럼 얼씨구나 하고 도움받았을 거 아니야.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눈을 부릅뜨며 기함합니다!]

왜 굳이 얼굴을 들이밀면서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거냐고.

망돌한테 자선사업 하려면 익명으로 하란 말이다.

입매 사이로 자꾸만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아…….”

후회해 봤자, 쓸데없다.

그래.

쓸데없다.

나는 명함을 손아귀 안에서 우그러트렸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벌써 외운 거 다 안다고 합니다!]

그래, 사실 명함 속 번호와 이메일까지 전부 외웠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낄낄댑니다!]

“하아아아아…….”

텅-

구긴 명함을 쓰레기통에 던진 나는 침대에 엎어져 원래 오늘 했어야 할 생각을 이어갔다.

우리의 다음 앨범은 무려 정규다.

첫 정규 앨범.

사측에서도 앨범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나가고 있다.

이 시점에서 생각해 봐야 할,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세계관.

“……흠.”

나는 침음성을 내뱉으며 생각에 잠겼다.

MV 속에도 세계관의 떡밥으로 보일 정도의 모멘트를 살짝 넣었었다.

‘정재진이 내 의견을 잘 반영해 줬지.’

하지만 이제 그 세계관에 살을 붙여야 할 때다.

착!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을 때쯤, 차가운 것이 볼에 닿았다.

“……!”

눈을 굴리니 보이는 건 최승하와 신유하였다.

“짠~ 배달로 커피 시켰어요. 형은 이거 맞죠?”

“……이것도, 맛있어요.”

신유하가 빵이 담긴 접시를 내밀었다.

“고맙다.”

“뭘요~ 애들이랑 거실에서 영화 볼 건데 형은 안 나와요?”

“생각할 게 있어서.”

“그럼 나갈게요! 내키면 나오세요?”

이내 문이 닫혔고, 다시금 정적이 찾아왔다.

사실상 아이돌 그룹의 세계관은 판타지적인 설정이 들어가는 게 대부분이라, 범위가 무궁무진하다.

타 그룹이 건들지 않은 세계관이면서도, 해석할 여지가 넘쳐 나는 것.

“흠.”

나는 눈을 감은 채 여러 그룹의 세계관을 떠올렸다.

이해성이 기억하고 있는 정보로 인해 수십 개의 세계관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이럴 땐 정말이지 유용하단 말이지.

그 순간, 수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드륵-

닫혔던 문이 열린 것이다.

그것도 아주 조금.

“……?”

“……여기, 더 드세요.”

개미와 다를 바 없는 작은 목소리와 함께 빵 접시가 들린 팔만 불쑥 들어왔다.

접시를 방 안으로 밀어 넣은 팔은 볼일이 끝났다는 듯 쑥 빠졌다.

그리고 문이 얌전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나는 그것을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이 깜찍한 야생동물은 뭐야?”

짜악!

입이 열림과 동시에 스스로 뺨을 내려친 나는 아연실색한 낯짝으로 허공을 바라봤다.

‘이해성……!’

분명 나는 그냥, 꼭 야생동물이라도 길들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생각하던 주제와 오타쿠 자아의 생각이 어느 정도 비슷하니, 말릴 틈도 없이 오타쿠 자아가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지.’

누구라도 있었으면, 이건 그냥 혀 깨물고 뒈지는 게 낫다.

“…….”

급격하게 현타가 몰려온 나는 마른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컴백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