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38화
“으음, 저 두피가 불에 타는 것 같아요.”
두 번째 탈색을 진행 중인 최승하가 작게 속닥거렸고, 나는 깊게 공감했다.
……내 두피도 만만치 않게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해성의 아이돌 데이터를 살펴봤을 때, 은발은 극악의 탈색 난이도를 자랑하는 컬러 중 하나다.
그 말이 사실인지, 벌써 탈색만 세 번째였다.
두피에 감각이 사라질 것만 같은 기분이로군.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하는데.’
-라고 생각하자마자, 다가온 샵 스태프가 내 머리칼을 살폈다.
“아이고, 색 제대로 내려면 탈색 한 번 더 해야겠다.”
“……예.”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인 내 낯짝이 빠른 속도로 흐려졌다.
나는 샵 내부를 빠르게 훑었다.
다른 녀석들은 간단한 커트 위주였기에 무척이나 한가했다.
“흠.”
이번에 머리 색이 확 바뀌는 건 나와 최승하뿐이라, 저 녀석만 주의를 시키면 된다.
알려져도 나쁠 건 없지만, 최대한 숨기는 게 좋겠지.
* * *
하지만 바람이 무색하게도, 라이트온의 컴백 소식은 SNS에 빠른 속도로 퍼지게 된다.
- 와 애들 컴백하나 봐 ㅅㅂ
- 돌았나 진짜야?! 미모가 저화질을 뚫고 나오네
- 승하 염색 새로 했어ㅜ 컴백 각이다 제발 정규 제발 정규
탈색과 염색을 감행한 멤버의 사진이 퍼진 것인데, 화질이 좋지 않았음에도-
“완전 저네요~”
그렇다.
누가 봐도 최승하였던 것이다.
내 옆으로 온 최승하가 상체를 숙여 스마트폰을 응시했다.
싱긋…….
내가 말없이 눈을 접어 웃자, 최승하가 변명을 시작했다.
“진짜 형 말대로 머리 안 보이게 모자 맨날 썼는데! 이날은 바람에 날려서 모자 고쳐 쓰려다가~!”
더 말을 이으려던 최승하의 시선이 내 시선과 맞물렸다.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는 내 낯짝을 마주한 최승하가 입을 합 다물더니 방긋 웃었다.
“헤헤, 미안합니다!”
심지어 이 녀석, 혼자 몰래 편의점 가다가 들킨 거다.
나는 연습실의 구석으로 자리를 옮겨 모니터링을 지속했다.
목격담의 일종인 사진이라, 팬덤에서 작게 갑론을박이 일었으나 전체적으로 들뜬 분위기였다.
머리칼 색의 변화는 컴백이 임박했다는 신호나 다름없으니까.
게다가 화제성을 얻은 이후로 처음 하는 컴백이라, 팬들의 기대감이 더욱 커 보였다.
내가 스크롤을 내리고 있을 때, 최승하의 근처에서 연습을 이어가던 한수현이 입을 열었다.
“형은 먹는 걸 너무 좋아해요.”
“어어? 근데, 난 먹는 것보다 수현이를 더 좋아하는데.”
“제발…….”
한수현의 낯이 순식간에 눅눅해졌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귀여운~ 수현이~”
헤실 웃으며 달라붙는 최승하를 애써 밀어낸 한수현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요, 평생 형 마음대로 생각하면서 사세요.”
그 말을 들은 최승하의 얼굴이 순식간에 심각해졌다.
“형, 이리 와봐요.”
“어?”
연습하고 있던 류인을 불러낸 최승하가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수현이가 저한테 프로포즈했거든요…….”
“수현이가?”
“요즘 청소년은 참 당돌해요. 갑자기 평생 같이 살자는 제안을 하다니.”
바들바들…….
다 들리는 속닥거림에 분노를 삭이려는 듯, 한수현이 입을 꾹 다물고 몸을 작게 떨었다.
“이거 아직 미래 계획은 안 세웠는데 말이죠.”
도저히 참지 못하겠는지 벌떡 일어난 한수현이 냉랭한 눈빛으로 최승하를 부라렸다.
‘그래봤자, 깜찍하지만-’
퍽!
순간적으로 스친 생각에 경악하며 주먹으로 허벅지를 내려친 나는 입안 여린 살을 깨물었다.
저번부터 느꼈지만, 요즘들어서 이해성의 사고회로가 제대로 제어되지 않는다.
방금도 입 밖으로 생각이 튀어나올 뻔했다는 뜻이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아쉬워합니다!]
“…….”
대체 아쉽긴 뭐가 아쉬워.
와중에 차윤재는 이 상황이 심각하게 재밌는지 몸을 들썩거리고 있었다.
어느새 낯빛이 나와 비슷해진 한수현은 한숨을 작게 내쉬더니 연습실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습실 문이 닫히기 무섭게 차윤재가 숨을 몰아쉬더니, 최승하를 바라보며 나무랐다.
“형님은 그, 놀리는 것 좀 적당히 하십시, 흐흡.”
웃음이나 거두도록 해라.
나는 익숙한 난장판을 뒤로하고 몰래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목적지는 이곳이었다.
드르륵-
해사하게 웃으며 인사하자, 밝은 얼굴의 명훈이가 어서 자리에 앉으라며 손짓했다.
“이거, 우리 해온이가 무슨 일이냐!”
안부 인사가 끝난 뒤, 나는 곧장 본론을 꺼냈다.
“대표님.”
“그래, 그래.”
“제안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한 것도 아닌데, 무엇인지 알겠다는 듯 대표가 낮게 헛기침했다.
그럴 만도 한 게, 이건 이미 정재진에게 은근슬쩍 흘려놨던 주제였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 그, 해온 씨가 일전에 요청하셨던 건은…….
- 진행이 힘들게 되었나요?
- 그렇습니다.
자세한 내막은 당연하게도 듣지 못했지만, 누가 봐도 윗선에서 컷된 뉘앙스였다.
“크흠, 쇼케이스라는 걸 말하려는 게 맞는 거지? ……그런데, 내 듣기론 그게 필수는 아니라던데.”
쇼케이스란 무엇인가.
새 음반을 팬들을 포함한 관계자들에게 보이는 행사다.
그룹의 창설을 알리는 데뷔 쇼케이스는 대부분 하는 추세고, 그 이후론 소속사의 선택 사항이지만 웬만하면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굵직한 컴백을 할 때마다 하는 편이다.
‘라이트온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지만.’
나는 가느스름한 눈으로 명훈이를 훑었다.
사실 이 인간은 굉장히 귀가 얇아서, 정재진이 제안하면 당연히 허락할 줄 알았다.
‘옆에서 바람을 부는 사람이 있는 모양인데…….’
나는 신뢰의 눈빛을 장착하고 입을 열었다.
“대표님도 아시겠지만, 이번에 저희의 공식 팬클럽 가입 수가 예상했던 수치의 배를 넘어섰다고 들었습니다.”
“크흠! 그렇지, 그렇지. 김명훈이가 아이돌까지 잘 키워낼 줄은 누가 알았겠느냐! 흐흐흠!”
약간 재수가 없지만, 오히려 줏대가 없는 데다가 귀까지 얇아서 내 의견대로 끌고 가기에 최고인 성격이랄까.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흐뭇하게 미소 짓습니다!]
나는 곧장 눈을 접어 맑게 웃었다.
“그리고 대표님의 말씀도 맞습니다. 말마따나 쇼케이스는 선택 사항이고, 그걸로 인해 명운이 뒤바뀌는 것도 아니니까요.”
“크흠, 역시 그렇지?”
“하지만, 하지 않을 이유도 없습니다.”
현재 라이트온의 상황은, 첫 쇼케이스를 선보이기에 최적기라고 할 수 있다.
굳이 돈을 지불하고 공식에 가입하는 이유는 혜택을 받기 위해서다.
그럼 그만한 돈값을 해야 하는 게 인지상정.
하지만 현재로선 딱히 할 만한 게 없다.
콘서트를 하기에도 곡 수가 터무니없이 모자란 상황.
쇼케이스를 건너뛴다면 공식 팬클럽에 가입한 팬들이 누릴 수 있는 건, 글쎄.
사전 녹화 정도려나.
그건 혜택이 되지 못한다.
비단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쇼케이스를 원하는 이유는 여럿 있다.
“대표님도 익히 아시겠지만, 쇼케이스엔 기자분들도 많이 참석하십니다.”
“……크흠! 그, 그렇지.”
척 보니 그것까지 생각하진 않았던 게 분명하다.
기사가 앨범 성적에 도움을 주진 않겠지만, 눈도장은 확실하게 찍을 수 있을 거다.
의 화제성이 아직 남아 있으니 참석하려는 기자들도 꽤 있을 테고.
데뷔 쇼케이스를 제외하고 가장 쇼케이스를 하기 적합한 때를 꼽으라면, 당연하게도 정규 앨범이다.
라이트온의 이번 앨범은 무려 첫 정규 앨범이고.
MH같이 아이돌 산업에 어두운 소속사가 아니라면 이견 없이 쇼케이스를 진행할 정도로, 가르키는 방향이 명확한 상황이다.
나는 조용히 한숨을 삼킨 뒤, 입을 열었다.
이제 이 생각들을 아이돌 쪽의 지식이 전무한 명훈이에게 풀어 설명하면 될 일이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을 안타까운 얼굴로 내려다봅니다!]
동정은 골드로.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100골드를 후원합니다!]
겨우?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씀씀이가 작은 한 성좌를 비웃습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100골드를 추가로 후원합니다!]
이제 마음껏 동정해도 괜찮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이를 갈며 당신을 안타까워합니다!]
명훈이도 쇼케이스에 대한 생각이 깊진 않았는지, 입을 약간 터니 금세 넘어왔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약간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아무튼.
대표이사실에서 나온 나는 바람을 쐬기 위해 옥상으로 향했다.
이제는 서늘하기까지 한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뭣보다 오늘에야 드디어 빚을 갚을 수 있게 됐다.
‘상태창.’
[성해온]
체력 B-
정신력 S+
비주얼 A-
노래 A
춤 B-
특성
▶[K팝 망령의 눈(A)]
▶[불면은 나의 힘(A)]
▶[……그런가?(B)]
진행 중인 미션
▶망돌의 그림자를 없애라!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보유 골드 3,000G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에게 큰 흥미를 보입니다!]
저번에 의식을 잃고 나서, 들려온 목소리는 아마 이 성좌의 것일 테다.
“흠.”
무언가를 거스르기까지 하면서 내게 소통을 청하고, 신유하의 과거까지 보여주며 도움을 준다라.
대체 왜?
그저 흥미라기엔, 과하다.
‘가져가세요.’
허공을 바라보며 속으로 되뇌자, 곧장 창이 떠올랐다.
[3,000G의 반환이 이루어집니다. 동의하십니까?]
[YES]◀
[YES]
선택할 수도 없으면서 선택지를 둔 게 열받는다.
[YES]를 누르자, 곧장 메시지가 떠올랐다.
[골드의 반환이 성공적으로 완료되었습니다!]
나는 다시금 상태창을 살폈다.
순식간에 사라진 골드에 허망한 심정마저 몰려들어 왔다.
굳이 따지자면, 내가 손해 본 건 없다.
미션 성공 보상으로 신유하에게 쓴 골드보다 더 값비싼 걸 받았으니까.
하지만 입맛이 쓴 건 어쩔 수 없군.
읊조리듯 골드라는 단어를 내뱉은 순간이었다.
“골드……?”
“……!”
난데없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상체를 돌렸다.
휘익!
시선을 돌리자, 옥상 구석탱이에 위치한 벤치에 앉아 있는 신유하가 반갑다는 얼굴로 작게 손을 흔들었다.
대체 언제부터 있었던 건데.
“……여기 앉아라.”
벤치 옆을 툭툭 치자, 녀석이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다가왔다.
“그, 골드라는, 게…….”
내가 중얼거리는 걸 들은 모양인지 신유하가 집요하게 물어왔다.
“아, 그냥 게임 얘기야.”
대충 둘러대자, 신유하가 일순간 눈을 빛냈다.
“제가 선물……! 선물을, 해-”
나는 신유하의 말허리를 잘랐다.
“필요 없다.”
“……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신유하의 얼굴이 급속도로 암울해졌다.
‘무슨 말을 못 하겠군.’
이 녀석, 아무래도 내가 도와준 일로 마음속에 부채감이 있는 모양이다.
이전부터 계속 틈만 나면 사람을 힐끔거리며 뭔가 해주려고 하니까.
“카메라 앞에서 친한 척이나 해. 그게 도와주는 거다.”
“……저, 이미, 친한.”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면서?”
내 말에 신유하가 잔뜩 억울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가 사람 눈을, 원래 제대로 못 봐서 그렇지, 안 무서워, 해요. 이제 좋아하는……!”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장난이었다.”
얼굴을 푹 숙인 채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는 신유하의 귀가 살짝 불그스름해져 있었다.
쯧쯧, 이렇게 소심해서야.
나는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신유하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이제 연습실로 돌아갈까.”
“네, 네!”
그렇게 말하며 스마트폰을 꺼내 든 순간, 보이는 화면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
[BEST!][2위] 요즘 언급이 많은 아이돌 멤버의 과거를 용기 내 폭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