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139화 (139/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39화

방금 올라온 글인데도 불구하고, 댓글이 백 단위로 쌓이고 있었다.

나는 차분하게 내용을 살폈다.

저는 한수현과 같은 중학교를 나왔습니다.

(졸업 앨범 사진)

(수학여행 단체 사진)

사실 묻으려고 했습니다.

밝힐 용기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유명 프로그램에 나오고, TV나 SNS 등에서 그 친구를 마주칠 때마다 심적으로 괴로웠습니다.

.

.

.

글쓴이는 한수현이 방관자였다고 비난하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일진들과 어울리며, 직접적으로 괴롭히진 않았지만 지시를 내렸다고.

나는 느릿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한수현이?’

내가 아는 그놈은 그런 부류와 어울릴 놈이 아닐뿐더러, 영양가도 없는 우두머리 노릇을 하며 괴롭힘을 주도할 놈은 더더욱 아닌데.

게다가 글에 첨부된 건 졸업 앨범 사진과 수학여행 단체 사진뿐, 명백한 증거가 없다.

나는 곧장 댓글 반응을 살폈다.

- 와 진짜 이런 놈들이 제일 악질입니다. 용기 내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세상엔 인과응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힘내세요.

- 라이트온 언젠가 터질 줄 알았다 ㅋㅋ

- 힘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용기 내주셔서 감사해요.

- 인증도 저것밖에 없는데 이걸 믿음? 진짜 인간들 지능 처참하다 처참해

댓글에서도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흠.”

이건 당사자에게 물어봐야 하는 문제다.

드륵-

연습실 문을 열자, 평소와 같은 분위기로 연습을 이어가고 있는 멤버들이 보였다.

SNS를 잘하지 않는 녀석들인 데다가, 올라온 지도 얼마 안 된 글이라 아직까지 사태를 모르는 모양.

나는 곧장 한수현을 연습실 바깥으로 불러냈다.

“……?”

한수현이 의문 섞인 얼굴로 내 뒤를 쫓아왔다.

사람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복도로 한수현을 이끈 나는 몸을 빙글 돌려 눈을 마주쳤다.

“조용한 데서 이야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사아아아-

화면이 켜진 스마트폰을 건네자, 한수현의 얼굴이 급속도로 굳었다.

“이게, 무슨…….”

나는 녀석이 글을 읽고 상황 판단을 할 때까지 기다려 줄 작정이었는데, 스크롤을 다 내리지도 않은 한수현이 스마트폰을 돌려줬다.

“제가.”

잠시 숨을 삼킨 녀석이 말을 이었다.

“해결할게요.”

그렇게 말하고는, 사라졌다.

정말 말릴 틈도 없이 말이다.

“음.”

나는 순식간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진 인영을 멀뚱히 바라봤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왜 따라 나가지 않는 거냐 묻습니다.]

그야, 저 녀석이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으니까?

나도 멘탈이 터져봐서 아는데, 저럴 땐 잠깐 혼자 둬야 한다.

지금 가서 캐물어봤자, 나오는 건 없을 테니까.

게다가 아까 그 글을 보던 한수현의 얼굴.

숨겨왔던 비밀을 들킨 얼굴이 아니었다.

한수현 같은 놈이 학폭?

이건 철저한 캐붕이다.

그렇게 이성적이고 영리한 녀석이 본인 앞길 가로막는 일을 할 리가.

설령 연예계 생각이 없었을 때여도 그렇다.

다가오는 사람이 일진이든 모범생이든 그냥 다 쳐냈을 것 같은 놈인데.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이 어딜 가는 건지 궁금해합니다.]

“미행.”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뒷목을 부여잡습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을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다급하게 뛰쳐나가는 녀석을 굳이 잡진 않았다.

말했듯 멘탈이 터진 직후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그럼에도 망돌의 그림자가 있는 녀석을 혼자 두는 건 불안하달까.

‘이럴 땐 역시 몰래 따라가야지.’

휙! 휘익!

건물 밖으로 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저 멀리 갈색 뒤통수가 보였다.

‘걸음도 빠르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빠르게 걸음을 옮기던 한수현이 멈칫하더니, 그 자리에 주저앉은 것이다.

* * *

건물을 나서자마자 찾아온, 익숙한 과호흡에 한수현이 두 손을 모아 입에 가져다 댔다.

심장이 고장 난 듯 널뛰고, 몸이 떨려왔다.

“……하, 으.”

진정해.

이럴 때가 아니야.

눈을 감은 한수현이 어렵사리 숨을 토해냈다.

외투 속 스마트폰이 울린 것도 그 순간이었다.

저장조차 되지 않았지만, 눈 감고도 외울 수 있는 번호.

- 아빠! 저 오늘 시험에서 2등 했어요. 선생님들이 칭찬해 주셨……!

기억이라는 게 존재하는 순간부터, 자신은 아버지에게 따뜻한 눈빛을 받아본 적이 없다.

항상 한심하다는 눈빛뿐.

- ……다음번엔 꼭, 1등을 할게요!

한때 가장 존경했고, 그에게 인정받기 위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목을 맸다.

나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는 데에 말이다.

……그게 부질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가 언제였더라.

아마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성적을 가져왔던 날이었던 것 같다.

- 내 피도 안 섞인 네 형은 진작 해낸 것을, 뭘 자랑이라고.

그 순간, 깨달아 버렸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것엔 닿지 않을 것이라는 걸.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아 버렸다.

그 후로는 감정이 사라져 버린 것처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그 무엇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냥 자다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는 것 같다.

- 소속사에서 보내준 영상 확인했다. 네 어미를 닮아서 그런지 연기엔 통 재능이 없는 모양이구나. 내보이기 여간 부끄러운 게 아니야. 조금 더 정진하도록 해라.

- 아버지, 수현이는 아직 어린데 그런 말은 너무 심한……!

- 괜찮아요. 뭐, 새롭지도 않은데.

그날따라, 유독 숨이 막혔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말들인데, 그날따라 유독.

이대로 있으면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아서 바깥으로 나가 무작정 걸었다.

……그리고 마주쳤다.

- 와아아아아아!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밴드를 둘러싼 인영들이 환호를 보냈다.

저 사람들은 그저 공연을 할 뿐인데, 그 수많은 사람들이 눈을 반짝였다.

……그걸 보는데, 심장이 마구잡이로 뛰었다.

한건영.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유명인사.

대외적으로는 연기 업계를 이끌어가며, 후배들과 새싹들에게 아낌없이 지원해 주는 그런 인간.

아니, 대외적이 아니라 그런 사람일 수도 있겠다.

그가 박한 건, 오직 자신뿐이니까.

완벽한 커리어에 흠집을 낸 여자의 아들이자, 쓸모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자신은 평생 그의 수치이자 걸림돌이었다.

- 이번에 괜찮은 배역이 들어왔다. 이제 너도 슬슬 데뷔할 나이가…….

이전이었다면, 황송해하며 고개를 끄덕였을 거다.

드디어 인정을 받았다며 기뻐했을지도 모르지.

원래의 자신이었다면 말이다.

- 아니요. 안 합니다. 연기 같은 거 지루해서 하기 싫어졌거든요.

처음으로 꺼낸 의견, 그는 또 한심하다는 얼굴을 했다.

무작정 짐을 챙겨, 집을 나오려고 한 날이었다.

어김없이 뺨이 돌아갔다.

- 지원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없는 자식인 셈 치세요. 이제 때릴 만한 게 없어서 아쉬우실 수도 있겠네요.

- 말문이 막히는구나. 그건 다 자식 교육의 일환이다. 네 버릇이 없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부모 면전에서 이딴 말을!

교육이라.

아버지에게 처음 맞은 날은 정확히 6살 무렵이었다.

이유는 집에 온 아버지의 손님의 아들에게 장난감을 내어주지 않았다고.

욕심을 부렸다고, 맞았다.

참고로 그건 6살 생일 선물로 받은 거였다.

아버지에게 말이다.

물론 아버지의 매니저가 골랐겠지만, 그래도 그땐 그게 소중했다.

결국 그 장난감을 탐낸 아이에게 뺏겼지만.

- 네 성격이 언제 이렇게 망가졌는지! 되도 않는 시위 그만하고, 방에 들어가서 자숙하도록 해라.

- 성격이요?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던데, 그래서 이런가 봐요. 저는 지금도 죽고 싶거든요. 평범하기 그지없는 제 자신이 너무 혐오스러워서요.

- 언제나 높은 곳을 갈망하는 건……!

- 네, 좋은 마인드죠. 제가 나약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세요.

평생 거스른 적 없는 사람에게 반기를 들었다.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뛰고, 손이 잘게 떨리는데.

기뻤다.

……아주 오랜만에 자신이 존재한다고 느꼈었다.

- 저는 어머니 집으로 갈 테니, 막을 생각은 마세요. 아버지가 그렇게 목숨 거시는 이미지 제가 망쳐놓기 전에.

- 이 녀석이 보자 보자 하니까 정도를 모르는구나……!

- 그 유명한 한건영 자식 농사가 흉작이다라는 기사, 나오면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 네가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 제가 나중에 뭐가 되든, 감히 아버지의 이름 한 자 내뱉지 않을 테니 안심하세요. 완벽한 한건영은 영원할 테니까요. 눈에 차지 않는 못난 자식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단 뜻이에요, 아버지.

한수현은 호흡을 정돈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딴 생각이나 할 때가 아니야.”

뚝-

조용히 읊조린 한수현은 계속해서 걸려오는 전화를 연거푸 거절하며, 택시에 올라탔다.

* * *

한수현이 택시를 타자마자, 나도 허겁지겁 뒤에서 오는 택시를 붙잡았다.

“기사님, 저 택시 따라가 주세요.”

나는 앞의 택시를 가리키며, 번호판을 불렀다.

떨떠름한 낯의 기사가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흘겼고, 나는 살며시 시선을 피했다.

음, 이거 양심이 조금…….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그건 원래 없었다고 합니다!]

“…….”

나는 흐릿한 눈으로 메시지를 무시한 채,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수현이 탄 택시가 멈춘 곳은, 엄청난 규모의 저택 앞이었다.

“……?”

나는 눈에 띄지 않도록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곳에서 내렸다.

갈색 뒤통수는 망설임 없이 한 저택의 벨을 눌렀고, 얼마 안 가 중년의 여성이 달려 나왔다.

샤샤샥!

나는 재빠르게 기둥에 숨어 그 모습을 지켜봤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거품을 뭅니다!]

“아이고! 세상에!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와요!”

반가운 얼굴로 한수현을 맞은 여자가 녀석의 손을 맞잡았다.

“전화로 말한 게 이거 맞죠? 여기 챙겨놨어요. 온다고 해서 좋아하는 걸로 밥도 차려놨으니까, 먹고 가요! 반찬도 싸 가고!”

대화 정황상, 여기가 한수현네 집 같은데.

사실 지금까지 녀석의 집안 사정이 좋지 못한 줄 알았다.

옷도 저가의 것만 입고, 연습실에서 사용하는 신발도 낡아서 해진 걸 계속 쓰니까.

최승하 같은 놈이 은근슬쩍 선물을 주 려하는 것도 여러 번 목격했으나, 한수현 성격상 당연하게도 전부 거절이었다.

사인회에서 팬에게 선물로 받은 운동화는 신기도 아까운지, 꺼내놓지도 않더라.

“흠.”

나는 의문을 걸친 채 고개를 기울였다.

눈앞의 한수현은 작게 웃으며 중년의 여자에게 쇼핑백을 받아 들었다.

“이모님, 제가 급하게 온 거라 얼른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이거 찾아놔 주셔서 감사해요.”

“차는, 차는 뭐 타고 가요!”

“여기, 택시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수현이 탄 택시는 금세 떠났고, 나 역시 곧장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상황은, 정말 예상하지도 못한 국면으로 흘러가게 된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