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43화
“…….”
지금 시각은 새벽 3시.
왜 이 시간에 일어났냐 묻는다면, 오늘은 숙소 이전 날이기 때문이다.
컴백이 코앞이라 정신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을 이사 업체가 맡아주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가 옷가지 정도는 싸둬야 하지 않겠는가.
근데 지금 이건 뭘까.
왜 여기 있는 거냐고. 그것도 이 시간에.
껌뻑.
껌뻑.
무거운 눈꺼풀을 껌뻑이며 시야를 정돈했지만, 보이는 건 그대로였다.
“아, 깨셨어요.”
옅은 플래시를 켜고 내 옷장 앞에 앉아 있던 한수현은 고개를 천천히 돌리더니 나와 눈을 마주쳤다.
“해온 형, 짐은 싸놨으니까 더 주무셔도 돼요. 이쪽은 상의, 이쪽은 하의, 구김 가는 재질은 따로 빼놨고 겉옷은 이렇게 넣어놨어요. 아 속옷은 여기에, 읍.”
한수현의 입을 틀어막은 나는 눈을 부릅떴다.
“네가, 왜 내 짐까지 싸.”
“……가족끼리 뭘요.”
지금 설마 수줍어하는 건가.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흥미로워합니다!]
딱딱한 말투는 그대로다.
그대론데…….
“아, 물 한 컵 가져다 드릴까요. 목마르실 텐데.”
“아니, 아니.”
나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 건 내가 해도 돼.”
“가족이잖아요, 저희는.”
“그래, 가족인데.”
“……? 가족끼리는 원래 이렇게 하는 거예요.”
곧장 주방에서 물을 가져온 한수현이 무표정으로 내밀었다.
“안 드세요?”
물을 받아 마신 나는 한수현을 가느스름한 눈으로 살폈다.
다른 멤버들에게도 유해지긴 했다만, 뭔가 나한테 더…….
“해온 형 말이 맞아요.”
다소 뜬금없는 말에 내가 물음표를 띄우자, 한수현이 말을 이었다.
“……조금 닮은 것 같아요.”
“허, 쿨럭, 큽, 쿨럭!”
갑작스러운 발언에 목구멍으로 넘어가던 물이 역류했다.
- 맞아, 이건 거짓말이다. 형인 나를 닮아 눈치가 빠르군.
- 자, 형이라고 불러봐.
- 내 동생.
물론 한수현의 그림자를 소멸시키려 내 입으로 직접 말했던 거지만……!
“괜찮아요?”
돌겠네.
거실로 나가자, 방금 일어났는지 부스스한 얼굴의 멤버들이 눈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아, 형님! 일어나셨습니까! 다, 다름이 아니라 눈을 떠보니 저희 짐이 전부 이렇게……!”
나는 차윤재의 손짓에 따라 시선을 옮겼다.
샤라라-
“……?”
이렇게 완벽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각자의 짐이 일렬종대로 거실에 세워져 있었다.
박스 겉면엔 짐의 주인과 안에 담긴 품목까지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대체 누가 이런 행동을…….”
“……우렁각시?”
중얼거리는 차윤재의 옆에서 류인이 읊조렸다.
나는 시선을 돌려 한수현을 응시했다.
“…….”
이 녀석, 고개를 살짝 돌린 채로 자신이 했다는 것도 밝히지 않고 있다.
심지어 무표정인 얼굴에서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눈치채지도 못할 만큼 미세하게 올라간 입꼬리.
‘……뿌듯해하고 있어?’
도저히 납득가지 않는 상황에 나는 이마를 짚으며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한수현 덕에 짐을 쌀 필요가 없어졌으니, 이거나 생각해야지.
[교주의 아우라(S)]
어제 밤새 특성을 살펴봤다만, 자세한 설명이 쓰여 있지 않아서 어떤 특성인지 추측조차 힘들다.
처음엔 신도가 주변 인물일까, 추측했다만 그것도 아닌 것 같고.
다음으로 예상하고 있는 건 팬.
당장은 팬들을 만날 일이 없지만, 컴백이 곧이니 머지않아 알 수 있겠지.
그리고 하나 알아낸 게 있다.
특성 밑을 자세히 살펴보니 H와 P라는 알파벳이 작게 적혀 있다.
H는 아마, 히든 특성일 거다.
원래라면 몰랐겠지만, [K-pop 망령의 눈(A)]에도 이 표시가 있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그때도 조건을 충족하고 나서야, 히든 특성이 발동되었으니 이 특성도 무슨 조건이 있는 거겠지.
P는 예상이 안 간다.
여태껏 본 적이 없는 것인 데다가, 골드나 상점 같은 시스템이 게임과 유사하다는 걸 생각하면, 당장 떠오르는 건.
“포인트?”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그건 ■■■■]
[시스템 오류!]
[일시적으로 연결이 종료됩니다.]
[밤새 시말서를 쓴 시스템이 분노합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이 정도는 알려줘도 되는 거 아니냐며 툴툴댑니다!]
“……?”
나는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보며 고개를 좌로 기울였다가 이내 털어냈다.
알려주지도 않을 거, 궁금해하지도 말아야지.
스마트폰을 켜 캘린더를 확인한 나는 흠, 소리를 냈다.
오늘이 공개 날인데, 반응이 좋았으면 좋겠군.
* * *
“돌았나.”
밥을 먹고 있었던 곽덕배가 아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LIGHT ON ⓥ
LIGHT ON ‘Flame’ Official Teaser
(캠코더 이모티콘) youtobe/SbOGDnkSD……
첫 정규 앨범의 티저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심호흡하고 셋 세면 누르는 거다?”
곽덕배는 링크를 누르지도 못한 채, 혼잣말로 날뛰는 심장을 컨트롤했다.
“하나, 둘, 세, 세, 셋, X발.”
결연한 얼굴로 링크를 누른 곽덕배의 얼굴은 티저의 초입을 보자마자 순식간에 아연해졌다.
어두운 공간, 아주 미약하고 어슴푸레한 빛이 인영을 비춘다.
얼굴의 윤곽과 대강의 생김새만이 보일 뿐이었지만, 팬들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최승하!’
무표정으로 손을 내려다보던 최승하를 조명하던 카메라는, 갑작스레 그의 눈을 클로즈업으로 비춘다.
“미, 미, 미쳤나.”
티저와 오버랩되는 구도.
그때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호박색 보석 같은 눈동자였다면, 지금은…….
더없이 무료하고, 텅 빈 눈동자.
그 순간이었다.
최승하의 시야에, 그러니까 최승하의 눈동자 안에!
화르륵-
불길이 치솟은 것이다……!
그와 동시에 어두운색이었던 최승하의 머리칼이 끝자락부터 타오른다.
고퀄리티 CG가 접목되어, 전혀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지 않는 모양새였다.
벌써부터 돈 냄새가 진동하는 티저에 감탄하고 있을 무렵, 곽덕배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미친 오타쿠 같은 새끼들…….”
타오름과 동시에 어두운색의 머리칼이 붉게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을 보여주자마자, 화면이 뒤바뀐다.
이번엔 사방이 모두 불에 타버린 듯한, 잔해만 남은 광경이었다.
아무런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아니, 존재하지 못할 것 같은.
지독하리만큼 외로운 곳이었다.
지직, 지지직-
동시에 화면에 노이즈가 생기기 시작했다.
약간의 글리치한 사운드가 섞이며, 타이틀곡으로 추정되는 멜로디가 작게 뒤섞였다.
그리고 이내 지직거리던 화면에 암전이 찾아왔다.
……끝인 줄 알았으나, 칠흑의 화면에 타이핑이 시작되며 타건 소리가 더해졌다.
여기저기 해져 있는 모양새의 두꺼운 고딕체.
누군가에게 전해야 하는 중요한 메시지인지, 글자는 계속해서 쓰여지고, 또 지워진다.
이 메시지를 쓰는 사람조차 이것을 단번에 정의하기 어렵다는 듯이.
몇 번이고 지워졌고, 또 새로운 글자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최종적으로 남겨진 문장은.
[E, began to wake up.]
……탁.
마지막 타이핑 소리와 함께 티저 영상이 종료됐다.
“…….”
모든 영상이 끝난, 스마트폰의 검은 화면엔 경악스러운 얼굴의 곽덕배만이 비쳤다.
* * *
“흠.”
나는 연습실에서 공개된 티저의 반응을 살폈다.
솔직히 티저에 나온 최승하조차 눈 클로즈업과 머리칼 정도만 짧게 출연했다.
대부분이 인물 없는 배경만 비추며 새겨지는 타이핑이었을 뿐.
그래서 걱정이 컸는데, 생각보다 티저의 퀄리티가 좋았고 반응도 뜨겁다.
- 돌았다 Flame
- 뮤비 나올 때까지 정권 찌르기
- 우리 그이 슬쩍 나온 빨머 개찰떡인데
- 진짜 이번엔 약간 섹시인가? 노래 분위기가 그런데 tlqkf 괴롭다 이 노래를 바로 들을 수 없다는 잔혹한 사실에
- 그나저나 세계관 이게 무슨 일임?!?! 티저에서부터 돈 냄새가 너무 너무인데
정규라는 기대감과 티저에서 나온 거대한 세계관 떡밥에 모두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티저 영상은 CG가 굉장히 중요했는데, 값비싼 외주를 맡겼다더니 제대로였다.
이 팀이 뮤직비디오 CG도 맡아주기로 했다는데, 굉장히 기대되는 부분이다.
요즘 정재진이 턱까지 다크서클을 매달고 다니던데, 고생했겠군.
최대한 어그로를 끌어야 하는 이번 앨범 특성상, 이전 앨범처럼 티저가 공개되고 얼마 안 가 곧장 뮤직비디오와 음원이 공개되며 컴백하는 일정이 아니다.
자본을 쏟아 넣어 프로모션을 진행하면서 대중들의 기대감을 쓸어 모으는 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컴백 일정 자체가 굉장히 타이트했기에, 이 티저 영상도 굉장히 급박하게 촬영했었다.
‘일주일 전이었나.’
온갖 사람들이 갈려 나갔을 꼴이 훤하게 보이는군.
갑작스럽게 공개된 티저에 팬덤이 떠들썩할 무렵, 라이트온의 공식 계정에 무언가가 올라온다.
바로 스케줄이 담긴 디자인 포스터가 공개된 것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화젯거리는 역시 이것이었다.
스케줄 포스터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SHOWCASE]라는 단어에 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 ㅇㅇ 죽어도 가줄게
- 쇼케이스 너무 좋아서 브레이크댄스 춤 ㅁㅊ 절대로 간다
- 쇼케이스 예판으로 줄세우기 하려나?
요즘 쇼케이스는 대부분, 예판 기간 내 앨범을 구매하는 팬들 중 일부에게 입장권을 준다.
라이트온도 물론, 이후로는 그렇게 진행하게 될 가능성이 클 거다.
앨범 구매 화력에 불을 붙이는 거니까.
- 네 말은, 크흠. 그러니까 팬클럽을 대상으로 진행하자?
- 예, 현재 팬들에게 저희 기획사의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명훈이에겐 이렇게 입을 털었지만, 팬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티켓 예매로 진행되는 쇼케이스는 가격대가 대부분 저렴하다.
그런데다가 쇼케이스가 진행되는 홀 자체의 수용 인원이 적기 때문에, 받아봤자 금전적인 도움은 크게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걸 무료로 돌려서 MH의 이미지가 회복된다면, 사측 입장에서도 이득이지.
정재진도 내 의견에 힘을 실어줬고, 결국 명훈이도 허락했다.
- 나 공식 가입 놓쳤는데 제발 싹싹 빌 테니까 한 번만 더 열어주시면 안 될까요
- 아니 진짜 미쳤냐고ㅠㅠㅠ 명훈이 노망 왔냐고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심지어 전석 무료 돌았어? 진짜 라이트온 해서 너무 행복하다
나는 스크롤을 내리며 안도를 삼켰다.
‘좋아하셔서 다행이군.’
나는 고개를 들어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7시 30분.
원래 요즘은 거의 새벽까지 연습실에 남아서 연습을 하지만, 오늘은 새로운 숙소에 가봐야 한다.
짐을 얼추 싸두고 연습실로 출근했으니, 지금쯤이면 아마 전부 옮겨져 있을 거다.
아침 일찍 연습실로 넘어온 멤버들도 이사가 설레는지 하루 종일 새 숙소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형님! 오늘따라 연습에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거울 앞에서 본인의 파트를 연습하던 차윤재가 상체를 휙 돌리자, 신유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도 뭔가, 조금 기대되나 봐…….”
드르륵!
그 순간, 연습실 문이 열렸고 최승하가 비닐을 달랑달랑 흔들며 들어왔다.
“제가 뭘 사 왔게요~”
“정답, 과자.”
“아이스크림.”
“컵라면.”
“샌드위치?”
멤버들에게서 대답이 튀어나오자 최승하가 고개를 저었다.
“누굴 돼지로 알아요!”
“맞는데…….”
신유하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중얼거리자, 그 옆에 선 류인이 웃었다.
“다들 너무하네! 이건~ 바로바로, 파스입니다~ 붙이는 거 뿌리는 거 바르는 거 종류별로 사 왔답니다! 센스 짱이죠.”
“아, 마침 연습실에 파스가 떨어졌었는데 그걸 사러 갔다 오신 겁니까!”
“여기 바로 앞에 약국 있으니까, 잠깐 바람 쐴 겸 갔다 왔지~”
“어디 결려? 해줄게.”
류인이 파스를 뒤적거리며 묻자, 최승하가 헤실 웃었다.
“아~ 발목이라 제가 할 수 있어요. 아까 연습하다가 발목을 조금 접질린 것 같아 가지고.”
휙! 휙! 휙!
최승하의 말과 동시에 연습실에 있던 모든 시선이 집중됐다.
물론 그중에 가장 경악한 건 바로 나였다.
후다닥 최승하에게 달려간 나는 놈의 바지 자락을 올렸다.
“앗! 왜 제 옷을! 변태!”
“조용히 좀 해.”
최승하를 노려본 나는 녀석의 발목을 휘어잡았다.
“……으음~ 아야.”
눈을 반달로 휘어 접은 녀석이 연습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누르니까 아파요, 형.”
“당연히 아프지, 장난하냐? 이걸 병원을 왜 안 가. 겨우 파스로 하려고 들지 말고, 당장 병원부터 가.”
곧 컴백인데, 아무리 사소한 부상이어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
“흐음.”
평소 같았으면, 자신을 이렇게 걱정하는 거냐며 실컷 능글거릴 놈의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
“이상하다.”
나를 빠르게 훑은 최승하가 눈만 웃고 있는 채로 말을 이었다.
“자기 몸은 누구보다 안 챙기면서, 왜 이렇게 나를 걱정해요?”
그러고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시선을 마주했다.
“있잖아, 형은 말이에요. 너무 자길 안 챙겨. 꼭, 어떻게 돼도 상관없는 사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