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46화
“오늘 이게 무슨 일이에요? 바닥이 미끄럽지도 않은데.”
최승하가 작게 중얼거리자, 멤버들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무슨 일이지.”
“보, 보기만 해도 아픕니다! 형님들도 오늘 조심하십시오!”
“윤재도, 조심해……!”
“예!”
물론 가장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건 나였다.
“큰일이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의 완벽한 연기에 감탄합니다!]
멤버들과 감독에게 다가간 나는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
참고로 내가 가장 먼저 넘어뜨린 게 이 새끼다.
아니, 정정하자면 의자 다리를 부러뜨렸다.
감독이 눈을 굴려 이쪽을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요. 나도 잘 부탁합니다.”
촬영 당시에 우리의 모든 인사를 무시했던 거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이런 부류는 강약약강의 표본이기에, 이렇게 태도가 변했다는 건 나름 인지도가 생겼다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 * *
의상을 입고 메이크업까지 마친 뒤, 밖으로 나오자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몸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는 걸 말이다.
지금도 바람이 불 때마다 한기가 스며드는 느낌이다.
쌀쌀하긴 해도, 이 정도의 추위를 느낄 정도의 날씨는 아닌데 말이다.
‘아무래도 몸이 허한가 본데.’
요즘 연습량이 늘다 보니, [불면은 나의 힘(A)] 특성을 많이 사용하긴 했다.
잠이 줄어서 그런 것 같다는 합리적인 결론에 고개를 작게 주억거리며 속으로 결심했다.
‘오늘은 좀 푹 자야겠군.’
기력이 제로에 수렴하는 건 나뿐인지,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날뛰고 있었다.
“유하 형님, 이것 좀 보십시오! 신기합니다!”
“응……!”
심지어 체력 없기로 치면 나와 양대 산맥을 겨루던 신유하조차 신나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게~ 신기한 거 진짜 많다. 하핫, 우와. 이건 뭐지?”
공중에 설치된 쇠막대를 잡은 최승하가 단숨에 몸을 허공으로 끌어 올리자, 차윤재가 경악 섞인 얼굴로 달려갔다.
“혀, 형님! 어서 내려오십시오! 다치십니다!”
“으음~ 이거 철봉 같은 거 아니야? 잇차.”
“내려오십시오! 떨어지면 큰일입니다!”
“에이 안 떨어져~ 내가 이런 거 전문이야, 전문.”
“사람 가는 데엔 순서 없습니다!”
“어라, 윤재 은근히 날 보내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형님! 몰아가지 마십시오!”
스윽-
두 놈의 시끌벅적한 대화에 상체를 빙글 돌린 내 눈이 커졌다.
“잠깐!”
내 외침과 동시에 차윤재가 이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보십시오! 저 형님도 화를 내지 않으십니까! 이런 행동은 굉장히 위험천만한-”
“허리 세우고 웃어봐.”
저 광경을 목격한 순간 오타쿠 자아가 난동을 부렸다.
‘이봐, 이해성. 알겠으니까 진정해라.’
나는 안광을 완전히 잃은 눈을 껌뻑이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이렇게요?”
차차차차차찰칵!
“한 번 더.”
“으윽……!”
대체 어디서부터 정정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의 차윤재가 뒷목을 부여잡았다.
차차차차차, 찰칵!
“흠”
촬영을 위해 꾸며놓은 곳이다 보니, 배경은 물론, 헤어를 비롯한 코디까지 풀세팅되어 있어서 굉장히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다.
‘올리면 좋아하시겠군.’
모르긴 몰라도, 이해성 말 들어서 반응이 안 좋았던 적은 없다.
내가 갤러리를 살피는 동안, 차윤재가 옆에서 무어라 왁왁댔으나, 흐린 낯짝을 걸치고 못 들은 척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차윤재를 응시합니다.]
촬영이 시작되자, 추위는 느낄 새도 없을 만큼 번잡스러워졌다.
“여기 세트장! 세트장에 소품 제대로 안 해! 강풍기가 왜 저기 가 있어! 이쪽으로!”
여기저기서 고함 소리가 난무했다.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기 전, 커다란 폭발음이 터졌다.
퍼! 펑! 펑!
촬영에 들어가기 전, 시범용 폭발이었다.
폭발 컨트롤 박스를 조작하던 스태프가 버튼을 누르니, 다시 한번 폭발이 일어났다.
이번 뮤직비디오엔 영화에서나 쓰일 것 같은 특수 효과 장비들이 동원된다.
여기에 값비싼 CG까지 어마어마하게 들어가니, 뮤직비디오에서 자본의 냄새가 얼마나 풍길지 예상조차 되지 않는다
멤버들은 저마다 감탄사를 내뱉으며 시범용 폭발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시각 나는 실수하면 안 되겠다는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물론 명훈이의 지갑 사정은 관심 밖이고, 성해온은 정신 나간 자산가라지만 소시민적 사고가 여전히 남아 있다.
‘저게 한 번 터질 때마다 얼마겠어.’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에게 동심은 존재하는 건지 궁금해합니다!]
그딴 거 없다.
“이제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 * *
뮤직비디오 촬영을 끝내고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못다 한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팬덤의 분위기는 여전히 상기되어 있었다.
곧 활동하게 될, 첫 정규 앨범의 타이틀곡.
사실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잡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게 없겠으나, 보통 함께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반의어처럼 쓰인다.
VX나 BK, INT와 같은 대형 소속사에서 주로 예술성이 크게 섞인 곡들을 내놓는데, 달리 말하자면 창의적이고 개척성이 강한 느낌이다.
물론 따지자면, ‘마이너’에 가깝지만, 이미 이 시장은 이런 느낌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
위에 저 대형 소속사 같은 경우엔, 좋게 말하면 예술성, 나쁘게 말하면 난해한 곡에 자본을 있는 대로 쏟아부어 놀라운 곡을 만들어내곤 한다.
‘반대로 는 온전히 대중성에 기댔던 곡이었고.’
그 당시 라이트온은 리스크를 감당할 여력이 제로에 수렴했다.
하지만 이제 슬슬 도전해 봐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래서 이전 앨범보단 훨씬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컨셉을 세계관과 버무려 내기로 한 게 바로 이다.
컨셉부터 세계관까지 내가 많은 의견을 냈기에, 조금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군.
나는 피곤한 눈을 깜빡이며 스크롤을 내렸다.
- 궁옌데 다른 세계랑 연결된 거 아님? 요즘 세계관 다른 세계랑 연결되는 게 트렌드잖ㅋㅋㅋ
- 승하가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인 거 아님? 그걸 자각한 게 이고?
└ 그럴듯하긴 한데 아닐 듯 세계관은 보통 그룹 단위로 뭔가 떡밥이 있으니까
└ 22 다른 멤버들도 뭐 하나씩 있을 듯 그냥 세계관 첫 타자가 승하인 느낌
티저에서 추측할 수 있는 건 한정적이었지만, 팬들은 열정적으로 세계관을 예상하고 있었다.
[라이트온 이번에 정규 나오는데 진짜 칼 간 듯]
오늘 티저 나왔는데 진짜 개쩖 벌써 조회 수 터졌던데 얘네 이번을 기점으로 훅 뜰 것 같음
티저에 노래 ㅈㄴ 조금 들어갔긴 한데 짱좋음
게다가 티저에서 보이는 자본력 와우임
CG 싸게 만들면 개구린 거 알지 근데 진짜 개쩜 밑에 링크 달았으니 한 번 보고 와봐라
- 여기 얼마 전까지 망돌 아니었어?
└ 아직도 망돌임
└ 응응 망돌 무새세요
└ 전 앨범 총판 10만도 못 넘겼으면 망돌 맞지 ㅋㅋ
└ 지나가다가 댓글 담… >진짜 망돌< 팬 눈물 나게 하지 마라 라이트온 정도면 애초에 망돌 아니라고… 얘네 팬싸 컷 두세 장 아니잖아 tlqkf
└ 라이트온도 고인물들이 컷 높이는 거 아님? ㅋㅋ 어쨌든 라이트온은 망돌임 반박하면 스위치
└ 그때랑 지금이랑 같냐? 됐다 걍 방구석에서 라이트온 망돌 여섯 글자나 혼자 복창하셈 니 말이 다 맞다~
요즘 SNS나 커뮤니티 등지를 살펴보며 느낀 거지만, 라이트온을 향한 조롱이 극심해졌다.
지금 보고 있는 것만 해도 그렇다.
글 자체가 라이트온에게 우호적임에도 분탕이 일어날 정도면 말 다 했지.
이해성의 데이터를 분석해 봤을 때, 아이돌 그룹의 경우 뜨려는 조짐이 보이면 100퍼센트의 확률로 견제가 붙는다.
아마 지금 조롱하는 이들도 대부분 그런 목적이 아닐까, 추측 중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컴백을 앞둔 팬덤의 분위기는 무척 상기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어그로들은 별 타격이 되지 않는 듯하다.
* * *
“흐으으으음.”
최승하가 눈썹을 까딱이며 얼굴을 가져다 댔다.
“아니, 요즘 왜 이렇게 연습을 열심히 하지? 평소 같으면 이미 저쯤에 쓰러져 있어야 하는데?”
녀석이 연습실의 구석탱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수상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체력이 이렇게 한 번에 좋아질 수가 없는데?”
“아닙니다! 형님, 이 안색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이게 어딜 봐서 체력 좋은 사람입니까!”
“요즘, 잠, 도 잘 안자는 것…… 같은.”
실제로 요즘 특성 덕에 잠을 줄이며 연습에 몰두하고 있긴하다만 수면욕만 들지 않는다뿐이지, 피로함이 누적되어 안색이 말린 우거지인 건 동일했다.
피로도가 일정량 감소된다는 효과가 붙어 있긴 하지만, 그 수치를 넘어서는 연습량엔 무용지물일 뿐이니까.
“요새 해온이 체력이 좋아졌나 보다.”
“요즘 연습량도 아주 많으시지 않습니까! 쉬엄쉬엄하십시오!”
그나저나 매번 거지 같은 체력으로 안쓰럽다는 동정의 눈빛이나 받다가, 이런 눈빛을 받으니 새롭군.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을 안타까워합니다!]
솔직히 이전까지는 연장자로서의 위엄이 좀 없었다고나 할까…….
체력이 없는 건 매한가지이지만, 졸음을 컨트롤할 수 있으니 겉으로 보기엔 굉장히 달라져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제 슬슬, 나도 일어날까.’
자신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이미 연습 중이었다.
운동화 끈을 다시 매고, 일어나려던 순간이었다.
약간 둔탁한 소리가 연습실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소리는 놀랍게도, 성해온이 쓰러지며 난 소리였다.
“……혀, 혀, 형님!”
연습에 집중하고 있던 차윤재가 눈을 부릅뜨며 쏜살같이 달려가 성해온의 머리를 받쳤다.
“이, 이게 무슨, 다, 당장 매니저님을 호출해야! ……어?”
혀까지 꼬일 정도로 놀란 차윤재가 말을 하다 말고 멈칫하며, 성해온의 얼굴에 귀를 가져다 댔다.
“쿨…….”
색색, 고른 숨소리가 귓가에 들어왔다.
“……? 주, 주무십니다!”
차윤재의 말에 황당한 얼굴이 된 멤버들이 성해온에게 다가갔다.
“……진짜 자네.”
평온한 얼굴로 고른 숨을 내뱉고 있는 성해온을 바라본 류인이 말을 이었다.
“해온이 방금까지 여기 앉아 있지 않았나?”
“맞습니다! ……제가 연습하기 전까지만 해도 여기 앉아 있으셨는데, 그새 잠이 드신 걸까요?”
사실 성해온이 연습실 바닥에 널브러진 채로 시체처럼 잠을 청하는 건, 일상다반사였기에 멤버들은 서서히 납득하기 시작했다.
“하긴 해온이 요즘 연습 무리하긴 했지. 앉아 있다가 그대로 잠들었나 보다.”
류인이 자신의 외투를 벗어 덮어주며 말을 이었다.
“잠깐 눕힐까?”
“좋습니다! 제 외투를 벗어서 바닥에 푹신하게 깔아야겠습니다!”
“제 외투도요.”
“저, 저도……!”
멤버들이 일사분란하게 연습실 구석에 푹신한 이부자리를 만들고 있을 무렵, 잠든 성해온을 훑은 최승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숙소로.”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순식간에 시선이 모여들었고, 최승하는 평소와 같은 얼굴로 눈을 접어 웃었다.
“데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