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47화
“…….”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잠에서 깨어났지만, 눈을 뜰 수 없었다.
굉장히 쪽팔렸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사주에 망신살이 있는 건 아닐지, 진지하게 의심해 봐야 한다.
게다가 현재 몸을 누인 곳이 굉장히 폭신한 걸로 봐선, 연습실 바닥이 아니라 침대 같은데.
‘숙소로 데려온 건가.’
쓰러졌을 때, 그러니까 내 의식이 끊기기 직전.
찰나의 기억은 존재한다.
정말 퓨즈가 끊기는 것 같은…….
‘잠’이라기보단, 정말 순간적으로 세상이 암전되는 기분이었다.
병실이 아니라, 숙소에 있는 걸로 봐선 멤버들이 보기에도 잠에 빠져든 걸로 보였나 본데.
‘그나마 다행이군.’
이 녀석들은 내 건강을 과할 정도로 걱정해서, 조금만 이상해 보였다면 숙소가 아니라 병실에 처넣었을 거다.
……그나저나, 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분명 특성은 활성화 중이었다.
이 특성은 졸음을 사라지게 해주며, 수면에 대한 필요성을 없애준다.
나는 그렇게 혹독하게 굴지 않았지만, 몇 날 며칠 밤을 새운다 해도 멀쩡할 정도의 강력한 특성이란 뜻이다.
‘설마 이게 부작용인가.’
[불면은 나의 힘(A)]
: 활성화되는 동안은 수면을 요하지 않습니다!
▲ 피로도 20% 감소
▲ 장기간 사용은 부작용을 유발합니다.
나도 부작용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최대한 장기간 사용을 피하려, 틈만 나면 비활성화를 해놨었고.
……하지만 ‘수면’을 없애주는 특성의 부작용이, ‘잠’에 빠져들게 하는 거라고?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다.
의식이 끊겼던 찰나의 느낌은 묘했지만, ……방금 정신을 차렸을 때 스스로 느낀 몸 상태는.
분명한 수면 상태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깊은 수면에서 깨어나는 감각.
고민해 봤자 결론이 나올 리 없다는 걸 알고 있는 나는 생각을 끊어냈다.
‘그나마 연습실에서 잠들어서 망정이지.’
쇼케이스나 음악 방송 같은 곳이었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무대 하다가 난데없이 잠드는 아이돌이라, 평생치 망신살 적립 다이렉트 루트다.
심지어 겉보기엔 혼절과 다를 바가 없으니, 정말 그랬다면 어떤 난리 통이 났을지 아찔할 정도로군.
사락-
그 순간, 누군가가 내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부터, 공간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 정도는 눈치챘다.
신유하?
류인?
“형.”
……최승하로군.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필사적으로 자는 척을 이어갔다.
역시 이 타이밍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 눈을 뜨기엔 굉장히 수치스럽다.
“일어난 거 다 알아요.”
자.
하나, 둘, 셋 하면 자연스럽게 눈 뜨는 거다.
하나.
둘.
“혹시 부끄러워서 눈 안 뜨는 거예요?”
“…….”
알면 나가…….
“삼 초 안에 안 일어나면 지금 형 업고 병원 갈 거예요. 3, 2-”
“……일어났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낄낄댑니다!]
굳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동태임이 확실할 눈빛을 걸친 나는 상체를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 했다.
“누워요.”
침대 머리맡에 앉아있던 최승하가 내 어깻죽지를 손으로 누르며 침대에 도로 눕혔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평소답지 않은 눈으로 나를 짧게 훑었다.
“형, 저 입 무거운 거 알죠? 그것도 아주.”
말을 마친 최승하가 눈을 휘어 접으며 웃었다.
……근데, 입이 안 웃고 있다.
허구한 날 웃는 놈의 익숙한 얼굴인데, 소름 돋을 정도로 낯선 얼굴이었다.
“그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솔직히 말해줘요.”
최승하가 이불을 끌어 올려 내 목까지 덮은 뒤, 가볍게 토닥였다.
“어디가 아픈 거죠?”
“미안하지만, 멀쩡하다. 너희가 저번에 건강검진도 보냈잖아.”
“으음~”
“아까도 그냥 잠든 거였어. 요즘 무리를 하긴 했지.”
“……하핫.”
내 말에 작게 웃은 최승하가 몸을 가까이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른 애들은 믿겠지만, 저는 아니에요.”
“……?”
“형은 휴식이 필요해요. 이번 활동은 쉬어가세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너도 이번 앨범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텐데, 장난으로라도 그런 말은 삼가는 게 좋겠다.”
“장난 아닌데.”
역시 이 녀석, 뭔갈 봤다.
저번부터 묘하다 했는데, 내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건가.
이렇게 된 이상, 내가 먼저 치고 나가야 한다.
나는 태연자약한 얼굴로 최승하와 눈을 마주쳤다.
“너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형.”
“혹시 저번에, 코피 흘린 걸 본 건가.”
무언가를 봤다면, 내가 미처 치우지 못한 옅은 핏자국 정도겠지.
욕실 바깥으로 새어 나간 소리를 들었을 수도 있겠고.
그리고 이 정도야 둘러대면 그만이다.
“코피야 피곤하면 나는 건데, 너흰 너무 과하-”
계속해서 이어지던 내 말을 끊어낸 건, 서늘한 얼굴의 최승하였다.
“끝이에요?”
“……!”
“절 속이려면, 더 그럴싸한 핑계를 대셨어야죠.”
……처음 보는 얼굴이다.
사이렌이 경고를 울리는 기분이었지만, 나는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어차피 의심일 뿐이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내가 해야할 말은 이미 정해져있다.
“너희가 이렇게 걱정할까봐 조심했던 건데. 아, 무슨 소리를 들었던 거면 그냥 헛구역질이다. 그날 먹은 게 얹혔었거든.”
억지에 가깝지만, 어쩔 건가.
확신에 가까운 의심이라 해도, 이 상황에서 최승하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형.”
기가 찬다는 얼굴의 녀석이 말을 이었다.
“지금 그걸-”
이번에 말을 끊은 건 나였다.
“생각해 봐. 진짜 피를 토하기라도 했으면, 그렇게 멀쩡할 수가 있었겠어? 그날 내 컨디션이 나빠 보이기라도 했냐는 말이야.”
“…….”
입을 다문 최승하가 해야 할 말을 고르는 듯, 시선을 내리깔았다.
이 녀석은 눈치가 대단히 빠른 놈이다.
평소에 헤실 웃고 다녀도, 속은 멍청하지 않거든.
착!
나는 양손으로 최승하의 두 볼을 붙잡았다.
“……!”
양 볼이 내 손에 잡혀 웃긴 모양새가 된 최승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고, 나는 빠르게 할 말을 이었다.
“무슨 오해를 하는지는 아주 잘 알겠다. 일전에 그런 걸 봤으니, 그럴 만도 하지.”
“……형.”
“네가 무얼 생각하든, 난 그렇게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야. 내가 아프면 알아서 쉴 거다. 나는 내가 제일 중요하니까.”
“…….”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난 아주 쌩쌩해.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해 줬으면 좋겠다.”
긴말을 우다다 쏟아 뱉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흐음~”
생각 정리가 끝난 모양인지, 잠자코 내 말을 듣고만 있던 최승하가 두 눈을 접어 웃었다.
“좋아요. 이번만은 믿어줄게요. 저는 말 잘 듣는 동생이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의 텐션으로 돌아온 최승하가 침대의 빈자리로 올라오며 능청을 떨었고, 당연히 나는.
꾸우욱-
“형, 형, 형. 잠만, 타임. 타임. 나 떨어져요.”
“당연하지. 그러라고 미는 건데.”
발로 허리를 꾹꾹 밀자, 결국 나가떨어진 최승하가 우는소리를 냈다.
“나한테만 너무 박하다니까~!”
“그나저나, 애들은?”
“아, 애들은 거실에 있어요. 잠깐 제가 형이랑 얘기하고 싶다고 했거든요. 근데 이제 슬슬 돌아가야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불을 걷었다.
“그래, 잠깐만 기다려.”
“응?”
최승하가 방긋 웃었다.
“형이 왜 나가요?”
“……? 연습하러 가야지.”
“여기 형 배고플까 봐 먹을 것도 가져다 놨어요.”
최승하의 손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바깥에서 사 왔는지 과일, 빵, 과자, 김밥 등이 다채롭게 놓여 있었다.
의문이 가시기도 전, 최승하가 말을 이었다.
“여기 방엔 화장실도 있으니까, 문제없겠죠?”
“뭐가.”
“형은 오늘 여기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는 뜻이죠.”
“누구 맘대로.”
“으음, 이건 애들 다 동의했으니까 라이트온 맘대로~?”
“괜찮다고 몇 번을…….”
나는 말을 잇다가 멈칫했다.
최승하의 눈이 다시 서늘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다급하게 대답을 바꿨다.
“걱정하는 건 알겠다. 하지만 지금 컴백이 며칠 남았다고-”
“와아~ 걱정하는 걸 알아주는 거예요? 그럼 자야겠네, 그렇죠?”
“……윽.”
벌떡 몸을 일으킨 나를 밀어 침대에 처박은 녀석이.
“아~ 형이 날 미워하는 건 싫은데.”
돌돌돌돌-
“…….”
익숙한 데자뷔였다.
순식간에 누에고치처럼 이불에 돌돌 말린 내 안광이 건조하게 메마르기 시작했다.
“완성~”
“……미쳤어?”
“으하핫, 조금요~? 다 믿는다 치고, 형이 정말 피곤해서 잠든 거면 오늘 쉬는 게 맞아요. 하루 연습 빠진다고 죽기라도 하나?”
“너는 내 손에 죽겠지…….”
“그럼 돌아와서 죽을게요~! 이왕이면 용서해 주세요. 그럼, 푹 쉬세요!”
드르륵-
나는 최승하가 방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말린 이불 속에서 빠져나왔다.
‘더럽게 꼼꼼하게도 싸놨군.’
그리고 문고리에 손을 올린 순간, 나는 이놈들이 단체로 돌아버렸다는 걸 깨닫는다.
철커덕! 철컥! 철커덕!
내가 미친놈처럼 문고리를 흔들자, 문밖에서 안절부절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혀, 형님! 그, 그냥 푹 쉬십시오! 올 때 맛있는 걸 사 오겠습니다! 하루쯤은 연습에 빠지셔도 무방합니다!”
“맞아요, 형은 쉬어야 해요……! 너무 잠을, 안 자.”
“해온아. 우리 늦지 않게 올게. 내 생각에도 하루 푹 자는 게 나을 것 같아.”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수현아.”
“네?”
한수현이 내 부름에 곧장 답했고, 나는 목소리에 촉촉함을 더했다.
“……가족끼리, 이래도 되는 걸까?”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의 지략에 감탄합니다!]
한수현 다루는 법은 이미 터득했다.
저 녀석은, 가족이란 단어에 마음이 심각하게 약해진다.
“가족…….”
“그래, 동의 없는 감금과 다를 바가 없는 거지.”
“동의 없는 감금…….”
“게다가, 연습.”
가족이라는 키워드에 연습까지 더한다면, 한수현 공략은 끝났다고 볼 수 있다.
나는 히죽 웃으며, 아련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수현아, 연습은 해야 하지 않겠어? 나도 연습이 많이 부족한데.”
휘이잉-
이 말을 끝으로, 문밖이 조용해졌다.
뭐지?
안 먹혔나.
내가 물음표를 띄우고 있을 때쯤, 문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아앗, 수현아! 무슨 짓이야! 갑자기 형 등을 그렇게 밀면 어떡해! 넘어진다, 넘어져!”
“승하 형, 죄송해요. 하지만 가족 간에 동의 없는 감금은 너무하다고 생각해요.”
최승하에 이어 다른 놈들까지 문밖으로 밀고 있는 모양인지, 작은 비명 소리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역시 걸려들었군.
“그래, 수현아. 가족은 함께해야지. 어서 열어줘.”
“……네?”
“……열어준다는 거 아니었어?”
“해온 형은 오늘 쉬셔야죠. 그리고 저는 가족으로서 병간호를 할게요.”
“무슨 소리야, 너 연습은?”
“그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흠. 부족한 연습은 내일 보충으로 더 하면 되겠죠. ……고민해 본 결과, 가족의 병간호는 그것보다 더…….”
“그러니까, 결론은 다른 놈들을 보내고 네가 남아서 간호를 하겠다?”
“네.”
“문은 열어줄 생각이 없고?”
“네. 해온 형은 휴식을 취하셔야 하니까요.”
“가라…….”
“네? 하지만 가족 간에 동의 없는 감금은 안 될 일이고, 아픈 가족을 간호해 주는 건 반드시 필요한-”
나는 텅 빈 눈깔로 침대에 걸터앉으며 한수현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냥 너도 가라.”
다 나가…….
이 정신 나간 놈들아…….
* * *
“하나님.”
무신론자인 곽덕배가 조용히 하나님을 찾았다.
“부처님 알라신님 어쩌구저쩌구신님.”
“제발.”
“제게 행운을…….”
드문드문 말을 이은 곽덕배가 손을 포개 접었다.
그렇다.
오늘은 바로 의 쇼케이스 선예매 당일인 것이다.
스윽-
기도를 마친 곽덕배는 PC방 내부를 빠르게 둘러봤다.
교복을 입은 학생 둘이 자신과 같은 화면을 켜놓고 있었다.
‘정말 유입이 붙긴 붙었나 보네.’
실제로 라이트온은 요즘 분명한 상승세였다.
경쟁자가 얼마나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곽덕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스위치들은 참지 않아
(ticket.ticket.com)의 서버 시간은
[19시 55분 24초]
티켓팅이 시작되기 4분 전이다.
곽덕배는 눈을 감고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과연 고인물다운 면모였…….
“X발, 숨 쉴 테니까 가만히 있어.”
주체할 수 없는 떨림에, 그녀의 스마트 워치가 심박 수가 너무 높다며, 숨을 쉬라는 알림을 보내온 것이다.
거슬리는 워치의 전원을 다급하게 끈 곽덕배가 침을 꿀꺽 삼켰다.
[19시 59분 20초]
두근두근.
전국의 스위치들이 모니터 앞에서 심장을 부여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