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48화
“가만두지 않겠다.”
고오오오-
잠긴 방 안.
어두컴컴한 기운이 고요한 숙소를 휘감았다.
별 지랄을 해봐도 문은 열리지 않으며, 고층인 숙소에서 뛰어내릴 수도 없다.
골드를 사용하면 이깟 문쯤이야, 어렵지도 않게 열 수 있다만-
“……그냥 쉴까.”
녀석들의 말도 틀린 건 아니다.
나도 요새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은 해왔고, 말마따나 연습 하루 빠진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니까.
폭삭-
침대에 몸을 던진 나는 곧장 상태창을 불러냈다.
“언제 봐도 수상하군.”
나는 상태창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보며 혀를 찼다.
교주의 아우라라니, 멀리서 봐도 사이비 같은 느낌이지 않은가.
“……사기꾼 같기도 하고.”
작게 중얼거리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자네에게 더없이 잘 어울리는 특성이라며 흐뭇해합니다!]
“…….”
어쨌거나, 후진 특성명을 제외하면 특성 자체는 굉장히 훌륭하다.
무대 지배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의아할 정도로.
세 그림자를 모두 소멸시킨 것도 아니고, 그중 하나를 소멸시킨 것인데 이런 능력이 담긴 S급 특성이 나오다니.
게다가 성좌들이 나올 수 없는 특성이니 뭐니, 떠드는 걸 보아하니 보통 특성은 아닌 것 같지.
그럼 나머지 두 놈의 그림자를 해결하면, 얼마나 좋은 게 나올까.
히죽…….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을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제발 리더답게 굴라고 합니다!]
“……? 나 같은 리더가 어딨어.”
나처럼 심성이 따뜻하고, 멤버들을 잘 아우르는-
[성좌, ‘황금의 신’이 질색합니다!]
쯧쯧…….
아무튼,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신유하와 차윤재의 그림자 수치는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망돌의 그림자 수치 가이드]
: 수치가 30% 이하로 떨어진다면 그림자는 대상자에게서 자동으로 사라집니다!
- 31% ~ 40% 위험 1단계
- 41% ~ 50% 위험 2단계
- 51% ~ 70% 위험 3단계
- 71% ~ 80% 위험 4단계
- 81% ~ 비상사태
그림자 수치 가이드를 오랜만에 꺼내든 나는, 어제쯤 살폈던 녀석들의 상태창을 떠올렸다.
처음 차윤재를 마주쳤을 때, 녀석의 그림자는 비상사태에 속하는 85%였다.
하지만 차윤재의 그림자는, 초반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옅어지고 있다.
딱히 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살필 때마다 알아서 옅어져 있을 정도니까.
현재 차윤재의 그림자는 52%.
곧 위험 2단계로 내려갈 듯하다.
그다음으로는 신유하.
사실 신유하야말로 놀라운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묵언 수행자에 가까웠던 과거와는 다른 사람 같을 정도니까.
차윤재만큼은 아니지만, 이 녀석은 이 녀석 나름대로의 속도로 꾸준히 옅어지고 있다.
현재 신유하의 그림자 수치는 45%.
이 정도면 두 놈 모두 안정권이다.
“흠.”
나는 침대에 대자로 뻗은 채 반 바퀴를 데굴 굴렀다.
이렇게 깨끗한 정신으로 침대에 누워본 게 얼마 만이더라.
……매일 뒈지기 직전의 상태로 등을 붙인 기억밖에 없다.
구희승의 얼굴을 떠올려 버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심심한데.”
원래 특성을 비활성화하면 잠이 쏟아져야 하는데, 방금 부작용을 겪어서 그런가 굉장히 멀쩡하다.
모니터링이나 할까.
나는 누운 채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 랕궁이들 스폰 제대로 물었나 보네 ㅋㅋ
- 바쁘다바뻐~ 여기저기 딸랑거리느라 정신없을 듯
- 근데 얼마나 높은 사람이 뒤에 있을지 궁금하기도 함
이 가십은 사라지지도 않는군.
하긴, 이번엔 티저부터 자본의 향이 물씬 풍겼으니 이런 식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의 망상에 불을 지필 만도 하다.
하지만 이런 어그로는 딱히 타격이 되지 못한다.
우리가 얼굴만 반반한 그룹이었으면 모를까, 프로그램에서 이미 실력을 보였고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해 냈기 때문.
그저 걱정되는 건, 이런 논란으로 인해 팬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타고 타고 넘어가니, 어그로에 대응하고 있는 팬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해성의 기억에 따르면, 이런 논란은 팬들에게 엄청난 심적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를…….
- 아주 뇌피셜의 대마왕이시고 예예예
- 여러분은 3살에 물 위를 걸으시고 5살엔 총알을 피하는 기적을 선사하셨으며 어쩌구저쩌구
- 이게 바로 셀럽의 삶인가 보다 가만히 있어도 견제가 붙고 짜릿하네 야~ 라이트온 1군 다 됐다
……강하시군.
스윽-
조용히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나는 눈을 감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 * *
“형님! 몸에 한기가 돋습니다!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단체로 무릎을 꿇을까요?”
“윤재야. 넌 무슨 그런 말을.”
고개를 작게 저은 최승하가 차윤재의 양어깨를 그러쥐었다.
동시에.
털썩!
“무릎 꿇은 내 모습 어때, 가련해 보여?”
“형님!”
“그래, 윤재야. 어떠니! 막 용서해 주고 싶고 그래?”
“흐음!”
최승하가 눈을 사르륵, 접어 내린 채 입을 열었다.
“눈을 이렇게 내리깔면 더 불쌍해 보일까? 아련한 것 같아? 처연함이 보여?”
“그것보단 굉장히 열받는 것 같습니다! 화를 더 돋우지 않을까, 사료됩니다!”
“제 생각도 그래요. 가족 간의 동의 없는 감금은 역시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어? 바깥에서 문 잠그는 방법 검색한 게 누구였더라!”
“저는 그저 지시에 따라 검색만 했을 뿐, 실행에 옮긴 건 승하 형이십니다. ……저는 그저 해온 형이 요새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것 같은 마음에 온전히 숙면에 빠져들 수 있는 환경을 고심한 것에 가깝다고 하는 편이 맞겠네요.”
“청산유수한 것 봐. 이 배신자들~”
하하, 웃은 최승하의 안색이 무광 재질로 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래를 예감했기 때문이다.
“난 죽었다…….”
끄덕……!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신유하에, 최승하가 눈을 반짝였다.
“역시 날 걱정해 주는 건 내 친구밖에 없구나.”
신유하가 동정의 눈빛을 보내며 최승하의 어깨를 토닥였다.
“……힘내.”
“아!”
번뜩이는 아이디어라도 떠오른 듯, 신유하의 손목을 잡은 최승하가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유하야, 오늘은 나랑 붙어 있자. 그 형이 은근~ 너한텐 약하니까~ 붙어 있으면 나도 자연스럽게 묻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스으윽-
슬그머니 팔을 빼낸 신유하가 등을 돌렸다.
“연습이나, 할까…….”
안타깝게도 성해온에게 밉보이고 싶은 인간은 제로에 수렴하는 것이다.
휙!
“역시 믿을 건 우리 형밖에!”
최승하가 올망한 눈빛으로 류인을 바라봤고, 허공에서 둘의 시선이 맞부딪혔다.
“와! 저 형 설마, 설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의 최승하가 펄쩍 뛰었다.
“못 들은 척 고개 돌리는 건가? 어떻게 내 류인 형이 이럴 수가 있지?”
따가운 시선을 피한 류인이 신유하에게 다가갔다.
“그래. 우리 해온이 몫까지 더 연습하자.”
“네, 좋아요……!”
……털썩!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연습실 바닥에 드러누운 최승하가 긴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억울함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다들! 너무해! 그 형 강제로 쉬게 하는 프로젝트에 찬성했으면서! 말은 내가 꺼냈다지만, 다들 좋다고 그래놓고!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어!”
그 순간, 최승하에게 다가간 한수현이 조용히 질문했다.
“승하 형, 녹음해 놓으셨나요?”
“아니? 녹음은 안 해놨지.”
“아, 그렇군요.”
“근데 갑자기 왜?”
“이제부터 기억을 없애려고요. 저는 가담한 적이 없습니다.”
“……!”
순수하게 감탄한 얼굴의 차윤재가 손뼉을 마주쳤다.
“형님, 그러고 보니 저도 가담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네.”
“나도, 기억이, 잘……!”
성해온에게 물든 사기꾼들과, 그들에게 배신당한 최승하의 경악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날 밤.
라이트온의 숙소엔.
……비명만이 가득했다.
* * *
“얼굴을 보니 성공한 모양인데.”
이해성의 물음에 곽덕배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깟 티켓팅쯤이야 껌이지. 구라고 간신히 잡았어.”
치열한 티켓팅 전쟁에 퍼석해진 곽덕배가 말을 이었다.
“못 잡았으면 지금 여기 술집이 아니라, 한강 다이빙하러 갔을걸. 잠깐만, 뭐야.”
수상한 분위기에 고개를 까딱인 곽덕배가 진지한 얼굴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눈이 죽어 있지? 동탠데? 잠깐만 여기 술안주로 파는 말린 생선이 너한테 빙의한 거 아니야?”
싱긋…….
이해성의 은은한 미소에 몸을 흠칫 떤 곽덕배가 말을 이었다.
“밀리어스 알계 붙었어?”
“아니.”
“그럼 밀리어스 혹시 이른 나이에 군대라도 간대?”
이해성이 맥주를 들이켜며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꽉 채웠다가 가겠지.”
“그럼 왜 이래! 무슨 일 있어?”
“실직했어.”
“그렇구나, 실직. ……실, 실직?”
휘이잉-
싸늘한 공기가 곽덕배와 이해성 사이를 휘감았다.
“……어?”
충격적인 소식에 잠시 입을 떡 벌렸던 곽덕배는 서둘러 집 나간 정신을 붙잡았다.
“너는 무슨 실직했다는 말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해? 어이없어 죽겠네.”
영문은 모르겠지만 일단 몸을 일으킨 곽덕배가 이해성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이봐! 전문직 주제에 슬퍼하지 마! 재취업 못 할 일도 없잖아! 근데 갑작스럽긴 하다. 무슨 일이야?”
곽덕배의 물음에 이해성이 피식 웃었다.
“병원장이 건물주잖아. 아들이 이번에 라이센스 딴 것 같던데.”
“……근데 나가라고 한다고 나가야 해? 계약 묶여 있을 거 아니야.”
“법적으론 당장 내쫓을 순 없지. 근데 얌전히 나가주면 권리금 챙겨주겠다더라. 버팅기다가 내쫓길지, 아님 본전은 챙기고 나갈지 고르라는 거지.”
“잠만 기다려봐.”
벌떡 일어난 곽덕배에, 이해성이 되물었다.
“……? 어디 가.”
“병원에 불 지르러 가게…….”
“……앉아라.”
뒷목까지 부여잡으며 병원장에게 저주를 퍼부은 곽덕배가 조금은 진정한 상태로 입을 열었다.
“이참에 조금 쉬는 거 어때. 공백 생긴다고 해서 재취업 어려울 직종도 아니고.”
이해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대출까지 끌어다 쓰면 무리해서 개국도 해볼 수 있을 것 같고, 아니면 마음 편하게 페이로 일하는 것도 괜찮을 텐데 뭔가 안 내키더라고.”
“그렇지, 그렇지. 휴식이 필요한 거야. 이참에 여행이라도-”
“그래서 엔터 회사 면접 봤어.”
“그래, 그래 가지고 면접을 봤구나. 면접을……. 면, 면접……? 에, 엔터 회사? 잠깐만, 이 또라이의 사고 회로는 대체 어떻게 굴러가는 거야?”
황당한 얼굴의 곽덕배가 눈을 부릅뜨자, 이해성이 덤덤한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그게 원래 전공 쪽이잖아. 이 김에 짧게라도 경험해 보고 싶더라고. 페이 면에선 원래 하던 일이 낫겠지만, 네 말대로 재취업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렇긴 하지. 전국팔도 발만 붙이면 취업할 수 있는 직종이잖아. 어차피 너 나중엔 개국하고 싶어 했지? 그럼 기회도 없을 테니까 지금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딱히 붙을 거란 기대도 안 해.”
이쯤 되니 궁금해진 곽덕배가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어디 면접 봤는데?”
“MH.”
주르륵…….
곽덕배의 입으로 들어갔던 맥주가 아무런 저항 없이 흘러나왔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