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150화 (150/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50화

조용히 머릿속으로 유인성의 쓸모를 나열하자,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런 월척이 제 발로 들어오다니.’

스윽-

나는 속으로 휘파람을 불며, 상체를 길게 빼 통화를 마치고 시시덕거리고 있는 인영을 바라봤다.

심지어 저 사람, 이 바닥에선 아주 유명한 인물이다.

톱스타패치, 유인성.

연예인들의 사생활 침해 부문에선 따라올 사람이 없는 인간.

이 얼굴을 아는 건 이해성 덕이다.

이해성의 기억을 살펴보니, 팬들 사이에선 아주 유명 인사인 모양.

이해성의 예전 최애의 열애설을 끈덕지게 밟았던 게 저 기자였지.

나는 히죽 웃으며 녹음본을 재생시켰다.

녹음된 유인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지하 창고에 정적이 감돌았다.

탁-!

녹음본 재생을 중지시키자, 기둥 뒤에서 욕을 지껄이는 소리와 한숨을 쉬는 소리, 기타 등등 잡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당황, 그다음은 분노, 그다음은 협박조의 목소리더니 이번엔 차분한 목소리다.

“피차 당당할 것 없는 입장 아니겠습니까? 원하는 건 들어드리겠습니다. 나와보세요.”

아무래도 드디어 상황을 파악한 모양.

“흠.”

이렇게 간절하게 대화를 요청하는데, 씹는 것도 예의가 아니겠지.

나는 곧장 입을 열었다.

“저는 당당합니다만.”

“뒤에 숨어서 남의 통화나 녹음하는 게 뭐가 당-”

타악!

기둥 뒤에서 나온 나와 시선이 얽힌 유인성의 입이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 그, 그, 다, 당신이, 여, 여길.”

“……? 제가 여기 있으면 안 될 이유라도.”

“오늘 쇼, 쇼케이스 하는 연예인이 왜 여기에 이, 있으시냐는 말입니다!”

나는 곧장 스마트폰의 화면을 켰다.

“……? 아직 시간 많이 남았는데요.”

“……그, 그런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유인성을 안타까워합니다!]

희게 질린 유인성이 말을 이었다.

“……그, 녹음은 대체……!”

“아, 이거.”

- 예, 예, 예, 그럼요, 그럼요. 다 명심했습니다. 뭐, 연애가 범죄인가요?

바위처럼 굳어버린 유인성을 바라보며 맑게 웃은 나는 말을 이었다.

“기자님.”

당황한 얼굴의 유인성이 손을 내저었다.

“저는 기자가 아니라, 그, 예. 여기 쇼케이스 주최하는 업체 직원입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

나는 유인석에게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가며 눈을 접어 웃었다.

“유 기자님.”

내가 조용히 속삭이자, 유인성의 안색이 희게 질렸다.

“어, 어떻게…….”

“그게 뭐 중요한가요? 지금부터 저희가 나눌 이야기가 중요한 거지.”

유인성의 동공이 팽이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대체 원, 원하는 게 뭡니까. 돈을 원한다면 드리겠습니다.”

나는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절레 저었다.

내 거절은 예상에 없던 일이었는지, 유인성의 얼굴에 다급한 기색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성해온 통장에 찍혀 있는 숫자를 알면, 이 기자도 이런 딜을 하지 못할 거다.

연예계 사정에 통달한 기자니, 보통 망돌이 얼마나 궁핍한지 아는 거지.

나는 작게 미소 지으며 유인성과 시선을 맞췄다.

“이 바닥에서 이름 좀 날리신다는 유인성 기자님이 실은 뒷거래로 주머니를 채우고 계셨다니.”

나는 흠, 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뭐 이 바닥에 사생활이 어디 있겠냐만, 이런 정보를 물었으면 원래는 신문사에 갖다 바치셔야 하는 거겠죠?”

“……그게, 그러니까.”

“근데 이렇게 흐음…….”

나는 느릿하게 손뼉을 치며 말을 이었다.

“전도유망한 본업과 연계되는 돈벌이까지 발상해 내시다니, 아주 훌륭한 재테크로군요. 대단하십니다.”

유인성의 머리칼은 이미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매만지며, 화사하게 웃었다.

“땀을 왜 이렇게 흘리세요. 누가 보면 제가 협박이라도 하는 줄 알겠네요.”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저게 협박이 아닌 거냐고 속닥거립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협, 협박이 아니라고요?”

나는 유인성을 바라보며 조금 더 곱게 미소 지었다.

“예. 제가 기자님을 협박할 이유는 없죠.”

“정, 정말이십니까? 그럼 저한테 대체 왜…….”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믿을 걸 믿어야지 저걸 믿는 거냐며 혀를 찹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오늘 무대를 해야 하는 입장인지라,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가봐야겠습니다.”

나는 녹음 파일이 담긴 스마트폰을 흔들었다.

“기자님, 꼭 연락받으세요.”

“…….”

“뭐, 혹시 안 받으신다면야. 이 파일 이거, 인기 많을 것 같지 않나요?”

“……? 협, 협박 안 하신다고!”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유 기자님, 뭐라고 하셨는지 잘 못 들었네요…….”

“바, 받, 받을, 받을게요. 받겠습니다……! 무조건 받겠습니다……!”

“예.”

내가 등을 돌리려던 순간이었다.

유인성이 내게 달려들었다.

녹음이 담긴 스마트폰을 강탈하려 한 것이다.

“기자님. 이게 무슨 짓일까.”

나는 두 눈을 곱게 포개 접었다.

“지우시려고요?”

“저, 저한테 왜 이러시는 겁니까!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면! 원하신다면 이, 이 건을 아예 드리겠습니다! 입만 닫아주신다면!”

“유 기자님.”

“……네, 네?”

“저는 돈도 필요 없고, 이런 뒷정보로 협박하는 건 관심이 없…….”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양심적으로 살아가라고 조언합니다!]

“……있나?”

조용히 자아 성찰을 마친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어찌 됐건 이 정보는 제게 별 쓸모가 없다는 사실이 중요하죠.”

“그럼 대체 뭐가……!”

“중요한 건 기자님의 이 엄청난 직무유기 아니겠어요? 그 톱스타패치의 유인성이 소속사를 상대로 협박이나 하며 등을 쳐 먹었다, 라.”

싱긋…….

눈을 마주치기 무섭게 유인성의 몸이 잘게 떨렸다.

“심지어 신문사 몰래? 철저하게 차명의 스마트폰으로. 이거 밝혀지면 꽤 재밌겠는걸요. 그렇죠, 기자님.”

내가 웃으며 묻자, 유인성의 안색은 굳는 걸 넘어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녹음본은 당연히 백업을 마쳤습니다. 제가 뭘 믿고 안 했겠어요? 기자님이 갑자기 제 스마트폰이라도 부수면 어쩌려고.”

나는 유인성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닥였다.

“보시다시피 몸싸움엔 영, 재능이 없거든요.”

* * *

자신의 할 말만 마치고 계단을 오르는 사악한 등짝을 바라보며 유인성은 이를 바득 갈았다.

‘뭐 저딴……!’

통화를 들은 당사자가 성해온인 걸 알았을 땐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상대방이 돈만 밝히는 일반인이면 곤란했겠지만, 데뷔한 지도 얼마 안 된 얼치기가 세상 물정을 뭘 알겠는가.

이렇게,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내 이름은 어떻게 아는 거지?’

기자 쇼케이스인 만큼, 기자인 건 눈치챌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고작 얼굴만 보고 이름과 소속까지 술술 분단 말인가!

……기자한테 크게 덴 적도 없는 신인이, 대체 어떻게!

유인성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머리를 헤집었다.

“아, 망했다.”

이게 공개되면 자신의 커리어를 비롯한 인생은 끝장이었다.

뒤에서 쥐새끼같이 정보나 거래한 놈을 대체 어느 집단에서 받아준단 말인가.

멘탈이 반쯤 바스러진 유인성은 고개를 털어냈다.

‘……설마 별거 있겠어?’

분명 더 튕기면 큰돈 굴러올 줄 아는 거겠지.

솔직히 아까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새파랗게 어린놈의 기세가, 무슨.’

유인성은 덜덜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쇼케이스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형님! 어딜 갔다 오셨습니까! 조금만 더 늦으시면 매니저님한테 연락을 취하려 했습니다!”

“그러게, 해온아. 어디 갔다가 온 거야?”

대어를 낚고 왔다.

-라는 말을 할 수는 없으니 그냥 입을 다물고 고개를 대충 끄덕였다.

‘설마 그런 걸 발견할 줄은.’

스마트폰을 챙겨간 게 최고의 선택이었다.

스으윽-

“……? 해온 형, 저한테 할 말 있으세요?”

한수현을 향해 싱긋 웃은 나는 곧장 다가가.

슥, 슥, 슥, 슥-

한수현의 머리칼을 빠르게 쓰다듬었다.

‘이 기특한 놈.’

이 녀석 말이 틀린 게 없다.

사람은 역시 녹음을 생활화해야 한다.

홀로 고개를 주억거리자, 소파에 앉아 있던 최승하가 다가왔다.

“으음? 이 형, 왜 이렇게 얼굴이 묘하게 기분 좋아 보이지? 뭘 하고 왔길래, 으브븝.”

과자를 삼킨 최승하가 짐짓 억울한 얼굴을 하고 말을 이었다.

“……이 형은 진짜 뭐만 하면 맨날 입막음을, 무슨 말을 못 하겠어!”

“그래, 해온아브븝.”

최승하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듯, 다가와 입을 연 류인에게도 초콜릿 과자를 넣어줬다.

‘초콜릿 과자를 좋아하는 거 같았지.’

“……해온아, 저번부터 왜 이러는브븝.”

나는 류인의 입에 과자를 하나 더 쑤셔 넣은 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스태프 앞에 섰다.

음향 장비가 빠른 속도로 몸에 채워졌다.

‘흠.’

류인의 황당한 시선이 등짝에 꽂혔으나, 저 녀석도 속으로는 내 행동을 좋아하고 있을 거다.

성해온은 쌓아놓은 인성 전적이 있어서, 뭐 이런 일로는 멤버들이 딱히 놀라워하지도 않는다.

‘앞으로도 내가 종종 입에 넣어줘야겠군.’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대체 어디서부터 정정해 줘야 하는 거냐며 아득해합니다!]

“……?”

뜻 모를 메시지에 물음표를 띄우고 있을 무렵, 대기실의 문이 열렸다.

드르륵-

“안녕하세요! 여러분, 김현이입니다.”

요즘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방송인이자, 오늘 쇼케이스의 진행을 맡아줄 분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말문을 열자, 다른 녀석들도 줄줄이 입을 열었다.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 저도……!”

“와아, 팬이에요! 오늘 진행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김현이는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이야, 다들 훤칠하신데 사회생활도 잘하시네요! 저도 오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 *

장내에 있는 기자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노트북을 들고, 기삿거리를 기록하는 쪽과.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기록하는 쪽.

각 신문사의 연예부 기자들은 익숙하게 자리에 앉아 기자 쇼케이스의 시작을 기다렸다.

기자들은 그 누구보다 무대를 먼저 볼 수 있는 특권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하아암. 언제 시작해. 지루해 죽겠네…….”

한 기자가 앉은 채로 입을 쩌억 벌리며 하품했다.

“그 소속사치고 돈 좀 썼네요? 여기 꽤 큰 홀인데, 여길 대관하고.”

“뭐, 요즘 화제성 있으니까요. 궁핍한 소속사도 아니잖아? 아, 서유현은 뭐 없나. 그쪽을 파야 하는데, 여기 있을 게 아니라.”

“MH하면 서유현이긴 하죠. 무슨 사생활이 그렇게 클린해?”

“쯧, 빨리 끝나기나 했으면 좋겠네. 쇼케는 항상 킬링 타임용 기삿거리치고는 너무 귀찮아.”

“요즘 뭐 재밌는 거 없어요?”

“있으면 제가 여기 왔겠어요?”

기자 쇼케이스 현장에서 기대감을 엿볼 수는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들의 직업은 연예부 기자.

날고 기는 연예인들을 취재하는 게 업인 사람들.

떠오르는 듯했다가 저무는 연예인은 한둘이 아니기에 별 기대가 없을뿐더러, 사실상 등 떠밀리듯 참석한 사람들이니까.

그냥 형식상의 기사나 몇 개 써 내려가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쇼케이스가 진행되자, 이들의 눈빛이 조금 바뀌었다.

“……!”

차차차차차차착!

타닥, 탁, 타다닥-

셔터 소리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더 빨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건 유인성도 마찬가지였다.

“허.”

헛웃음을 짧게 내뱉은 유인성은 빠르게 노트북을 두드렸다.

‘이거 생각보다, 더…….’

* * *

“……웅장해진다.”

오늘 쇼케이스가 진행되는 홀 앞에 우두커니 선 곽덕배는 시선을 올렸다.

스윽-

건물 외벽에 대형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이번 앨범 포토 컷으로 추정되는, 개쩌는 사진이었다.

“…….”

낡은 직장인의 피로가 한순간에 풀리기 시작했다.

건물 한편에서는, 기자 쇼케이스가 끝난 모양인지 기자들이 우르르 퇴장하고 있었다.

곽덕배는 기자들을 부럽다는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꼭 죽을 날을 받아놓은 것처럼, 매가리 없이 터덜터덜 걷고 있는 한 기자를 목격한 것이다.

‘……인생이 고달픈가 보네.’

그 인영이 여러 오타쿠의 원수인 유인성이라는 걸 알 리 없는 곽덕배는 안쓰러운 시선을 보냈다.

“양쪽으로 입장 줄 나눠서 서주실게요!”

울려 퍼지는 스태프의 외침에, 곽덕배는 조용히 입장 줄에 합류했다.

본격적인 팬 쇼케이스의 시작이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