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51화
‘저건, 설마……!’
흐릿한 형체만으로도, 물건의 정체를 대강 눈치챈 고인물 오타쿠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홀 앞에 선 스태프들이, 입장 직전의 팬들에게 무언가를 나눠주고 있었던 것이다.
‘명훈이 노망 왔나 봐……!’
곽덕배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김명훈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척!
곽덕배의 티켓을 확인한 스태프가 작은 종이곽을 내밀었다.
앨범의 디자인과 유사한 외관의 검은 박스.
이건 멤버들의 미공개 포토카드가 들어 있는, 포카 세트다.
그러니까, 입장 포카를 나눠준 것이다.
꿀꺽…….
침을 삼킨 곽덕배는 그것을 열기 무섭게 이마를 짚었다.
“…….”
진지하게 현기증이 일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방금은 가장 위에 있던 성해온의 윙크 포카와 눈이 마주쳤다.
여기서 포토카드를 살폈다가는, 코피 흘리며 쓰러지는 레전드 오타쿠가 될 수도 있겠다는 강렬한 예감에…….
스윽-
곽덕배는 그것을 얌전히 가방에 집어넣었다.
소식이 전해지자, SNS도 난리 법석이었다.
- 나 왜 못 갔어…?
- 입장 포카 지렸다 저거 플미 지리게 붙겠네 간 사람들 ㅈㄴ 부럽다
- 기획 미쳤나 봐 정규라고 힘 빡 주네
“내 말이.”
곽덕배는 중얼거리듯 읊조리며, 트윗에 공감의 하트를 눌렀다.
심지어 오늘 곽덕배의 자리는 무려!
……1열이었다!
‘로또 사야지…….’
홀로 감격하던 곽덕배는 더 이상 잡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와아아아아아악!”
사방에서 환호 소리와 함성 소리가 연이어 터졌다.
암전 된 무대 위, 대형 전광판이 켜진 것이다.
‘……뮤직비디오!’
여기저기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흥분감이 넘치는 현장에서, 이윽고 영상이 시작됐다.
어슴푸레한 빛이 스며든 어두운 공간.
화륵-
최승하의 손 위에서 불길이 타오름과 동시에, 텅 빈 눈동자 속에서 불길이 일렁였다.
벌써부터 스며드는 돈 냄새에 팬들이 감탄하고 있을 무렵, 붉은 조명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불규칙적으로 깜빡이는 조명이 위험한 느낌을 증폭시켰다.
동시에 완전히 새빨간 색으로 변한 머리칼.
그 순간, 등을 나른하게 기댄 채 앉아 있던 최승하의 얼굴에 클로즈업이 들어간다.
깜빡-
눈을 느릿하게 깜빡인 최승하는, 비뚜름하게 입매를 올리더니 첫 파트를 시작했다.
- FLAMMMM-E, MM
낮게 가라앉은 톤으로 시작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이어지는, 유니크한 느낌의 도입부.
그것을 기점으로 화면이 전환되며, 리드미컬한 멜로디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라이트온의 저번 앨범과는 완전히 다른 색이다.
강렬한 힙합 베이스의 멜로디.
그 위에 얹어진 트랩비트가 곡의 텐션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화면은 전환되며, 티저에서 봤던 익숙한 배경이 등장한다.
빠르게 움직이는 카메라가, 멤버들을 차례로 조명하기 시작했다.
철조물 같은 것들이 어지러이 쓰러져 있는 황량한 배경 아래에 있는 멤버들.
그 와중에 곽덕배는 기절 직전이었다.
퍼버벅!
스스로의 이마를 연타한 곽덕배가 아연한 얼굴로 시선을 고정했다.
‘의상, 의상이!’
그도 그럴 게, 몸에 딱 달라붙는 검은색 반목티와 정비공 슈트.
심지어 슈트 지퍼를 내려 허리에서 묶은 모양새였다.
타이트한 상의는 몸 선은 물론, 근육의 라인까지 보여주는 독기를 자랑했다.
성해온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의상이었지만, 그걸 알 리 없는 곽덕배는 경악했다.
이 의상을 생각해 낸 놈은, 누군지 몰라도 극악무도한 변태새끼가 틀림없었다.
눈을 부릅뜬 곽덕배는 익명의 변태새끼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복 받으세요…….’
류인은 공사장의 잔해와도 같은, 잡동사니 더미에서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켰다.
- 한계를 넘은 limitless
타오르는 mm-
‘중저음 개쩐다.’
언제 들어도 감탄만 나오는 목소리다.
꽤 높은 위치에서 단번에 뛰어내린 류인을 조명하던 카메라는, 순식간에 전환된다.
화르륵!
동시에 불길이 타오르는 소리가 멜로디에 녹아들었고, 등장한 건 차윤재와 성해온이었다.
둘은 무표정한 얼굴로, 위태로운 높이의 철 구조물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바닥쯤에서 촬영하는 것 같은 로우 앵글에 곽덕배는 감탄했다.
‘저 극악의 구도에서 찍어도 잘생기면 살아남는구나. 윤재는 그냥 높은 곳 좋아하는 아기고양이 아니으아아악, X발 나를 암살하려고.’
자연스럽게 주접을 이어가던 곽덕배의 사고회로가 정지됐다.
슈우우!
낮은 곳에 위치했던 앵글이 순식간에 수직으로 올라가더니, 클로즈업으로 성해온의 얼빡을 잡았기 때문이다.
- 끝없는 unlimit frame
그 속에 갇힌 flame
“……!!”
곽덕배는 짧은 찰나에 두 번이나 경악했다.
첫 번째로는, 성해온의 비주얼이 돌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연출이 그냥 미친놈이었기 때문이다.
끝없는 unlimit frame.
그러니까 ‘프레임’이라는 가사가 나옴과 동시에 철조물에 걸터앉은 성해온에게 클로즈업이 들어갔다.
물론 갑작스러운 얼빡에도 놀랐지만, 곽덕배가 놀란 이유는 따로있다.
순식간에 화면이 깨지며, 어딘가로 빨려들어 가는 듯한 연출이 섞이더니-
네모난 모니터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연출된 것이다……!
일전에 공개되었던 티저를 떠올려봤을 때, 이건 굴러가면서 봐도 세계관이 진득하게 녹아 있는 뮤직비디오가 틀림없었다.
쩌억…….
곽덕배의 입이 한없이 벌어졌다.
어두운 공간, 성해온이 비치는 대형 모니터 하나.
모니터 속 화면은 전부 흑백이었고, 노이즈로 인해 잘게 치지직거린다.
그 상태에서 시야가 점차 넓어지더니, 이내 수십 개의 모니터가 화면에 들어왔다.
……제각기 크기의, 셀 수도 없이 많은 모니터.
그 모니터들에 성해온만이 가득하니,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수십개의 모니터 속, 성해온이 고개를 돌리더니 감시 카메라를 정면으로 마주한 것이다.
성해온 특유의 서늘한 눈빛.
그와 동시에.
파앗-
……무언가의 압력을 받은 듯, 수십개의 모니터가 일시에 종료된다.
동시에 화면 전환.
방금까지 모니터 속에 비쳤던, 황폐한 공간이 등장함과 동시에.
콰아앙-!
……폭발.
무슨, 액션 영화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폭발이 이루어진 것이다!
곽덕배는 흘러넘치는 돈 냄새에 기함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쇼케이스에 참석한 팬들도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퍼버벅!
진정을 위해 자신의 이마를 다시금 강타한 곽덕배는 아연한 얼굴로 시선을 고정했다.
폭발로 인해 공간은 자욱한 안개로 가득했는데, 한 인영이 그것을 뚫고 나온다. 차윤재였다.
- 드디어 마주친 경계선
break it, break it
언뜻 해방감이 깃든 것 같기도 한 얼굴의 차윤재는 살풋 웃으며 누군가의 팔을 쭉 끌어당겼다.
그 손에 붙들려 나온 건 한수현이었고, 동시에 줌 아웃.
카메라는 여섯 멤버들이 자유롭게 달리는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노을 지는 하늘이 더해지며 화면에 자연스러운 슬로우가 걸린다.
아름답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만한 화면이 연출된 것이다.
그리고 카메라는 이내, 멈춰선 멤버들을 비춘다.
……탁.
길고 긴 쇠 막대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그들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죄수를 옥죄는 창살처럼, 그 아무도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는 듯이.
그리고 그 순간, 곽덕배는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 경계를 넘어선 flame
거칠 게 없는 mm
최승하의 손이 닿자마자, 그들을 가로막고 있던 것들이 형체 없이 녹고, 구겨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값싼 CG라면 보는 이가 오글거릴 만큼 별로일 텐데, 이건 정말 돈을 얼마나 발랐는지 예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의 고퀄리티였다.
……이쯤 되니 곽덕배는 그냥 울고 싶었다.
멤버들은 그 틈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그 뒤를 따라가던 한수현이 돌연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상체를 돌려 카메라와 눈을 마주쳤다.
-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flame
이제 겁날 리가 없지
동시에 화면이 전환되며, 알 수 없는 공간이 다시 등장했다.
수십 개의 모니터는 꺼져 있거나, 지직거리거나, 알 수 없는 오류가 떠올라 있다.
그 순간 한 모니터로 카메라의 시선이 고정된다.
타다다다닥-
……모니터 속, 비어 있던 검은 화면에 프로그래밍 언어가 빼곡하게 채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명령어가 모두 쓰여지기 전, 한 모니터가 켜진다.
“……!!”
터업!
곽덕배는 순간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곧바로 화면 전환이 되어버린 탓에 확실하진 않지만, 방금 그 모니터에 비춘 건-
‘……해온이잖아!’
전환된 화면, 노을 진 하늘을 비추던 카메라의 앵글이 점차 내려오더니 성해온을 조명하기 시작했다.
태양빛을 가리려는 듯, 손을 허공으로 올린 모양새.
배운 변태가 확실한 카메라 구도는 성해온의 손가락을 비추다가, 조금씩 내려와 얼굴을 비췄다.
- Alright
파트의 시작을 알리는 짤막한 단어.
……그 찰나에 주목을 이끌어내는 힘이, 성해온의 목소리엔 존재했다.
멜로디는 더욱더 에너제틱해지기 시작했고, 어택감까지 더해졌다.
- 눈부실 정도로 선명한 light
찬란한 미래를 draw it, try it (yeah)
“……!!”
성해온의 정신 나간 고음 파트에 관객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물론 가장 과몰입 중인 건, 곽덕배였다.
독보적일 정도로 유니크한 목소리로 깔끔하게 뽑아내는 고음.
심지어 고음의 절정에 다다를 무렵엔, 신유하가 합류하며 고음의 합을 맞추기까지.
……당장 눈앞에서 부르는 것도 아니고, 뮤직비디오일 뿐인데 모든 신경이 집중된다.
넋 놓고 그것을 바라보던 곽덕배가 흠칫, 몸을 떨었다.
뮤직비디오 배경이 저택 내부로 전환되며, 얼굴 공격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녹슨 샹들리에와 먼지 쌓인 소파.
꽤 오래 방치된 것 같은, 고즈넉한 저택을 돌아다니던 신유하가 갑자기 다가와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밀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뮤비 속 의상도 하늘하늘한 느낌의 블라우스와 핏한 바지로 바뀌었다.
심장이 떨리는 건 곽덕배만이 아닌지, 얼굴 공격에 놀란 팬들의 거친 숨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화면에 얼굴이 가득 찰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신유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살풋 기울였다.
그리곤 손을 들어 화면에 가져다 대기 시작했다.
손이 다가올수록, 화면이 점차 어두워진다.
스륵-
신유하의 손으로 화면엔 완전한 어둠이 찾아왔고, 동시에 화면 전환.
여섯 멤버의 등이 비쳐진다.
대저택의 복도 끝.
그들의 시선이 닿는 곳은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었다.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발을 내딪는 멤버들 사이에서 최승하가 등을 돌렸다.
- 기억할 테니
기억해 줘 my flame
멤버들을 비추던 카메라는 빠른 속도로 줌아웃.
……끼이이, 콰앙-
아무런 인기척 없이 비어져 있는 저택의 대문이 느릿하게 닫히며 뮤직비디오는 끝이 났다.
“……와아아아아악!”
새된 비명이 한 템포 늦게,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물론 곽덕배라고 다를 건 없었다.
두근, 두근, 두근.
곧장 쇼케이스의 진행자가 등장했으나,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만큼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정말 말문이 막혀 버리는 뮤직비디오였다.
곽덕배는 속으로 거의 오열 중이었다.
노래는 말해 뭐 해 좋았으며, 멤버들은 그것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게다가 오타쿠의 심금을 울리는 세계관까지.
뮤직비디오 중간중간에 적절하게 삽입된 군무도 엄청났었다.
……게다가.
두근!
누군가를 떠올릴 때마다, 곽덕배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이 엄청난 얼굴들 중에선 목에 칼이 들어와도 최애를 고를 수 없다는 신념 하에, 지금까지 곽덕배의 최애는 공석이었다.
뮤직비디오 속, 성해온의 개쩌는 은발을 봤을 때부터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치긴 했지만…….
아득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곽덕배의 귓가에 엄청난 함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악!”
라이트온이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심지어 뮤비 속, 독기 넘치는 의상을 그대로 입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