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54화
“자네.”
무의식 속에서, 어렴풋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장은 눈이 떠지지 않지만,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건, 온통 새하얗고 끝이 보이지도 않는 텅 빈 공간이었다.
“이거 서운하다네. 일부러 이쪽을 봐주지 않는 겐가?”
“…….”
역시 착각이 아니었다.
이건 분명,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라는 수식언으로 나타나는 성좌의 목소리다.
일전에 들은 적이 있어서, 확실하다.
‘……눈 마주치지 말자.’
제정신 아닌 성좌인 건 확실하니, 얼굴 봐서 좋을 게 없다.
나는 필사적으로 시선을 허공에 고정했다.
바로 그 순간.
휘익!
내 몸이 정확히 반 바퀴 돌려졌다.
……아무것도 닿지 않았는데, 몸이 바닥에서 몇 센티 붕 떠오르더니 그대로 움직인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얼굴을 강제로 마주했다는 뜻이다.
“반갑다네~”
문제는 얼굴이…….
스륵-
“자네는 이 얼굴을 좋아하나?”
신유하.
스륵-
“아니다. 이 얼굴?”
차윤재.
스륵-
“흐음, 이 얼굴이 이야기하기는 좋으려나.”
……이해성.
이해성의 얼굴을 한 성좌가 빙그레 웃었다.
소름 돋을 만큼 닮은, 아니, 똑같은 얼굴로.
내 앞으로 걸어온 성좌가, 그대로 주저앉더니 나와 눈을 마주쳤다.
“반응이 영 재미없군그래. 좀 더 귀여운 반응을 보여줄 줄 알았는데.”
“당신이 한 짓이야?”
“아하하하하! 그래, 그래. 이렇게 나와야 내가 아는 자네지. 애석하게도, 그건 아니라네.”
눈앞의 인영은 샐쭉 웃었다.
“따지자면, 자네를 위해 친히 고생한 거라고 해두겠네. 저번 만남은 목소리밖에 전할 수 없어서 아쉬웠지 뭔가.”
“날 위해서?”
“그래. 자네를 위해서.”
나를 빤히 바라보던 성좌가 이내 폭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핫! 아, 자네의 이 눈빛!”
화악-!
순식간에 다가와 내 턱을 잡아 올린 성좌가 말을 이었다.
“그래, 이 눈빛이 마음에 든다네.”
“당신이 한 짓이 아니라면, 지금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흐음, 소리를 낸 성좌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하나만 말해두지. 자네에게 해를 끼치려는 이유는 아니야. 도움이라면 모를까.”
……도움?
혼자 있을 때도 아니고, 하다못해 숙소에 있을 때도 아닌.
그 많은 사람이.
……팬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그렇게 만든게.
도움?
“하하, 재미없네요.”
가라앉은 눈을 데굴 굴린 나는, 성좌와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성좌님은, 재미있으세요?”
“그럴 리가. 난 이런 얼굴의 자네에겐 전혀 흥미가 동하지 않아.”
나는 조용히 눈앞의 인영을 바라봤다.
의문이 들 정도로 내게 관심을 보이는 존재.
“아하, 바뀌는 외관이 신기한 겐가?”
“그 생각을 한 게 아니라는 걸 아실 텐데.”
“나는 방금 전, 자네의 궁금증엔 답을 줄 수 없거든. 그러니 이해해 주면 고맙겠네.”
내게 다가온 성좌가 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바라는 얼굴이 있다면 말해보게. 어울려주지. 자네의 부모님도 괜찮겠지.”
“…….”
“그리워했지 않나.”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은 속내를 들키는 건, 언제 겪어봐도 X같군.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맞은편 인영과 눈을 마주쳤다.
“왜 본체를 드러내지 않고?”
“내 본체를 드러내면, 자네의 몸은 그걸 감당하지 못하고 터져 버릴 걸세. 이건 내 나름의 배려지.”
성좌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쉽기도 하다네~ 난 꽤 잘생겼거든.”
“당신이구나.”
“흐음?”
“혹시나 싶었는데, 이제야 알겠군. 대체 왜? 무슨 이유로?”
“무엇을? 말해줘야 알지 않겠는가~”
나는 곱게 눈을 접어 웃었다.
“다 알면서, 같잖은 연기 집어치우시죠. 성좌님.”
“아하하하하하! 그래, 그래. 알겠네. 그 인간 아이 말이지?”
“……어째서 그런 짓을 벌였지? 무슨 목적으로?”
“그야, 자네가 눈엣가시처럼 여기지 않았나. 내 자네를 아끼는 입장으로서, 꼭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태오를 아니꼽게 생각했던 건 사실이다만, 이건 그와는 다른 문제다.
“나는 자네가 고마워할 줄 알았는데, 생각과는 다른 반응이군그래.”
“왜 그랬냐고 물었습니다만.”
“나는 자네에게 잘 보이고 싶어.”
“겨우 그 이유로,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다고요.”
사실을 안 지금도, 태오가 불쌍하진 않다.
나는 그 정도로 자애롭지 않거든.
단지…….
“인간계에 큰 개입은 할 수 없는 줄 알았는데.”
이 존재들이 얼마나 큰 개입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만 일 뿐.
“아하하하하하핫! 역시, 역시!”
긴 손가락으로 자신의 턱을 쓸어내린 성좌가 말을 이었다.
“흥미롭다네.”
“말 돌리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자네에게 꿍꿍이가 있어 그런 짓을 한 건 아니야. 그렇다고 말해줄 수도 없다네.”
“……?”
내가 황당하다는 얼굴을 걸치자 성좌가 빙그레 웃었다.
“금제가 걸려 있거든.”
이 전지전능한 존재들에게도, 금제가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금제만 ■■■다면 ■깟 ■■ ■■■ ■■]
[ERROR ERROR ERROR!]
[시스템 오류!]
[일시적으로 연결이 종료됩니다.]
그거야 이 몸에 들어왔을 때부터 눈치챘으니까.
오류 메시지와 함께 금세 사라졌다만, 똑똑히 봤다.
이들은 신이면서도, 인간계에 커다란 간섭은 할 수 없다.
할 수 있었으면 이까짓 망돌, 단숨에 1군 만들었겠지. 뭣 하러 날 써?
그렇기에 여태껏 이 존재들에 별다른 생각을 품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말이 달라지지.’
태오의 사건이 터졌을 때부터, 어렴풋이 의문은 품고 있었다.
그렇지 않은가.
클럽과 호텔을 드나드는 연예인들은 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얼굴을 대놓고 까고 다니는 놈은 없지.
약이라도 빨지 않은 이상, 그런 짓을 하는 놈은 없다는 뜻이다.
내가 아는 태오는 열등감에 찌든 새끼지만, 그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고 말이다.
그래서 의심은 품었으나, 증거도 뭣도 없으니 그냥 넘어갔다.
짜증 나는 놈이 사라졌으니, 오히려 좋기도 했고.
이득도 봤으니.
나는 곧바로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고맙습니다.”
“호오?”
“하지만 한편으로 기분이 더럽기도 하네요. 제가 부탁드린 것도 아닌데, 왜 굳이 그러셨는지 의문도 들고.”
“말했지 않는가? 자네-”
“저 같은 인간 나부랭이한테 호감을 얻고 싶어서, 금제까지 거스르셨다는 말은 마시죠. 안 믿기니까.”
나는 곧장 말을 이었다.
“그래서, 목적이 뭔가요? 이딴 시시껄렁한 이야기 말고, 본론을 말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어차피 전 죽은 게 아닐 테니까, 서둘러 돌아가고 싶거든요.”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올린 성좌가 말을 이었다.
“그래. 자네는 죽지 않았어.”
스륵-
동시에 성좌는 얼굴을 바꿨다.
이해성의 얼굴에서, 최승하의 얼굴로.
최승하의 얼굴로 활짝 웃은 성좌가 말을 이었다.
“방금 전 얼굴은, 조금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 내 착각인가?”
“……뭐든 괜찮으니, 질문에 답을 해주시죠.”
“우선 자네가 물었던 개입이 가능한 범위는, 웨에에에에엑~!”
주르륵!
성좌의 입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각혈 수준이 아니라, 배때기가 뚫린 것처럼 말이다.
“……?”
“그 눈빛은 상처가 되니 치워주게. 이게 바로 금제의 일부라네. 나 역시 금제에선 자유롭지 못한지라, 이 이상은 말할 수 없는 모양이군.”
타앗-!
성좌가 손가락을 튕기자, 흐른 피로 범벅됐던 얼굴이 순식간에 멀끔해졌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으니, 말할 수 있는 걸 알려주겠네.”
의문을 담아 바라보자, 성좌가 말을 이었다.
“우선, 이 자리. 나는 자네를 돕기 위해서 불러낸 거라네.”
“도와?”
“그래, 자네 몸 안에서 충돌이 생겼거든.”
화사하게 웃으며 주먹 두 개를 맞부딪힌 성좌가 말을 이었다.
“원래라면 자네는 진작 쓰러졌을 거야. 흐음, 인간계의 시간으로는…… 아흐레 정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거라네.”
사아아아-
경악한 건 내 쪽이었다.
……9일?
정규활동이 당장 내일부턴데?
이게 무슨 헛소리란 말인가.
나는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충돌은 뭐고, 제대로 설명해 주세요.”
“걱정 말게. 내 친히 충돌을 막아줄 의향이 있으니.”
씨익 웃은 성좌가 말을 이었다.
“자네의 그, 마음대로 죽을 수 없는 몸이 문제가 되는 거라네.”
“……이 몸이?”
“그래. 그 특성은 대가를 가져가야 하는데, 자네의 몸이 생명력을 한 푼도 내어주지 않으니 충돌이 생긴 게지.”
……대가? 생명력?
죄다 처음 듣는 이야기다.
아마 여기서 말하는 특성은 [불면은 나의 힘(A)].
나는 골똘히 생각을 이어가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음, 한마디로 X된 거다?”
싱긋…….
나는 웃는 낯으로 곧장 최승하 얼굴을 한 성좌의 멱살을 틀어 올렸다.
“너 뭐야?”
“푸하하하하하! 나는 자네가 정말 좋다네~ 인간 주제에, 무섭지도 않은지 바락바락 대드는 게 참, 귀엽지 않은가!”
나는 맑게 웃으며 대꾸했다.
“어차피 쓸모가 있는 한, 날 죽일 리도 없는 작자들이 무서울 리가. 차라리 징그러운 벌레가 더 무섭겠는데.”
나는 웃고 있는 눈 아래로 최승하의 얼굴을 한 성좌를 훑었다.
당장에라도 내 손목을 아작 낼 수 있으면서, 멱살 잡혀 있어주는 꼴이.
……잡혀 있어주는 꼴이.
‘우습군.’
뭐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
순식간에 기분이 더러워졌다.
탁!
던지듯 내려놓자, 성좌가 우는소리를 냈다.
“아야야~ 자네는 은근히 잔인한 면이 있다네!”
……그 특성을 받았을 때, 분명 이 성좌가 개입했었다.
보상 산정 과정에 힘을 썼다며 스스로 떠벌렸던 메시지를 봤던 기억이 있으니 확실하지.
분명 고의적인 일일 터.
“무슨 이유로 그러는 건지 말해. 그 특성, 당신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지? 내 몸이 이 지랄 날 거라는 것 까지도 계산했겠고.”
“흐음. 그건 아마 말 못 할 것 같다만, 자네를 위해서 시도해 보겠네. 그 특성은 말이지, 우웨에에에엑~”
주르륵!
성좌가 피가 흐른 입가를 핥짝이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이번에도 핏자국이 순식간에 지워졌다.
“역시 안 되는 모양이군. 자네는 영특하니,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답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럼 다르게 질문한다면?”
“자네, 내가 피를 토하다가 죽는 꼴을 보고 싶은 겐가? 민감한 질문은 삼가주게.”
“어차피 뒈지지도 않으면서.”
“자네는 이런 점이 참 매력 있다네~”
실실 웃고 있는 성좌와 시선을 마주한 나는 눈을 휘어 접어 웃었다.
“성좌님이 백번을 토하든 말든, 그다지 안쓰럽지 않으니 될 때까지 말해주셨으면 합니다. 열받아서 대가리가 안 돌아가거든요.”
“그건 조금 곤란하다네. 금제가 발동될 때 기분이 조금 더럽거든.”
나는 속으로 욕을 짓씹으며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피차 시간 낭비할 필요 없이 말해보세요. 이렇게 불러낸 걸 보면, 목적이 있으실 테니.”
“이야기가 빨라서 좋군그래. 내 부탁을 들어준다면, 자네의 몸에 발생한 문제를 친히 해결해 주겠다 약조하지.”
나는 눈을 데굴 굴려 싱글벙글 웃고 있는 성좌를 느릿하게 훑었다.
아하.
역시 나한테 원하는 게 있구나.
그리고 그건 아마 내게 강제할 수 없는 종류의 무언가.
그러니, 거래를 하자는 거다.
나는 곧바로 화사하게 웃었다.
“싫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