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56화
다다다다다!
난데없이 달리기 시작하자, 뒤에 있는 놈들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나는 화장실 쪽으로 발을 내디디며, 문을 거세게 닫았다.
동시에 작게 욕을 짓씹었다.
……안에서 잠글 수 없게 되어 있다.
골드 상점을 뒤져보면, 잠글 수 있는 아이템쯤이야 찾을 수 있겠다만 그럴 여유조차 없다.
발소리가 지척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호러가 따로 없군.’
나는 곧장 칸 하나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드르륵-
철컥.
적어도 이 문은 닫을 수 있지.
문이 닫히기 무섭게, 다른 녀석들이 들어왔다.
“형님! 가, 흐웁, 허억. 갑자기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십니까!”
“해온아, 괜찮아? 나와봐.”
화장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멤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쇼케이스가 끝났다지만, 평소 같았으면 팬들에게 끝까지 인사했을 내가 허겁지겁 뛰쳐나갔으니 걱정될 만도 하지.
슥, 스슥, 슥!
하지만 공감과는 별개로, 나는 다급하게 골드 상점의 스크롤을 내렸다.
‘내 팔자야, X발.’
피로 떡칠된 얼굴과 옷을 보여줄 수는 없다.
다행히 검은색 상의는 얼룩이 보이지 않는다만, 얼굴은…….
화장지로 피가 멀끔히 닦일 리 없었다.
물티슈 하나만 있었어도.
나는 이를 바득 갈며, 아이템 하나를 노려봤다.
[얼룩 싸악~ 만능 클리너!]
관련된 게 이거밖에 없다.
빌어먹을.
광범위한 얼룩을 모두 지워주는, 꽤 효과가 좋은 아이템이지만!
‘……나는 얼굴 정도만 닦으면 된다고.’
나는 입술을 물어뜯으며 고민에 잠겼다.
‘……그냥 코피가 났다고 하는 건?’
어차피 이제 개복치 라이프가 시작될 것 같은데, 이거 하나 숨긴다고 달라질까.
-와 같은 생각이 불쑥 머리를 들이밀었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털었다.
이것까지 보여주면 어떻게 될지 미래가 그려졌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던가.
“형, 나와요.”
다정한 듯하지만, 평소 같지 않은 목소리.
“음.”
나는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이 새끼, 개빡쳤다.
똑똑.
작은 노크 소리가 이렇게 호러틱할 수도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듣고 있어요? 문 강제로 열면 싫어할 거잖아요. 형이 열어요.”
목소리만 들어도 빡침의 깊이가 느껴지는군.
싱긋…….
조용히 버튼을 누르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구매가 완료되었습니다!]
“…….”
쓸데없이 광범위한 덕에, 건물 전체가 적용 가능 대상으로 잡히더라.
200골드나 쓴 아이템으로 내 얼굴 얼룩만 지우는 건 아까우니, 하는 김에 건물까지 청소하도록 하자.
……청소하시는 직원분이 조금이라도 편하시겠지.
좋은 게 좋은 거다.
나는 긍정회로를 팽팽 돌리며 아이템을 사용했다.
스으으-
정말 신기하게도, 손에 덕지덕지 묻어 있던 핏자국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얼굴을 매만져 보니, 이쪽도 깨끗해졌다.
핏자국이 사라졌음을 확인한 나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형님! 괘, 괜찮으신 겁니까? 어디 불편하신 곳이라도 있으신지!”
“해온 형, 어디 안 좋으신 거 아닌가요? 대충이라도 말해주시면, 약을 사 올게요.”
“마, 맞습니다! 약을 사 오겠습니다!”
두 막내놈을 포함한 멤버들이 무어라 걱정을 이어갈 동안, 나는 태연자약한 낯짝을 걸친 뒤 세면대로 걸음했다.
“유난은, 멀쩡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따라오는 놈들이 어딨어.”
솨아아-
흐르는 물에 손을 씻으며, 힐끔 거울을 올려다본 나는.
“……!”
서둘러 시선을 내리깔았다.
정신력이 낮았다면, 분명 입 밖으로 이상한 소리가 튀어 나갔을 게 분명하다.
그만큼 서늘한 기세의 최승하가 거울로 나를 훑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 눈 마주치지 말자.’
나는 굳게 결심하며 손 세정제를 쭉 짜냈다.
어차피 핏자국도 지운 거, 나는 거리낄 게 없다.
탁!
수도꼭지를 잠근 나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손을 털며 몸을 돌렸다.
바로 그 순간.
“형.”
커다란 보폭으로 순식간에 다가온 최승하가 상체를 숙이더니, 내 귓가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나는 당황스러움을 티 내지 않으려, 녀석을 흘겼다.
“뭐해? 비키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피 한 방울을 봤는데, 제가 잘못 본 걸까요?”
눈을 사르르 접어 웃은 최승하가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잘못 본 거겠죠? 지금 형은, 이렇게나 멀쩡한데.”
사아아-
서늘한 분위기에 몸이 쭈뼛 굳었다.
“…….”
내 볼을 쓸어내린 최승하가 어서 대답해 보라는 듯, 작게 물었다.
“형, 그렇죠?”
“……그래.”
“으음, 계단에선 발을 헛디딘 거라 할 테고.”
몸을 숙인 최승하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뒤에서 그렇게 부르는데도, 뛰어온 이유는 뭘까. 어차피 형 입에선 제가 원하는 대답이 안 나오겠지만요.”
헤실 웃은 최승하가 내 어깨에 팔을 올렸다.
“이번에도 제가 믿어주길 바라요?”
“……믿고 안 믿고 할 게 어딨지? 애초에, 다치지도 않았는데.”
“으하핫, 그래요?”
역시 최승하, 이놈 눈치는 곤란할 정도로 좋다.
분명 웃고 있는데도, 날카로운 분위기에 내가 할 말을 고르고 있었을 때 쯤.
짜악!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경쾌하고도 차진 소리가 울려 퍼졌다.
터벅터벅 걸어온 차윤재가 최승하의 등짝에 스매싱을 날린 것이다.
“제가 형님 때문에 아주 미치겠습니다! 수명이 줄어드는 기분입니다!”
세면대와 멤버들 사이의 거리는 꽤 있었던 데다가, 최승하가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기에 대화 내용은 전혀 들리지 않았을 거다.
……차윤재가 보기엔, 최승하가 곧 뒈질 것 같은 낯짝을 걸친 내게 엉겨 붙는 걸로 보였던 모양.
“척 봐도 안색이 이리 나쁘신데!”
차윤재가 나를 가리키더니, 눈을 부릅뜨며 최승하의 등짝을 한 대 더 때렸다.
“휴식을 드리진 못할망정! 으휴. 형님이 매달리면 얼마나 무거운 줄 아십니까?!”
차윤재, 나이스다.
“그럼 윤재가 형 업어주면 되겠다. 그치이~?”
“형님은 업히시려면 돈 내고 업히십시오! 으아악!”
차윤재에게로 몸을 던진 최승하가 능글맞게 입술을 쭉 뺐다.
“택시비는 뽀뽀로 대신할게요. 기사님~”
“으아아악! 저리, 저리 가십시오! 징그럽습니다!”
“뭐? 내가 징그러워?”
“그, 그런 뜻이 아니라……!”
“그럼 움쪽쪽~!”
“으아아아악!”
차윤재의 비명이 울려 퍼졌고,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대기실로 향했다.
‘너의 노고는 잊지 않으마.’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의 아름다운 양심에 감탄합니다!]
* * *
“내일부터 사녹 스케줄 시작이니까 오늘은 숙소 일찍 들어가서 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떠실까요.”
매니저의 제안에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연습-”
“스으으읍!”
한수현의 말을 끊은 최승하가 녀석의 어깨 위에 팔을 둘렀다.
“막내, 쓰러져~”
“승하 말이 맞아. 수현아. 오늘은 들어가자.”
“저 괜찮아요. 이러다가 실수라도 하면…….”
나는 그런 녀석을 조용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요즘 안무 늘었던데. 희승 쌤도 칭찬했잖아.”
“맞아요……!”
“형님 말이 맞습니다! 습득 속도도 전보다 빨라진 것 같습니다.”
멤버들이 곧장 동의했다.
실제로 그럴 거다.
한수현의 그림자가 사라지면서, 여러 스탯이 올랐는데 그중 춤 스탯도 포함됐으니까.
심리적인 부담감이 해소되며, 자연스레 본실력을 찾게 된 것이다.
“내일부턴 제대로 자지도 못할 텐데, 오늘은 쉬자.”
말을 마친 나는 곧장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톱스타패치 유인성.
기사 아래에 있는 그의 메일 주소로 메일을 보내자,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답장이 도착했다.
[대체 원하는 게 뭔데 이러시는 건가요? 돈이라면 드릴 테니 이러지 마시죠.]
나는 맑게 웃으며 답장을 써 내려갔다.
타닥타닥…….
“저 형님, 표정이 이상합니다! 무섭습니다!”
“쉿, 쉿. 윤재야! 조용히 해. 다 들린다!”
“해온이가 저렇게 웃는 거 오랜만에 보네.”
“해온 형이 행복해 보이시니, 저까지 행복하네요. 이게 바로 가족이라는 걸까요?”
“저건 우, 웃는 게 아닌 것 같은데…….”
멤버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탁!
음습한 미소를 지으며 전송을 마친 나는, 히죽 웃었다.
* * *
“유 기자! 무슨 기사를 그렇게 정성껏 써?”
“네? 하하, 네.”
동료 기자가 상체를 숙여 유인성의 모니터를 바라봤다.
“음? 아이돌? 유 기자는 이런 거 돈 안 된다고 싫어하잖아.”
“그랬죠…….”
“평소엔 대충 사진이랑 몇 자 적고 땡인 사람이, 무슨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하하.”
이쯤 되니 유인성은 그냥 울고 싶었다.
“게다가 라이트온? 얘넨 조회 수도 크게 안 나올 텐데 허참, 무슨 기사를 그렇게 길게 써?”
“감명 깊더라고요…….”
“응? 참 별일이네. 그래, 수고해.”
동료 기자는 끝까지 자신을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탁! 탁! 타닥! 탁탁!
분노의 타이핑을 끝낸 유인성은 옆자리에 앉은 기자에게 손짓했다.
“이거, 기사 괜찮아요?”
“괜찮을 게 뭐 있어요? 어차피 그냥 쇼케이스 기사잖아.”
“아니, 제 말은 이 정도면 당사자가 흐뭇해하겠냐는 말이에요.”
유인성의 말에 기자가 물음표를 띄웠다.
“당사자? 라이트온이?”
“네.”
유인성의 대답에, 옆자리의 기자가 고개를 느릿하게 갸웃거렸다.
“……? 이렇게 장문으로 찬사를 적어놨으면 당연히 마음에 들어 하겠죠?”
씹다 뱉은 껌과 같은 안색의 유인성은 고개를 끄덕인 뒤, 터덜터덜 복도로 걸어 나왔다.
폭삭…….
소파에 주저앉은 유인성이 머리칼을 헤집었다.
‘잘못 걸렸어…….’
그것도, 아주, 아주, 아주, 제대로 미친놈한테 걸렸다.
……보통 이런 상황에선 돈 달라고 협박하지 않나?
성해온의 답장을 떠올려 버린 유인성은 눈을 질끈 감았다.
[돈은 필요 없습니다.]
[저는 기자님과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 기사 잘 부탁드릴게요.]
[아, 친구라면 앞으로도 신경 써 주시겠죠? 궁금한 연예계 이야기라든가.]
해석하자면, 궁금한 일이 생겼을 때 내가 자기 대신 뒤를 밟으며 따까리 노릇을 하라는 거다.
메일을 받자마자 대로한 유인성은 답장을 보냈었다.
[이보세요. 저도 바쁜 사람입니다. 기사야 잘 써드릴 수 있고, 아는 이야기 정도야 해드릴 수 있지만, 그 이상의 것은 바라지 마십시오.]
그리고 총알같이 날라온 답장은…….
[혹시 많이 힘드신가요? 친구로서 걱정되네요. 스트레스의 원인은 아무래도 직장인 걸까요? 제가 언제든 관두실 수 있게 도와드릴 수 있으니, 힘들면 말씀해 주세요.]
“이, 이, 이 미친 새끼!”
다시 생각해도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유인성은 발을 세차게 굴렀다.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녹음본을 풀어 기자 인생 쫑나게 해주겠다는 거다.
기자 인생만 쫑나면 다행이게?
이게 밝혀지면 최소 재판이다.
거대 신문사의 파파라치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일개 개인이 기획사를 상대로 협박했다는 게 드러나면 정말 X된다.
띠링!
바로 그때, 새 메일이 도착했다.
……발신인은 성해온이었다.
[기사 잘 봤어요. 역시 친구는 참 좋은 거네요. 다음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영상)]
첨부된 영상은 자신이 BK를 상대로 협박 전화를 하고, 낄낄대면서 혼잣말을 하는 영상.
영상을 재생한 유인성의 낯짝이 눅눅해져 갔다.
‘제대로 찍었구나.’
심지어 이 새끼 메일, 철저하게 익명으로 만든 메일이다.
‘……아무래도 협박용으로 하나 만든 것 같지?’
그 어디에도 본인의 신상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게…….
“죽을까?”
유인성은 창가에 상체를 기댄 채 밝게 웃었다.
“그래, 죽자.”
휘이잉!
서늘한 바람이 유인성의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담배를 꺼내 문 유인성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전공 잘못 찾았어…….”
내가 보기엔, 그 새끼.
연예인 아니라 기자 해야 해.
공갈협박에 아주 재능이 있어.
재능이…….
X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