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57화
슥, 슥…….
나는 스크롤을 내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평소 유인성의 기사와 비교했을 때, 동일 인물이 썼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정성이었다.
이내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나는, 주머니에서 작은 쪽지를 꺼냈다.
[즐거웠다네.]
멤버들을 피해 도망친 화장실에서 발견한 거다.
손에 쥐어져 있더라고.
인지하자마자, 꼭 대가리에 얼음물이라도 쏟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착각이나 환상 따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 공간에서, 성좌는 내가 알아듣기 힘든 말들을 이어가며 내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
- 흐음, 자네의 생각은 아주 읽기 쉽단 말이지. 내 친히 도와주겠다네.
이 말과 동시에 수십 개의 보랏빛 마법진이 내 주위로 떠올랐었고.
나는 곧장 혀를 찼다.
‘읽기 쉽긴, 지랄.’
척 봐도 그 공간에서 있었던 일을 다른 성좌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거다.
아마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생각도, 이계의 존재들에게 읽히지 않을 테지.
그 일과 관련된 생각은 백번 천번을 한대도, 차단될 거라는 소리다.
원래 이런 뚱딴지같은 생각을 하면, 성좌들의 메시지가 떠올라야 정상인데 지금은 고요하지 않은가.
‘대체 무슨 속셈인지.’
지끈지끈 울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른 나는, 조수석 시트에 몸을 기대며 다른 생각을 이어갔다.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교주의 아우라(S)]
: 교주의 권한으로 지배력이 200% 상승합니다!
포교 활동을 통해 신도를 모을 수 있습니다!
신도의 수에 따라, 당신의 영향력이 거세집니다!
‘신도’의 정체에 대해서는 꾸준히 의문을 품고 있었으나, 오늘에서야 확실히 알게 됐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살피지 못했는데, P의 정체는 추측대로 포인트였다.
1,570P
……팬들이 보내주는 애정을 수치화한 건가.
포인트 나름대로의 쓸모도 분명 있겠지만,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골드는 눌렀을 때 상점이 떠오르지만, 이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거든.
설명은 당연히 없고.
가느스름한 눈으로 포인트를 째려보고 있던 순간이었다.
어지러운 띠링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좌, ‘황금의 신’이 입맛을 다십니다!]
[수식언을 공개하지 않은 다수의 성좌가 이건 말도 안 된다며, 의문을 제기합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물물교환을 요청합니다!]
“……?”
난데없이 떠오른 메시지에 물음표를 띄운 것도 잠시, 나는 히죽 웃었다.
쇼케이스 무대 위, 포인트 관련 메시지가 처음 떠올랐을 때부터 대충 눈치는 챘다만…….
‘이게 탐나는 모양이지?’
그렇다면, 이 특성을 뽑았을 때부터 밸런스가 안 맞는다니 뭐니 원성을 보낸 게 이해된다.
인간들의 신심이 비롯된 신앙으로 신들의 영향력이 결정된다는 이야기는 아주 그럴싸하지 않은가.
나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진정시킨 채.
반짝반짝…….
허공으로 빛나는 시선을 올렸다.
‘얼마에 사실 건가요?’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고민합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200포인트당 100골드를 제안합니다!]
동시에 내 눈이 약간 커졌다.
……이 정도로 쳐준다고?
쇼케이스 한 번에 1,570포인트를 얻었다.
제안받은 계산대로라면, 이 포인트는 700골드 이상의 가치.
나는 올라가는 입매를 손으로 가린 뒤, 히죽 웃었다.
이건 정말…….
‘밸런스 붕괴 특성이군.’
내 힘으로 골드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과 다름없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서둘러 거래하길 원합니다!]
[성좌, ‘황금의 신’이 부러워하며 자신과 거래하자고 합니다! 본신은 저 작자보다 골드가 많다고 으스댑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자신이 먼저였다며 코웃음 칩니다!]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바라보며 나는 화사한 낯짝을 걸쳤다.
‘안 팝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뒷목을 부여잡습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지금 본신을 놀린 거냐며 격분합니다!]
대강의 시세를 파악하게 해주신 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만…….
이렇게 친히 원하는 티를 내주신다면, 값을 올리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대체 누구 편인 거냐며 황당해합니다!]
어차피 지금은 골드가 급하지도 않다.
미션 클리어 보상으로 무려 10,000골드나 받았거든.
‘상태창.’
[성해온]
체력 B-
정신력 S+
비주얼 A-
노래 A
춤 B-
특성
▶[교주의 아우라(S)]
▶[K팝 망령의 눈(A)]
▶[불면은 나의 힘(A)]
진행 중인 미션
▶망돌의 그림자를 없애라!
보유 골드 9,900G
주머니가 넉넉해지니, 마음이 몹시도 풍요로워졌달까.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을 강하게 내려다봅니다!]
나는 밝게 웃으며 메시지를 무시했다.
골드를 받았으면, 나를 위해 사용해 주는 게 인지상정.
나는 곧바로 골드 상점에 접속했다.
[교주의 아우라(S)]덕인지 특성에 대한 욕심은 그다지 들지 않아서, 스탯 위주로 보정하기로 결심했다.
원하는 아이템을 찾은 내 안색이 빠르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확률별로 가격에 차등이 있을 거라곤 이전부터 확신했지만, 실제로 보니 더 열받았기 때문이다.
골드 상점은 양아치의 표본답게, 골드가 없으면 그만한 가격의 상품을 보여주지 않는다.
지금 잔고가 넉넉해지니, 처음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
60%의 확률을 자랑하는 쿠폰은 3,000G.
80%는 4,000G.
100%는 5,000G다.
“…….”
이해성이 확률 게임에 목숨을 걸 때는, 정말 이해가지 않았으나 내 인생이 확률에 달리니 이야기가 달라지더라.
……이젠 이해가 간다.
나는 심각한 고민 끝에, 80%로 마음을 먹었다.
마음 편하게 100%로 가면 좋겠다만, 80%도 충분히 높은 확률이다.
게다가 난 운이 좋은 편이니.
[구매가 완료되었습니다!]
[구매가 완료되었습니다!]
……꿀꺽.
이렇게 큰 소비는 해본 적이 없는지라, 굉장히 가슴이 떨린다.
[적용시킬 스탯을 선택해 주세요!]
체력
정신력
비주얼 ◀
노래
춤
하나는 당연히 비주얼에 투자한다.
현재 성해온의 비주얼은 아이돌 업계에서 명백한 상위권이지만-
아이돌은 첫째도 얼굴, 둘째도 얼굴, 셋째도 얼굴이라는 이해성의 지론을 믿어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체력에 투자한다.
[적용시킬 스탯을 선택해 주세요!]
체력 ◀
정신력
비주얼
노래
춤
내가 살다 살다 체력에 스탯을 분배하게 될 줄은 몰랐다만, 어쩔 수 없다.
몸이 지랄 맞게 안 좋아졌다는 걸, 심각할 정도로 체감 중이거든.
당장 지금도 말이다.
“……후.”
[해당 스탯의 업그레이드가 진행됩니다!]
[해당 스탯의 업그레이드가 진행됩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바로 그 순간, 내게만 보일 게 틀림없는 빛무리가 연거푸 터져 나왔다.
[업그레이드 성공!]
[업그레이드 성공!]
……됐다.
떠오른 메시지를 본 나는,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하나라도 실패하면 그 즉시, 세면대에 얼굴을 박을 생각이었는데 말이다.
[시스템이 경악합니다!]
[시스템이 더 이상 시말서를 쓰고 싶지 않다며 울부짖습니다!]
나는 곧장 상태창을 불러냈다.
[성해온]
체력 B
정신력 S+
비주얼 A
노래 A
춤 B-
특성
▶[교주의 아우라(S)]
▶[K팝 망령의 눈(A)]
▶[불면은 나의 힘(A)]
진행 중인 미션
▶망돌의 그림자를 없애라!
보유 골드 1,900G
“흠.”
이런 소비는 처음이라 긴장했다만,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니 기분이 나쁘지 않다.
* * *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멤버들에게 U앱을 제안했다.
……몸 상태가 안 좋긴 하다만, 못 버틸 정도는 아니다.
첫 쇼케이스에, 음원 차트 진입까지 대성공.
이건 아파서 뒈질 것 같아도 해야지.
내 제안에 곧장 동의한 멤버들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바쁘게 움직였다.
“아이스팩! ……아이스팩이 여기 있습니다!”
와르르!
냉동실에서 아이스팩을 잔뜩 꺼낸 차윤재가 자신의 눈가에 그것을 가져다 댔다.
“으아아아아!”
“으응?! 윤재야, 갑자기 웬 비명이야!”
“너무, 너흐허무 차갑습니다아아!”
“윤재 형, 얼음은 당연히 차갑죠. ……근데 하나 더 있어요?”
“여기!”
“감사합니다. 잠깐만요, 이 차가운 걸 그냥 가져다 대면 어떡해요. 뭐라도 둘러야겠는데요.”
“여기, 키친타월이라도, 둘러볼까……!”
“수건은 너무 두꺼우니까 그게 좋겠네요.”
고개를 끄덕이며 키친타월을 아이스팩에 돌돌 감은 한수현은.
파바바박!
그걸 눈에 전속력으로 비비기 시작했다.
이봐, 저온 화상은 네가 걸릴 것 같은데.
나는 세 놈의 얼음찜질을 제지했다.
“그만해라.”
운 티가 조금 나는 건, 오히려 좋다.
내 안의 오타쿠 자아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단언컨대 팬들의 과몰입 버튼을 자극하는,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은 눈물.
‘기특한 놈들.’
슥, 슥, 슥, 슥-
나는 오늘 쇼케이스장에서 눈물을 흘린 놈들의 머리칼을 빠른 속도로 쓰다듬었다.
“하지만 제 꼴이 아직 흉합니다!”
“귀-”
짜악!
“혀, 형님! 왜 뺨을 치십니까! 아프지 않으십니까? 그리고 뭐라 하셨는지 잘 못 들었습니다!”
“귀가 가렵다, 라고 하려 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귀여운 아기 고양이는 관리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이 나올 뻔했다.
X발…….
“……! 누가 형님 이야기를 하나 봅니다. 푸하하! 그나저나, 참 엉뚱하십니다. 귀가 가렵다고 볼을 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답니까?”
“……그래.”
이러다가 저놈들 앞에서 오타쿠 자아가 그대로 나와 버릴까 봐 무서울 정도다.
나는 아득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 * *
쾅!
한적한 카페에 들어가 착석한 곽덕배는 아찔한 기억에, 머리칼을 헤집으며 콘크리트 벽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이젠 부정할 수도 없었다.
자신의 최애가 정해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방금까지 본 해온이를 떠올릴 때마다 심장이 개처럼 뛰었다.
‘미친 거 아니야?’
인간이면, 인간적으로 그렇게 생길 수가 없다.
‘아니네. 인간이 아니니까 그럴 수 있는 거네…….’
곽덕배의 내면에서 숨 쉬듯이 주접이 이어지고 있을 무렵, 맞은편에 누군가가 착석했다.
“너 왜 그래?”
스윽…….
이해성의 진지한 물음에, 곽덕배가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해성아, 나.”
“그래. 쇼케이스 재밌었어? 1열이라고 신났더만.”
“……어. 근데 나 보고 왔어.”
곽덕배가 조용히 중얼거리기 시작했고, 제대로 듣지 못한 이해성이 고개를 기웃거렸다.
“……뭐라고? 뭔 공?”
“북부 대공을 보고 왔어.”
“미친놈아.”
경악한 이해성의 입이 벌어졌다.
“아니, 내 말 좀 들어봐. 안 믿어주니까 굉장히 억울한데…… 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환생 트럭 치여서 이세계 북부로 날아간 줄 알았어.”
“이거 진짜 큰일 날 오타쿠네…….”
“이해성 눈 동태 된 것 봐. 진짜라니까? 네가 오늘 해온이의 끝내주는 얼굴을 봤으면 그런 말을 못 할 텐데.”
진심 200%의 얼굴을 한 곽덕배와 눈을 마주친 이해성이 고개를 저었다.
한참 왁왁댄 곽덕배가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켠 순간, 이해성의 입이 열렸다.
“나-”
“그래, 네가 생각해도 해온이 얼굴 끝내주지?”
“붙었어.”
주르르륵-
맥주에 이어 커피를 입 밖으로 쏟아낸 곽덕배가 눈을 부릅떴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