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164화 (164/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64화

‘본! 방! 본! 방!’

운 좋게 본방에 당첨된 근돌은 가벼운 걸음으로 스튜디오에 입장했다.

‘새벽엔 정말 짱이었지.’

단언컨대 근돌 인생 최고의 사녹, 최고의 9분이었다.

……사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왔다.

이번 앨범 의상이 팬들의 통장을 거덜 내고 싶은 게 틀림없을 정도로 극악무도하다는 건 이미 공공연한 정보.

쇼케이스에도 참석했던 근돌은 이미 내성이 쌓였다.

아니, 쌓였다고 생각했다.

그런 근돌을 비웃듯 류인은 크롭탑 의상을 입고 나왔고, 기가 막힌 흉부와 선명한 복근에 기절할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그걸 못 찍다니…….’

찍었다면 대대손손 집안 가보로 물려줄 수 있을 만큼의 파격적인 의상이었는데, 굉장히 아쉽다.

‘행사에서 입어줬으면 좋았을 텐데.’

근돌은 입맛을 다시며, 지정된 자리에 착석했다.

‘저분은 매번 마주치네.’

근돌이 자신의 근처에 앉은 한 팬을 바라봤다.

당시,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사람이다.

당시 계정이 없었던 건 진짠데, 어쩌다 보니 상황이 머쓱해졌지.

근돌은 곽덕배를 빤히 바라보다가, 시선을 바로 했다.

‘언젠가 뭐, 말 틀 수도 있겠지.’

대기를 몇 분이나 했을까, 본방송이 시작됐다.

지루하게 다른 아이돌을 지켜보던 근돌이 상체를 번쩍 세웠다.

MC들의 소개 빌드업이 백 미터 밖에서 굴러다니면서 봐도 라이트온이었기 때문이다.

“네! 이번에 소개할 그룹은 누구죠?”

“아~ 이 쌀쌀한 날씨에도!”

두 MC가 손부채질을 격렬하게 파닥이며 모션을 이어갔다.

“어후~ 더워, 더워. 공간을 후! 끈! 하게 만들어주는 그룹입니다!”

“아! 저 알겠어요. 으로 돌아온 라이트온 맞죠?”

* * *

“라이트온 스탠바이 하실게요!”

스태프의 사인과 동시에 MC들이 서 있는 무대 위로 올랐다.

본무대 옆에 마련되어 있는, 아주 자그마한 무대였다.

“하나, 둘, 셋! Switch on your light, 안녕하세요. 라이트온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악!”

각자의 간단한 소개와 소감 이후에 MC가 대본대로 말을 붙였다.

“의 포인트 안무,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저희 이번 안무는 이렇게, 몸을 튕기는 게 많아요. 특히 이 부분이 포인트인데.”

설명과 함께 느린 배속으로 안무를 선보이는 류인과 차윤재 뒤에서 나를 포함한 멤버들은 입으로 멜로디를 붙였다.

“오! 저희도 함께 춰보겠습니다!”

직업이 아이돌인 두 MC까지 합세했고, 포인트 부분 음원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짝짝짝짝!

“와아, 너무 잘 추시는데요.”

“라이트온을 따라갈 수는 없죠!”

전부 대본에 적혀 있는, 가식과 가식이 이어지는 칭찬 릴레이가 끝나자-

처억!

카메라가 어느 순간 내게 집중됐다.

빌어먹을, 결국 차례가 온 것이다.

나는 방긋 웃으며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오랜만에 돌아온 발라드 퀸! 송연희 님의 가슴을 울리는 무대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 전에!”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놀릴 준비를 마칩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의 다음 대사를 궁금해합니다!]

자꾸만 흐릿해지려 하는 눈깔에 생기를 더한 나는 두 주먹을 양 볼에 붙였다.

“상큼 발랄의 대명사! 과일처럼 톡! 톡! 튀는 매력~! 트로피칼 보이즈의 무대 먼저 확인해 볼까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인생은 쉽지 않다.

* * *

‘쟨 진짜 난 놈이긴 하네.’

청산유수로 멘트를 내뱉는 성해온을 본 근돌이 내심 감탄했다.

음악 방송을 보다 보면, 원래 숫기가 없든, 떨리는 거든, 멘트를 쪽팔려하든, 이유를 불문하고 대사 하나 제대로 못 내뱉는 놈들 천지다.

그에 반해 성해온은 음악방송 MC만 몇 년 해온 사람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소개를 마쳤다.

심지어 ‘톡톡 튀는 매력’에서는 주먹을 까딱이며 애교를 선보이기까지…….

물론 대본에 하라고 나와 있었겠지만, 저렇게 자연스럽게 소화를 하다니.

‘……이쯤이면 인정해 줘야지.’

- 네네 성해온 21살이고요 시키는 거 다 해요

- 미친 개웃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돌았냐고

- 트로피칼 해온 (GIF)

실시간으로 난리 난 SNS를 힐끔 살핀 근돌은, 무대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멤버들의 등짝을 바라보며 한숨을 삼켰다.

우락부락하지 않은 잔근육은 근육으로 치부하지 않았던 본인의 과거를 매우 치고 싶을 만큼 끝내주는 조화였다.

‘다음 사녹에선 나머지 셋 크롭티 입혀주면 안 되나?’

셋셋 공평하게 입히면 얼마나 좋아.

근돌은 속으로 노출 탕평론을 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과일처럼 톡! 톡! 튀는 매력~!”

최승하가 양 주먹을 얼굴에 가져다 댄 채 웃었다.

“우리 형~ 너어어무 잘하던데~

“푸하핫! 맞습니다! 이 형님이 이렇게 훌륭하게 소화하실 줄은 몰랐습, 흐흡, 니다!”

싱긋…….

뒤에서 걷던 내가 아무런 말 없이 만면에 미소만 띠고 있자, 그걸 목격한 신유하가 다급하게 최승하와 차윤재의 등짝을 후리기 시작했다.

“얘들아, 그만해……!”

동료를 지키려는 필사적인 행동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이놈들에겐 먹히지 않았다.

나보다 앞에서 걷고 있는 탓에 내 낯짝을 보지 못한 것이다.

“형님은 음악방송 진행을 맡으셔도 잘 해내실 것 같습니다!”

“난 이 형 때문에 오늘치 비타민 다 충전됐잖아~ 톡! 톡!”

나는 조용히 발걸음의 속도를 높여 두 놈에게 다가갔다.

너흰 다 뒈졌다.

* * *

생방송으로 준비된 수록곡 무대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무대의 주인공인 라이트온이 올라왔고, 곽덕배는 경악했다.

“청……!”

당황스러움에 입이 열린 곽덕배가 금세 입을 다물었다.

‘미쳤나 봐~!’

속으로 경악한 곽덕배가 입을 터업, 막았다.

흰색 이너 위, 상하의는 모두 청청.

위아래 청청을 입는 것을 촌스럽다고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진리의 얼굴이 이 모든 걸 해결했다.

기승전 얼굴이었던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본방에 참여한 팬들이 입을 꾹 다문 채, 눈만 빛내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작은 소리라도 냈다간 그 즉시 퇴장 루트라는 걸 아는 고인물들이기에, 아마 속으로만 음소거 난리를 피우고 있을 게 뻔했다.

팟-

무대에 모든 조명이 암전됐고, 그 안에서 멤버들은 대형을 잡았다.

일렬로 뒤돌아선 멤버들 중 가장 먼저 등을 돌린 건 성해온이었다.

- 기다리던 이 순간

Daybreak

청량한 느낌의 비트 위에 성해온의 목소리가 얹어지자 곡의 색채가 순식간에 다채로워졌다.

곽덕배는 흑청 세트를 입은 성해온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 Ready, um, set, go!

이어지는 성해온의 파트와 동시에 멤버들이 연이어 몸을 돌리기 시작했고, 본방에 참여한 팬들이 술렁였다.

얼굴 공격 때문이었다.

진지하게 이 정도면 암살 수준이었다.

곽덕배가 오타쿠 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쯤, 깜찍한 연청 세트를 입은 차윤재가 파트를 시작했다.

- 숨을 참아, 삼 초면 돼

One, Two, Three, 이제 시작이야

무대의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까지 안무와 함께 단번에 이동한 차윤재가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곽덕배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방금 분명 윙크였다.

‘카감 미친놈 제대로 안 찍었기만 해봐라.’

게다가 ‘One, Two, Three’ 파트에서는 한수현과 짤막한 듀엣 안무를 선보이기까지.

가벼운 느낌의 멜로디에 통통 튀는 매력적인 비트가 계속해서 더해졌다.

- 시간이 멈춘 지금 (uh-huh)

너와 내 숨이 겹쳐 daybreak (daybreak)

최승하와 류인의 더블링 파트에 또 한 번 숨 쉬는 방법을 잊은 곽덕배가 널뛰는 심장을 컨트롤했다.

손목에 매달린 스마트 워치가 심박 수 경고음을 보내고 있었다.

‘진정해 제발.’

스스로를 진정시킨 곽덕배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무대에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그 다짐은 오래가지 못했다.

노래에 탕, 하는 총소리가 더해지는 순간 성해온이 파트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 Shoot 하면 달려가 널 안을게

기다리던 이 순간, Daybreack

곽덕배는 그냥 이 자리에서 냅다 기절하고 싶은 심정을 눌러둔 채, 1초도 허투루 쓸 수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무대에 시선을 고정했다.

* * *

[성좌, ‘황금의 신’이 아름다운 무대에 감탄사를 내뱉으며 100골드를 후원합니다!]

[성좌, ‘황금의 신’이 오늘도 우리 아해는 참 잘생겼다며 황홀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래, 신유하가 최고다.

[성좌, ‘황금의 신’이 당신의 영혼 없는 얼굴을 지적합니다!]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라고.

하지만 골드를 더 받으면 낯짝이 바뀔지도 모르지…….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흐뭇한 얼굴로 당신을 내려다봅니다!]

“여러분, 수고하셨어요.”

매니저가 땀을 닦을 만한 작은 수건을 나눠주며 우릴 챙겼다.

“오늘 본방 수상까지 지켜보고, 바로 연습실로 이동할게요. 여기 먹을거리 좀 사 왔는데, 얼른 드세요.”

“와아~ 이거 맛있는 샌드위치~”

쇼핑백에서 샌드위치를 꺼낸 최승하가 멤버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며 매니저에게 눈웃음을 지었다.

“잘 먹을게요, 매니저님! 저 지금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 뻔했거든요.”

“형님! 달라붙지 않으셨습니다! 어젯밤에 몰래 빵도 으브븝.”

차윤재의 입을 틀어막은 건 바로 나였다.

회사 차원에서 활동기엔 관리를 할 수밖에 없는데, 이걸 매니저 앞에서 말해 버리면 곤란하다.

“형니므븝브.”

억울한 얼굴의 차윤재가 복어 같은 볼로 무언가를 웅얼거렸으나, 당연하게도 무시한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입을 열었다.

“오늘 날이 참 좋네…….”

멋진 사회인의 법칙 제2장.

말 돌리기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뒷목을 부여잡습니다!]

나는 곧장 상태창을 살폈다.

방금 전 본방으로 포인트가 더 쌓였다.

역시 이 포인트는 팬들로 인해 적립되는 게 정답인 모양.

축복이라는 히든 특성 자체도 나에게 적용이 안 될 뿐이지, 단순하게 따지자면 말도 안 되게 좋은 특성이다.

[성좌, ‘황금의 신’이 군침을 흘립니다!]

[성좌, ‘황금의 신’이 값비싸게 쳐줄 테니, 본신과 교환하자 제안합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본신과의 약속을 지키라 전합니다!]

이런 메시지도 계속 뜨고 있고 말이지.

* * *

한편, 라이트온의 무대가 송출되기 시작하자 스위치들은 경악했다.

- 청량 + 라이트온 조합 진짜 필승이다

- 진짜 수록곡인 거 아까울 정도로 좋다 데브ㅠㅠㅠㅠ

- 데이브릭 무대 너무 좋아서 침 나옴 변태라서 흘린 게 아니고 입이 안 다물어져서 흘린 거임

수록곡인 의 반응이 빠른 속도로 터져 나왔다.

여태껏 라이트온이 보여줬던 청량함과 결이 비슷한 노래였기에, 호불호가 없었던 것이다.

그 상황에서 사전녹화로 진행됐던 이 나오기 시작하자, 팬덤은 뒤집어졌다.

- 무대 진심 개좋다 와 연출 무슨일임 돈 냄새 개쩔어

- 승하 도입부 좋아서 미칠 것 같음

- 아기말랑사슴과 아기말랑토끼가 이렇게 센 컨셉해도 됨? 심장이 너무 뛰는데

- 지금 나오는 남돌 ㄴㄱ예요? 잘한다

└ 라이트온요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반응은 의상에서 나왔다.

사녹에 참여했던 일부 팬들이 텍스트로 전한 후기만으로도 폭발 직전이었는데, 그 진실이 공개되자 난리가 난 것이다.

- 산독기독기야 어디를 가느냐 크롭탑을 입고서 어디를 가느냐

- 임종

- 오타쿠를 죽이려고 이놈들이 작정을 ㅅㅂ 미미미미쳤나 봐

- 성류차 돌았나

- 류떤남자 복근 보고 기절했다가 방금 일어남;

- 쓰러질 때 바닥에 범인은 성해온 적고 죽을 거임

……스위치들은 활동 첫날부터 아주 활기찼다.

* * *

그리고 라이트온의 숙소.

성해온을 제외한 멤버들이 모여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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