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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168화 (168/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68화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낄낄댑니다!]

나는 손을 휘적이며 거슬리는 메시지를 치워냈다.

“하아아아아…….”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한숨이 연달아 새어 나왔다.

……충돌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을 때의 몸 상태가 궁금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안 그래도 매가리 없던 몸뚱어리가 더 심각해졌다.

확실하게 체감되는 정신 나간 현 상태에, 나는 고개를 느릿하게 저었다.

일종의 현실 부정이었다.

어젯밤에도 작은 참사가 벌어졌었다.

류인과 부딪혔다고 그 자리에서 추하게 넘어진 것이다.

- 해온아!

- 발을 헛디뎠어. 괜찮아.

발이 꼬여 넘어진 것처럼 필사의 연기를 펼쳐 상황을 자연스럽게 넘겼지만, 내 스텝은 멀쩡했다.

“…….”

이제 온갖 걸 조심해야 한다는 처참한 사실을 깨달았다는 뜻이다.

우선 저기, 저 멧돼지처럼 돌진하는 저 놈부터.

“형~ 일어났어요~?!”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최승하를 바라본 나는, 몸을 휘릭 틀었다.

“어라! 왜 피해요?”

“왜겠냐.”

“너무해! 형한테 치댈 수 있는 건 형이 정신 덜 차린 새벽밖에 없는데!”

척!

자연스럽게 내 이마에 손을 올린 최승하가 방긋 웃었다.

“열은 없네?”

“내린 지가 언젠데. 나갈 준비나 해.”

방금 그 속도로 이 녀석과 부딪혔으면 얼마나 처참한 꼴이 되었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다.

나는 주먹을 거세게 말아 쥐었다.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 * *

방송국에 도착하자, 매니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어휴, 여러분. 피곤해서 어떡해요.”

매일 썩어빠진 낯짝인 나를 제외하고도, 다른 녀석들의 안색 역시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 애들 스케줄 너무 빡센 거 아닌가ㅠㅠ

- 안색이 너무 안 좋음… 날도 추워서 몸 관리도 잘해야 할 텐데

- 다 수척해져서 tlqkf 마음이 찢어져 걍 내가 대신 피곤하고 싶음

팬들의 반응만 훑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도 그럴 게, 요즘 스케줄은 그야말로 극악.

무대 자체의 난이도가 엄청났기에 하루라도 연습을 게을리할 수도 없었고, 라이트온을 자잘하게 부르는 곳이 굉장히 많았다.

싼값에 부를 수 있는 만만한 라이징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에.

뭐, 이게 나쁘단 건 아니다.

좋냐 싫냐 이분법으로 단순하게 따지자면, 라이트온에겐 좋다에 가깝지.

무튼 그런 상황인 데다가, 사전 녹화들은 죄다 새벽에 잡혀 있으니 잠을 제대로 청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새벽 취침, 새벽 기상.

수면 시간도 많아봤자 네 시간이었으며, 고된 스케줄에 몇 놈들은 입맛까지 잃어버렸다.

체력으론 따라갈 수 없는 최승하까지 피곤해할 정도면 말 다 했지.

나는 멤버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무대 전에 파이팅 한번 할까.”

“어~? 좋죠~”

척! 척! 척! 척! 척!

내 제안에 금세 손이 모였고, 나는 그 위에 손을 포갰다.

사실 처음엔 가장 아래쪽에 손을 뒀으나, 살며시 뺐다.

이 정신 나간 개복치 몸은 무슨 참사를 벌일지 모르니,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자신과 교환은 안 하고, 이런 데에 쓰냐며 섭섭해합니다!]

큰 포인트가 드는 것도 아니고, 이 녀석들에게 쓰는 건 그다지 아깝지 않다.

따지고 보면 팬들이 준 포인트니까.

‘나도 양심은 있다고.’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그게 매력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흐릿한 낯짝으로 혈압의 상승을 유발하는 메시지에서 시선을 돌렸다.

물론 이걸 매일 써줄 순 없겠지만, 이 녀석들이 피로로 죽어갈 때는 가끔 써줄 생각이다.

‘당신에게 축복을.’

파아아앗-

내 눈에만 보이는 빛이 퍼짐과 동시에, 멤버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내게는 적용이 안 되니 감이 오지 않지만, 피로가 줄어드는 느낌이려나.

“어, 뭔가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네?”

“피곤한 게, 사라졌어요……!”

“정말입니다! 파이팅이 효과가 있나 봅니다!”

겨우 파이팅 하나로 그런 효과가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정신이 나가지 않은 이상, 특성의 효과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화제를 돌리도록 하자.

“무대 올라갈 준비 하자.”

* * *

사전 녹화 무대를 끝마친 뒤 대기실로 향하는 길목, 내 시야에 영 보기 싫은 얼굴이 들어왔다.

저쪽 그룹 대기실은 반대일 텐데.

누가 봐도 목적이 우리에게 있는 모양새였다.

쯧.

나는 후배다운 공손한 미소를 띤 뒤, 허리를 꾸벅 숙였다.

7인조 그룹, 페이즈의 리더.

우리보다 데뷔가 몇 개월 빨랐으며, 참고로 이쪽도 망돌이다.

“릴톡 좀 찍어줄 수 있을까?”

[REAL TOK]

숏 미디어 플랫폼으로, 요즘 이 바닥에서 안 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포인트가 되는 안무를 챌린지 형식으로 만들어, 타 연예인들과 함께 찍어 올리는 게 가장 대표적인 컨텐츠.

이 인간도 아마 그 챌린지를 부탁하러 온 거겠고.

툭, 툭.

순식간에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올린 페이즈의 리더가 넉살 좋게 웃었다.

“안 될까?”

순식간에 분위기가 묘해졌다.

그도 그럴 게, 이 새끼들 우리 싫어하거든.

이번 활동 기간이 겹치면서 깨달았다.

모르려야 모를 수 없을 정도로 티를 내더라고.

평소에 우리가 건네는 인사를 씹는 건 물론,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기분 나쁘게 킬킬대는 걸 몇 번이나 봤는지.

자신들과 다를 바 없는 신세였던 라이트온이 뜨려는 낌새를 보이니, 심히 아니꼬운 것으로 추정된다.

예의를 밥 말아 처먹은 게 분명한 페이즈의 리더는 계속해서 입을 나불거렸다.

“어~ 우리도 찍어줄 수 있어! 뭐, 필요 없겠지만? 하하하!”

직역하자면, 이거다.

우리는 흔쾌히 찍어줄 수 있는데, 너넨 우리 영상 안 쓸 거지?

친분이 있는 경우거나 소속사 선후배들끼리 이 챌린지를 해주는 건 거의 국룰이다.

하지만 요즘은 챌린지가 워낙 대중화되었다 보니, 친분이 없는 사이에서도 요청이 들어오면 대부분 해주는 추세다.

심지어 몇 달 차이여도 후배는 후배.

이놈들이 이렇게 예의 없게 굴어도 우린 응할 수밖에 없다는 거지.

이놈들은 그걸 알면서도 우리의 기분을 더럽히고 싶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거고.

계산을 마친 나는 눈을 곱게 접어 웃었다.

“그게 뭐라고, 당연히 찍어드려야죠.”

미안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하하호호 웃으며 넘어갈 정도로 내 심성이 곱진 못하다.

“하하, 찍어‘드려야죠’? 네네. 찍어주세요!”

굳이 그걸 한 번 더 짚으며 되묻는 이놈도 보통 성격은 아니군.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이런 거에 기죽을 성격도 아니다.

“예, 가시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해온아, 내가 갈게. 윤재야, 괜찮아?”

류인이 차윤재의 손목을 붙잡더니, 대뜸 외친 것이다.

어리둥절한 차윤재가 곧장 고개를 주억거렸다.

“에? 예! 제가 류인 형님과 찍고 오겠습니다!”

심상치 않은 기류를 눈치챈 건가.

둘이 하겠다고 나선 걸 만류하는 것도 그림이 이상해지는 일이라,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자원한 두 녀석이 페이즈와 함께 떠났고, 나는 멤버들을 대기실로 보낸 뒤.

드르륵-

자연스럽게 대기실 밖으로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정신머리의 놈들과 함께 두는 것이 불안하단 말이지.

“이쪽인가.”

외곽에 위치한 페이즈의 대기실로 향하던 내 발걸음이 느려졌다.

흥미로운 대화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주어가 아무래도 우린 것 같지.’

나는 피식 웃으며, 벽에 등을 기댔다.

“그 새끼들은 얼굴 반반해서 부럽다, 진짜로~”

“킥킥, 야. 넌 그럼 기회 있으면 더러운 짓 할 거냐?”

“내가 돌았다고 그 더러운 걸 하겠어? 말 좀 가려 하자?”

음.

아무리 이쪽이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는 복도라지만, 대놓고 저런 헛소리를 주고받는다는 것이…….

‘생각보다 더 멍청한 놈들이군.’

당장 저 대기실 안에선 페이즈 멤버 셋과 류인, 차윤재가 챌린지 영상을 찍어주고 있을 텐데 말이다.

내가 혀를 쯧쯧 차고 있을 무렵이었다.

“……?”

난데없이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내 눈이 커졌다.

“상상력이 훌륭하시네요. 우선 선배님들에겐 그런 제의가 오지도 않으실 것 같다만.”

참고로 이건 내가 한 말이 아니다.

‘어쩐지 대기실에 안 보이더라니.’

“……? 너 뭐야?”

“아, 한수현입니다. 아까 통성명도 했는데 기억력이 그닥 좋지 않으신 듯하네요.”

안타깝다는 얼굴을 한 녀석이 말을 이었다.

“열심히 하셔야겠는데요. 연예계를 벗어나도 그다지 할 일이 없어 보이시니…….”

나는 벙찐 얼굴을 하고 있는 두 놈을 바라보다가, 이내 깨달음을 얻었다.

한수현이 요즘 우리에겐 가족이니 뭐니 하면서 말랑해졌지만…….

타인에겐 아니었던 것이다.

잊지 말자.

이 녀석이 공포의 주둥아리의 소유자였다는 것을 말이다.

“이 새끼가 돌았나! 어디 선배한테!”

“아.”

페이즈의 멤버가 언성을 높였고, 한수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시끄러워요. 귀 따갑게.”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뭘 믿고 이러는 거냐?”

“칭찬 감사합니다. 이 바닥에선 한살이라도 어린 게 많은 면에서 이득이긴 하죠.”

“……허!”

말문이 막혀 버린 한 놈이 눈을 부릅뜨더니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 새끼, 이거 뭐지?”

험악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두 놈 사이에 낀 한수현은 움츠러들긴커녕…….

특유의 불손한 얼굴로 눈을 부라렸다.

‘저 얼굴도 오랜만이군…….’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그런 감상이나 내뱉을 때냐며 식겁합니다!]

저놈들은 어차피 한수현 털끝도 못 건든다.

대충 봐도 입만 산 겁쟁이들이거든.

아무리 대가리가 안 돌아가도, 연예인이라는 신분을 걸친 이상 본인들의 행동에 대한 자각은 가지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저놈들 헛소릴 더 들어주고 싶진 않으니, 슬슬 나가볼까.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봅니다!]

나는 벽 뒤에서 몸을 꺼내며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여깄었네? 어디 갔나 찾았었어.”

“……! 해온 형.”

언제 눈깔을 시퍼렇게 뜨고 대들었냐는 듯, 순식간에 온순한 얼굴을 걸친 한수현이 다가왔다.

나는 녀석의 머리칼을 슥슥, 쓰다듬으며 두 놈에게 시선을 돌렸다.

“한성 선배님과 세준 선배님도 계셨네요.”

“한영이고, 예준이야……!”

“아, 죄송합니다. 헷갈렸네요. 어, 그…….”

페이즈는 망돌인지라, 이해성에게도 자세한 기억이 없다.

이 자식들, 몇 살이더라.

“……스물여덟?”

내 말에 발끈한 두 놈이 동시에 소리쳤다.

“스물셋!”

“아, 그렇군요.”

나는 순식간에 얼굴에서 표정을 지워냈다.

“……그럼 다섯 살이나 어린 우리 막내를, 두 분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던데요.”

끄덕!

내 옆에 찰싹 붙은 한수현이 둘의 만행을 술술 불기 시작했다.

“윽박지르고, 삿대질하고, 양쪽에서 분위기 무섭게 만들고.”

한수현이 공포의 주둥아리로 이놈들을 흠씬 팬 걸 모두 들었으나, 그건 비밀로 하도록 하자.

“무서웠니?”

“네. 울 뻔했어요.”

한수현의 말에 기가 찬 얼굴이 된 두 놈이 뒷목을 부여잡았다.

“저 새끼, 저거, 뭐야! 네가 언제 울 뻔해?”

“우리 애가 울 뻔했다면, 울 뻔한 거지.”

나는 놈들에게 한 발자국 다가가며,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아, 그리고 이렇게 대화한 것도 인연인데 한 말씀 올리자면, 저 같으면 그 릴톡 안 올리겠어요.”

“무, 무슨.”

“……음. 여러 이득을 종합해서?”

돌려 말했지만, 해석하자면 이거다.

비교될 텐데?

상태창을 볼 수 있는 내 입장에선 확신할 수 있다.

실제로 챌린지를 함께 하는 대상이 너무 잘해 버리면, 물밑에서 이런 식의 조롱 섞인 반응이 나오곤 한다.

- 원곡자가 더 못하는 게 실화냐고

- 쟤네 ㄴㄱ였더라? 라이트온? 걔네만 보임 ㅋㅋㅋ

- (안타깝)

심지어 우리 팀 내에서도 춤으론 따라갈 수 없는 두 놈을 홀라당 데려가다니.

내가 페이즈였다면, 절대 그 둘과는 찍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이, 이……!”

한 박자 늦게 이해했는지 놈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기 시작했고, 나는 한수현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가자, 막내야.”

“네, 해온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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