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69화
근돌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팬사인회 좌석 표를 바라봤다.
[no. 25]
극초반대는 아니지만, 아주 괜찮은 자리다.
‘끝내주게 찍어주지.’
원래 라이트온은 데뷔 때만 해도, 팬사인회 사진 촬영이 비허가였다고한다.
인지도가 넘치면 모를까, 사진 하나하나가 소중했을 시절에 사진을 막다니.
‘드디어 정신을 차린 건가.’
그 정신을 성해온이 차리게 했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근돌이 시선을 돌렸다.
‘오늘은 뭘 입고 올까?’
아무래도, 사복이려나.
근돌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도 그럴 게, 의 활동 의상은 근돌의 취향 저격 그 자체였다.
근육의 선이 아슬아슬하게 보일 정도로 화끈한 의상.
게다가 틈만 나면 등을 파거나! 옷을 자르거나!
“너무 좋아…….”
의상을 떠올린 근돌이 행복한 얼굴로 자리에 착석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로 시선을 보냈다.
‘저 사람은 진짜 고인물인가 본데.’
경연 프로그램 시절부터 공방까지, 정말 어딜 가나 마주치는 기분이다.
‘……말을 걸어볼까.’
콕콕.
손가락으로 어깨 부근을 살짝 누르자, 앨범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던 곽덕배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앨범을 닫았다.
“앗, 죄송합니다. 놀라게 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아, 아니요. 헉!”
근돌의 얼굴을 알아본 곽덕배가 눈을 크게 떴다.
“그때, 그분 맞으시죠! 탄탄한 애들, 아, 아니. 류인이랑 승하 최애셨던……!”
“네! 맞아요. 저희 이제라도 계정 교환할까요? 저 만들었거든요.”
“좋죠~”
그리고 계정을 교환한 근돌의 눈이 커다래졌다.
“……덕배 님?”
생각지도 못한 네임드에 놀랄 새도 없이, 팬사인회 현장이 들썩였다.
사복을 입은 라이트온이 등장한 것이다.
* * *
“흠.”
나는 아쉬운 기색을 지우며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생각 같아서는 무대 의상을 그대로 입고 오고 싶었으나, 과하게 선정적일 수도 있다는 우려에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내 의상은 파이지 않았으니, 나는 강력하게 무대 의상을 주장했으나 결국 설득당해 버렸다.
‘나도 참, 은근히 무르다니까 …….’
[성좌, ‘황금의 신’이 뒷목을 부여잡습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한 성좌의 심정에 깊이 공감합니다!]
의상이 파인 놈 중에 하나가 신유하였는데, 이걸 입고 가자 하니 귀 끝까지 벌게져서는 고개를 도리질 치더라고.
사실대로 불자면, 이렇게 됐다.
- ……! 이걸, 입고 가기엔, 조금…….
- 뭐 어때. 잘 어울리는데.
[성좌, ‘황금의 신’이 아해를 괴롭히지 말라 경고합니다!]
나는 당연하게도 메시지를 무시하며, 신유하를 몰아붙였다.
[성좌, ‘황금의 신’이 100골드를 후원합니다!]
- 유하야, 네가 싫다면 당연히 입지 않아도 돼.
- 형님, 방금 전까진 안 입으면 죽일 것 같이 노려보지 않으셨습니까!
- 잘못 본 거겠지.
히죽…….
[성좌, ‘황금의 신’이 당신의 악랄한 마음을 비난합니다!]
그나저나, 알아보기론 이번 팬싸컷이 정말 엄청났다고.
팬사인회 커트라인은 그룹의 성장세를 보여주는 방증 중 하나기도 하지만…….
앨범값과 팬싸 커트라인을 머릿속에서 곱한 나는 아득한 얼굴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돈값을 어떻게 해야 하지?
팬사인회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다.
주어진 시간 내에, 최대한의 돈값을 해야 한다.
나만?
그럴 리가.
이놈들도 돈값을 시켜야 한다.
스윽…….
멤버들에게 시선을 보내자, 파드득 떤 멤버들이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이기 시작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가여운 인간들에게 안타까운 눈빛을 보냅니다!]
“혀, 형님, 지금도 누르면 튀어나올 정도로 상기했습니다!”
차윤재의 외침에 신유하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중얼거렸다.
“시키는 거 다, 하기, 말 먼저 걸기, 낯가리지, 말기……. 앨범 페이지, 찾기…….”
저번 활동 이후, 오랜만의 사인회인 만큼 나는 어젯밤부터 이 녀석들을 들들 볶았다.
새로운 앨범이니만큼 예습이 필요했다.
본인들 얼굴이 박혀 있는 페이지 정도는 눈 감고도 찾을 수 있게끔 말이다.
앨범 페이지를 찾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것만큼 아까운 게 없으니까.
“음, 그리고-”
“이렇게 계속 눈 마주치기!”
최승하가 얼굴을 들이밀며 헤실 웃었다.
“정확하군.”
나는 피식 웃으며 홀 안으로 입장했다.
“와아아아아악!”
익숙한 함성 소리와 함께, 팬사인회가 시작됐다.
그리고 나는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온갖 머리띠가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천사인가.’
이번에 쓰게 된 건 천사를 연상케 하는 링이 달린 머리띠였다.
이전엔 회색 고양이 귀, 호랑이 귀, 검은색 토끼 귀, 표범 귀, 용 뿔이 달린 머리띠까지.
정말 갖가지의 동물들이 총동원됐다.
게다가 요즘 내가 블루베리로 모에화되고 있는 모양인지…….
블루베리 머리띠와 블루베리 모자까지.
내 입으로 말하긴 조금, 아니, 무척 민망하지만 성해온은 아직까지도 대표적으로 모에화되는 것이 없다.
한수현 같은 경우 토끼를 비롯한 각종 소동물, 차윤재는 검은 고양이, 신유하는 사슴, 류인은 늑대 혹은 대형 고양잇과 동물, 최승하는 대형 강아지나 여우 등으로 이미 굳어진 이미지가 있다.
그런고로 이 녀석들은 주로 그런 종류의 것들이 들어왔고, 이렇게 다채로운 건 나뿐이었다.
차차차차차차착!
새로운 디자인의 무언가를 머리에 올릴 때마다, 플래시 소리가 몰렸다.
내 모에화를 지정하고야 말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느껴지는군.
사실 글램핑 자컨 편에서, 최승하와 차윤재가 내 얼굴에 용을 그린 뒤로 그쪽으로 정해질 뻔했으나-
- 얘들아… 아무리 그래도… 용은 좀 그렇지 않아…? 용안이긴 한데… 용으로 모에화당하는 아이돌이 어딨어ㅅㅂ
- 용이 잘 어울리는 것도 웃기긴 한데, 잘 어울려;;; 잘 어울리는데 tlqkf 이건 좀 아니지
- 음기 동물 뭐 있냐
└ 뱀?
└ 그것보단 용이 낫다^^
모니터링을 이어가며, 이런 반응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차윤재나 류인이 아니었다면 날카롭게 생겼으니 대충 고양이로 정해졌겠지만, 이미 정해진 이들이 있으니 성해온의 팬들은 굴레에 빠져 버린 것이다.
‘음.’
나는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하고, 머리띠를 쓴 채 싱긋 웃었다.
차차차차차차차착!
사방에서 터지는 플래시 소리와 함께, 잔뜩 긴장한 팬분이 다가오셨다.
“해, 해온아. 안녕.”
“안녕하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나는 팬과 눈을 맞추며 앨범 속, 내 얼굴 밑에 사인했다.
[최승하 5명 vs 5살 최승하]
구석쯤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에, 나는 망설임 없이 후자를 선택했다.
최승하 다섯 명이라니, 생각만 해도 정신없군.
“해온, 해온아! 나 ‘누나’로 이행시 준비했는데……! 운 띄워줄 수 있어?”
“당연하죠. 누!”
“누가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예쁘게?”
나는 작게 웃으며 다음 운을 띄웠다.
“너?”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경악합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흐뭇하게 바라보며 100골드를 후원합니다!]
찰나의 정적이 흘렀고, 뒤늦게 상황을 이해한 팬의 입이 벌어졌다.
“……! 으아아아!”
문제는 단말마의 비명을 지른 팬이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는 것이다.
나는 다급하게 팬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곧 스태프들이 이분을 옆으로 넘기실 텐데, 아직 돈값을 제대로 하지 못했단 말이다.
“누나, 저 봐주세요.”
나는 상체를 팬과 더 가까이한 뒤, 말을 이었다.
“저 여기 앨범에 누나 닮은 동물도 그렸어요. 토끼.”
“흐아악……!”
이쯤 되니 경악한 얼굴의 팬이 새된 비명을 질렀다.
‘……너무 나댔나.’
안타깝게도 연애 경험이 전무한 탓에, 좋아하시는 건지 싫어하시는 건지 영 모르겠다.
하지만 1분 1초가 소중한 현장이기에, 나는 쉴 틈 없이 다음 질문을 건넸다.
“누나, 최애가 누구예요? TMI 이야기해 드릴게요.”
이해성의 기억을 훑어본 결과, 대부분의 팬들에겐 최애와 차애가 존재한다.
“저, 저 오늘부터 해온이인 것 같아요……!”
아, 혹시 내가 상처받을까 봐 이렇게 말해주시는 건가.
“제 TMI는 으음, 여기에 점이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오른쪽 허리를 가리켰다.
팬이 무어라 말하는 순간, 공포의 멘트가 들려왔다.
“넘어가실게요!”
나는 옆으로 넘어가고 있는 팬과 눈을 마주치며 싱긋 웃었다.
“좋아해 줘서 고마워요.”
“저, 해온아! 바, 반말 한번만!”
옆으로 밀려지며 다급하게 외친 팬의 요청에, 나는 팬의 이름을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잘 가. 또 보자.”
“……어, 영혼을 털어서라도 또 올-!”
대답을 끝마치지 못한 채 밀려간 팬을 잠시 살핀 나는, 이내 시선을 돌렸다.
다음 순서의 팬분이 앞에 다가온 것이다.
‘그분이시군.’
엄청난 장비의 소유자…….
한번 본 얼굴은 잘 잊지 않는 탓에, 기억난다.
* * *
근돌은 긴장했다.
겨우 팬싸 하나에 긴장할 짬밥은 아님에도.
꿀꺽…….
그도 그럴 게.
‘가까이서 보니까 더 잘생겼네.’
사실 블랙보이즈의 비주얼은 그닥 훌륭하지 않았다.
남성미와 퍼포먼스로 인기를 끌었을 뿐…….
그렇다고 고인물인 근돌이 비주얼 좋은 그룹을 덕질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럼에도 라이트온의 비주얼은 어마어마했다.
온갖 행사나 연말 무대 등에 사진을 찍으러 다녔던 근돌이 확신할 만큼 말이다.
‘어떻게 한 놈도 안 빠지냐?’
솔직히 말해서 잘생긴 놈과 보통인 놈, 조금 못생긴 놈이 공존하는 게 그룹의 현실 아니던가.
이건 말도 안 되는 조합이었다.
매일 라이트온 팬들이 김명훈의 말도 안 되는 사주팔자를 울부짖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근돌은 대기줄에 선 채로 라이트온의 비주얼을 감상했다.
역시 가장 심장이 뛰는 건 자신의 최애 라인인 류인과 최승하다.
팬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최승하를 먼발치에서 목격한 근돌이 눈을 부릅떴다.
류인은 널따란 어깨가 돋보이는 브이넥 니트 차림, 최승하는 베이지색 자켓을 입고 있었는데, 정말 끝내주는 사복 착장이었다.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몇백 컷은 찍어 갈겼다만, 매 컷이 새롭고 짜릿한 게 미스터리였다.
속으로 주접을 떨던 근돌의 시선은 이내 성해온에게 닿았다.
‘……얜 뭔데 볼 때마다 잘생겨지지?’
그 짧은 기간 동안 성형을 했을 리도 없는데 마주칠 때마다 비주얼이 훌륭해져서 어이없을 지경이다.
원래도 잘생겼었지만, 요즘은 그 미모에 한층 더 물이 올랐달까.
근육만 빵빵했어도 최차애 라인에 넣었을지도.
“올라가실게요!”
팬매니저의 지휘에 근돌은 단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랐다.
첫 타자, 성해온.
그리고 그 앞에 선 근돌은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