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171화 (171/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71화

냉정하게 말하자면, 음악방송 1위에는 심각할 정도로 운이 따른다.

물론 1군이라고 불리는 놈들은 언제 나온대도 온갖 트로피를 석권하겠지만, 라이트온 같은 경우엔 말이 다르다.

같은 시기에 활동하는 이들과의 대진 운이 무척 중요하다는 뜻이다.

빈집털이.

이 단어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생겨난 것이다.

라이트온이 1위 후보에 든 것도, 굳이 따지고 보자면 빈집털이의 일환이고.

현재 굵직한 그룹이 나오지 않고 있으니까.

히죽…….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인생을 양심 있게 살아가라 조언합니다!]

나는 충분히 양심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뒷목을 부여잡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원래였다면 라이트온은 활동 2주 차에 운 좋게 1위 후보에 한 번 들고 그 후부턴 가망이 없었을 거다.

‘원래라면 트웰브가 우리의 다음 주에 출격했을 테니까.’

물론, 원래라면 말이다.

* * *

“어이~ 유 기자,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아?”

“기자가 기분 안 좋은 이유가 별 게 있나요. 재밌는 게 없어서지.”

대충 대답한 유인성은 차오르는 분노를 삭이기 위해 옥상으로 향했다.

휘이잉-

찬바람을 맞아도, 사그라들지 않는 분노에 유인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 죄다…… 내 죄야…… 남 탓해서 무엇하리…….”

유인성은 자신의 머리를 주먹으로 쿵쿵 쳤다.

“으휴, X발 미친놈아.”

돈 한번 벌려다가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이렇게 나댈 계획은 없었다고!’

물론 유인성이 처음에 했던 짓도 협박이었으나, 이건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한 것이었다.

질끈!

눈을 억세게 감은 유인성은 자신의 눈물겨운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성해온의 명령대로 찬양 수준의 기사를 써 올리고, 인생이 허망해져 퇴근 후 소주나 기울이고 있는데…….

난데없이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 안 괴롭히신다면서요! 왜, 왜요……! 기사도 써드렸잖아요!

- 기자님, 그 소식 들으셨나요?

- 무, 무슨…….

- 듣자 하니 다음 주쯤에 트웰브가 컴백한다고 하더라고요.

이건 자신도 최근에 들었던 정보였던지라, 아무런 의심 없이 긍정했다.

- 네, 그렇다더라고요.

- 음, 그렇군요.

- 그걸 여쭤보시려고 전화를 거신 건가요?

- 아니요.

- 그럼…….

- 기자님, 저는 이번에 꼭 1위를 하고 싶어요.

- 네, 뭐 1위 하시면 좋죠…….

이때까지만 해도, 이 또라이 새끼가 대체 왜 이러지? 싶었다.

자신이 별 대답이 없자, 성해온은 듣기만 해도 솜털이 쭈뼛 설 것 같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기자님.

- 네.

- 1위 하고 싶어요.

- ……네? 하세요.

- 친구 좋다는 게 뭐겠어요. 기자님?

- 알겠어요. 제가 기사 또 잘 써드릴게요.

‘하여튼 간에, 기자 하나 호구 잡았다고 신나셨구만.’

-라고 생각했다.

어리석게도 말이다…….

- 아, 기사요?

심드렁한 성해온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등골에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슬슬 이 새끼가 뭘 원하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 서, 설마 지금 저한테 트웰브 컴백을 어떻게 하라거나, 그, 그런. 설마 아니죠?

- 으음.

성해온은 혹시라도 자신이 이 통화를 녹음하고 있을까, 대답을 사리기까지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유인성이 공포를 느끼고 있을 때쯤, 그의 컴퓨터로 새 메일이 도착했다.

[2주]

단 두 글자가 적힌 메일…….

유인성은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 서, 설마, 저더러 트웰브 컴백일을 2주 미루라는 겁니까?

- 아 전화가 잘 안 들리네요. 왜 이러지.

- 자, 잠시만요. 잠시만요!

- 그럼 이만…….

일방적인 통화는 이렇게 종료됐고, 그 뒤는 유인성의 인간극장이었다.

현재 트웰브의 입지는 아주 애매하다.

마약 논란 이후에는 줄곧 하락세를 걷고 있으니까.

매번 신인이 치고 오르는 이 바닥에서, 다시 반등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돌에게 치명타인 열애설까지 터지면, 트웰브는 끝장인 게 사실이었다.

자신도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파파라치 컷을 빌미 삼아 돈을 타내려 했던 거고.

요즘 BK는 대형 기획사 중에서 가장 지지부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긴 하다만…….

BK의 수장, 백준영은 만만하게 볼 인사가 아니다.

물론 유인성과 직접적으로 딜을 본 건 아티스트를 관리하는 부서였으나, 혹시 모를 뒤탈이 두렵지 않았을 리 없다.

그렇기에 이건 유인성에게도 엄청난 도박이었다.

어차피 익명인 거, 좀 아니다 싶으면 바로 튈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깟 기자, 잘리면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님과 소나 키우려고 했지.

하지만 의외로, BK는 곧장 제안을 수락했다.

탁, 탁.

테이블을 두드린 유인성은 중얼거리듯 운을 뗐다.

“……BK가, 트웰브를 버렸나?”

이건 기자로서의 감이다.

사실 이전부터 BK가 트웰브에게 손을 뗐다느니, 뭐라느니, 잡다한 풍문이 떠돌았었다.

“그게 진짜면 말이 되지.”

별 기대하지 않는 그룹의 컴백 일자를 조금 미루는 게, 회사 주가에 위협이 될 요인을 두고 보는 것보단 나으니 말이다.

엔터 회사의 주가에 소속 아티스트의 열애설은 막대한 악재니까.

“흐음.”

말끝을 늘인 유인성이 이내 머리칼을 털어냈다.

“내가 지금 트웰브 처지 생각해 줄 때냐?”

그렇다.

짭짤한 돈을 타내려던 파일도, 받기로 했던 돈도 모두 잃은 유인성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

유인성의 안색이 퍼석해졌다.

“엄마…….”

난데없이 고향에 있는 엄마가 그리워진 유인성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나 또라이한테 잘못 걸렸어…….”

* * *

툭-

백준영의 손가락질 한 번에 대표이사실의 커다란 스크린에 영상이 송출되기 시작했고, 트웰브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입을 뗄 수조차 없었다.

그만큼 서늘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한심한 놈들 같으니라고.”

백준영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트웰브를 응시했다.

“이번에 준비 중인 신인 그룹, 그러니까 너희의 후배 그룹이 되겠구나.”

비릿한 미소를 지은 백준영이 말을 이었다.

“아주 기대되는 아이들이지.”

트웰브의 리더, 도진은 이를 악물었다.

……이건, 확실한 신호다.

회사가 자신들을 내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신호 말이다.

“하지만 내가 정이 많은지, 아직 너희들한테도 기대라는 걸 품게 되더구나.”

허여멀건 한 연기가 지나간 뒤, 백준영이 낮게 읊조렸다.

“마지막 기회야.”

* * *

기다렸던 1위 후보 소식에, 행복한 얼굴로 침대에 누운 내 얼굴이 순식간에 썩어들어 갔다.

[잠깐 얼굴 좀 볼 수 있을까?]

나는 조용히 스마트폰을 내려놨다.

“…….”

존댓말과 반말을 X대로 오가는 게 무척 열받는다.

“무시하자.”

-라고 내뱉기 무섭게 스마트폰이 연달아 반짝였다.

[아직도 몸이 안 좋은 거면, 내가 숙소로 갈까?]

[내가 배려가 부족했네. 그래야겠다.]

“…….”

[해온아, 지금 출발할게.]

내가 일부러 씹는 걸 알고, 날 엿 먹일 심산으로 이러는 게 틀림없다.

다급하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나는 후리스를 대충 걸친 뒤, 발걸음을 재촉했다.

안 그래도 차윤재가 간혹가다 의현과의 사이를 물어보는데, 이 새끼가 숙소에 온다면 내 입장이 무척 곤란해질 게 뻔하다.

“어엉? 형, 어디 가요?”

“잠깐 산책.”

“오? 저도 가요! 저 편의점 가고 싶어어어브븝브. 푸하! 손으로 입 좀 막지 말아요!”

“나 혼자 생각하고 싶은 게 있어.”

“없는 듯 있을게요!”

쌔앵…….

“저 형 지금 내 말 무시한 거 맞지!”

“아무래도 그런 것 같네요. 하지만 해온 형은 생각이 있으실 겁니다.”

“……그냥, 무시한 것, 같은데…….”

왁왁거리는 최승하를 뒤로하고, 나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스륵-

창문을 내린 의현이 작게 미소 지었다.

“해온아.”

“무슨 용건이시죠.”

차에 타기 무섭게 본론을 묻자, 의현이 몸을 가까이했다.

달칵.

“……? 안전벨트는 제가 맬 수 있는데요.”

“아, 습관이라. 여기에만 있기도 조금 그러니까.”

“전 주차장 아늑하고 좋은데요.”

“시간 많이 안 뺏을게. 1시간만.”

“30분.”

“하하, 그래. 30분.”

나는 텅 빈 눈깔로 정면을 바라보며 턱을 까딱였다.

“출발하시죠.”

“지금 한국 오자마자 보러 온 건데, 해온아 너는 별로 안 보고 싶었나 보네.”

“예.”

빛과 같은 속도로 나온 답변에, 의현이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작게 웃었다.

그리곤 뒷좌석 쪽으로 손을 뻗어, 무언가를 집어 올렸다.

……꽃다발?

“1위 후보 축하해.”

“아직 1위 하지도 않았는데요.”

“그래도 축하할 일이니까.”

“저희가 그런 사이인가요? 그리고 말 놓으라고 한 적 없는데.”

“으음, 우리 절친한 선후배 아닌가? 조금 섭섭하네.”

“……허.”

내 말문이 턱 막힘과 동시에, 의현이 생긋 웃었다.

“날 믿어줘서 기뻤어.”

통증 때문에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알아서 하라고 한 게 어떻게 믿음으로 연결되는 거냐 묻고 싶다만, 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다.

이놈이 아니었다면, 활동 첫날부터 여러 잡음으로 꽤 골치 아팠을 테니까.

“그 일은 감사합니다.”

“말로만?”

“그럼 돈이라도 드릴까요.”

“그거라면 나도 많아서.”

신호 앞에서 멈춘 차량, 의현이 핸들에 몸을 기대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정 고마우면, 웃어주는 것도 좋고.”

“……?”

“하하! 헛소리하지 말란 얼굴이네.”

굉장히 눈치가 빠르군.

그 시각, 나는 골드 상점을 띄워냈다.

[거짓말 탐지기(C)]

▲ 지정자의 답변에 대한 진위 여부를 판단

▲ 70% 확률로 발동

이제 이 의문스러운 놈의 포장지를 깔 때가 됐다.

자백제 같은 아이템이 있다면, 이놈의 속내를 술술 불게 하고 싶다만 안타깝게도 그런 건 존재하지 않더라.

[구매가 완료되었습니다!]

이건 말 그대로, [진실] 혹은 [거짓]을 판단해 주는 아이템.

내가 할 수 있는 질문은 단 하나,최대한의 가성비로 간다.

“절 도와주고 싶다고 하셨죠.”

“응.”

나는 이 대답을 듣자마자, 지정자를 의현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곧바로 입을 뗐다.

“그 생각에 다른 이유는 없나요? 예를 들어 사실은 제게 해를 끼치고 싶다거나, 사람에게 신뢰를 얻은 뒤 뒤통수를 때리며 배신하는 변태 같은 취미가 있다든가, 무슨 사고를 쳤는데 그걸 힘없는 망돌에게 덮어씌우기 위한 빌드업을 하고 있다든가,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이러는 거라든가.”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의 끊이지 않는 의심과 청산유수한 언행에 감탄합니다!]

이 질문 하나에 골드가 얼만데, 한 질문을 최대한 활용한다.

한 템포도 쉬지 않고 나불거리는 나를 바라본 의현이 차체를 멈추며 눈을 길게 접어 웃었다.

“하하, 내가 그렇게 수상해?”

그걸 말이라고.

나는 의현이 사놓은 걸로 추정되는 커피를 벌컥 마시며 눈을 마주쳤다.

얼른 대답이나 하라는 뜻이었다.

“음, 질문에 대한 답을 하자면…….”

긴 손가락으로 핸들을 두드리던 의현이 고개를 돌려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전부 아니야. 너한테 잘 보일 시간도 없는데, 그럴 리가.”

[해당 지정자의 답변에 대한 진위 확인이 시작됩니다!]

[Loading…….]

[진위 확인 완료!]

해당 지정자의 답변은 [진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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