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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172화 (172/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72화

나는 숙소로 돌아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미간을 찌푸렸다.

“뭐 하는 놈일까.”

이게 의현에 대한 내 평가다.

우선 그 눈깔.

평소엔 눈만 마주쳤다 하면 생긋 웃어대지만, 가끔 닿는 쎄한 시선을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다.

내가 사람을 관찰하는 습관이 아니었다면 모를 정도로 아주 찰나였지만, 확실히 느꼈다.

그런 놈이 성해온을 무조건적으로 도와주려고 한다고?

웃기는 소리.

아이템은 의현의 대답을 진실이라고 판단했다만, 그거 하나로 그 새끼를 편견 없이 봐주기엔 걸리는 게 한둘이 아니다.

내가 했던 질문에 걸리지 않은 속내가 있을 수도 있고.

역시 최대한 마주치지 않는 게 답이라는 결론을 내린 나는 내일의 일정을 위해 잡생각을 떨쳐냈다.

* * *

덜덜덜덜.

난리가 났군.

이젠 이놈들이 인간인지 사시나무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다.

참고로 오늘 자 사전 녹화는 이미 새벽에 마쳤고, 지금은 본방송에 있을 1위 후보 인터뷰를 기다리고 있다.

“진정들 해라. 어젯밤에도 그 난리를 치더니 오늘까지 떨어?”

“어, 어, 어떻게 이게 안 떨린답니까! 형님이 이상한 겁니다!”

“앗~ 윤재랑 유하 숨넘어간다.”

방긋 웃는 최승하를 본 차윤재가 뒷목을 부여잡았다.

“형님! 지금 그렇게 장난칠 때입니-”

“후우~”

“미친!”

“방금 들었어요? 들었어요? 우리 윤재가 이런 말도 쓸 줄 알아?!”

“형, 형님이 귀에 가, 갑, 갑자기 바람을 부시니까 그런 것 아닙니까!”

“긴장 풀라고 그런 거지~ 근데 효과 없나 보네.”

“이게 효과 있으면 나라가 망해야 합니다!”

“윤재가 나라 살렸네.”

“으익! 이 와중에도 장난질을!”

대기실 소파에 몸을 기댄 나는 등을 기댄 나는 조금이라도 눈을 붙일 요량으로 눈꺼풀을 내렸다.

띠링!

“…….”

띠링!

“…….”

띠링!

띠링!

시끄러워 죽겠네.

“……하아아아.”

“형님, 제, 제가 너무 떠들었을까요!”

“아니, 너는 더 떠들어.”

나는 차윤재 쪽으로 손을 대충 휘적이며, 허공에 떠오른 메시지에 시선을 보냈다.

[성좌, ‘황금의 신’이 아해에게 축복을 내려달라 요청합니다!]

오늘은 딱히 생각이 없었는데.

뭣보다 첫 음악방송 1위 후보라는 기념비적인 날엔 조금 떨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놈들을 강하게 키우고 싶다.

[성좌, ‘황금의 신’이 그러다가 우리 아해가 죽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음.”

어이없는 주접이긴 하다만, 확실히…….

“스, 승하야. 나, 청심, 청심환 좀…….”

신유하의 안색이 안쓰러울 정도로 희게 질려 있었다.

게다가 다른 놈들의 상태도 정상은 아니었다.

“……어, 내가 오늘 그걸 어디다가 놨더라.”

“류인 형, 그거라면 아까 숙소에 두고 나오셨습, 아, 갑자기 속이 울렁…….”

류인과 한수현은 저 두 녀석처럼 벌벌 떨진 않았으나, 적잖이 긴장되는지 대기실을 어수선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유일하게 멀쩡한 놈은…….

“아잇~ 이 사람들은 정말 내가 없음 안 된다니까. 자, 여기 물이랑 청심환 쭉쭉 들이켜세요~”

“아이고오! 아이고! 아~ 하세요. 아아~”

“승하 형, 저는 됐습니다.”

“됐긴 뭐가 됐어. 우리 막내도 떨고 있으면서.”

“안 떠는데요, 읍.”

“하핫, 들어갔다~”

“…….”

최승하가 여기저기 쏘다니며 멤버들의 입에 청심환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고작 청심환 하나가 이 떨림을 해결해 줄 리 없었다.

멤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창백해졌고, 귀찮은 띠링 소리의 주기도 짧아졌다.

나는 눈알을 데굴 굴렸다.

[성좌, ‘황금의 신’이 아해에게 안타까운 눈빛을 보냅니다!]

[성좌, ‘황금의 신’이 당장 축복을 부탁합니다!]

……축복을, 맨입으로?

[성좌, ‘황금의 신’이 뒷목을 부여잡습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한 성좌에게 그 마음 잘 안다며 위로를 전합니다.]

[성좌, ‘황금의 신’이 200골드를 후원합니다!]

싱긋…….

허공을 향해 곱게 미소 지은 나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진작 이러셨어야지.

저벅, 저벅…….

핏기 없는 얼굴로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던 신유하에게 다가간 나는 녀석의 입술에 손을 올렸다.

“나쁜 버릇이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훈훈한 동료 간의 모습에 감동받으며, 본신이 원하던 게 이런 모습이라고 전합니다!]

이러다 입술이 터지기라도 하면 메이크업으로 가리기도 곤란해지거든.

자고로 아이돌은 얼굴이 생명인 것을…….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격분합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무의무신이라며 꾸짖습니다!]

의리도 없고 신용도 없다라.

……맞는 말인데?

그래서 그런지 그닥 열받지도 않는군.

어찌 됐던 신유하의 신체 일부와 접촉함과 동시에 속으로 되뇌자, 새하얀 빛무리가 터져 나왔다.

* * *

“금주의 1위 후보! 베스티와 라이트온 나와주셨습니다!”

베스티, 소속사 규모는 작지만 대표가 꽤 유명한 프로듀서다.

노래가 좋으니 음원 순위는 나쁘지 않지만, 다른 부분에서 기반이 부족하다는 게 흠으로 꼽힌다.

종합하자면, 이쪽도 라이트온처럼 빈집털이 시기를 잘 맞춘 케이스라는 소리다.

내가 알기론 이쪽도 컴백 시기에 관련된 운이 없어 족족 거물들과 활동이 겹친 탓에, 1위는커녕 후보에도 든 적이 없거든.

원래대로였다면, 이번 활동도 트웰브라는 벽에 막혔을 거고.

하지만 후보에 오른 이상, 베스티도 이 빈집이 매우 탐날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까 전부터 우리와 저쪽 사이에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Best of best! 안녕하세요~ 베스티입니다!”

“Switch on your light! 안녕하세요! 라이트온입니다!”

두 팀의 단체 인사가 끝나자, MC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앗~! 차가워! 이열치열! Cool한 노래로 돌아온 베스티와~”

“아뜨뜨! 얼어붙은 마음도 사르르 녹여줄 만큼 Hot한 노래로 돌아온 라이트온!”

그리고 언제나처럼 돌아오는 단골 질문이 시작됐다.

“각 팀! 1위 공약이 있으실까요?”

“네! 저희 베스티가 1위를 하게 된다면, 막내를 가마 태워주면서 무대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오오~ 베스티는 힘이 굉장히 센 걸로 유명하죠?”

“완전 천하장사죠!”

팔을 번쩍 들어 올린 베스티의 한 멤버에, MC가 호응했다.

“대단한데요! 아주 기대되는 공약입니다!”

동감이다.

1위를 양보할 생각은 없다만, 상상해 보니 꽤 재미있는 무대가 만들어질 것 같군.

우리도 좀 더 시각적으로 주목을 끌 수 있는 공약을 준비했어야 했나…….

분위기에 적당히 편승한 내가 잡념을 이어가며, 기계적으로 손뼉을 짝짝 치고 있던 순간이었다.

띠링!

이런 미친…….

이젠 이 정신 나간 놈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감도 안 온다.

나는 떠오른 퀘스트창을 빠르게 읽어내렸다.

깜짝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어그로는 내가 더 잘 끌어!]

이거 어쩌죠? 저쪽 팀의 공약이 더 흥미롭습니다!

이걸 두고 볼 수 없군요!

경쟁 상대보다 더 임팩트 있는 공약을 내보이세요! (타인을 공약의 주체로 설정할 시, 퀘스트는 실패로 돌아갑니다!)

성공 시 ▶ 400G

실패 시 ▶ 랜덤 망신살

망신살이라는 짤막한 텍스트만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돌이 가장 피해야 할 사주를 꼽자면, 단연코 망신살이다.

덕질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이 망신살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알고 있을 거다.

이해성의 오타쿠 자아를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심장이 철렁할 정도다.

여태껏 퀘스트는 실패 페널티가 없었는데, 랜덤 망신살이라니.

저게 무대 위에서 터질지, 어디서 터질지 알 수 없다는 게 더 호러다.

나는 꽁꽁 언 동태처럼 안광을 잃어가려는 눈깔을 빠르게 깜빡거리며 생기를 돋궜다.

아무리 당황스러워도 잊지 말자.

지금 이건 생방송으로 송출되고 있다는 걸.

“자! 그럼 우리 라이트온의 1위 공약도 들어볼까요?”

“네! 저희가 1위를 차지하게 된다면~”

마이크를 쥔 최승하가 멘트를 내뱉기 무섭게, 카메라 사각지대에서 녀석의 등을 꼬집었다.

“……저~ 희 리더 형이 말해보겠습니다!”

역시 눈치가 훌륭하군.

나는 방긋 웃으며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X발, 인생 살기 힘들다…….

* * *

“형니이이임!”

무대 아래로 내려오기 무섭게 차윤재가 빽 소릴 질렀다.

“저는 제 귀가 이상한 줄 알았습니다. 저, 저희 다섯을 안고 무대를 하겠다니 그게 말이나 된답니까!”

누가 들으면 한 번에 안는 줄 알겠군.

“릴레이로.”

“그걸 누가 모른답니까! 릴레이고 뭐고 안됩니다!”

신유하와 함께 긴장으로 죽어가던 놈을 축복으로 살려놔 줬더니 과하게 생생해졌군.

쯧쯧…….

“시끄럽다는 듯이 귀 막지 마시고 말 좀 해보십시오! 걱정됩니다! 허, 허리라도 다치시면……!”

“윤재 형 말에 동의합니다.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요.”

“맞아요. 한번, 더 생각해, 주세요. 걱정돼요…….”

“내가 무슨 툭 치면 쓰러질 놈인 줄 알아?”

“으음, 저번에 툭 치니까 쓰러지던데?”

퍼버버버벅!

“아악! 타임! 타임! 미안해요! 그 얘기 안 할 테니까 그만 때려요!”

순식간에 등짝을 연타당한 최승하가 실없는 얼굴로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한두 명도 아니고, 다섯 명 다 업는다고 한 건 좀 그렇죠~”

“할 수 있다니까.”

“진짜요?”

“그래.”

“으음, 그럼 여기서 저 업어봐요. 못 업을걸?”

“체력은 비축해야 하는 법이지…….”

“이 형 안광 사라지는 것 봐!”

헤헤 웃은 최승하가 말을 이었다.

“아니면 제가 할까요? 뭔가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저, 저도 가능합니다!”

“윤재 네가 가능하다고~?”

“절 뭘로 보시는 겁니까! 흡!”

제자리에 우뚝 선 차윤재가 손짓했다.

“아무나 와보십시오!”

“네 서방님~”

해맑게 웃으며 품으로 달려가는 최승하의 목덜미를 잡은 건 류인이었다.

“승하야. 그러다 다친다.”

“에이~ 당연히 넘어질 것 같으면 등 받쳐주려고 했죠~”

“……류인 형님 덕에 살았습니다! 순간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 정도라고? 나도 상처라는 걸 받아!”

최승하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차윤재가 결연한 얼굴로 내 팔을 붙잡았다.

“확실히 이건 안됩니다! 해온 형님이 저 날뛰는 인간을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

“형니이임! 듣고 계십니까?”

펄럭! 펄럭!

차윤재가 몇 번 흔들었다고 순식간에 메스꺼워진다.

개 같은 개복치 몸…….

속으로 구역질을 삼키고 있는데 진득한 현타가 몰려왔다.

내가 제일 하기 싫다.

내가!

제일!

퀘스트를 수행 안 하면, 망신살이라는 극악무도한 페널티가 온다는데 그걸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나도 마음 같아서는 다른 놈들 멱살 잡고 네가 하라고 부추기고 싶단 말이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의 아름다운 양심에 찬사를 보냅니다!]

* * *

하지만 이쯤 되니 퀘스트고 나발이고 그냥 다른 놈들에게 넘길걸, 하는 후회가 밀려들어 온다.

“이번 주 영광의 1위! 그 주인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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